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3. 13:51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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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백  동흠

                                             제철을 만나
                                             그렇게 푸르게
                                             만발하더니

                                             이제
                                             때가 되어

                                             자신의 길을
                                             떠나는
                                             의연한 모습

                                             때가 되면
                                             이렇듯
                                             떠나야 하는데

                                             나의 가을
                                             그 날의
                                             떠남을 위해

                                             푸른 소명을
                                             다 하고 싶다

                                             그래서
                                             따뜻한
                                             가을 햇살에

                                             옅은
                                             바람의
                                             미소를 타고

                                             여유 있는
                                             떠남을
                                             배우고 싶다

                                             이제
                                             떠나는
                                             낙엽같이

                      

                      詩作 노트
                            인생이란 이렇듯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순리랍니다.
                            저마다 삶이 있고 사연이 있지만
                           
그날의 떠남을 위하여
                            오늘 내 주어진 살아 있는 날을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오늘! 따뜻한 가을 햇살에 
                            옅은 바람을 타고 
                            한 개의 낙엽이 나의 삶의 뜨락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의 삶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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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09. 10. 22. 15:09

그 사랑이 샘이 되여 솟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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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리워 집니다.

                      백 동흠 목사

김용택님의 시 한편이 참 좋았습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럽기만 합니다.
(중략)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중략)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한
열린 마음 닫아 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 보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빗장)

살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기성인간이 되여
점점 마음이 차게 굳어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슬퍼집니다.
시릴 만큼 그리워지는 “당신의 얼굴”이 있는 마음이 행복합니다.

어느 노(老) 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늙은 할머니가 길에 쓰려져 있었답니다.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다가가
“할머니? 괜찮으세요?”
일으켜 세우는 순간 놀았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홍조가 일고 기쁨으로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 철학자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계세요?”
할머니의 답은 단순했습니다.
“난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노(老) 철학자는 중얼거렸습니다.
“내 평생에 그렇게 학문을 하며 애쓰며 찾은 것이 저런 얼굴인데...”
그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주님을 영접한 분이
평화 철학자 러셀의 스승인 화이테드였습니다.

정말 할머니가 품었던 그런 사랑이 그리워집니다.
환경 속에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의 사랑이 있어 그 사랑이 샘이 되여 흐르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임을
시로 쓰는 사랑의 시인이 되고 싶답니다. 샬롬!

계시록 강해 2009. 10. 21. 02:11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⑨부록편

본 강해는 그라나다힐 한인교회 새벽 강단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제9과 부록편
두아디라 교회- 중세 암흑시대의 핍박의 역사

1. 위클리프의 개혁
"개혁의 샛별"로 불리는 개혁주의자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4-1384)는
에드워드 2세 때인 약 1324년 경에 태어났습니다.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위클리프는 이단으로 몰려 정죄를 받고 출회를 당했으나,
그래도 1384년에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성경번역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번역 성경은 일일이 손으로 필사를 해야 했습니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는 열 달 정도가 걸렸고,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아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의 일 년치 봉급이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성경이 필사되자, 마침내 영국 국회 법령을 제정하여
위클리프의 성경을 보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382년 그의 모든 저술들은 불태워졌다. 그 해에 위클리프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384년 12월 31일 두 번째 쓰러져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위클리프가 죽은 후 그의 적대자들은 1415년에 있은 콘스탄티 공의회에서 위클리프의
사상을 퇴출하였고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레고리 11세와 우르반 6세는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위클리프를 정죄한 바
있었습니다. 1428년에는 그의 시신이 축성된 장소로부터 이장되었습니다.


2. 얀 후스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는 체코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설을 기반으로 성서를 그리스도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보였습니다.
교황 등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습니다,
콘스탄티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마지막 죽음의 길에서 한 말을 예언적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죽지만 제2의 제3의 개혁자는 반듯이 일어 날 것이다.”

3. 프랑스의 왈도파 :
“왈도파”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에게서 유래합니다.
왈도는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베풀고 나누워 주면서 전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추어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신약성서를 프랑스어로 옮기었습니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고 그들을 성직자에게 데려오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서로 돌아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서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복종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몰아 갔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들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챤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는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왈도파는 그 정부 하에서는 어디에서고 안전을 기약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땅은 빼앗겼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를 당했으며 죽은 자들의 시체까지도 장례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가려고 하면 그들을 발견되는 대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왈도파 모든 주민과 이미 공개된 지역사람들은 삼일 안에 그들이 로마교회로 개종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집을 떠나 산으로 은퇴하라는 것이었 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 조건들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한 분 만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와도 타협할 수 없으며,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우리의 신앙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거처와 집들을 포기하였고, 눈 속에서 강을 건너며 어렵게 급류를 통과하여
동굴이나 불쑥불쑥 내민 바위 아래 안식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즈음  15,000명의 군대가 즉시 그 골짜기로 출동하였고 .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야만스럽게 살해했습니다.

12,000이나 넘는 남녀 성인이 어두컴컴한 토굴에 갇혀서 가장 잔인한 취급과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빵을 먹었으며 썩은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침대는 맨 돌이나 썩은 짚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매우 빽빽하게 차게 했기 때문에 열병과 다른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로 개종하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을 계속해서 고수하였습다.
그러한 취급을 받는 가운데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수가 12,000명에서 3,000명으로
감소되었고. 점점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동굴 안에는 항상 찬송소리가 끈이지 않았고 그들은 기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죽어 갔습니다.

4. 마녀 사냥식 종교 재판
종교 재판소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고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습다.
그곳에는 늘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들이 있었고 죄수들의 뼈와 사지를 늘어뜨려
어긋나게 하는데 쓰이는 도르래와 밧줄, 벤치 등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는데,
몇 주일이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에는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역사에 보면 스페인 세빌레 시에 세워진 종교재판소 소장으로 죽을 때까지
18년간 봉사한 토르크마다라는 성직자는 그의 임기 동안 10,220명이나 되는 사람을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고, 97,322명의 재산을 몰수, 투옥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지 못 할 사실은, 그들이 이단자들을 이렇게 고문을 한 이유는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단(성경대로 믿는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그들이 이단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하여야 지옥이나 연옥에 가서 받을 형벌이
감해진다고 믿었으므로 그 고문이 이단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천주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은 수백만의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순수한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략 5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교황권이 지배하던 중세기 시대에 남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성경을 따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거의 모두가 교황권을 추종하는 세속적인 국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결론
루터, 칼뱅, 츠빙글리, 제롬 등은 가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 바벨 종교로 선언하며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루터는 외쳤습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이것이 두아디라 교회의 역사적 실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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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09. 10. 18. 03:23

비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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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빈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백 동흠목사
빈 마음을 가져 보세요.
상처와 응어리, 그리고 상념과 집착의 끈, 끝없는 욕심 덩어리, 잘 되여지고 자하는
욕망등  다 마음의 그릇에서 쏟아 내어 보세요.
그럼 내 영 깊은 곳으로부터 깨끗하고 맑은
생명과 평안이 흘러 나와 고일 것입니다.
그럼 내가 행복하고 나로 인해 나의 주변의 사람들도 행복해 지게 됩니다.

어떤 프로 골퍼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홀에서 마지막 퍼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퍼팅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머리를 숙이고 짤막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퍼팅을 했습니다.
그러자 볼이 반듯하게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결국 우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승을 축하해 주었는데,

어느 기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까 진지하게 기도하던데,
우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요, 반대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승컵 욕심이 없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지요."
“왜요?”
“마음을 비우면 평안하니깐 요?”
이 이야기는 래리 넬슨이라는 프로 골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뜻을 이루겠다, 반듯이 성취하겠다.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닙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빈 마음입니다.
강한 욕망과 욕심이 앞서는 한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잘 되면 교만에에 빠지고  못되면 실의와 열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해 지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좋아 합니다.
그분은 나의 마음을 자꾸 비우게 합니다. 비움으로 채움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평강으로 채우고 그의 거룩으로 채웁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경험되여집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저는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을 영성훈련이라고 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답니다.

영성 2009. 10. 13. 14:02

영성훈련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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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신령의 세계의 접목점입니다.

어떤 분이 평소에 술 먹는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날 밤늦게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데 나가 보니까 남편이 엉망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남편을 간신히 집에 부축해 들이고 나니까 자기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신세가 처량했지만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 무릎을 끌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내면의 영으로부터 "감사하라"는 성령의 소리가 들려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는데, 감사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남편으로부터도 감사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속썩이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렇게 술에 만취되어도 사고 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집에 찾아오니 감사했습니다.
또한 술을 그렇게 먹어도 건강하니 감사하고,
본인은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니까 시름이 덜어지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때 누워 자던 남편이 목이 말라서 눈을 뜨고 보니 아내가 사랑스런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아내는 상냥하게
"너무 감사한 것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하면서 조목조목 감사한 것을 말하는데
남편이 "알았어! 예수 믿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더니 이내 코를 골면서 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부터 진짜 교회를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여보 당신 웬일로 이렇게 순순히 교회를 따라 나올 수 있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입에서는 놀라운 간증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 날밤 눈을 떴을 때 천사를 보았어"
감사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남편은 천사의 모습을 본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사실 문제의 모든 선택은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속상하고 화나는 일 앞에서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의 영의 도우심을 받으면
평안과 생명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스스로 속을 썩이며 혈기를 부리고 강팍으로 굳어지면
먼저 자신이 파괴적이 되고 문제는 더 꼬이고 결국 망함으로 가게 되여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심으로 영의 생각으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영성 훈련이란 고요하게 영의 흐름을 타고자 하는 훈련입니다.
살면서 속이 상할 때 심호흡을 하며 영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해보기 바랍니다.
의외로 성령께서 내 영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주의 평강으로 흘러가게 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