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과 사모님과 전도사님입니다.

지붕위의 사람도 반가와 해주며 전도지를 받아 줍니다,

                   다들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며 복음을 받아 들입니다.

 

                               이이돌 형제와 함게 몃있는 댄스를 합니다.

                                    헤맑은 오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밀가루를 덮어씨우며 물총 놀이도 합니다.

                        현지 목사님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쩍었습니다.

              멕시칼리 한인 교회의 여선교회가 오셔서 도와 주셨습니다.

                                  현지 멕시코 목사님들 입니다.

           금방 배워서 따라하는 어린이들 입니다. 너무나 좋아 합니다.

         두 아들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보기가 좋았습니다.

        저의 뒷쪽의 어린친구들이 고개를 내민 것이 너무 다정 스럽웠습니다.

                             어린 친구의 부모님이 십니다.  

 주민들에게 나누워 주기 위해 쌀, 콩, 설탕 그리고 여려가지 물건을 담는 중입니다.

                                  보육원의 어린이들 입니다.

선교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백 동흠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매주 강단에 꽃을 장식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위한 거룩한 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생일, 추도 결혼기념일 등등)
강단에 꽃을 장식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장식하는 꽃을 불우한 어린이를 도우면
주님이 더 기뻐하지 않을까 성도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영적 헌화”라고 하는 명칭으로 헌금으로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영적 헌화의 금액은 20불로 정하고 새해 첫날 영적 헌화표를 만들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 작성하게 했습니다.
올해는 멕시칼리의 고아들을 위해 영적 헌화 헌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마침 청운 교회를 담임하는 이명수 목사님과 대화중에
목사님이 학생들과 함께 멕시칼리로 단기 선교를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돕고자하는 멕시칼리 고아원이기에
장로님들과 상의 한 후 저도 함께 가기로 한 것입니다.
저의 두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멕시칼리는 멕시코의 바하 칼리포니아의 주의 수도였습니다.
인구는 9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가 간 곳은 미국과 국경을 한 멕시칼리의 국경지대 이었습니다.

양철 같은 것으로 담을 쳐서 국경선이 되게 했습니다.
국경선을 끼고 찻길을 달리는데 선교사님이 말합니다.
아직도 이곳의 사람은 미국을 선망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12불정도 벌이가 된다고 합니다.
저 담만 넘어가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 12불의 벌이가 되기에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 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멕시칼리는 문자 그대로 한증막이었습니다.
120도 되는 그런 무더위였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들어오니 한국의 60년대의 풍경의 모습이었습니다.
집들이 왜 이리 허름한지 빈집들 같았고
전쟁 통에 부셔진 집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 보면
사람들이 땅을 사고 그 위에다가 벽을 치고 창문을 만들고
문짝을 달고 집을 져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데로 조금씩 집을 짓다 보니
2년도 걸리고 5년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도독이 들어와 창틀을 빼가고 문짝을 홈쳐 간다고 합니다.
12불씩 버는 돈으로 언제 그 집을 지을꼬?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마치 60년대의 하꼬방 같은 집들!
허름하고 빈집 같은 그런 곳에서 이렇게 무더운 날에 어떻게 살고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고아원에 도착했습니다.
2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반겨 주는데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숙소는 근처의 조이 센터였습니다.
그곳은 넓은 예배실과 주방이 있고
그 옆으로 화장실과 샤워 실이 딸린 숙소가 있는데 이층 침대로
4명이 잘 수 있는 방이 여려 개가 있었습니다.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잠자리도 너무 편했습니다.

학생들은 빈 창고 같은 예배실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가져온 장식품으로 강단과 벽과 예배실 공간을 장식을 하는데
너무 아름답게 꾸민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의 무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 했습니다.
14명의 어린 학생들이지만 이들이 하나 같이 뭉치면
얼마든지 무슨 일 이 든지 할 수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를 편성하여 노방 전도를 나갔습니다.
선교사님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4개조를 편성하여 보육원의 아이들과 같아 나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무더위에 사람도 전혀 없는 길거리로 전도하려
나간다는 것이 그저 선교지에 왔기에 한번 하는 행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육원의 어린아이들이 앞장서서 전도지를 갖고 나갔는데
가가호호(家家戶戶) 찾아가서 외쳐 댑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반가운 얼굴로 들어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주는데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오라고 하는데 웃으며 답합니다.

어쩌다 오는 택시를 손을 흔들어 세웁니다.
운전수가 차를 세워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줍니다. 웃으며 받아 주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을 먹게 됩니다.
전도가 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는 것에 대해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무더워 등이 다 젖어 들고
숨은 콱콱 막히나 사람들의 서민적인 것과 순박함과
전도지를 받아 주는 것 자체가 제게는 60년대의 한국의 정서가
내 안에 살아 나와 마치 고향의 집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포장도로인 자갈밭 같은 길을 걸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모여 온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이 교회에 오기만 하면 돌아 갈 줄을 모르고
학생 선생님과 기타에 맞추어 찬양도 하고 배은 율동댄스도 하고
밖에 나와 물놀이도 하는 모습이 우리 어린 시절 하기 학교 때
교회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놀던 그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며 집에 가야 무더위 속에 빈집에 있기보다
이렇게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좋은 선생님과 목사님이 계시기에
교회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편집하여 선교사님과 그 곳 어린이들에게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돌아오는 길목
멕시칼리가 먼 나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진 고향과 어린 시절의 고향 예배당에
잠시 왔다가는 것 같았습니다.
두 아들은 돌아오면서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직을 가지고 와서
이들을 돕고 섬기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작은 선교 헌금이지만
사랑의 영적 헌화 헌금을 내어 주신 성도님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히 보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어린 영혼들의 모습이 투영하게 보였습니다.
성도님들의 얼굴과 어린이들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밝은 모습으로 떠 올라왔습니다.
참 아름답고 그리운 얼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먼 나라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곳에 찾아와 땀과 눈물로 수고를 하시는 선교사님과
잠시 다녀가는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과
이렇게 작은 선교 헌금을 모와 전해 주는 그 손길들이 하나가 되어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이 됐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자들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며 훗날 주의 나라에 가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상 주신다는 소망이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몸은 피곤하지만 영은 너무 맑았고 기쁨으로 출렁거렸습니다.

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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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초((民草)

2014/07/25 09:02

민초((民草)

             백동흠

거친 세파
험한 세상에
뿌리는
깊이 박혔고

터전이
삭막하였기에
모질게 자랐어라

때론
모나기도 하고
설움 섞인
반항도 있었지만

밟히고
눌리는 고통 속에
인내를 배웠고

이리 휘고
저리 휘는
바람 속에
순리를 알았어라

설령
기약된 미래가
없다
하더라도

오늘도
묵묵히 운명에
순복하며

그의 삶을
가는
생명이여!

여전히
모진 세파    
온 몸으로 받으며

굳세게
그 땅위에  
서 있었어라  

詩作노트
세월호의 아픔을 느끼면서 오래전의 일이 생각났습니다.
한국 우리 교회의 옆 동네는 달동네라고 할 수 있는                              꼬방마을이 있었습니다.
전 그 곳을 많이 사랑했습니다.
그 때 사귄 광일이나 상민이 같은 어린 꼬마들의 얼굴이                        눈에 선합니다.
그 동네의 모습은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얼굴에서 느끼는 것이 있었습니다.
표정은 굳어 있으나 따스함이 있었으며
언어는 거칠었지만 진실함이 있었습니다.
환경은 가난하게 보였으나                                                               정말 성실함과 우직함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눈뜨고 당하는 아픔과 아무리 애를 써도 비빌 언덕을 찾지 못하는           절망과 방황이지만
결국 이분들이 그 땅을 지키고 있음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그 땅을 지켜 주는 분들이 누구인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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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22 14:05

 

             백동흠

참이 참일 수 있다면
그 참을 굳게 지키렵니다.

달콤한 유혹이
뼈아픈 고통이

혹독한 실망이
끝내 그 손을 놓게 하더라도

그것이 참이라면
아주 굳게 지키렵니다.

그러니 주님!
실망 마시고 힘내세요. 녜?
그리고 힘주세요!

 ***
시작노트

무슨 뜻의 시인지 아시겠는지요?
오늘 진실의 선이 어디 있는지
진정한 “참”이 어디 있는지
참 많이 혼동과 혼란의 시대인 것 같습니다.

그것을 지키기가 심히 어려운 시절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달콤한 유혹에
어떤 사람은 너무 힘들고 어려워서
어떤 사람은 너무나 혼동스러워서
어떤 사람은 다들 그러니 나도……. 라고 하면서
그 손을 놓아 버렸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 때 나 하나만이라도 이렇게 말했으면 합니다.

“주님 실망하지 마세요.
제가 있잖아요! 제가…….”

우리 시대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굳게 그 자리를 지키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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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정몽준집사님의 아들

                                              백 동흠목사

정몽준의원은 7선 의원으로 성공적 정치인입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아들로 뛰어난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소망 교회의 집사님으로 믿음이 좋은 신앙인입니다.
그의 집안은 명문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의 참변이 일어났을 때
고3의 아들이 “미개한 국민” 발언이 사회적 지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서울 시장 선거에도 굉장한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신문을 통해 읽으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레주였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란
Noble(귀족)과 Obliger(준수하다)의 합성어로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성” 혹은 고귀한 신분에 걸 맞는 “책임감”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고유 명사입니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교육이 강하다고 합니다.
귀족 사회에 근간을 둔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는 학교라고 합니다.
이튼 학교의 정문의 벽에는 이천 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차 2차 세계 대전 때에 이 학교 출신으로 참전한 전사자들의 이름입니다.
도덕성과 책임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이름이 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수송부대 하사관으로 근무했습니다.
해리왕손도 아프가니스탄 전에 참전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에도 앤드류왕자도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6.25 한국 전쟁 역사에 대한 비사를 읽었습니다.
참전한 미국의 장성급 자녀들이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그마치 장성급 아들들이 142명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35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클라크 유엔 사령관은 아들을 잃었습니다.
월턴 워커 미 8군 사령관(삼성장군)은 아들과 함께 참전했다 전사했습니다.
후임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미8군 사령관의 외아들에 대한
사연은 눈물겨웠습니다. 외아들이 공군 중위로 참전했습니다.
평양 인근으로 출격 나갔다가 실종이 됐습니다.
미 공군에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사령관의 아들을
수색하여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사령관은 내 아들을 위해 또 다른 아들들의 부모님을
아프게 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무모한 수색작전을 중단 시켰습니다.
그때 아버지 사령관은 요한복음15장 13절의 말씀 묵상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신분에 걸 맞는 희생이요 뛰어난 정신력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정몽준의원의 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의 귀족적 신분임이 분명합니다.
특별한 선택받은 가정의 자녀입니다.
명문 집안의 자녀이고 집사님의 아들입니다.
강남의 유명한 교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면서 신앙 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허물과 부족을 보는 눈이 있기에 그런 글도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함부로 판단하며 귀족층,
특권층으로 그 위에 군림하는가?

아니면 그런 국민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하며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책임지고자 하는 도덕성과
그 신분에 걸 맞는 책임감을 갖는 사명자로 나타나는가?

아마 어린 나이임에도 불과하고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 내가 이라면 안 되지!
생각하며 세월호의 참변을 당한 그 현장으로 뛰어가
울면서 아파하며 섬겨주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개한 인생의 죄를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고
그들의 탓을 내 탓으로 돌리며 대신 책임지고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 교육이며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오늘 타락한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자기의 특권층(귀족층, 명품족)으로 바꾸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베풀어 주신 축복이 자신의 업적이 되고 자기 자랑이 되고 교만이 되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그 격에 맞는 도덕성이나 책임의식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둘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형 교회건물을 지으며 여전히 특권층, 귀족층, 명품족으로 머무르며
사회 저변 층으로부터 개독교 먹사로 불림 받으면서 버림을 당할 것인가?

또 하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만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하며
뛰어난 도적덕성을 실현하고 섬김으로 온 백성이 존경하며 따르는
그런 교회와 성도로 나타날 것인가?
지금 둘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역사적 기점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정몽준 집사님의 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이 스며들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격에 맞는 도덕성과 그 신분에 부합하는 책임감으로
온 백성의 칭찬과 존경을 한 몸으로 받아 미래의 대통령 재목감이 됐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지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격에 맞는 뛰어난 도덕성과 함께 이 땅의 가난하고 불쌍한 온 백성의
발을 씻어주며 책임져 주시는 예수님의 정신을 배워야 하고
가르치며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 죄송합니다. 정정합니다.                                                                        정몽준 의원은 소망교회 장로님이 아니라 집사님이었습니다.

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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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경엽
    2014/07/17 19:0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죄송합니다
    정몽준의원은 소망교회 집사였습니다.
    수정부탁드립니다
    소망교회성도드림
  2. 김경엽
    2014/07/17 19:04
    댓글 주소 수정/삭제 댓글
    죄송합니다
    정몽준의원은 소망교회 집사였습니다.
    수정부탁드립니다
    소망교회성도드림

 

6.25! 과연 잊혀지는 역사인가? 

                                       백 동흠목사

2013년의 통계입니다.
6.25를 경험한 세대와 경험이 없는 세대의 숫자가
760만 명 대 4040만 명이라고 합니다.

1950년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한 세대의 사람들은
서서히 그 무대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 이후의 태어난 사람들도
이제 그 연수가 60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6.25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와
6.25를 이후에 태어난 아들 세대는
6.25의 참상에 대해 말하고 듣고 하면서
깊은 역사적 공감이 형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6.25의 역사적 배경과 전쟁의 시작에서 휴전하기까지
전쟁의 경험한 자들의 증인과 증거를 보존하고
그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보전하여
그 다음의 세대에게 전해 주는 데는 실패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제 자신도  6.25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에게 많이 들었으나
그것은 그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입니다.
괴뢰군의 만행이나 서민들의 비참했던 피난민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6.25의 역사적 배경이나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관하고 보여 주는
6.25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300만의 학살 현장이 그대도 재현한 홀로코스트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때의 증인들은 나이가 차서 이미 다 고인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생전에 그 생생한 목소리로
그런 비참한 역사의 배경과 그 현장의 모습을
친히 보여 주고 전해 주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아주 많이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행복했던 유대인들의 생활 모습 부터 시작하여
학살의 현장으로 가기까지의 전과정의 모습을
생생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여 있었습니다.

윤택했던 그들의 모습과 비참한 해골의 모습으로 변한 그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떨어진 옷들과 신발과 가방들이 산더미 같이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생필품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머리카락들까지도 수북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의 수만의 이름이 그 넓은 밤하늘 같은 공간에
별빛과 함께 불러 주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을 본 사람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역사를 배우자는 교실이 필요 없습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젊은 부부들이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소풍 삼아 왔다가 훌쩍이며 나오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직접 그 현장을 보게 함으로 느끼고 눈물짓게 했어야 했습니다.
6.25의 역사 뿐 아니라 일제의 만행도 위안부의 역사도                                     그렇게 해 놓았어야 했습니다.

사실 역사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알게 해 주고 보여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면
역사의식은 살아나게 되어 있고 무장하게 되어 있고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후손들은 든든히 나라를 지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를 다녀 온 후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철저하고 어떻게 무장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제일 먼저 했으면 합니다.
역사 기념관을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이 그 곳에 찾아 가서
그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고 눈물짓고 돌아오게 했으면 합니다.

이런 역사의식이 없었기에 좌파가 생겼고 종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역사의식은 혼미해 지고
안보의식은 두려울 만큼 해이해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망전필위 (忘戰必危)을 기억해야 합니다.
잊으면 반드시 그 위험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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