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7. 24. 15:21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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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백 동흠목사


나의 집에 전기가 들어 온다면 이 지구상에
전기 혜택을 입지 못하는 사람 20억명의 사람보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 맑고 깨끗한 수도물이 들어 온다면
10억의 사람보다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한끼의  따끗한 밥을 온 식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8억명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보다 더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아침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주의 교회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체포와 학대와 죽음의 공포속에 있는 30억명의 사람보다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 안에 먹을 음식이 있고 따뜻한 옷으로 몸을 걸 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75%의 사람보다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일고 내가 축복 받은 존재인것을 안다면은
이 세상에 글을 읽지 못하는 20억명의 사람보다 더 많이 감사 할 수 있습니다.

2006년도에 영국의 생크 탱크인 신 경제 재단(NEF)에서
나라별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미국의 150위, 영국이 108위, 일본이 98위로 나왔습니다.
한국도 행복지수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102위입니다.

그러면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남태평양 호주 근방의 섬나라 비누아투라는 20만명이 사는 아주 작은 나라었습니다.
지난 5월에 한국에 그 나라 관광청장이 방문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 어떻게 그 나라 국민은 행복할 수 있는가?"
"우리 바누아투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하고 소박하지요.
그리고 항상 서로를 나누어 주고 존중히 여겨주는 생활에 익숙할 뿐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소유는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우리의 행복을 좀먹는 벌레와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미래의 번영을 키우는 힘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 -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것인가를 알았으면 해서 적었습니다.
(2010년 5월5일 푸른편지 글)

2010. 7. 24. 15:01

어린이 날


어린이 날

아버지
오늘은 어린이 날입니다
언제나 학교에 가면서 바라보는 가게의 과자
그런것 안 먹어도 좋아요

가지고 싶은 고무공도
안가져도 좋아요
참고서는 빌려 보면되지요

다만 밀린 시험지 값
기성회비와 저금돈은 어찌할까요?

그리고 언젠가 기다리라고 하시던
크레옹이 있어야
미술 공부를 합니다

아버지
왜 오늘은 말이 없으신가요
그처럼 슬픈 얼굴인가요

아버지
차라리 여느 때 처럼 꾸짖어 주세요
이놈 돈이 있어야 주지
밥도 못 먹는 형편에... 라고요

그러면 저도 눈물을 거두겠습니다
이를 꼭 깨물고 골목을 뛰쳐 나와
하늘을 쳐다 보며
학교에 가겠습니다
그것이 얼마나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오늘이 어린이 날입니다
무엇 때문에 있는지 모르는
하루만의 어린이 날입니다.




이오덕님의 글입니다.
이오덕의 글을 읽고 마음으로 울었습니다.
행복의 주변 자리에서 기웃 거리며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흠치면서 슬픔의 날들을 보내는
우리의 어린 형제와 자매를 보았습니다.
마음으로 함께 느끼며 배려하고 섬기는 삶을 살자
다짐해 보았습니다.

섬기는 삶이 아릅답습니다.

행복의 주변 자리에
기웃 거리며
오늘도 슬픔의 날을
그늘진 곳에서
아무도 몰래 눈물로
보내는 분들이 있겠지요.
조용이 다가가
함께 해주며 섬기는
그대와 나의 모습이 되었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0. 7. 4. 08:29

솜털 원숭이와 철사 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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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솜털 원숭이와 철사 원숭이
 
                                         백  동흠목사

한 행동학자의 실험이 있었습니다.
원숭이 우리를 만들어 놓고 그 안에 두 마리의 어미 원숭이를 양쪽에 만들어 세워 놓았습니다.
한쪽은 철사로 칭칭 감아서 어미 원숭이를 만들고 그 젖꼭지에 우유가 나오도록 했습니다.
또 한 쪽에는 솜으로 칭칭 뭉쳐서 어미 원숭이를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솜털 원숭이에게는 우유병을 달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우리 안에 새끼 원숭이들을 풀어놓았습니다.
원숭이 새끼들이 배가 고프니깐 철사 원숭이에게 다가가 젖을 빨아 먹고 내려와 놀곤 했습니다.
이때 이 새끼 원숭이들의 반응을 보기 위해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괭가리를 울리고 괴성이 들리게 했습니다.
그때 이 새끼 원숭이들이 자신에게 젖을 준 철사 원숭이에게 달려 갈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새끼 원숭이들은 솜털 원숭이에게 달려가 품에 안겼습니다.  
그 뒤 새끼 원숭이들이 솜털 원숭이 주변을 돌며 놀다가 배가 고프면 철사 원숭이에게 가서
살짝 우유만 먹고 다시 돌아와 솜털 원숭이의 주변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저는 이 실험을 통해 깨달은 것이 몇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왜 현대인이 외롭고 고독한가를 깨닫게 됐습니다.
그 이유는 철사 원숭이같이 똑똑하고 유능하기만 하기 때문입니다.
사무적입니다. 말 한 마디에 똑똑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
때로는 숨이 막힐 정도로 완벽합니다. 다만 이뿐이라면 철사 원숭이에 불과할 뿐입니다.

둘째는 진정한 행복은 어디에 있는가를 깨닫게 했습니다.
솜털 원숭이는 젖을 주지 못했습니다.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필요를 채워주지를 못 했습니다.
그러나 정서적입니다. 편안하고 따스함이 있습니다. 쉼이 있고 안식이 있고
위로와 평강이 솜털 원숭이의 품안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린 새끼 원숭이들은 본능적으로 솜털 원숭이안에서 진정한 행복을 느끼며 누리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그대는 철사 원숭이의 모습인가요?
아니면 솜털 원숭이의 모습인가요?
너무 똑똑한 사람이 되기보다 조금 어수룩하게 보이고
좀 부족해 보여도 넉넉히 품어주고 변함없이 품어 주고 항상 품어주는
그런 사람으로 거기에 늘 있었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0. 7. 4. 07:50

휄체어의 황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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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휠체어의 황제 이야기
 
                                                           백 동흠목사

얼마 전에 시중에 베스트셀러였던 "오체불만족"이란 책을 읽어보셨습니까?
그 책은 도저히 행복할 수 없는 형편에서 행복을 만들어낸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그 책의 지은이는 와세다 대학 정치학과 4학년인 오토다게 히르타다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손과 발이 모두 10센티밖에 되지 않은 채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절대로 자기의 삶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습니다.
요새 개성시대인데 자기는 태어날 때부터 개성이 있어서 좋다고 합니다.

그는 어깨와 머리 사이에 연필을 끼워서 글을 씁니다.
그리고 입과 어깨로 가위질을 합니다.
또한 양어깨로 농구공을 드리볼 하면서 농구를 하기도 하고,
겨드랑이 사이로 철봉을 끼고 턱걸이를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런 모습을 자기만이 가진 장기라고 자랑을 합니다.

그의 어렸을 때 별명은 <휠체어의 황제>였습니다.
항상 자신 있게 살고 모든 일에 적극적이어서 골목대장 노릇을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어둔 기색이라곤 없습니다. 어머니도 그렇게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그를 낳은 후 한 달만에 처음 보게 되었는데 처음 자식을 보고 한 소리가
"아! 정말 귀엽다!"라는 소리였습니다.

아버지도 전혀 자식에 대한 부끄러움 없이 자식을 남들 앞에 소개했고
자주 산책을 해 주었습니다.

초등학교 은사인 다카기 선생은 4년간 그의 담임을 자원하여 멘토가 되어서
무조건 도와주지 않고 오토다케가 모든 일을 스스로 하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정상인도 들어가기 힘든 와세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행복은 행복을 누리는 사람에게 존재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불행할 뿐입니다.

괴테는 말합니다.
행복에 관하여 논하지 말라
지금 행복한가를 물어 보라고 했습니다.
어떻세요? 지금 행복한가요?

2010. 4. 29. 03:38

내 안에 뿌리내린 삶의 깊이가 있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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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음이 있는 삶

               백 동흠

전엔
바람 물결
요동할 때  
밤새 뒤척임이 있었다.  
                             
문제를 다루는
나 자신이
얕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쉽다
단순하며  
담담하여
흔들림이 별로 없다

이제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닌 까닭이다

밖에서 불어 대는
바람보다
                                         
내 안에
뿌리내린 삶의 깊이가                    
나를 지켜 주기
까닭이다




詩作노트

전에는 복잡했던 문제들이 지금은 참 쉽게 생각되고
단순하게 풀어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어느 틈엔가 내 안의 나가 밖으로 부는 바람보다
안으로 들려오는 내면의 음성에 뿌리를 내린 까닥였습니다.

주님 앞에 잠잠히 기다리는 훈련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분 앞에서 깊이를 더하는 삶인 것을
점차 깨달아 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