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4. 10:18

김길태 - 그 누구도 거기에 없었습니다.

 

* 푸른 편지에 보내 시를 약간 수정했습니다. 참조 바랍니다.

김 길태 - 누군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백 동흠

내가 누구냐고
내가 왜 길에서 태어난 존재냐고
절규하며 문을 닫아 버릴 때
누군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문 닫은 체
보이지 않는 상처 속에
안으로 증오를 키우고 있을 때
누군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굳어가는 얼굴의 내면에
울부짖는 그 영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누군가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홀로 온 몸으로
찬비를 맞으며
추위에 떨고 있을 때
따뜻한 사랑으로 품어줄
누군가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어둠속에서
정신이 몽롱한 체
절망의 늪에 빠져갈 때에
희망의 손을 내밀어줄
누군가가 거기 있어야 했습니다.

여리고의 깊은 숲속에(눅10:30)
버려져 죽어가는 그 현장에
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가 되어 줄 수 있느냐?
그렇게 묻고 있건만
우린
누구 하나 거기에 없었습니다.
  



詩作 노트

김 길태라는 이름이 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지은 이름이라는
기사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길에 버려졌고 길에서 주어와 태어난 자신의 이름을 들을 때 마다
어린 마음에 어떤 충격을 받았을까?
가히 상상이 갔습니다.

그 결과 스스로의 인생의 파멸뿐 아니라 13세의 어린 소녀의 죽음과
그 가정의 고통과 사회적 충격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 때 스스로 버려져 안으로 증오를 키우고 있을 때 나와 너 우리는
어디에 있었느냐고 물고 싶었습니다.
거기에 누군가가 있어야 했습니다.

버려져 죽어가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이웃되어준 선한 사마리아 사람으로
다가갔어야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이웃되어 주지 못한 우리의 책임이요
나의 죄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3분QT-여호수아편 2010. 3. 13. 04:38

33. 내 삶이 내의 것이 아닙니다.

<3분 QT> 33. 내 삶이 내 것이 아닙니다.

제목; 여호와의 구별될 것이니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말씀: 여호수아 6장 19,24절
 
19. 은금과 동철 기구들은 다 여호와께 구별될 것이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일지니라.
24.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 은금과 동철 기구는 여호와의 집 곳간에 두었더라.
(참조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 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1. 묵상을 위한 질문

여리고성이 함락한 이후에 해야 할 일을 무엇인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 구별된 것이 있으니 그것을 여호와의 곳간에 들이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가요?(19)
* 잠3장 9,10절에는 무엇을 드리라고 했는지요?(잠3:9-10)
*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것으로 돌려야 할 부분들이 있음을 알려주는
   내용입니다. 주님의 것으로 돌려 드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깊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2. 깨달음과 교훈

주님! 자꾸 주님의 몫과 내 것을 나누려고 하는 생각하는 것 자체가 잘못임을 지적해 주심을 감사합니다. 사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인데 주의 것 중에서 드려지는 것인데 내 것에서 하나님의 몫으로 드려진다 생각하니 아까와 하고 생색하고 괜히 우쭐거린 것이 나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 들었습니다.

3. 삶에의 적용

이 생명의 호흡도 하루의 시간도 이 몸의 건강도 다 주의 은혜가 있었기에 이루어 진 것인데.... 생각하면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나의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오니 주의 뜻대로 쓰임 받게 되기를 원할 뿐입니다.  

* 생활의 예화 *

친구 목사님이 계십니다. 연말에 한국 방문 중 병원에서 검진을 받는데 아랫배 쪽의 대장에서 뭔가가 비쳤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직 검사를 하게 됐는데 의사의 말에 의하면 암이 저 정도의 크기라면 아마 6개월 아니면 8개월을 못 살 것 같다고 그랬습니다. 마치 사모님이 간호원 출신인지 전문적인 용어와 함께 모든 것을 수긍하며 긍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목사님이야 차분하게 때가 되면 다 가게 돼 있다고 담담히 말씀을 했습니다만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하염없을 눈물을 흘려 내렸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다 불려 놓고 예배를 드리며 끝까지 사랑과 믿음과 소망으로 살자고 권면했습니다. 아내가 울고 자식들이 울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하니 하나같이 다 주님의 은혜요 나의 나됨은 나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으로 살아 왔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죽는다 생각하니 예수님이 왜 이리 귀하고 귀한지 이제 주님
외에 아무것도 아님을 절감했습니다.
이제 땅의 것을 다 끊고 주님만을 바라보니 얼마나 하늘의 위로와 소망이 얼마나
넘쳤는지 오히려 감사가 되었습니다.

며칠 지내고 있는데 드디어 병원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런데 의사가 말하기를 암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순간 희열 이였지요. 기쁨과 감격 이었습니다. 새로 태어난 기분이 들었습니다.
생명을 덤으로 얻은 감격이 되었습니다.
마지막 목사님의 고백은 “맞아 내 몸이 내 것이 아냐. 이건 다 주님의 것이야.
주님의 것을 주님을 위해 몽땅 드려지는 삶을 살 것이야” 절감하며 외친 고백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고전15:10)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고전6:19)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12:1)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아직도 내 삶이 나의 것이라 생각하고 사는지 스스로 물어 보기 바랍니다.  
2. 나는 얼마나 구별하여 주의 것을 주님께 드리고 있는지 그리고 드리고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기 바랍니다.
3. 물질의 십일조, 시간의 첫 열매(새벽 기도) 수입의 첫 열매 일주일의 하루(주일)
  등등 주님께 드리는 것을 목록으로 작성하여 분석 파악해 보기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3. 13. 04:34

서로 세워 주는 삶의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서로 세워 주는 삶의 관계가 아름답니다.


                                                     백 동흠목사

요새 부부관계가 어려움이 많습니다. 서로 세워주는 사명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나이에 따라 부부관계의 사는 패턴이 다르다고 합니다.
20대에는 서로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환멸을 참으면서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면서도 살고, 50대에는 서로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70대에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고 합니다.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이 철이 들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종종 목사로써 부부 싸움의 틈 사이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부 싸움하는 것 보면 어린아이들같이 유치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의 부부도 종종 부부싸움을 하는데(사실 요즈음은 거의 없지만)
저의 두 아들이 부모인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철을 들까? 걱정해 주는 얼굴의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며 부부싸움 하다가 한참을 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연약한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당연히 서로 세워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한 가지 이유는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워 주는 대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16세까지 삶에 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삶을 세워 주는 말을 하는 것보다
허물어 버리는 말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우리 인간은 하루에 5만∼6만 가지의 생각을 하고
그 많은 생각 중에 75% 이상은 부정적인 생각이고 25% 미만은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관리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누구나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망가지고
무너지게 하는 사람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아내가 수도사를 찾아 왔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괴로워서 더 이상 남편과 살 지 옷 하겠다는 것입니다.
수도사는 정수된 약물을 주면서 귀한 것이기 때문에 꼭 부부싸움 직전에 한 모금을 마시되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 결과 정말 놀랍게 부부싸움이 사라지고 좋은 부부의 관계가 됐습니다.
아내는 수도사에게 찾아와 감사하며 그 정제된 약물이 참 신비롭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수도사 말하기를 "그 약물은 보통의 물입니다. 다만 신비로운 것은
침묵과 절제된 언어입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형제여!

차라리 말에 대한 침묵과 절제가 필요 합니다.
그리고 이제 영의 사람이 되어 상처를 싸매주고 인정해 주며 희망을 주고 세워 주는
언어의 훈련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서로 세워주는 삶의 관계를 가질 때 우리의 삶의 질은 생각 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해 질수 있습니다.


3분QT-여호수아편 2010. 3. 11. 04:33

32. 은혜는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3분QT> 32. 은혜는 갚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제목; 여호수아는 약속을 지키라 했지만…….

말씀: 여호수아 6장 22절
 
22. 여호수아가 그 땅을 정탐한 두 사람에게 이르되 그 기생의 집에 들어가서 너희가 그 여인에게 맹세한 대로 그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라 하매  23. 정탐한 소년들이 들어가서 라합과 그 부모와 그 형제와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어 내고 또 그 친족도 다 이끌어 내어 그들을 이스라엘 진 밖에 두고......  

1. 묵상을 위한 질문

* 여리고 성이 함락 후 여호수아가 정탐한 사람에게 말한 것은 무엇인가요?(22)
* 그렇게 해서 살아나게 된 라합의 식구는 누구누구일까요?(23)
* 정탐한 소년들이 라합의 식구를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호하며 진증 밖으로
   이끌어 내고 있는지 깊이 묵상해 보기 바랍니다.

2. 깨달음과 교훈

정탐꾼으로 갔을 때 결정적으로 잡히는 순간 얼마나 절실하고 절감했을까? 말 한마디에 목숨이 끊기는 상황에서 숨겨주고 지켜주었을 때의 절실함과 고마움이 뼈에 사무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약속에 대한 이행보다 그때의 절실함에 대한 고마움, 그 은혜를 잊지 않고 화답하는 정탐꾼의 모습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3. 삶에의 적용

주님!
저도 신세를 갚는 차원이 아니라 갚을 수 없는 은혜를 잊지 않고 늘 감사하고 화답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습니다. 아멘

* 생활의 예화 *

아버지가 계십니다.
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명절 때나 그분의 생일 되면 선물을 한 아름 준비해 가지고 갑니다.  
“내가 어릴 때 늘 나를 도와주시던 분이시지...”
아버지는 어릴 때 너무 가난했습니다. 학비도 없고 항상 배고 고팠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는 나를 불러 따끈한 밥도 먹여 주시고 작지 않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시고 했습니다.
그 후 이사를 해서 떠나왔고 잊혀 진 분이 됐는데 우연히 그 분을 길에서 만난 후 연락처를 알게 됐고  집을 찾아 가 본 이후 지금까지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들이 말합니다.
“아버지 이정도면 그때 도움 받은 것 많이 갚은 것 아닌가요?”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그래 이정도면 그 때 신세진 것 많이 갚은 거지. 그런데 그 때 받은 은혜는 갚아지는 것이 아니란다. 그건 그저 잊지 않고 고마워하고 감사하는 거지.”
“아빠는 지금도 그 때를 생각하면 얼마나 고마운지 그저 감사할 뿐이란다.”
아들은 숙연해 지며 뭔가를 깊이 깨닫는 모습을 지었습니다.
오늘 현대인들에게 감동이 없는 삶은 약속에 대한 이행만 있고 빚진 것에 대한 갚음은 있지만 진정 그 은혜에 대해 잊지 않고 감사하며 화답하는 삶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 스스로 묻고 답하기 *

1. 신세진 것을 잊어버리는 사람이 아닌가? 물어 보기 바랍니다.  
2. 신세진 것을 꼭 갚는 사람인가 아닌가? 물어 보기 바랍니다.
3. 신세 진 것은 갚을 뿐 아니라 그 은혜는 갚은 수 있는 것을 알기에 늘 감사하며
  화답하는 삶을 사는 사람인가 아닌가? 물어 보기 바랍니다.
4. 나는 위의 3단계에서 어느 수준에 있는지 스스로 평가해 보기 바랍니다.

2010. 3. 9. 08:47

숲에서

숲에서

       백   동흠

시간의 틈 사이

오랜만에
그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새소리
나무소리
나를 부르고

상큼한
숲 내음
미소 짓는다

바람의 소리에
영혼이 일어나고

마음은
벌써 구름을 벗삼아
하늘을 뛰논다

그들은
나에게 묻는다

어디서
그렇게 바쁘게 살다가
이제 왔느냐고

<시작노트>
저는 마음이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얼굴 붉히지 않고 조용히 떠납니다.
마음에 일어 나는 갈등의 자아를 그냥 그대로 둔체
그 현장을 떠나 멀리 여행을 한답니다.
푸른 하늘 구름을 벗 삼아
흐르는 시냇을 따라 떠나 갑니다.
그곳에 가면 반갑게 맞아 주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때 묻지 않고 영혼을 맑게 하고
평화를 주는정겨운 벗들이
그렇게 반겨 맞아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