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1. 2. 16. 06:09

그대는 고객입니까? 예배자입니까?



그대는 고객입니까? 예배자입니까?

                                               백 동흠목사

2000년 이후 시청률 50%를 넘긴 드라마는
허준(63.7%), 태조 왕건(60.2%), 대장금(57.8%),
진실(56.5%), 야인시대(51.8%), 내 이름은 김삼순(51.1%)
주몽(50.6%)이었다고 합니다.

드라마의 3대 조건을  
주연의 탄탄한 연기력,
조연급 감초들의 뒷받침
설득력 있는 스토리의 전개를 두고 있습니다.
이 3가지의 조건만 갖추어 지면 30%대는 무사히 진입한다고 합니다.

40%대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사회적 이슈가 결합될 때 시청률이 훌쩍 넘어간다고 합니다.

50%대로 올라가고자 한다면
입소문과 함께 10대 20대의 젊은이의 흡수작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마 50%대의 진입을 위해서는 드라마 자체보다
보이지 않는 광고 전략이 있어야 된다는 이야기 일 것입니다.

왜 이렇게 시청률을 높이려고 할까?
그 답은 간단합니다.
수입입니다. 작가와 출연배우의 주가가 높아지게 되고
광고 수입이 많아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가 교회에서도 적용되는 것이
오늘의 목회임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주식회사로 보는 교수님도 있습니다.
사장을 목사님으로 봅니다.
주주를 장로님중심의 당회로 봅니다.
고객을 성도들로 봅니다.

고객(성도)이 많아지면 사장(목사)의 주가가 높아집니다.
그리고 주주(장로)들은 그를 하늘같이 모시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교회는 일단 성도(고객)가 많아 져야 합니다.  
그래야 헌금이 많아지고 선한 사업도 하고 성전도 짓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논리가 교회에서 조차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드라마같이
고객 유치를 위한 방안으로의 목회 전략을 갖게 하는 것이
현대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이런 흐름이 오늘 날 성도의 타락을 가져 왔습니다.
시청률 높이기 위한 예배로의 시도입니다.
이에 대해 성도들은 고객이 되어 지고 있는 현상을 보게 됩니다.

첫째는 교회에 대한 선택권을 성도들이 가져갔습니다.
채널을 바꾸듯이 얼마든지 교회를 왔다가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인기 드라마처럼 즐거움과 감동만을 요구하게 됩니다.
교회와 목사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강요할 뿐
자신의 책임과 의무에 대해선 불편해 하고 부담스러워 합니다.

셋째는 고객으로서 평가와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고급스러운 한 편의 예배가 연출될 때까지 안락한 시설과 편안함
그리고 분위기까지 평가하고 판단하는 고객이 되어 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맘에 안 들면 어느 날 채널 바꾸듯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고객은 보기 좋은 공연을 찾아다니지만
예배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써의 소속과 뿌리를 갖고 있습니다.

고객은 안락하고 분위기만을 요구하는데  
예배자는 외적 환경보다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 대해 상한 마음을 고백 합니다.

고객은 예배의 현장을 떠나면 여전히 위선된 삶의 자리로 돌아가지만
예배자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가정과 이웃과 세상에
대한 책임과 사명으로 나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대는 고객입니까? 진정한 예배자입니까?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1. 2. 3. 06:00

설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사용자 삽입 이미지

 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아침 달력을 보니
2일 부터 4일까지
빨간 줄이 쳐저 있었습니다.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구정,
연휴 기간이었습니다.

TV을 켜 보니 설날 노래가 나왔습니다.
화사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설의 풍요로움에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설빔 나드리를 가는 TV속의 모습이
오래전
옛날의 추억이
그리움같이 떠 올랐습니다.
 
오늘 내가 타향(타국)살이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었습니니다.

이 설날에
우리 모두 다
 행복하기를 소원드립니다.

 

영성일기 2011. 2. 3. 05:26

신년 하례식



새해들어
1월 10일 (월) LA노회 주관으로
서노회, 서남노회, 서중노회,LA노회

4개 노회의 연합으로

신년하례식을 갖었습니다.

 원로 목사님들에게
새배인사하며 선물드리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원로 목사님들을 보면서
세월이 스쳐 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이민 목회의 오랜 세월
연단과 시련속에 깍이우고 닦여 오신 모습이  
마치 조약돌 인생같았습니다.

나이는 들어도
조약돌같이 모난 것 없이  
둥글 둥글하고 서글 서글하게 늙는 것도
참 아름답다 생각들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1. 2. 3. 05:08

권력 중독-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질병입니다

                                                                                   미주 장신대의 전경


권력 중독-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하는 질병입니다.

                                                   백 동흠목사

Robert Greene은 그의 책“권력을 경영하는 48 법칙”
(The 48 Laws of Power)에서
“권력은 근본적으로 도덕과 관계가 없다.
권력을 얻기 위한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는
선악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보는 능력이다.”라고 합니다.
그리고 상황을 순간적으로 포착하여 익권과 권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갑니다.

데이비드 L. 와이너(David L. Weiner)의 책 “권력 중독자”라는 책이 있습니다.
한 개인이 권력 중독자로 변하는 시기를 3가지로 지적했습니다.
경쟁 상황에 돌입할 때
복수심에 사로잡힐 때
권한, 지위가 부여 받았을 때
권력 중독자로 변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와이너는 위의 두 가지는
“개인적인 것이기에 문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권한과 지위를 부여 받을 때는 그 파장이 크다고 했습니다.
포장된 공손함을 벗으면서 자신의 가치에 대한 과대 망상적 신념,
독선, 위대성에 대한 환상, 남을 착취하고자하는 경향 등등으로 인해
조직과 질서가 깨뜨리고 무고한 자의 해치는 악을 낳게 된다고 했습니다.  

권력 중독자의 과정을 보게 되면

첫째 단계는 집착과 몰입으로 들어가기 시작합니다.
흡연중독, 알코올중독, 섹스중독, 마약중독, 도박중독. 게임중독 등등의  
중독현상은 몰입과 집중 현상입니다. 이것을 결정 작용이라고 합니다.
빨강 안경을 쓰면 모든 것이 빨갛게 보이게 되이듯이
집착과 몰입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집니다.(창3:6)
이때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게 됩니다.

둘째 단계는 내성과 금단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권력 중독의 내성과 금단현상은 상식의 선을 벗어나면서 시작이 됩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적이냐 동지냐에 따라 결정하게 됩니다.
흑백 논리의 사고의 감옥에 갇히게 되고
자신의 유리한 쪽으로 모든 것을 해석하게 됩니다.
상식의 선에서 처리될 사항들이 임의롭게 처리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데이비드 L. 와이너는
“외면적으로는 순진하고 따뜻한 성품을 보일 수도 있지만,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얻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종종 도덕이나 윤리, 예의, 상식마저
무시한 채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셋째 단계는 파멸의 단계로 가게 됩니다.
성경은 욕심이 잉태 하면 죄를 낳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죄는 사망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야1:15)
다행히 주어진 권위와 지위가 사라지면
다시 순종적인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 와이너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는 이미 깊은 상처를 남긴 후가  됨으로
불행의 후유증이 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 목사님들이 권력 중독자가 되면 본인도 불행해 지고
그의 주변의 사람도 불행해 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 권력 중독증이 나타났습니다.
지위를 얻을 때, 권세를 얻을 때,(막10:37)
나를 주님의 우편에 좌편에 앉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 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10:45)
스스로 비워 섬기는 자가 되고
스스로를 낮추어 사람의 종이 되라고 함으로
권력 중독 증세가 나타나선 안 된다는 말씀을 제자에게 주었습니다.  

얼마 전 미주 장신대에 경겅회 말씀인도 차 갔다 왔습니다.
100여명의 젊은 형제와 자매들이 모여 찬양하며 예배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
총장님과 교수님들의 순수한 학자적 기품과 열정도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름다운 교정도 이제 갖추어 졌고 200여명의 학생들이 모이는
선지 학교가 미국의 땅에 멋있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대로 다음 세대의 일꾼들이 아름답게 성장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LA 노회 노회장이다 보니
총회 임원과 신학교 이사회의 되어지는  소식을 종종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총회 임원을 대상으로 법정 청원서까지
정식 문건으로 보내 온 것을 읽었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볼 때
권력 중독의 증세와 너무 똑같은 흐름을 타고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끄럽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런 아름다운 학교와 순수한 사명감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젊은 선지 생도들 앞에서
법적 고소 사건, 해임 사건 같은 질 낮은 일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볼 때
참 마음이 아팠습니다.  

권력 중독증
우리 모두를  불행하게 만드는 증세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마20:25-27)
세상의 권력은 군림하고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스스로 마음을 비워라 그리고 섬기는 사람이 되고 종이 되어라.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너희를 큰 사람이 되게 하여 주실 것이다.
백동흠 칼럼 2011. 2. 3. 04:54

그래서 푸른편지를 보내드리지 못 했습니다.



그래서 푸른편지를 보내 드리지 못 드렸습니다.

                                                                백 동흠목사

형님이 어머니를 모시고 계십니다.
퇴원하기 전 가정이 모여 상의 한 결과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기로 한 것입니다.
사실 저는 반대 했었습니다.
소변도 투브로 받아 내시고 음식도 투브로 주입하시고
몸의 90% 이상이 마비된 상태로 누워만 계시기 때문입니다.
언제 회복된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입니다.
24시간을 옆에서 지키지 아니하면 안 되는 형편이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효자인 형님은 못 할 때 못하더라도 모시자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도 동의하게 됐습니다.  
형의 두 아들이 너무 성실했습니다.
두 아들을 도움을 받아 24시간 할머니를 지키며 돌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새벽부터 오전시간을 책임지기로 했습니다.

저는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6시 20분 어머니에게로 출근합니다.
주무시면 조용히 기다리다가 깨어나시면
손을 붙잡고 기도해 드립니다. 찬양을 해 드립니다.
그리고 이부자리를 정돈하여 드리고
기저귀와 변을 깨끗이 닦아 드립니다.

욕창- 어머니는 몸이 말라 꼬리 뼈 쪽이 볼록 튀어 나왔는데
병원에 입원하여 있는 중에 그 곳의 피부가 다 헤어지고
동그랗게 구멍 뚫리듯이 피부가 패였습니다.
이것이 욕창이었습니다. 저는 욕창을 처음 보았습니다.
움푹 패어서 피부의 내면 층이 보였습니다.
소독을 해 드리고 약을 바르고 가제로 붙여 드립니다.

음식은 배로 들어가는데 음식이 들어가는 부분을 닦아 드리고
소독하여 가제로 붙여 드려야 했습니다.
그 후 몸과 얼굴과 머리를 닦아 드립니다.
맨 처음에는 꼬박 3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은 2시간이면 넉넉히 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시간에 맞추어 투약을 해드리고
시간마다 물도 넣어 드립니다.

그런데 어느 날 부터인가
놀랄 만큼 회복이 눈에 띄게 보였습니다.
얼굴이 평안하고 조용히 잠이 들고 깨어나시더니
긴 꿈을 꾼 것같이 얼굴이 밝아 보였습니다.
조금도 요동하지 않던 왼손을 흔들어 보였습니다.
귀가 들리는지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습니다.
요 며칠 전에는
새벽 기도를 마치고 들어 온 저를 보더니 뭐라고 중얼 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틀리가 없는 입으로 오물락 거리며 하는 말은
“가서 좀 더 자” 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새벽기도를 마치고 어머니의 방에 들어가면 오른손을 들고 흔들며 반가워합니다.
저는 손을 꼭 붙잡고 기도해 드립니다.
어머니는 아멘을 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고 사랑이 전달됩니다.
그렇게 마음이 평안하고 좋은가 봅니다.
누워 있는 모습이 행복해 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 눈물이 납니다.
앙상하게 뼈만 남아 있는 손과 발을 보면서
이 험한 세상을 홀로 살기에도 벅찼을 텐데
우리 6남매를 키우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온 몸에 흔적으로 남아 있음을 보았습니다.
제가 생각나게 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강인한 사랑이었습니다.

참 추운 시절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을 이겨낸 사랑이었습니다.
몸은 외소 하지만 사랑은 거인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의 몸을 닦아 드리고 이렇게 뒷바라지 한다는 것이
제게는 왜 이리 기쁘고 즐거운 일인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주님은 그 마음을 아셨는지 치유하심을 주고 계셨습니다.
어느 날 부터인가 눈에 띠게 회복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주님이 치료하고 계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지금 욕창은 95%이상 다 낳았습니다.
마지막 딱정이만 떨어지면 된답니다.

어머니에게 약속하자고 했습니다.
2월 첫째주일은 휠체어 타고 교회가자고요
그리고 3월 달에는 휠체어 없이 교회가자고요
어머니는 밝게 웃으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주님의 기적은 조용하고 평화롭게 다가오는 것임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즈음 푸른 편지를 성실하게 보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