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분QT-여호수아편 2020. 9. 9. 13:05

<01> 시종으로 시작하게 하신다.

                                                 200901(화)<백동흠의 큐티방에서>
<01> 시종으로 시작하게 하신다.

말씀:(아침향기 참조)
여호수아1장 1-2절
 1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땅으로 가라

여호수아의 첫 장의 첫 절의 시작은 
종으로 시작된다.
여호수아는 시종으로 시작하고
모세는 여호와의 종으로 끝이 난다. 
결국은 종으로 시작해서 종으로 마쳐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직 주인은 예수님이시다.
그분만이 머리이고 주관자이고
난 그 명령에 순종하며 따르는 종일 뿐이다.

요즈음에는 절실하고 절박한 마음이다.
신명기이 쉐마의 정신이 내 안에서 
메아리쳐 온다.

일어나면서 잠자리에 누울 때까지이다.
내 안에 주의 말씀이 살아 움직이게 하고
기도의 호흡이 쉬지말고 흐르게 하고 싶다.
그리고 온전히 의지하고 순종하며
따르고 싶다.

주의 종으로
그래서 그 들 안에서도 섬기는 자로
머물었던 주님의 삶이 내 안에서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어제는 몇 목사님들과 만났다.
코로나로 인하여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함께 삶의 교제를 나누었다. 좋았다.
그런데 목사님의 생일이 오늘인 것을 알았다.
급조이지만 마음에 섬기는 마음이 스며왔다.
생일 축하겸 바닷가로 바람을 쐬려 
가자고 제안했다.
내 차가 벤차이기에 함께 가기에 좋았다.

LA한인 타운을 벗어나 10번를 타고
태평양 바다로 나가 말리브 비치로 갔다.
하늘은 푸르렀고 은빛 햇살은 눈에 부시고
바람은 너무 시원했다.
코로나로 인해 해변에 사람도 한적했다.
푸른 바다와 파란 잔디에 세계에서 가장 전경이 
좋다고 하는 페퍼다임 대학이 한 눈에 들어온다.
참 아름답다. 다들 너무 좋아한다.
 
섬김다는 것은 너무 좋다. 
여호와의 종 모세
모세의 시종 여호수아
섬기는 자로 그들 중에 계신 예수님
주의 종인 저- 동흠이

앞으로 남은 여생 
더 크게 더 많이 더 넓게 섬기는 자로 
살고 싶다. 
종으로 섬기는 삶을 살고 싶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노라(눅22:27)

* 주님과 동행하는 영성일기를 나눕시다. * 

큐티 마태복음편 2020. 1. 8. 09:44

쉽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그 길을 가게 하신다.

200107
(마3:15)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신대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더 높은 질서에 계신 분이 더 낮은 질서 아래로 들어온다. 
침례 받는 사건이다. 예수님은 침례가 필요 없는 분이시다.
죄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너무 쉽고 너무 편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침례를 받으신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분이시다.(빌2:6)
영광의 광채시오 그 본체의 형상되시는 분이다.(히1:3)
자기를 비어 사람의 모양으로 오시었다.(요1:14)
사람 중에서도 종의 형체로 더 낮아지셨다.(빌2:7)
더 낮추시어 비참하게 죽는 데까지 가시었다.(빌2:8)
예수님은 그 길을 너무 쉽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그 길을 가신 것이다.  
그렇게 힘이 들고 어렵고 비참하고 자신의 살과 피를 
다 쏘아 붓는 그 길을 그렇게 가신 것이다.
이렇게 해서 모든 의를 이루는 길이기에 담담히 가셨다.

참 놀라우신 분이시다. 참 대단하신 분이시다.
가장 낮은 질서에 들어오셔서 그렇게 힘이 들고 어려운 길을
너무 쉽고 편하게 자연스럽게 그 길을 가신다. 그리고 
우리도 쉽고 편하고 자연스럽게 가지게 해 주신다고 하신다. 
내가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렇게 되어 지게 하신다. 
이것이 영성 훈련일 것이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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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찍혀 불에 던 지울 존재이다. 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 지우리라(마3:9-10) 

아! 이것이 율법의 끝자락에 서 있는 나의 모습이다.
나의 의는 이미 펑크가 나서 물이 줄줄 새고 있다.
내 몸은 사망의 몸으로 항상 죄의 세력이 나를 사로잡아 간다.
육의 소욕은 내 안에서 얼마나 원망 불평하며 혈기를 
부리는지 이제는 지겨울 뿐이다. 
나의 나무는 뿌리부터 썩어들어 가고 있다.
그러니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고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아니 지금까지 참아준 것이 놀라울 뿐이다.
난 나를 잘 안다. 좋은 열매? 어림없다. 
이미 찍혀 불에 던 지울 존재이다. 이것이 나의 모습이다.
나에게 들려줄 딱 하나의 말이 있다면
독사의 자식이여!(마3:7)
뱀들아 독사의 새끼야! (마12:34)
율법의 끝자락 여기까지 참아 준 것은 오직 하나이다.
메시아 구원자 은혜의 주 대속의 주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바로 이 분이 예수님이시다.
정말 예수님이 없다면 난 어찌됐을까?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불쏘시게! 
아마 그런 존재로 버려졌을 것이다. 영원히…….
그래서 난 예수님이 너무 너무 좋다. 오늘도 감격이다.

영성일기 2020. 1. 8. 09:29

기도가 우선이다.

오늘은 예레미야 33장을 묵상했다.
새해 들어 말씀묵상과 기도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했다.
사실 나는 말씀 묵상이 더 좋다.
그러나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드리기로 했다.

기도가 살아야 영권이 나타난다.
기도가 살아야 말씀에 살아난다.
기도가 살아야 예배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성경은 말한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33:3) 
네가 기도하면 내가 일을 행하고 
성취한다는 것이다.(2) 
내가 일하도록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도 한다.
너희는 쉬지 말며.......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사62:7)

난 느낀다. 
그 주간에 기도에 성공하면 예배의 질이 바뀐다.
예배가 영적 분위기가 되고
강당의 권위도 살아나고
말씀에 대한 성도들의 반응이 다르다.
아주 섬세하고 민감한 현상이지만
난 안다. 
기도의 영향력이다. 
새해에는 기도 특히 부르짖는 기도에 
더 많은 시간을 내기로 했다.

그리고 예레미야의 말씀은 놀라운 약속을 한다.
① 기쁜 이름이 된다고 한다.
② 찬송이 된다고 한다. 
③ 영광이 된다고 한다.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렘33:9)
아멘이다.
도전해 볼란다.

그러나 무엇보다 감사한 것은
기도에 대한 영적 갈증이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영성일기 2020. 1. 3. 12:45

오늘의 복을 누리면 살자

20/1/1
새해이다.
첫날 첫 문을 열고 나가니 와- 너무 날씨가 좋다.
햇살이 온 몸을 빛으로 뿌린다.
살랑이는 바람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는 느낌이 너무 좋다.
상쾌한 찬 공기가 탁한 내 몸 안을 순환시키고 지나간다.
나무에 매달린 잎새 하나에게도 여유로운 모습이다.
온통 은총이고 축복이다.
사람의 지혜가 번뇌를 더하고 지식이 근심을 더 한다.
인간이 똑똑함이 얼마나 미련하지를 이제는 조금 안다.
이제는 비우기로 하자.
조금은 엉성하기로 하자
그리고 단순하기로 하자
얼마 전에는 아들이 나보고 바보아빠라고 한다.
많이 속고 많이 당하고 그렇게 섬기고도 무시당하면서
목회하는 나의 모습을 어릴 때부터 보고 한 말이다.
지금은 그런 바보 아빠가 이해가 된다고 한다.
지금은 그런 바보 아빠가 좋아진다고 한다.

어제는 이제 지나갔지 않은가? 2019년과 함께
그리고 2020년 내일은 또 헤쳐 나갈 것이다.
주님을 앙망함으로........

오늘 새해 첫날
문을 열고 나가니 온통 축복이다. 은총이다.
오늘이다. 오늘을 살자고 말하고 싶다. 
오늘 감사하며 오늘 즐거워하며 오늘 기뻐하며 
오늘의 은총으로 살자고 말하고 싶다.

어제 오늘 무지 무지하게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받았다.
난 답신을 했다.
많이 받은 복 누리면 오늘을 살자고…….

새해 첫날 
문 열고 나가니 온통 은총이다. 축복이다.
아! 너무 좋다. 
아! 너무 감사하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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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20. 1. 3. 05:07

바보새

   바보새

        백동흠

못난 얼굴도 괜찮다
볼품이 없어도 상관없다.
품 나지 않는 긴 날개에
뒤뚱거린다고 바보 새라고
불러도 좋다.

다만 잠잠히 바라본다!
평안이다.
흐름을 느낀다.
영의 흐름이다.

폭풍우가 불고
다들 두려움으로 요동할 때
조용히 흐름을 탈뿐이다.

거센 바람을
품에 안으며 날개를 편다.
그리고 겁 없이
절벽을 뛰어 내린다.

바람이 거세어질수록
더 멀리,
더 높이난다.
아니 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탄다.
영의 흐름을…….

Albatross 바보 새입니다. 
땅에서 못난 새였습니다. 
얼굴도 못 났습니다. 
긴 날개도 축 쳐져 있습니다.
폼도 전혀 안 납니다. 
뒤뚱거리면 도망도 못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잡혀 
수모를 당하는 바보 새입니다. 

그런데 폭풍우 치는 어느 날
다들 불안과 두려움에 
요동할 때에 
바보 새는 그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3m가 되는 양 날개를 펼치고 한번 그 흐름을 타고 
날기 시작하면 
6일 동안을 날갯짓 하나 없이도 날아갑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지구를 한 바퀴를 돕니다.
그 먼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타고 날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보 새에게서 영성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땅에서는 바보같이 억울하게 당해주고 
무시를 당해주면서도 변함없는 영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흐름을 따라 영의 생각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련과 고난의 바람이 불어오고
땅은 온통 불안과 두려움으로 요동할 때
평강과 생명의 기류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됩니다. 
잠잠히 주를 앙망하면서 말입니다. 

2019. 9. 12. 08:27

조국의 청문회

조국의 청문회

         백동흠

뻔한데
다들 느끼고 있는데
전혀 아니라고 
잘 모른다고
가장 진실한 모습으로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훤칠한 키에
잘 생긴 얼굴에
최고 학부의 지성으로 
이마를 가린 긴 머리를
손으로 치켜 올릴 때의 
그 모습은 너무 
멋있었습니다.

얼마나 존경스러웠을까요?
얼마나 부러웠을까요.
얼마나 선망했을까요.
다들…….

그렇게 선한 목소리에 
착한 모습 깊은 곳에
숨겨진 것들이
들추어지기 전까지 말입니다,

누군가 제게 말합니다.
그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다고 

조국에게서
나를 느꼈다고

마지막 날
나의 청문회를 앞에 두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보여주는 
그의 청문회였다고 말입니다.

***
숨은 것이 장차 드러나지 아니할 것이 없고 
감춰진 것이 장차 알려지고 나타나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 (눅8:17) 저희가 산 자와 죽은 자 
심판하기를 예비하신 자에게 직고하리라(벧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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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일기 2019. 8. 23. 11:23

아코디온 교실과 기도막사 청소

오늘 새벽 기도회를 못 갔습니다.
알람이 잠들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푹 잤습니다.

7시 30분 넘어 교회를 가야만 했습니다.
어제 수요 예배 후 벤 차를 교회 두고
아내의 차로 집에 왔기 때문에
차를 가지러 아내와 함께 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오늘 목요일 아코디온 교실이  방을
빌려 쓰고 있기에 기도막사를 잘 정리해  
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는 그냥 작은 차를 타고 
돌아가로 했습니다. 
난 기도막사를 정리하고
제 벤 차를 타고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내는 기도막사에 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봅니다.
비닐에 넣어 둔 고기의 피물이 
냉장고 바닥에 떨어져 고여 있었습니다.

지저분한 것을 못 보는 아내는
“왜 내 눈에는 이런 것만 보이나 
모르겠네!” 중얼 거립니다. 
전 내가 치울 테니 그냥 가라고 했습니다.

저는 기도실의 밥통을 뒤편 창고에 
옮겨 놓습니다. 그리고 그릇들과 
수저와 젓가락을 치웠습니다.
화장실을 깨끗이 치웠습니다.
싱크대도 닦았습니다. 바닥도 닦았습니다.
방석도 가지런히 놓았습니다.
오늘 따라 바닥 카페가 
지저분했습니다. 베큠도 했습니다.

나오면서 기도막사를 보니
예배실다웠습니다.
기도실 분위기가 서려있습니다.
나오면서 냉장고를 열어보니
아내가 깨끗하게 치웠습니다.

내가 스스로 물어 보았습니다.
아코디온 오시는 분에게 
잘 보이려고 한 거니?
아니! 그것은 절대 아냐!
그럼?
제 안에서 스스로 대답을 했습니다.
주님의 영광이 가릴까봐

예배실은 예배실로 보존해야 하고
기도실은 기도실로 느껴지게 
하고 싶었습니다.
은혜의 전당에서 아코디온 모임을 
갖게 함으로 주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 전 아코디온에 오시는
피아노 조율해 주시는 장로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장로님은 제게 정중하게 
감사의 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기도실을 
제공해 주어서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기도 막사를 청소하고 돌아오는 길 
마음이 참 기뻤습니다. 
주님이 기름 부어 주시는 기쁨임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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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9. 4. 18. 09:00

십자가의 길

                                                                  백동흠 목사

지난 19년 4월7일부터 8일까지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로 모였습니다.

29명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선교사이 모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 월요일 저녁에는 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이 모임의 핵심이 됩니다.

제가 담당한 것은 나무 십자가를 지기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의 2시간을 담당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마지막 사람이 돌아오는 10시까지 약 2시간동안입니다.

졸거나 영적 분위기가 흩뜨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들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했습니다.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과 간증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이때 멜깁슨의 The Passion of Christ의 5분짜리 각색한 동영상을

3개를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 시간에 함께 보았습니다.

 

멜깁슨은 The Passion of Christ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만들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유대인 협회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대본을 요구했고 완성되지 않는 필름을 보여 주어야 했고

영화의 생명은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다큐 형태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전문 영화인들은 상업성이 없어 흥행에 실패할 것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멜깁슨은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 생각한 것이

차라리 단순하게 만들자.

예수님의 수난에 강하고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철저하게 실제적이고 당시의 현장감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자막이 있는 영화가 될지라도 당시의 언어인

아람어와 라틴어로 대사를 역어갔습니다.

(미국인은 자막 있는 영화를 안 본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얻지 못해 사재를 털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상업성이 전혀 없는데 흥행에 성공한 것입니다.

2천여 개의 극장에서 첫 개봉 2,360만 달러의 성적을 냈고

OST는 첫 주에 4만 9천장이 팔리면서 기록 3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예수님의 수난의 모습은 복음적 사건으로 나타나면서

강한 복음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 안에는 반드시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6:14)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간 수많은 미국인들이

숙연한 모습, 눈물 짓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날 LA 타임지는 말하기를

“극장마다 작은 교회를 이루었다.”는 기사를 내었습니다.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가 오히려 호응을 불려 일으켰고

흥행 될 수 없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첫째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

둘째 내용이 아주 단순했다는 것

셋째 군더더기 없이 실제적이었다는 것

이런 조건들이 복음적 메시지로 나타났음을 느끼었습니다.

 

지난 4월 17일부터 18일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프로그램은 너무 엉성합니다.

스타 강사도 없습니다.

강력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프로그램은 단순했고 느슨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강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마지막 나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의 맥과 흐름이

그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9회 십자가의 길도 The Passion of Christ처럼

흥행에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들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 증거로 마지막 간증의 시간이 주의 영으로 충만한 가운데

밤이 깊어 가는데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복잡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잘 날 것도 없습니다.

단순하고 다 비워놓고 십자가의 예수님만 붙잡으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흥행에 대박을 칠 것입니다.

 

2019년 고난 주간도 너무 심각한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그냥 단순하게 주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면

주의 사랑이 출렁이며 다가 올 것입니다.

 

2017. 9. 19. 04:33

깊음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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