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2. 20. 11:32

들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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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꽃”

                       백 동흠


빈 가슴 가득 하늘을 채웠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에 향기를 전해 주었습니다.
숨어서 홀로 멋을 내고 있었습니다.

보아 주는 이 없고
품어 주는 이 없어도

들꽃은 알고 있습니다.

간밤에 내린 이슬도
새벽녘 밝은 햇살도
어루만져 주는 바람 숨결도


나 하나를 위해 베푼
사랑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詩作노트>
종종 저는 빈들을 찾아 갑니다. 버려 져 있다고 생각하는 빈들 인적이 끊겨 외롬이
가득찬 곳  그런데 보아주는 이 없고 품어 주는 이 없는 그런 곳에 피어 있는 들꽃을 보게 됩니다.

제게는 슬퍼 보였습니다. 제가 물어 봅니다.
“외롭지 않니?”
들꽃은 웃으며 말합니다.
“외롭다니요? 사랑을 듬뿍 받고 이렇게 있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았는데.......
하나의 들꽃 만 못한 것이 바로 나 자신이구나.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돌아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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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QT-여호수아편 2009. 12. 20. 11:25

12. 흐름을 보고 선택해야 합니다.

제목: 라합이 정탐꾼을 숨기다.

말씀: 여호수아2장2절-4절

혹이 여리고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몇 사람이 땅을 탐지하러 이리로 들어 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탐지하러 왔느니라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가로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로서인지 나는 알지 못 하였고,,,,,,,

1. 묵상할 질문

* 정탐꾼이 라합의 집에 들어 간 것을 목격한 자가 있었나요? 없었나요?
* 그리고 그 사실을 신속하게 누구에게 전했나요?
* 왕은 신속하게 누구를 라합의 집에 보냈나요?
* 이미 들켜 버린 상태이고 이미 알아 버렸고 정탐꾼을 끌어내라고 할 정도이면 변명의 여지도 없이
 잡힌 거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어떻게 하나요? (5)
 
2. 깨달음과 교훈

아! 주님 라합의 믿음이 그냥 거저가 아님을 깨닫게 됩니다.
이미 목격자가 있었고 왕은 병사를 보내어 정탐꾼을 끌어내라고 할 정도라면 체포 일보 직전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순간 라합은 사실결단(死生決斷)의 순간이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첫째는 이미 들킨 것 더 이상 숨기면 나도 당하게 되니깐 포기하던지
둘째 설령 죽을지언정 이 정탐꾼들을 숨김으로 미래의 복의 흐름을 택하던지 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임을 깨닫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속해 있는 음란한 땅, 세속의 땅, 죄악의 흐름을 끊는 결단이요, 영의 흐름을 택하는 믿음의 선택이요 미래의 복의 흐름을 선택하는 기로였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3. 삶에의 적용

주님 결단이 있고 행동이 따를 때, 위기가 있고 손해가 있고 불안과 두려움이 따를 수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오늘이 아니라 내일의 복의 흐름을 택해야 겠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너무 쉽게 결단하고 조그마한 위험과 손해가 오면 쉽게 포기하고 무너지는 자가 아닌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우유부단(優柔不斷) 함으로 하나님의 기회를 실기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을까? 적용해 보았습니다.

어느 농장에 가난한 어느 청년이 일자리를 찾아 왔습니다.
이 청년은 건장하고 신실했습니다. 농장의 어렵고 힘든 일도 잘 해 주었습니다. 주일 되면 교회에 가서 주일학교를 섬기고 경건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청년의 생활과 인격은 복의 흐름을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인가 농장주의 딸이 그 청년을 좋아 했습니다. 그 청년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는 출신 성분도 모르고 뿌리도 모른다는 이유로 딸의 사귐을 반대했습니다. 아버지는 오늘의 청년을 보았지 미래의 청년의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결국은 자신의 딸을 위해 청년을 쫓아냈습니다. 그 후 30여년이 흘렸습니다. 우연히 이 아버지는 농장의 어느 방을 청소하다 그곳 나무에 적힌 이름 하나를 발견합니다. 나무에 적힌 이름은 제임스 가필드였습니다. 그리고 이내 깜짝 놀라며 충격을 받은 것은 그 당시의 대통령이 바로 그 청년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시1:1)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나는 복의 흐름과 망하는 흐름을 보는 눈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기 바랍니다.
2. 나는 그 딸의 아버지 같이 현실만 보는 사람인가? 미래의 희망을 보고 선택하는 사람인가요?
3. 나는 라합같이 결단력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며 우유부단 형으로 좋은 기회를 매번 놓치는 사람인가? 평가 해보기 바랍니다.

2009. 12. 20. 11:20

나는 누구인가

전에 본회퍼의 옥중 서신을 읽었습니다.
본회퍼의 시하나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물음이 곧 나의 물음과 같기에 그분의 시가 아직도 나의 시같이 흐르고 있습니다.
같이 음미해 보았으면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디트리히 본회퍼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감방에서 걸어 나올 때
마치 왕이 자기의 성에서 걸어 나오듯
침착하고 활기 차고 당당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종종 말하기를
나는 간수에게 말을 건넬때
마치 내게 명령하는 권한이라도 있는 듯
자유롭고 다정하고 분명하다고 한다.

나는 누구인가?
그들이 또한 말하기를
나는 불행한 날들을 견디면서
마치 승리에 익숙한 자와 같이
평화 롭고 미소 지으며 자연 스럽다고 한다.

나는 정말 다른 이들이 말하는 그런 존재 인가?
아니면 다만 나 자신이 알고 있는 자에 존재하지 않는가?

새장에 갇힌 새처럼 불안해 하고
나의 목을 조르둣 숨 가쁘게 몸 부림 치고
아름다운 빛과 꽃들과 새 소리를 아파하고
사소한 모욕에도 분노로 치를 떠는 (중략)

나는 누구인가?
이것인가? 저것인가?
오늘은 이런 인간이고 내일은 다른 인간인가?
아니면 동시에 둘 다인가? (중략)

나는 누구인가?
이 고독한 물음이 나를 비웃는다.
하지만 내가 누구이든 주님은 안다.
내가 주의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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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09. 12. 20. 11:14

조급증은 말세의 증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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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급증은 말세의 증상입니다

                                      백 동흠목사

초등학교 다니는 어린 아들이 하루는 학교를 가려다가 등뒤에 있는 엄마에게 멋쩍은 투로 한마디 묻는 것이었습니다.
“ 엄마! 엄마는 아침에 나를 깨우면서 지금까지 빨리 빨리라는 말을 몇 번했는지 아세요?”
“아니 웬 뚱딴지같은 질문을..  그래 몇 번인데..”
“엄만 몇 번일 것 같아요?”
“어휴 빨리 말해봐. 그래야 빨리 가지...”
“또 빨리네.. 그것까지 합해서 스물하고도 네 번예요 스물 네번..”
“그런 쓸데없는 일에 신경 쓰지 말고 빨리 가  빨리
학교 늦겠다 아- 어서...”
“빨/리/가 빨/리/.. 학교 늦겠다. 아- 어/서/.. 어서 까지 합해서 스물일곱 번이에요 스물일곱 번..” 하면서 아이는 “엄마 학교에 다녀올게요..” 하면서 갔습니다.

아이를 보내 놓고 난 후 엄마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배웠다고 생각했고 나름대로 멋과 여유를 갖고 성숙해 온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맑은 아침햇살과 상큼한 아침 이슬 같은 공기가 새날 아침을 펼쳐 보이고 있는데 정말 난 내 사랑하는 가정에서 내 사랑하는 가족에게 자녀에게 기껏 첫 마디가 “빨리 일어나.. 빨리 세수해.. 빨리 밥 먹고 빨리 학교가..”로 시작했구나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하면 좀 더 여유가 있고 정서적인 삶을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았으면 합니다.

첫째 조급증은 말세 문화의 현상임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말세에 사람들이 조급해 진다고 했습니다(딤후3:4)
도미노 피자(Dmino Pizza)가 성공하게 된 것은 어느 지역의 집에서 피자를 주문해도 30분 안에 배달될 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 회사의 최고 경영진은 “우리는 피자를 파는 것이 아니고 현대인의 요구에 맞추어 시간을 파는 것” 이라고 했습니다.
또한 24시간 영업하는 데니스식당(Denny)도 현대인의 심리를 헤아리고 “주문을 받고 10분을 넘기면 디저트는 무료”라는 광고를 내 보내고 나서 엄청난 손님이 몰리게 됐다고 합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맥도날드도 어떻게 하면 현대인들이 요구하는 “값싸고 간단하고 빨리”(Fast Food)가 세계의 매장을 점유하게 된 것이라고 경영 심리학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스토리도 진행이 빨라야 흥행에 성공합니다. 음악의 템포도 빨라야 합니다.
이런 빠른 속도의 추세는 말세의 인간 심리에 발 빠르게 맞춘 상업술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둘째 조급한 말세의 흐름을 벗어나려면 3가지 정도를 관리하면 된답니다.

① 마음의 관리인데 조금 여유를 가져 보자는 것입니다.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 안달하고 스스로 서두릅니다. 스스로 초조해 하고 스스로 안절부절 하며 불안해합니다. 그 이유는 마음의 여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② 언어의 관리인데 대화에 조금 여유를 갖자 입니다.

잠 29:20에 보면 “네가 언어에 조급한 사람을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바랄 것이 있느니라.” 고 했습니다.  
너무 심각하지 마시고 웃기는 대화(유머) 덕담의 언어를 사용했으면 합니다.

③ 생활 관리인데 괜히 바쁜 척 하지 마시고 꼭 해야 할 일을 위해 가지치기를 하자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괜히 바쁜 인식을 스스로 갖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모습을 보여 주여 주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무척 바쁘셨습니다. 짧은 3년의 공생애에의 삶이 얼마나 바쁘고 벅찼을까요?
그러나 새벽 미명 조용한 새벽 기도의 시간을 충족히 가져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정에서 한가하게 음식을 먹고 마시며 담소하고 즐겼습니다.
때론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가서 사람을 만나 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병든 모든 사람을 다 고치지 못했고 직접 복음을 다 전하지 못했지만 마지막 돌아가실 때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주님은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 길을 가야 하리니.”. (눅13:33) 하며 자신의 길을 가지쳐가면서 여유 있게 넉넉하게 그 길을 가셨습니다.

영성이란 그분을 묵묵히 바라보는 여백입니다.
그분이 나를 통해 살아나게 하는 마음 관리요 언어 관리요 생활 관리입니다.
괜히 바쁜척하면 주님은 들어설 곳이 없답니다.
3분QT-여호수아편 2009. 12. 20. 10:58

11.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3분 QT>  11. 기회는 기다리는 자에게 옵니다.


제목: 라합의 집으로 들어가 유숙하다.

말씀: 여호수아2장 1절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수2:1)

(참조 말씀) 너는 여자와 교합함 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이는 가증한 일이니라 너는 짐승과 교합하여 자기를 더럽히지 말며 여자가 된 자는 짐승 앞에 서서 그것과 교접하지 말라 이는 문란한 일이니라 너희는 이 모든 일로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내가 너희의 앞에서 쫓아내는 족속들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더러워졌고 그 땅도 더러워졌으므로 내가 그 악을 인하여 벌하고 그 땅도 스스로 그 거민을 토하여 내느니라(레18:22-25)  


1. 묵상할 질문

* 가나안 땅(여리고)의 영적 상태가 어떻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 그 땅이 그 땅 조차도 토해 낼 정도로 도덕성의 질이 떨어지고 패역해지므로
 곧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구일까요?(12절 참조)
* 정탐꾼들이 라합의 집에 들어 간 것이 우연일까요?  하나님의 이끄심일까요?
* 하나님의 이끄심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일까?

2. 깨달음과 교훈

라합은 자신의 땅과 그 시대의 도덕성의 흐름을 보았습니다. 이런 흐름이라면 망할 흐름이구나! 영적 지각력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고 기다렸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의 은혜의 때가 있고(고후6:2) 찾고 구하고 두드리는 자에게(마7:7) 기회를 주시고 자기를 전심으로 찾는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대하16:) 그래서 마침내 정탐꾼을 라합의 집으로 들어가게 함을 그 구원의 기회를 주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아! 주님 그런 은혜의 기회를 내게도 주셔서 구원의 때를 얻게 하셨군요! 감사합니다.

3. 삶에의 적용

정말 정탐꾼을 내게 이끌어 주어 기회를 줄 정도로 나는 찾고 기다리며 하나님을 구하는 간절함이 있었는지 스스로 물어 보았습니다.
정말 예수님은 찾고 찾으면 기회를 주시는데 나는 너무 일찍 포기 하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군에 있을 때 공병단에 들어갔었습니다. 공병단은 골병대라고 했습니다. 시멘트 3포대를 먹고 삽 세 자루를 닳아야 제대한다는 그런 곳입니다. 우리 부대가 영천 3군 사관학교를 지었습니다.
시멘트 포대를 한 트럭을 짊어다가 옮기고 난후 세수하면서 코를 풀면 얼마나 많은 양의 세멘가루가 나오는지요?
그리고 하루의 일을 마치고 부대에 들어오면 시멘트 가루와 군복이 땀으로 버무려 지고 갑바 같은 옷이 됩니다. 마치 품꾼 없이 팔려 다니는 품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천의 말단 부대이다 보니 검열이 아주 많습니다. 매일 검열을 위해 제식 훈련, 총검술, 야간 잠복 훈련, 유격 훈련 등 밤낮 집합해서 훈련이 끝임이 없습니다. 그중에 제일 무서운 것은 어느 지역까지 시간 내에 당도하는 것입니다. 완전 무장한 체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어야 합니다. 고참이 뒤에서 총대로 때리며 낙오자가 없도록 합니다. 혹 낙오자가 생기면 부대로 귀환한 후 연대 기압으로 들어갑니다. 얼마나 힘이 들었던지 친구 하나는 순간 자살하겠다고 다리에서 강으로 뛰어드는 일도 생겼습니다. 저는 견디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제일 함께 하기 어려웠던 것은 주말의 회식입니다.
막걸리 파티를 하는데 술과 노래와 춤과 음담패설이 극에 달합니다. 여기에 어울려야 하는데 전 체질적으로 안 맞는 것입니다. 가장 힘든 시간이었습니다.
그래서 기도했습니다. 아주 간절히 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주님을 사모하며 전심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대장이 부릅니다. 단 본부로 올라가라는 것입니다. 행정병이 된 것입니다. 알고 보니 신앙 좋으신 참모장님이 나를 특별히 끄집어 낸 것입니다.

외박 때 찾아 갔습니다. 감사 인사 하니깐 참모장님이 말하기를 “아니 나에게 하지 마라, 주님이 그렇게 하라고 했어. 고생 많았지. 이제 쉬어” 합니다.
그 뒤 군대생활 군인교회를 열심히 봉사하며 편한 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특혜는 있습니다. 그 땅이 다 망함으로 갈 때 라합은 다윗의 조상되는 유다 지파의 멋있는 청년과 결혼하여 메시야의 계보가 됐습니다. 주님의 특혜는 있었습니다. 저는 이 특혜를 믿는 답니다. 아멘.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애 3:26)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렘 29:13)   여호와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를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역하 16:9)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나는 영적 흐름을 보는 눈이 있는가? 나의 삶이 망하는 흐름인가? 좋은 흐름인가? 물어 보세요?
2. 정탐꾼을 내게 보내줄 수 있는 기다림의 것이 있는지 스스로 물어 보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