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5. 12. 3. 04:36

역사를 왜 배워야 하나요 - 역사 교과서 ①

 

 

역사를 왜 배워야 하나요 - 역사 교과서 ①

                                            백 동흠목사

한국의 교실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수능 고시도 힘겨운 데 역사를 왜 배워야 하느냐고 불평이 많았나 봅니다.
한 학생이 선생님께 짜증스럽게 질문합니다.
선생님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요?
선생님이 아무 말도 안하고 “배워야지…….” 하면서 알밤을 때립니다.
“아앗 왜 때려요?”
또 묻습니다. 역사를 왜 배워야 하냐고요?
선생님은 또 다시 알밤을 딱 때립니다.
“역사가 무엇이냐고 묻는데 왜 때려요? 왜 역사를 배우느냐고요?”
그 순간 선생님은 또 다시 알밤을 딱 때립니다.
이제는 학생이 싹 피합니다.
그때서야 선생님은 말씀합니다.
“이게 역사다.”
“네가 억울하게 맞은 것을 기억하지 못 했다면
내가 너를 때릴 때 피할 수 있었을까?”
이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는 배워야 해

전도서에 보면 한 세대가 가면 또 한세대가 온다고 했습니다.(전1:4)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을 것이라고도 했습니다.(전1:9)
새것이라 말하지 마라 오래 전 세대에 이미 있었다고 합니다.(전1:10)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진술하라 말해 보아라. 이전 일이 어떠한 것을 연구하여
그 결국을 알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신 32장7절에도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
네 아비에게 물으라. 그가 네게 설명할 것이요 네 어른들에게 물으라.
그들이 네게 일러 줄 것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사학자 토인비는 과거에서 배우지 못한다면 미래는 없다고 했습니다.
일제 강점기 시기의 역사학자이며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여순 감옥에서 순국한 신채호 선생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했고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그 과거를 되풀이 한다고 했습니다.
망전 필위 (忘戰必危)을 기억해야 합니다.
잊으면 반드시 그 위험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왜 역사를 배워야 하나요?
“네가 억울하게 맞은 것을 기억하지 못 했다면
내가 너를 때릴 때 피할 수 있었을까?”
이게 역사의 교훈이다.
그래서 역사는 배워야 해

감동을 주는 글들 2015. 11. 27. 03:22

풍요롭고 행복한 감사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감동을 주는 글들 2015. 11. 25. 16:39

십자가의 길- 비아 가족들을 초대 합니다.

        십자가의 길 - ViA 가족들을 초대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5. 10. 30. 03:48

생각이 바뀌면 삶에 변화가 따라 옵니다.

 

생각이 바뀌면 삶에 변화가 따라 옵니다.

백 동흠목사

호텔 청소 직원이 하루 평균 15개의 객실을 청소 한다고 합니다.
방 하나를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혹은 30분 정도입니다.
청소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운동량은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운동량 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운동으로 보지 않고 노동으로 봅니다.
노동의 대가로써의 “돈벌이”로 생각합니다.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태와 피곤으로 일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호텔의 청소 직원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67%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3%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청소하는 노동일에 지쳐 권태와 피곤한 몸으로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유지형” 사고방식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호텔 청소하는 직원의 모습이었습니다.

청소 직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웠습니다.

첫째 그룹은 호텔 청소를 통한 운동이란 강의를 했습니다.
운동의 중요성과 지금 매일 하는 청소를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운동이
된다는 것과 구체적인 칼로리 감소량에 대한 통계표까지 일러 주었습니다.
가령 침대를 정리하는데 몇 칼로리, 세면장을 청소하는데 몇 칼로리,
진공청소기를 돌리는데 몇 칼로리 등등 과학적인 통계표까지 알려 준 것입니다.

둘째 그룹은 일반적인 운동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기만 했습니다.
운동을 하시라 그러면 건강에 좋다는 식의 강의입니다.

첫째 그룹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노동이 아니라 운동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 달 후 첫째 그룹의 사람은 평균 몸무게가 0.8Kg이 줄어들었습니다.
매일 200g 씩 줄어 든 결과입니다.
생각을 바꾸니 변화가 따라 온 것입니다.

둘째 그룹은 전혀 생각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생활 속에서도 전혀 변동사항이 없었습니다.
위의 현상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요?
인간은 생각만 바뀌어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교훈입니다.

저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집 세면장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남자인 제가 힘껏 잠그면 물이 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꼭꼭 잠그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잔소리가 되고 싶지 않아 메모지를 적어 거울에 붙여 놓았습니다.

“ 물이 똑 똑 떨어집니다. 수도꼭지를 꼭꼭 잠가 주세요.^^”

저의 아내가 세면장에 있다가 나온 후 우연히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여전히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내는 나의 말을 안 듣는다.
나의 말을 무시한다.
이제 내 말을 말 같지도 안게 들리나 보지?
혼자 이런 생각이 스치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제게 일러 주는 음성이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고 생각을 바꾸어 보라‘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전혀 다른 생각이 스며 나온 것입니다.
“아내는 손힘이 약하다”
“맞아 그래..........!!”
제일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품을 사다가 수도꼭지를 갈아 끼우기로 한 것입니다.
새것으로 갈 아 끼우니 살짝만 잠가도 물이 안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는 순간 저의 태도가 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어쩜 우린 너무 나의 생각의 틀에 묶여 완고하게 굳어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어도 우리의 삶은 아주 많이 변할 수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2015. 10. 23. 12:29

어머니

어머니

           백동흠

이제 본향으로 가실
시간을 느끼시고 계신가?

몸은 이렇게 굳어져 가시는데
얼굴은 여전히 밝으시다.

오랜 침상에서의 생활인데
아픈데 하나 없이 편하단다.

잠든 모습조차도 평화롭다
육체 안에 있는 영혼은 자유로운가?

어쩜 어머니는 아침에 깨어나
아직도 내가 이곳에 있구나하시며
이미 그 영혼은 그 곳에가 계시면서
잠시 잠깐씩 몸 안에 들리면서
그 때를 기다리는지 모를 일이다.

몸은 굳어가고
얼굴의 표정도 굳어가고
언어도 서서히 굳어 가지만

느껴져 온다.
어머니의 따스한 훈기를
그 영혼의 순결함을
장래의 영광을

어머니에게서
하늘의 향취가 몰칵 스며 나온다.
어머니의 냄새는 참 좋다.

이제는 때가 되어 가는가?
평생을 조용히 사시더니
그렇게 조용히 가실 채비를 하시는가?

***
지난 금요일에도 병원에 갔다 왔습니다. 감기증상이 있다고 합니다.
주일 아침에 아무래도 병원에 들어가야겠다고 형님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기침으로 인해 가래가 기관지 쪽으로 들어갔는지 호흡이 조금 거칠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주일이기에 어차피 병원도 쉬니깐 상황 보아가며 월요일에 함께 가자고 했습니다.
교회의 모든 일정을 마치고 오후 시간에 어머니에게 갔습니다.
누워 계신 모습이 평화였습니다. 조용히 기도했습니다.
숨소리도 조용했습니다. 방안에 은혜가 스며 나왔습니다. 하늘의 영광도 느껴졌습니다.  
5년여 침상 생활이지만 진통 없이 밝은 모습으로 지내 오신 어머니가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섬세하게 섬겨 주는 형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전 보다 기력이 많이 없으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이제 때가 되어 가는가?
스스로 물어 보았습니다. 육체는 이렇게 쇠하여 가지만 영혼은 평화하고 자유하시구나!
느껴져 왔습니다. 어머니에게서 향기가 났습니다. 하늘나라의 향취였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부르실는지 모르지만 어머니는 언제고 떠날 준비를 다하여 놓고
그 때를 기다리는 것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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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23. 11:41

정적

 

 

정적

                 백동흠

차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침묵이 흐른다.

온 세상이
조용히 멈추어 있다.

뿌리 깊은 나무들은
파란 하늘을 벗 삼아
저마다 깊은 교감을 나누고

새들도
자기 소리를 내며
여운을 남긴다.

바람의 소리도
나무 가지에 살랑이
앉아 여유롭다.

너무나도
편해 보이는
돌 바위가 손짓하며
내 옆에 앉자 한다.

그 들의 공간에
들어와 보니
내 안에 온통 시끄러운
소리로 가득 차 있다.

이들과 하나 되여 보려고
마음을 비우고
깊은 정적 속에 나를 잠긴다.


< 詩作노트>
종종 집에서 조금 떨어진 외딴 숲을 찾아 갑니다.
오랜 간만에 찾아간 숲은 여전히 변함없는 모습으로 나를 맞아 줍니다.
차 문을 열고 나오는 순간 깊은 정적이 온몸에 젖어 듭니다.
자연의 안식이 내게 스며 옵니다.
참 좋습니다. 평화였습니다.
편해 보이는 바위에 앉아 조용히 나를 풀어 놓았습니다.
내 안에 너무 시끄러운 소리가 있음을 느껴집니다.
자연과 하나 되여 보려고 깊은 침묵 속에 잠기어 보았습니다.  
내 영의 그윽이 깊은데 맑은 가락이 흘러나옴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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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5. 10. 21. 02:27

이 만원의 행복

 

 

이 만원의 행복

                               백동흠 목사

가난한 가정입니다.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집입니다.
그 집은 항상 행복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없는 살림에 너무 고생이 많지?
요즈음 얼굴이 많이 핼쑥해 보여 고기 집에 가서 영양 좀 보충하고 와.”
아내의 손을 감싸 안으면서 돈 이 만원을 건네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려나 아내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고기를 먹으려 갈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날 오전에 밖으로 나가시는 시 아버지에게 말 합니다.
“아버님. 변변히 용돈 한번 제대로 못 드리는데 죄송해요.
작지만 이것으로 친구 분들과 점심이라도 사드세요.”

시 아버지는 고마워했습니다.
없는 살림을 하는 며느리가 늘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차마 그 돈을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 대신 친구들을 만나 며느리 자랑만 신나게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해 하셨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주말을 기해 집에 왔습니다.
아들은 엄마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이제 2년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학교 졸업하면 좋은 직장 얻고 엄마 아빠 호강 시켜 드릴게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제가 용돈 많이 드릴거구요.

손자의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워
할아버지는 대학교로 돌아가는 손자에게
며느리에게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애야 너 학교가거든 맛있는 것 사 먹어라”
손자는 할아버지의 사랑에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으로 돌아간 아들은 이 돈과 함께 편지 한 장을 썼습니다.
“엄마!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아들이 있잖아요?
작지만 이 돈을 가지고 아빠랑같이 맛있는 것 사서 같이 드세요.”

아내는 아들의 편지와 돈 이만 원을 남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너무 너무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 얼마 전입니다. 저의 아내가
위의 내용이 실린 어느 월간지의 한 쪽을 찢어서
저로 하여금 보라고 저의 책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쪽지에 끝자락에 한 도막의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여보 우리도 이렇게 살지요.”

“이렇게 살지요.” 라고 하는 한 도막의 글을 읽으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이 스며 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참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이만 원의 행복이 말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5. 5. 22. 07:44

아시는지요? 스스로 해체당한 마스힐(Mars Hill) 교회에 대해서

아시는 지요? 스스로 해체당한 마스힐(Mars Hill) 교회에 대해서

                                                                   백 동흠목사

“목사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주제 아래
바른 교회 아카데미의 강사로 홍정길 목사님이 나왔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속지 말라 좋은 생각을 한다는 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론 나쁜 사람이 많다.”
“말을 멋지게 하고 굉장한 글을 쓴다.
그런데 삶에 실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홍절길 목사님의 말씀에 100% 공감을 합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어쩜 설교는 재능이고 은사일지 모릅니다.
이런 부분에 은사가 있고 재능이 있으면
설교를 멋지게 할 수 있으며 쉽게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삶은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품은 전혀 “아니올시다.” 일수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로 스스로 해체된 교회가 있습니다.
시애틀의 마스힐 교회입니다.
18년 된 교회입니다.
주일 예배만 1만 4000명 모이는 교회입니다.
성도둘이 연 3천만 달러의 헌금하는 교회입니다.
워싱턴 주 오리건 주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에 지 교회를 수십 개의 교회를 둔 교회입니다.
마스힐 교회의 담임 목사는 차기 세대의 리더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강사로 초대되면 기본이 1만 7천 달러의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그의 책은 40만 불 인세를 선불로 받을 만큼 알려 졌습니다.
그의 연봉은 60만 불이고 은퇴금으로 연간 5만 불씩 예치됨으로
모든 동료 목회자의 부러움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 훌륭한 목사와 그런 교회가
2015년 1월 1일 정식적으로 해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해체된 이유는 삶입니다. 인품입니다.
정치적 수단과 망언과 거짓말 그리고 자금 운영 등의 문제제기로 말미암아
자신이 세운 멤버들에 의해 10월  사임을 당해야 했고
그후 2개월 후 교회도 해체하기로 선언한 것입니다.

웹 사이트를 통해 해체 이후의 교회에 대해서는
지교회로 하여금 새 출발의 기회로 삼아 지역의 장로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교회를 세워 나갈 것을 권했습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이 사실에 대해 뉴욕 타임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는 인터넷 시대에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을 성장 시키는데 크게 기여 했다.
그런데 경솔함 교만함 무례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버림을 받았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도 복음도 미국인 모든 사람들에게 부터
거부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교회가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라오디게아의 교회는
겉멋은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삶과 영성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종말의 증세입니다.

만약 삶과 영성이 죽어진 사람이 된다면
첫째 교회의 건물은 바벨탑같이 무너져 텅 빈 공간이 될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약한 자들과 자녀들의 세대에게서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교회는 사회로부터 퇴출당하게 되며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째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이단의 세력(하나님의 대적하는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 이런 조짐과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될까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지금은 삶을 살아야 하는 때이며
인품으로 드러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당에서만 설교 잘하고 찬양 잘하고 기도 잘 하는 성도로 살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인품으로 섬겨야 할 때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의 한 마디의 말이 굉장히 제게 와 닿았습니다.
“말을 멋지게 하고 굉장히 글을 잘 쓴다. 그런데 삶이 없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8)

2015. 5. 15. 11:41

형님 감사합니다.

 

 

형님 고맙습니다(15년 어머니 주일에) 

                     백동흠

어머니는
2010년 5월
한 번의 실수로 넘어졌다
벌써 5년째이다

아는 사람들은
다들 양로 병원으로
모시라 하는데
형은 막무가내다
변함이 없다

기침 하나 해도
콧물 한 방울 떨어져도
못내 안타까워
병원을 찾기를 여러 번

혹시나 더울까봐
혹시나 추울까봐
어린 아이같이 감싸 안 듯

외출 한번 제대로 아니 하시며
그렇게 모시기를 4년째이다

1년 365일
평안히 잠든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새벽 기도하러 갈 때가
그리 좋다고 활짝 웃는다.

그 정성이 스며 든 걸까
그 마음이 전해 진 걸까

94세의 연세에
누워서 사시는데
아프신 곳이 없으시단다.

몸은 조금씩 쇠하여 가시는데
얼굴은 환하게 밝으시고
행복해 하시는 모습이다

세상에
많은 자식이 아니다
단 하나만 옆에 있어 준다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는 거다

아들 하나가
인생의 끝자락
그 노후를 이다지도 행복하게
하는 것을
나는 보고 있는 것이다.

형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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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회 미주 십자가의 길

 

 

 

            제1회 미주 십자가의 길

                                             백동흠목사

얼마 전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에 갔다 왔습니다.
5월 사일부터 3박 4일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에의 경남 창원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이제 미주지역에서도
이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시작은 동기는 청운교회 이명수 목사님이 한국에서
비아돌로로사의 프로그램에 참여 하여 십자가를 졌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지면서
엄청난 위로와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종종 제게도 간증을 해주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등성이들 올라가는데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 나무 십자가를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힘겹게 가는 과정에서
상처가 치료가 되고 주의 위로를 받으며
목회의 영성이 회복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이후 미주 지역의 목사님들이 십자가는 져야 한다는 소명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십자가 사역 팀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자비를 들어 무조건 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15명의 십자가 사역 팀이 4월 20일 왔습니다.
그리고 청운 교회의 10에이커의 비전 하우스에 머물면서
뒤쪽의 야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저 쪽 건너편의 산등성이로 돌아
주님이 가신 비아 돌로로사의 14처소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나무를 찍어 내어 길을 냈습니다. 가시 넝쿨을 잘라 냈습니다.
이 길을 따라 맨 발로 걸어가야 하기에 돌 짝들과 나무 조각들을
다 솎아 내야 했습니다. 힘겨운 수고를 했습니다.

제가 와서 보았을 때 오랫동안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 낸
길 같이 길을 내었고 깊은 밤 그 길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하기에
길 따라 태양 충전용 조명등도 길을 따라 꽂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산 정상에 거대한 십자가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참 놀라운 일을 해 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하우스 한 채만 덜렁 있는 이곳에
그 옆으로 30여명 들어 갈 수 있는 예배의 처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놀라왔습니다.
명실 공히 십자가 사역원으로써의 조건을 너무 잘 갖추어 놓은 것입니다.
불과 14일 만입니다.

그리고 이제 5월 4일부터 6일까지
목회지 20여 분을 초대하여 제1회 미주 지역 십자가의 길을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35명의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서 품어 내어 사용하는 물도 갑자기 고장이 나서
물도 밖에 나가서 사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세수도 못 했습니다.
난방이 안 된 예배당에서 다들 가져 온 침랑하나로 자야 했습니다.
저도 잠자리가 딱딱하고 추워서 설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 속에 모든 목사님들은
십자가의 찬양 속에 푹 빠져 들어 갔고
십자가의 메시지 속에 마음이 녹아들기 시작했고
한국의 사역 팀이 준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연극 속에서 마음이 열렸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에
이것도 하나의 사치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더 추웠어야 했고 더 고생을 했어야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날따라 찬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대기하는 장소에서 많은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목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약 10여분의 간격에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어두운 산등성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추위 속에서도 어느 목사님은 웃통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양말을 벗었습니다.

이제 저의 순번이 되어 사역 팀의 인도를 따라 일어섰습니다.
저는 웃통을 벗지를 않았습니다.
양말도 안 벗으려고 했는데 제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제게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건네주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길 따라 밝혀 주는 불빛을 따라
어둔 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조용했습니다. 홀로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색했습니다.
어른 된 나이에 마치 학예회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입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몰칵 하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 했습니다.
제 모습이 보여 졌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의 사랑이 물같이 스며왔습니다.
나도 모를 일입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제가 젊은 시절 은혜 받던  그 시절이후
이렇게 눈물이 줄 줄줄 흘린 것이 이번 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엉덩이 뒤쪽에 달걀만한 종양 덩어리가 있어
너무 고통스럽고 이제 수술 일정까지 받아 놨다고 하는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난 이후 돌아 와서 만져 보니
감쪽같이 없어 졌다는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훗날 자세한 간증을 글로써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학예회하는 것 같고 어린아이의 연극하는 것 같아도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찬송가의 가사 같이
그냥 한 번 어린 아이 심정으로 나무 십자가 짊어 져 보시고
주님의 고난의 길에 참여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