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2009. 10. 9. 06:21

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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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백  동흠목사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신앙 그 자체로 성숙한 인간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잘못된 신앙의 소유자는 더 왜소하고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유대사회는 굉장히 배타적이며 편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자신들의 옳다고 하는 신앙에 의한 처세였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그것으로 얼마나 많은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정죄했나 모릅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개 돼지로 몰아 갔고 이웃의 사마리아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밟지도 않고 겉돌아 갔으며 세리와 창기를 보면 그 앞에서 침을 탁 뱉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며 등을 돌려 외면했습니다.

급기야는 예수님에게도 배타적으로 대했고 왜곡과 편협 속에 죽음의 자리로
몰아 갔습니다. 그런데 다 이런 짓을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한 것입니다.

배척하므로 배척당하며 거부하므로 거부당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국 그런 민족, 사회, 개인은 망하게 됨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주님은  또 하나의 영성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소리에 대해 듣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수용하는 훈련입니다. 수용하되 진실된 마음으로 품는 훈련입니다.
그를 긍휼이 여기고 그의 생각과 마음과 언어들을 존중이 여기는 훈련입니다.
스스로 배타적이거나 편협적이지 말자고 나의 마음에게 자주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번 스스로 진단 보기 바랍니다.

① 생각: 나는 너무 나의 생각에 집착하고 자기 주관적이고 강하지 않는가?
② 관계: 나는 나의 취향에 맞거나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하고 만 있는가?
③ 일: 나는 나의 일 외에 몰라라하며 선을 긋고 냉정하고 안중에도 없지 않는가?
④ 사람: 나는 사람에 대해 은연중 비판적이고 수근대는 형이 아닌가?

나의 강함을 스스로 꺾자. 그리고 마음을 비우자,  역량(力量), 즉 그릇됨을 넓히자 그리고 안목의 폭을 멀리 보자. 

창문이 열려 있으면 집안이 신선한 바람이 흐르게 되어 있다. 내가 열면 그도 열게 되여 있다.  내가 존귀하게 다가가면  그도  존귀하게 다가 오게 되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풍요로와 지게 되여 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스스로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것은 스스로  불려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하나되게 하고 하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셨습니다.(엡2:14-16)

예수님은 내안에서 나의  마음의 폭을 넓혀지게 해 주시고  상대를 수용하게 해 주시며 그의 입장 안에 들어 가게 해 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풍요의 삶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게 해 주십니다.

상대에 따라 내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 따라 반응하게 하기 위해 나 자신이 조용히 주님앞에 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영성 훈련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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