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7. 29. 11:15

동치미 사랑

동치미 사랑

         백 동흠

잘 낫다고
자기 것을
고집 하지 않았습니다.

온갖 몸에 좋은 것
품에 앉고
물속 깊이 들어가
스스로를 죽였습니다.

그리고 한태 어울려
물같이 녹아들어
맛을 내고 있었습니다.

인생의 길에
온 몸이 더위차고
숨이 막혀 답답할 때

낮 설지 않게
평소에 와 닿는 입맛으로
다가와 주었습니다.

그리고
입맛을 돋아주며
한 모금씩
한 모금씩

차가운 사랑으로
자신을 주어
온 몸을
시원하게 하고
속을 평안케 하는

그런 사랑을
주고 싶었습니다.

시작 노트
요즈음 저는 따끈한 차 대신에 동치미를 시원한 얼음에 띄워
마시고 있습니다. 일명 동치미 차(?)입니다.
아내가 영양가 있게, 그리고 맛있게 담가준 동치미는
입맛을 당겨주고 몸을 시원케 해주고 속을 평안케 해 주었습니다.
가만히 보니깐
그 안에 마늘, 양파, 무, 파, 고추 등등 온갖 좋은 것들이 서로 물속에
녹아들어 함께 어울려 맛을 내고 있었습니다.
자신을 죽이고 물같이 녹아들어 시원한 맛을 내어 드리는 모습이
아름다운 사랑으로 보였습니다.
자신을 드려 사랑하는 이를 시원케 하는 그런 사랑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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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7. 8. 11:02

이른 아침 침상에서 누가 그대를 맞이 하나요?


이른 아침 침상에서 
      누가 그대를 맞이 하나요?

백 동흠

이른 아침 침상에서 일어 날때
누가 그대를 맞이하나요?

권태가 그대를 맞이하면
어제의 일을
오늘도 답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설레임이 그대를 맞이하면
내일에 있을 희망이  
그대를 부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톱니바퀴 돌듯
어제의 그날이
오늘 되어서
내일로 흘러간다 생각하면
과거의 굴레에 묶여
운명같이 살아가게 됩니다.

저 건너편
희망이 흘러 내려오기에
어제는 이미 흘러갔고
오늘은 디딤돌로 삼아  
내일의 행복을 향하여
헤쳐간다 생각하니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마다
새롭게 도전하는
설레임을 맛보게 됩니다.

그대는
오늘 아침
침상에서 눈을 떴을 때
누가 그대를 맞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지요?

권태인가요?
아니면 설레임인가요?



시작노트

과거 지향적인 사람은
과거가 흘러 내려와  현재와 미래로 흘러 간다는 시간관을 가지고 사는 사람입니다.
미래 지향적인 사람은
미래가 흘러 내려와 오늘을 거쳐 과거로 흘러 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아주 어릴 때 우리 동네에 무심천이 있습니다.
자주 그곳에 가서 물장구도 치고 헤엄도 하며 놀았습니다.
종종 새냇물에 더려운 흙탕물이나 똥덩이가 흘러 내려 올 때가 있습니다.
이때 흐르는 물과 같이 헤엄치게 되면 더러운 똥덩이나 흘탕물과 같이 흘러가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그런 더려운 것을 헤쳐서 위쪽의 맑은 물을 향하여 헤엄쳐 올라 갑니다.
그렇게 되면 이미 똥덩이나 더려운 쓰레기는 저만치 흘러 사라져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후 성경적 시간관에 대해 깨닫게 되었습니다.
내가 똥덩이나 더려운 흙탕물과 같이 흘러가면 안된다.
과거의 상처를 가지고 현재와 미래로 흘러 가게 하면 안된다.
과거로 부터 흘러 온 것을 가지고 현재와 미래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반면에 나의 시간은 미래로 부터 흘러 온다.
지금 당하는 나의 현실은 이미 과거로 흘러 가는 사건이 된다.
이미 흘러간 물이다. 상처도 없고 원망 불평도 없다. 이미 흘러간 사건을 가지고
왈가 왈부 할 것이 없다. 다만 미래의 맑은 윗물을 향하여 헤쳐 올라갈 뿐이다.

저는 어릴 때 그 시냇가에 서서 세월의 강물을 쳐다 봅니다.
그리고 과거의 상처와 정신적 쓰레기들을 가지고 불평하며 원망하며
함께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윗쪽의 맑은 물을 향하여 헤쳐 올라가는
미래 지향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 나의 침상에서 눈을 뜨게 되면  
설레임이 나를 맞이하여 준답니다.
사랑하는 나의 여인같이 아주 밝고 맑은 모습으로 나를 흔들어 깨워 줍니다.
그리고 오늘과 내일의 희망을 향하여 헤쳐 가자고
아침 햇살되어 나를 불러 줍니다.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빌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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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아침햇살

                백 동흠

그대는
어둠 저 건너편
아침 햇살같이 다가와

어둠에
갇혀 있는 나의 마음에
희망을
던져 주고 있었습니다.

상한 영혼
추위에 떨고 있는데
따스한 사랑으로
몸 녹여 주고 있었습니다.

언제
또 넘어 질지 몰라
두려움에
움츠리는 내게  
밝은 웃음으로
손 내밀어 주고 있었습니다.

아-
사랑스런 그대여!

그대는
어두움
저 건너편
동터 오르는 새벽녘

환한 얼굴로
손짓하며 불러내는
아침햇살이었습니다.



시작노트
어둔 마음에 희망을 주고
상한 영혼을 따사로이 품어 주며
움츠리는 두려움을 벗어나게 하는
놀라운 힘은 사랑의 힘이랍니다.  

그래서
긴 밤의 어둠속에 갇혀 있는 영혼을
희망찬 아침으로 불러내는 참된 사랑은
아침 햇살 같이 다가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어둠에 눌려 있는 내게
환한 미소로 손짓하며 불러내는
아침 햇살 같은 사랑스런 그대가 있음에
희망을 향해 일어 설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의 그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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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의 실수



에서의 실수

                  백 동흠

꼭 그렇게 해야 했나요?

정말 배가 고파
죽게 되었나요?

그래서
장자권까지  
넘겨 주여야 할 만큼
절실 했나요?

이제 집에 다 왔고
부엌에 들어가면
그대의 허기진 배
채울 먹을 것이 있을 진대

구태여
그 팥죽 한 그릇에
목이 메 일 필요가
있어나요?

어린 동생과
나눈 농담 같은
대화였다고요?

아니랍니다.
해도 되는 농담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농담이 있답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아무리 농담이라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은
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좋은 것이 좋다고
그저 쉽게,
선 없이 넘어 가다가
더 소중한 것
잃어버리는 에서가
그대 일 수  있습니다.


시작 노트

에서형이 사냥 나갔다가
배가 몹시 고파 집에 돌아 왔을 때
우연히 야곱동생이 팥죽을 끓이다가 농담같이 나눈 대회입니다.

"야곱아 나 팥죽 한 그룻 주라"
"형 이 팥죽 먹어. 그 대신에 내가 형 할게. 알았지?”
"야! 지금 내가 배고파 죽겠는데 그게 뭐가 대수롭냐? 알았다.”
그리고 팥죽 한 그릇을 받아먹었을 뿐입니다.

설렁 그렇게 했다고 해서
진짜 형이 동생 되고 동생이 형 되는 법은 없답니다.

그리고 팥죽 한 그릇 사건은  
초등학교 학예회의 어린이 연극 같은 유치한 모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었고
실제로 장자의 권리는 에서에게서 야곱에게로 흘러갔다는 사실입니다.

에서는 알았어야 했습니다.
아무리 어린 아이라고 해도
아무리 농담 같은 대화라고 해도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이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선에 이르면 정색을 하고 끊었어야 했습니다.

좋은 게 좋다고 너무 쉽게 선 없이 넘어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 더욱 소중한 것을
잃어버릴 수 있다는 사실을 에서는 알았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도 알아야 합니다.
너무 쉽게 선 없이 살다
더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는 에서가 바로 내가 될 수 있음을 말입니다.
(참조 창세기 25장 27-34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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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세미와 어머니의 손


수세미와 어머니의 손

                  백 동흠

너무나 낡아
버리려고 하는
수세미에게
어머니의 손을 보았습니다.

평생을
거기에 서서
더러워진 그릇을
닦아 주느라
낡아 버렸습니다.

거칠고 거친 면과
부드럽고 부드러운 면이
다 닳고 닳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투박하게 거칠었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따스하고 부드러웠습니다.

평생을 자식을 위해
닦아 주느라고
닳아 버리고
낡아 버린 어머니의 손이

오래 되어
이제 버려질
수세미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작노트

아내를 도와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다가
너무나 낡아 이제 버려질 수세미 행주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문득 수세미에게서 어머니의 손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한쪽은 거칠고 한쪽은 부드러운
수세미의 모습이 어머니의 손 같았습니다.
평생을 자식위해 낡아지고 닳아 버린
어머니의 손이 수세미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버려질 낡은 수세미를 보면서
왜 이리 마음이 아파오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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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된 남자- 울지마 톤즈

 

꽃이 된 남자

                               백 동흠

다가 가면 다가 갈수록
품어 주면 품어 줄 수록

그들의 얼굴, 눈빛
그 눈물속에서
아름다운 향기가 스며 나왔습니다.

나도 모릅니다.
왜 내가 먼 아프리카,
여기까지 와야 했는지를….

그들의 가난 속에서
온 몸이 뭉게져 버린(나병)
육체 안에서

비참한 생활의 현장
구석 구석 안에서

왜 이리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지
나도 모릅니다.

어쩜
주님이 그곳에 계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보고
꽃되라 했는지 모릅니다.

아름다운 향기를 풍겨낼
한 송이의 꽃

언제,
어떻게 해서
그들의 가슴에
한 송이의 꽃이
됐는지 모릅니다.

다만
그들의 얼굴,
눈빛과 눈물속에

그리고
우리 모두의 영혼에게까지

죽어서 꽃이 된 사람
우리의 가슴에
향기 가득한
꽃으로
피어나고 있었습니다.

시작 노트

“울지마 톰즈”  라는 다규 영화를 보면서
그에게서 냄새가 났습니다.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 아름다운 향기 말입니다.
누군가가 꽃이 된 남자라고 말했습니다.
8년의 톰즈에서의 선교 사역
그리고 3년의 투병
48세의 죽음
그의 죽음을 전해 들은 톰즈의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어느 틈엔가 그들의 가슴에 꽃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가슴에도  아름다운 향기를  발하는
꽃이 되여 있었습니다.
죽어서 꽃이 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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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아버지

           백 동흠

아버지의 등은
넓었습니다.
그 등에 업힐 때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은
몹시 켰습니다.
삶이 힘겨워 무너질 때
잡아 주는 그 손길에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웃음은
인자했습니다.
마음으로 움츠리고
굳어져 갈 때
언제나
넉넉하게
밝음을 주었습니다.

아버지의 눈길은
사랑이었습니다.
차라리 말은 없었지만
그의 눈길 속에서
희망을 향해 가도록
믿음을 주었습니다.

그렇게 가난한 시절
험한 인생
살아오면서
어떻게 아버지의 자리를
굳건히 지켜 오셨는지
아버지를 배우고 싶습니다.

아버지 떠난
그 자리에 초라하게
서 있는 제가  
아버지가 얼마나 존경스러운지를
아버지가 되어
비로소 깨닫고 있습니다.

아버지!
지금
아버지가 몹시 그립습니다.
아버지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아버지…….


시작 노트
돌아가신지 꽤 오래 됐는데
아버지의 얼굴이 그립답니다.
항상 밝게 웃는 그 얼굴 그 모습이
왜 이리 보고 싶은지 모를 일입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다 무너지고
초라한 이름이 되어 버린 아버지의 자리를
스스로 보면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시절
아버지의 자리를 지켜 주신
아버지의 모습이 왜 이리 존경스러운지
아버지를 부르다 보니 눈물이 났습니다.
정말 아버지가 보고 싶습니다.
환하게 웃는 아버지의 모습이…….(11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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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누가 알았을까요?


그 누가 알았을까요? 

                       백 동흠

바람에 날리듯
어느 날
한 알의 씨앗이
천박한 땅에 떨어 졌습니다

말라버린
연한 순같아서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고
흠모할 만한
그 무엇도 없어서
누구 하나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가난을 옷 입었고
친히 병 들었고
목 말라
한 그룻의 물을 요구하며
피곤에 지친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그 누가
하나님의 모습을 보았을까요?

아무도 모르게
철저하게
홀로 그렇게 가신
그 길이
나를 대신하여
나의 삶을 살아 주신
대속의 길임을
누가 알았을까요?

죄수가 되고
살인자가 되어
죽음의 형틀을 메고
사망으로 내려가신
그 길이

내가 가야할
형벌의 길임을
그 누가 알았을까요?

빛을 어둠으로
대적하고
사랑을
미움으로 응답하며
많은 것을 받았건만
여전히 등 돌린

어둡고 천박한
이 땅의 사람들 속에서

보아주는 이 없고
알아 주는이 없건만
외롭고 홀로
그 길을 가게한
그 사랑이
나를 살게 할 줄
그 누가 알았을까요?


시작 노트

요즈음에는 교회에서 철야하며 지낸답니다.
깊은 밤 기도중에 마음이 불같이 뜨거웠습니다.
그리고 머리에 연상이 되여 예수님의 삶의 모습이 떠 올랐습니다.
친히 예수님이 메말라 버린 연한 순 같이 되어
가난에 질고에 그리고 저주의 환경속에
살아 주신 것이 나의 삶을 대신 가주신 그분의 사랑이었습니다.
내가 가야할 형벌을 길을 대신 가게한 그 사랑이 왜 이리 아름답고
고마운지 마음이 몹시 뜨거웠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글을 적어 보았습니다. (11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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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에게 희망의 정신을 보여준 사람들


인류에게 희망의 정신을 보여준 사람들

                                         백 동흠

이상하리만큼
조용했습니다.

그리고
지나치라 만큼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바다 속의 땅이 흔들렸고
그 바다가 출렁거리며
자연이 그어준 선
겁 없이 넘어와
홍수같이 몰아 쳐 올 때

그 기세에
자연도 스스로 놀라고
온 나라가 놀라고
인류도 놀라고 있었는데

정작 당하는
그대들은
여전히 질서 아래 있었고
서로를 배려하며 양보하며
위로를 나누어 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민족이었나!
어느 나라이었나!
묻고 싶지 않음은
온 인류를 초월하여
희망을 보여 주는 사람이
그대들이 되었기 때문 이였습니다.  

앞으로 어떤 시련과
역경이 다가와도
그대들이 있기에
인류는 살아남을 수 있음을
보여 주었습니다.

어떤 폐허 속에서도
어떤 혼돈 속에서도
어떤 어둠 속에서도
그대들의 모습은
오히려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모든 것을 잃고
모든 것이 아프고
고통의 때임을 왜 모를 까요.

그러나  
인류의 역사 안에
가장 위대한 정신을
보여 주고 있는
가장 위대한 순간이 되어 지고 있었습니다.

미래의 어느 날
지구의 어느 곳에서
이런 아픔을 겪는
인류의 어느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 할 것입니다.

“그들은 차분했었다.
그리고 지나치리만큼 침착했었다.
아름다운 질서를 찾아 갔고
그런 와중에서도 더 고통당하는 사람을
사랑으로 품어 주었다.
폐허로 가득한 그 땅을
또 다시 일으켜 세운
그들의 정신을 배워야 한다고…….”


시작 노트

그들의 정신과 질서 의식이 정말 경이로웠습니다.
그런 충격과 슬픔 속에서도
조용하고 차분하게 질서를 찾아가고
오히려 자신의 아픔을 사치로 느낄 정도로
남의 고통을 아파해 주는 그들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습니다.
저는 그들의 정신 속에서 인류의 정신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온 인류 속에 그런 정신이 스며 온다면
인류는 미래의 어떤 위기와 역경이 몰아쳐 온다고 해도
이겨낼 수 있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겨내셔야 합니다.
이겨 내심으로 우리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족속에게
그리고 우리의 후손들에게
미래의 정신을 보여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일본 땅,
그 재해의 현장위에 있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며 마음으로 격려하기 위해
이 글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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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겨울 나무를 좋아 합니다.

나는 겨울나무를 좋아 합니다.

                   백 동흠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 하는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벌거벗은 모습이  
부끄러운데
부끄러움 없이
스스로를 숨기지 않았습니다.

따스한 봄날의 추억과
지난여름의 이름다운 풍채를
자랑할 만한데
전혀 냄새피움도 없었습니다.

혹독한 추위와
모진 바람 앞에서도
흔들림 없이

또 다시 올
내일의 희망을 기다리며
겨울 들판에
불평 없이 서 있었습니다.

차라리 빈 몸으로
하늘을 담고
가장 낮은 모습으로
그 땅을 지키며
오늘도 굳건히 서 있는
그 모습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왜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 하는지를…….


詩作 노트

겨울 같은 혹독한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이겨 나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병으로 몸 아프고 가난으로 마음도 아파 힘겨운 나날인데
여전히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겨울 들판같은 인생길에
홀로 서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차라리 빈 몸, 빈 마음으로
하늘을 마음에 담아 주님을 바라보며 굳건히 서 있는 모습이
왜 이리 아름답고 존경스러운지요.
왜 내가 겨울나무를 좋아 하는 지를 이제야 알아가고 있었습니다.

주님!
누가 뭐라고 해도 봄은 반드시 오게 되어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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