3분QT-여호수아편 2010. 1. 6. 04:19

16. 삼일간의 침묵이 필요 합니다.


<3분 QT> 16. 삼일간의 침묵이 필요 합니다.

제목: 건너지 아니하고 삼일을 유숙 하니라.

말씀: 여호수아3장 1-2절,5절

여호수아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스라엘 사람들로 더불어 싯딤에서 떠나 요단에 이르러서는 건너지 아니하고 거기서 유숙 하니라.  2. 삼일 후에 유사들이 진중으로 두루 다니며....... 5. 여호수아가 또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스스로 성결케 하라 여호와께서 내일 너희 가운데 기사를 행하시리라.

1. 묵상을 위한 질문

* 요단에 와서 건저지 아니하고 거기서 얼마를 유숙했는가요?(2)
* 그곳에서 여호수아는 무엇을 했다고 생각이 드시는 지요?
* 3일 후 그가 외친 말을 무엇 이였나요?(5)
* 여호수아는 일하기전 3일을 깊은 영으로 들어갔음을 느끼게 됩니다. 나는 정말 무슨 일을 하기 전
 주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얼마나 주 앞에 침묵하며 기다리는지를 깊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2. 깨달음과 교훈

주님 제게 깨달음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전 생각의 깊이가 없이 너무 밖으로 나 다녔고 영성의 깊이 없어 주의 음성을 듣기보다 스스로 임의롭게 함부로 행했음을 고백 드립니다. 주님 용서해 주세요. 잠언 3장 6절의 말씀과 시37편4-6절의 말씀을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3. 삶에의 적용

내가 지금까지 실패한 이유가 여기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먼저 주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첫 시간을 주님께 드리며 주의 음성을 듣도록 침묵의 시간을 많이 갖고 말씀을 더 많이 묵상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우리 형제님 중에 약사가 한 분 계셨습니다.
그 형제님은 신앙의 열정을 품고 있었고 성도를 더욱 섬기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 근처로 약국을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는 그날부터 약국 자리를 찾아 다녀 보았으나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성령께서 왜 앞서 가느냐? 책망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 뒤로 조용히 여호수아같이 침묵하며 깊은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주의 음성을 듣고자 애를 썼습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어느 날 길을 가는데 갑자기 성령님의 음성이 내 마음에 들렸습니다. “여기다 들어가라”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발이 땅기어 들어가는 것을 체험했습니다. 부동산 소개소였습니다.
물었습니다.
“약국자리 없습니까?” 부동산 주인이 깜짝 놀라듯 “알고 왔어요?” 하는 것입니다.
“왜요?” 하니깐  “저기 있는 보석과 금은방이 자리를 이제 막 내어 놓았습니다.”
그곳은 삼거리의 아주 좋은 몫의 자리었습니다. 형제에게 급히 알리고 와서 보게 했습니다.
그 후 약국이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얼마 있다 그 교회를 떠나게 됐고
형제님은 그 약국을 통해 큰돈을 벌어 교회의 기둥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는 그때 절감했습니다. 주님을 앞서 잘 모셔야 한다.
그리고 그의 음성을 듣기 위해 나의 소리를 침묵해야 한다.
그리고 잘난 척하고 앞서지 말자였습니다.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3:6)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시37:4)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애3:26)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정신적 깊이나 영적인 뿌리 없이 밖으로 바쁘게 다니는 사람이 아닌가?
   물어 보기 바랍니다.
2. 내 임의롭게 생활하면서 주의 뜻으로 합리화 시키는 경우가 없는지
    점검해 보기 바랍니다.
3. 나의 삶을 통해 주의 음성을 구체적으로 듣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스스로 답해 보기 바랍니다.


백동흠 칼럼 2010. 1. 3. 03:23

로버트 박이 누군지 전혀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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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 Mr. Kim Jong Il and North Korea's Leaders:

I proclaim Christ’s love and forgiveness towards you today. God promises mercy and clemency for those who repent. He promises forgiveness for every sin and re-birth through the Holy Spirit for those who believe Christ died for the atonement of all their sins, as a sacrifice from God, given in love. He is the true and living God. He loves you and wants to save you and all of North Korea today. Please open your borders so that we may bring food, provisions, medicine, necessities, and assistance to those who are struggling to survive. Please close down all concentration camps and release all political prisoners today, and allow care teams to enter to minister healing to those who have been tortured and traumatized.

All we are asking is for all North Koreans to be free, safe and have life.

With Love, Respect and Goodwill Towards All People,

Robert Park
12/25/2009

28세의 한 젊은이가
2009년 성탄절날 새벽 5시 경 북한 회령 당원리에서 국경을 넘어 북한으로 들어갔습니다.
“나는 죽으러 간다. 나의 죽음이 북한의 고통 받는 사랑하는 백성들을 해방하게 하는 하나의 밀알이 되기를 소원한다.”는 요지의 메시지를 남기고 그렇게 들어갔습니다.
이때 자신의 가슴에 품고 간 편지가 위의 글입니다.
그 추운 날 북한의 백성들이 낡은 옷을 입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따뜻한 자신의 방한복을 벗어 버리고 낡은 그들의 옷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담담하게 그 길을 갔습니다.

그가 그렇게 당당하게 들어갈 때 국경을 지키는 북한 병사조차도 놀랐다고 합니다.

왜 침묵하고 있는가?
"700만명이 지금 북한에서 굶어 죽고 있으며 25만 명이 학대와 고문으로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 가는데도 왜 한국과 한국 교회 그리고 국제 사회는 침묵하고 있는가? “
23일 서울에서 로이터와 가진 인터뷰에서
“기독교인으로서 북에 들어가는 것이 의무라고 생각한다.”
전 이 소식을 듣고 엄청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감동이 밀려 왔습니다.

지금 전 정치를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념이나 사상을 이야기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야기 하고 싶은 것입니다.
한 젊은이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가? 에 대해 신선하게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성탄절 자체가 이 살벌하고 추운 이 땅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 행위이었습니다.
그분이 죽음으로 우리를 살리게 한 것이 복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우리에게 명한 것이 한 알이 밀알이 죽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 복음임을 선포해 주었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 젊은이들에 대해 너무 게으르고 자기중심적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부모님들의 땀과 눈물의 부요 위에서 안주하고 탐닉하며 비젼과 꿈이 없는 세대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인가? 를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 28세 된 한 젊은이를 통해 희망을 보았습니다.
우리 어른 세대가 보지 못한 것을 보는 미래의 정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 하나 죽어 저들이 살수 있다면 기꺼이 선택할 수 있는 예수님의 살아 있는 믿음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격려해야 할 것입니다.
아벨의 피가 땅에서 부르짖어 하나님의 거룩한 뜻이 그 땅에 임할 때까지 침묵해선 안 됩니다.
한 젊은이와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진정한 인권의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가 존중 받는 그 땅이 되고, 탈불자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 가, 서로 얼싸안고 행복한 가정을 세우기 까지, 그리고 그 땅에 여호와의 경외하는 것이 바다에 물이 넘치는 그 날까지, 제2, 제3의 하나님의 자녀들이 일어나야 하며 일어나도록 기도하며 함께 동참해야 합니다.

새해가 밝고 희망차게 보이는 것은 사랑으로 승리하신 예수님이 계시고 아직도 우리 주변에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 2010년 송구영신 예배 설교 중에서 -

2010. 1. 1. 02:10

새해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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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 망

            백   동  흠

소망은
보이지 않게 다가와
미소지으며 손짓합니다.

한 움큼 잡아당길 수만 있다면
차라리 좋을 텐데

설레임을 여기 남겨 둔 채
떠나가야 했나 봅니다.

시간의 땅 끝
오늘 여기에서

현실의 허전함을 달래는
우리에게

소망은 내일을 향해
다시금 또 일어나게 합니다


 詩作노트
 
지나온 삶을 돌이켜 볼 때
 
아쉬움, 아쉬움  뿐입니다.
   
 
바라는 꿈의 설레임이
 안으로 그득하나
 
아직은 허전할 뿐입니다.
 
 
그런데 소망은
 현실의 허전함을 달래며
 
다시금  일어나게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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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QT-여호수아편 2009. 12. 31. 06:30

15. 신뢰는 평소에 얻어 놓아야 합니다.

<3분 QT> 15. 신뢰는 평소에 얻어 놓아야 합니다.


제목: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그러나 누설하지 마라

말씀: 여호수아2장 17-21절

17.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18.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19. 누구든지 네 집 문을 나가서 거리로 가면 그의 피가 그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요 우리는 허물이 없으리라 그러나 누구든지 너와 함께 집에 있는 자에게 손을 대면 그의 피는 우리의 머리로 돌아오려니와 20.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면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맹세에 대하여 우리에게 허물이 없으리라 하니

1. 묵상을 위한 질문

* 붉은 줄을 창문에 내리고 어떻게 하라고 했는지요?(18)
* 전쟁 통이 되고 난리 통에도 어떻게 있어야 한다고 했는지요?(19)
* 여기에 또 하나 붙은 조건이 무엇인가요? (20)
* 뭔가를 요구 할 때 묻는 것이 이유가 뭐냐? 왜 그러느냐? 고 묻게 됩니다.
  만약 그 이유를 답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어지지요. 라합이 그 이유를 알려 주지
  못하면서도 그들에게 요구해야 할 것이 무엇일까요?
* 결국 라합의 영향력은 어떠했는지요? (6:23,25)

2. 깨달음과 교훈

첫째는 식구와 친척들을 붉은 줄이 달린 방으로 모아야 합니다.
둘째는 절대 그 이유와 원인을 알려 줄 수 없습니다. 누설되면 안 되기 때문이지요.
셋째 그들이 라합의 요구하는 말만 듣고 따라 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신뢰 없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런 신뢰는 평소에 이미 얻어

      놓아야  만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주님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말을 이유도 조건도 없이 신뢰해 주며 따라 줄 수 있을까? 생각해 볼 때 너무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평소에 신뢰를 받고 라합의 모습 속에서 배우기를 원합니다. 결정적인 날에 나의 말이 먹혀들어 가기 위해서도 평소에 신뢰를 주는 삶이 얼마나 귀한지 깨닫게 됩니다.

3. 삶에의 적용

다시금 롯과 사위들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롯이 얼마나 농담 같은 신앙 삶을 살았으면 죽느냐? 사느냐? 하는 심각한 이야기를 하는데 사위들이 농담으로 받았을까? (창19:14)
평소에 영향력을 주고, 평소에 신뢰를 주고, 평소에 삶에 본을 보여 주여야겠는데 잘 안 되는 저의 모습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 저는 십자가에 죽어지고 주님이 내 안에 사셔서 그런 신뢰를 주는 인격이 되고 삶이 되게 해 주세요? 아멘.

롯이 나가서 그 딸들과 결혼할 사위들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의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더라. (창19:14)
정직한 자의 성실은 자기를 인도하거니와 사특한 자의 패역은 자기를 망케하느니라.(잠11:3)

홍 집사님이라고 계십니다. 집사님은 배운 것도 별로 없고 모은 재산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자녀교육만은 최고였습니다. 많은 분들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그러나 집사님의 답변은 그저 단순했습니다.
“전 한 것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다만 주님의 은혜이지요.”
그러나 그 집사님이 한 것 하나 있었습니다. 새벽 마다 와서 울었습니다. 그저 주님 앞에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서도 틈만 있으면 무릎 끓고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울었습니다.

그 자녀의 고백이 있었습니다.
우리 엄마의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 빗나갈 수 없었습니다. 엄마의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왜 그리 마음에 와 닿는지 순종 안 할 수 없었습니다.

순종하게 하는 능력은 나의 인격, 나의 똑똑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 권세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권세는 기도하는 무릎에서 나오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에 사는 이방인 기생이었지만 얼마나 몸부림 치며 눈물 콧물 흘리며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을까? 생각 들었습니다. 그 부모와 식구들과 친척들이 그의 말을 순종하고 따를 수 있는 배후에는 주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나는 롯과 라합중에 어디에 더 많이 속했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2. 좀 더 구체적으로 나의 자녀들이 나의 아내와 남편이 나의 말에 대해 따라주고
    있는가? 아니면 거슬리고 있는가?  
3. 그렇다면 따라주는 이유와 거역하는 이유에 대해 나름대로 분석해 보기 바랍니다.

백동흠 칼럼 2009. 12. 30. 02:52

추워야 따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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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워야 따스합니다.

                                                  백 동흠목사

몇 해전 3가족의 친구가 빅 베어의 높은 산 속의 산장을 얻어 성탄절을 지내기로 했습니다.
그곳은 눈이 올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와보니 진눈깨비가 섞인 찬비가 주룩 주룩 내렸습니다.
오후 4시 도착했습니다. 산장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안은 썰렁했고 침침했습니다.

우린 전기 불을 키고 히터를 틀고 여장을 풀었습니다. 그러나 9명의 자녀들은 들어오자마자 TV 앞으로 가버립니다. 이것이 요즘 아이들의 처세입니다.
우린 벽난로의 불도 지피웠고 장작타는 냄새와 함께 운치가 있어 보였습니다. 이젠 제법 방안이 따뜻해 졌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여전히 정신 없이 TV앞에 모여 있을 뿐입니다.

밖은 여전히 찬비가 옵니다. 난 비가 좋습니다. 비는 나의 연인같이 안식을 주며 정서적으로 편안함을 줍니다.
이젠 마음의 여유를 가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전기가 나간 것입니다.
심한 바람과 폭우로 이 일대의 전기가 다 나가고 만 것입니다.
히터가 나가니깐 갑자기 방이 냉방이 되었습니다. 음식도 가져간 가스버너로 대신하게 됐습니다.

밖과 방안이 온통 깜깜했습니다. 어쩜 온 밤을 냉방에서 지낼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벽난로의 장작을 아끼기 시작했습니다. 벽난로의 불이 유일한 온기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틈엔가 아이들이 벽난로 가까이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가 우스개 소리를 한 마디하니깐 다들 벽 난로 앞에서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사오정 시리즈가 한 바탕 오갔고 자연스럽게 말 짓기 놀이를 하게 되고 369게임으로 이어지더니 가족 노래 자랑을 하게 되었습니다.

방은 어둡고 추웠으나 우린 어느 틈엔가 한 가족같이 친밀함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벽난로의 따스한 온기 속에서 마음들이 열리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대화 속에 밤이 깊어갔습니다.
어두웠기에 밝았습니다. 추웠기에 참 따스함을 느겼습니다.

11시가 넘어 전기가 들어왔습니다.그리고 아이들은 누가 먼저 일어 났는지 모르게 흩어져 나갑니다. 이렇게 흩어져 떠나는 모습을 보고  어느 부모님이 말합니다.
“차라리 어둡고 추운 것이 더 낳은 것 같다"
“어두웠기 때문에 더 좋은 시간, 따스한 시간을 갖은 것 같다.”
다른 부모님이 맞장구 칩니다.

전 그날 깊음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는 부요함이 오히려 사람을 더욱 삭막하고 빈곤하게 만든다는 것과
둘째는 춥고 가난해야 우리의 삶이 더욱 따스해 지는구나 생각 들었습니다.

밖으러 나왔습니다. 찬비가 진눈꺼비가 되더니 이내 하얀 눈을 뿌립니다.
추웠습니다. 그러나 그 추위가 너무 다정 스러웠습니다.
춥기때문에 따스함을 그리워하고 삶을 행복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추워야 따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