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9. 4. 18. 09:00

십자가의 길

                                                                  백동흠 목사

지난 19년 4월7일부터 8일까지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로 모였습니다.

29명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선교사이 모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 월요일 저녁에는 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이 모임의 핵심이 됩니다.

제가 담당한 것은 나무 십자가를 지기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의 2시간을 담당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마지막 사람이 돌아오는 10시까지 약 2시간동안입니다.

졸거나 영적 분위기가 흩뜨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들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했습니다.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과 간증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이때 멜깁슨의 The Passion of Christ의 5분짜리 각색한 동영상을

3개를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 시간에 함께 보았습니다.

 

멜깁슨은 The Passion of Christ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만들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유대인 협회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대본을 요구했고 완성되지 않는 필름을 보여 주어야 했고

영화의 생명은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다큐 형태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전문 영화인들은 상업성이 없어 흥행에 실패할 것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멜깁슨은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 생각한 것이

차라리 단순하게 만들자.

예수님의 수난에 강하고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철저하게 실제적이고 당시의 현장감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자막이 있는 영화가 될지라도 당시의 언어인

아람어와 라틴어로 대사를 역어갔습니다.

(미국인은 자막 있는 영화를 안 본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얻지 못해 사재를 털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상업성이 전혀 없는데 흥행에 성공한 것입니다.

2천여 개의 극장에서 첫 개봉 2,360만 달러의 성적을 냈고

OST는 첫 주에 4만 9천장이 팔리면서 기록 3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예수님의 수난의 모습은 복음적 사건으로 나타나면서

강한 복음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 안에는 반드시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6:14)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간 수많은 미국인들이

숙연한 모습, 눈물 짓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날 LA 타임지는 말하기를

“극장마다 작은 교회를 이루었다.”는 기사를 내었습니다.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가 오히려 호응을 불려 일으켰고

흥행 될 수 없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첫째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

둘째 내용이 아주 단순했다는 것

셋째 군더더기 없이 실제적이었다는 것

이런 조건들이 복음적 메시지로 나타났음을 느끼었습니다.

 

지난 4월 17일부터 18일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프로그램은 너무 엉성합니다.

스타 강사도 없습니다.

강력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프로그램은 단순했고 느슨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강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마지막 나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의 맥과 흐름이

그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9회 십자가의 길도 The Passion of Christ처럼

흥행에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들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 증거로 마지막 간증의 시간이 주의 영으로 충만한 가운데

밤이 깊어 가는데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복잡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잘 날 것도 없습니다.

단순하고 다 비워놓고 십자가의 예수님만 붙잡으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흥행에 대박을 칠 것입니다.

 

2019년 고난 주간도 너무 심각한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그냥 단순하게 주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면

주의 사랑이 출렁이며 다가 올 것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7. 9. 19. 04:20

대한민국, 기우(杞憂)이기를 바랄뿐입니다.

 


대한민국, 기우(杞憂)이기를 바랄뿐입니다.

                                            백동흠목사 

지금의 대한민국의 흐름이 아주 많이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우(杞憂)라는 뜻은 쓸데없는 걱정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기를 바라는 마음(기우)으로 이 글을 올려 드립니다.

드디어 북한은 9월 3일 6차 핵 실험을 했습니다.
북한의 핵의 경량화와 다양화가 이제는 현실이 됐다고 합니다.
그리고 장거리 미사일(ICBM)도 실전 배치가 가능해지게 됐다고 합니다.
이제 미국의 상황에서는 두가지외에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진 것입니다.

첫째는 선제타격을 통한 핵과 미사일의 제거입니다.
둘째는 핵 폐기가 아닌 동결을 위한 평화협정입니다.

선제적 타격은 대한민국의 수십만 명의 희생을 각오해야 하기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협정은 북핵 동결 조건으로 미군 철수를 요구할 것이고 
우리나라는 핵 강국이 된 북한에게 핵 인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결국 대한민국은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는 어정쩡한 모습으로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는 가운데 최악의 사태를 맞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의 걱정입니다. 이것이 기우가 되기를 바랄뿐입니다.

예루살렘의 함락과 이스라엘의 멸망을 앞에 두고 외친 예레미야의 말씀            속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첫째는 은혜의 날 구원의 날을 무시했습니다.

오늘까지 이십삼 년 동안에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기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되 부지런히  일렀으나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기울여 들으려고도 아니하였도다.(렘25:3-4)

예레미야 선지자는 부지런히 외쳤습니다. 울면서 전했습니다. 
통곡하면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외쳤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전혀 듣지를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조롱하고 무례히 행하며 등을 돌려 대적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멸망의 시작이요 비극의 출발이었습니다.

둘째는 기한이 차고 말았습니다.

너희 목자들아 외쳐 애곡하라 너희 양떼의 인도자들아 
재에 굴라 이는 너희 도륙을 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찼음인즉 
너희가 귀한 그릇의 떨어짐 같이 될 것이라(렘25:34)

만약 지금 대한민국의 상황이 “기한이 찼음인즉”이 된다면 이제는 끝난 게임이  입니다.

이미 북의 핵으로 대한민국과의 군사적 균형이 깨졌습니다. 
중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협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미국은 한국의 방위보다 자국의 방위에 우선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역할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Korea Passing 이란 단어가 나왔습니다. 

대화와 퍼주기요? 햇볕 때 이미 다 한 것입니다. 
핵동결 한 다음에 핵 폐기요? 이제는 탁상공론에 불과할 것입니다. 
미국의 선제적 공격이요? 쉽지 않을 것입니다. 
평화협정이요? 대한민국은 핵 인질국으로의 전략할 뿐입니다. 
어쩌면 하나님의 은혜의 때는 끝나고 이미 대한민국은 도륙당할 날과 흩음을 당할 기한이 차고 말았는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저 저는 기우이기를 바랄뿐입니다. 

셋째 그 시대의 백성들의 모습입니다.

① 작은 자부터 큰 자까지 물질적 욕심에 탐람합니다.(렘6:13) 
② 온 국민은 진실이 죽어지고 거짓이 난무합니다.(렘7:28)
③ 지도자들은 칼(전쟁)은 없을 것이고 평화만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렘14:13)
④ 제사장들은 그들의 권력(기반)에 안주해 있습니다.(렘5:31)
⑤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그 안에 말씀이 없습니다.(렘5:13)
⑥ 애굽파 바벨론파로 갈라져 자기들끼리 분열과 갈등의 골이 깊어지고 있습니다.(렘2:18)
하나님은 말씀합니다.
그들에게 진노의 잔을 마시우게 하라(15) 이것은 독배입니다. 술잔입니다.
그들이 마시고 비틀거리며 미치리니(16) 실컷 마시어서 취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는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러지고 다시는 일어나지 말라 이는 내가 너희 중에 칼을 보냄을 인함이니라 하셨다 하라 마시라 취하라 토하라 엎드려 지라 그런 가운데 불러들이는 것이 전쟁이요 재앙이라고 하면서 대풍이 땅 끝에서 일어나 몰려 올 것이라고 했습니다.(레25:32)
결국 비참한 예루살렘의 함락과 유다의 멸망은 이렇게 해서 끝이 나게 됩니다.

예레미야에게 
지금 대한민국의 이 상황을 보면서 미래의 길을 보여 달라고 하면
어떤 말을 할 것이라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대한민국의 백성들에게 주는 한 마디는 바로 이것입니다.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치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렘 2:13)

한국의 성도들에 주는 한 마디는 이것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버림과 
네 속에 나를 경외함이 없는 것이 악이요 고통인 줄 알라 (렘 2:19)

그리고 예레미야는 외칠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백성이여!
한국 교회의 성도들이여!
그대 한 사람만이라도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사람이 되여 준다면
그대 하나가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희망 말입니다. 희망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왕래하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공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을 사하리라(렘5:1)

백동흠 칼럼 2017. 9. 9. 07:53

라투나(La Tuna) 지역의 산불과 북핵의 불길


라투나(La Tuna) 지역의 산불과 북핵의 불길

                                             백동흠 목사 

라투나(La Tuna) 지역은 210번 Fwy을 타고 올라가서 종종 산길을 따라 
운동을 하던 곳입니다. 제게는 낯익은 지역입니다
9월1일 선밸리에서 시작한 산불이 7000에이커(850만평)를 태우고
거대한 불길은 210번 Fwy를 가로 지으며 주택가로 진입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한인이 많이 사는 선랜드 터허가 버뱅크까지 엄청난 피해를 예상해야 했습니다.
소방 당국은 1000여명의 소방관과 200여대의 소방차와 소방헬기와
항공기 30여대를 투입했으나 역부족입니다.
테라자스 청장은 1961년 벨 에어산불 이후 LA에서 발생한 가장 큰 산불이라고 했습니다. 105도를 웃도는 엄청난 무더위에 열풍으로 인해
산불은 순식간에 열풍의 바람을 따라 도시권을 덮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바로 이때가 9월 3일 주일 저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습니다.
짧게 굵은 비가 한 차례 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또 한 번 짧게 비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결정적으로 불길을 잡게 할 줄 누가 알았을까요?

불길은 수그려 졌고 이내 불길은 잡혔고 마침내 그 다음 날 4일(월) 오후에는 
진화율 95%을 보이게 된 것입니다.
이정도의 불길이면 한 달 이내에 끌 수 없는 불길임을 베테랑 소방대원은 말합니다.
그런데 순식간에 불길은 잡혔고 꺼지게 된 것입니다. 놀라운 일이며 기적 같은 일입니다.
참조로 벨 에어 산불은 484채의 주택 21채의 건물에 비해 
라투나 산불은 주택3채 소실된 것으로 끝나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과연 사람들이 이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깨달아 알아질까?
아니면 우연이나 행운으로 치부하고 넘어갈까?
단 두 차례의 비였습니다. 그것도 짧게 내린 비입니다.
그러나 엄청난 불길은 잡혔고 순식간에 진화를 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이 자연의 위대함이며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사람들이 알기나 할까 
얼마나 많이 깨달아 알까?

그래서 사람은 겸비해야 합니다.
그리고 순리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가 있어야 인간이 산다는 사실을                               저는 라투나 산불을 통해서 다시 한 번 일깨움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날 북한에서 6차 핵실험을 감행했습니다. 
그 위력은 10만t급이며 핵 분열탄 혹은 소규모 수소폭탄일수도 있다고 합니다. 
히로시마 원폭의 10배에 이른다고도 합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100만t의 원폭도 가능할 것이며 
ICBM, SLBM도 계속 발사하여 완성을 보게 될 것입니다.
미국이 선제타격을 하면 대한민국의 백성들에게 엄청난 인명피해를 감수해야 하고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면 5000만 백성이 핵 인질이 될 가능성이 있는 지경에까지
오고야 말았습니다. 이미 오래전에 오늘의 형편을 예견하고 미리 미리 준비하지 못한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정신을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 하는 딱한 현실에 처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형편임을 이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역기기 하 20장 12절의 말씀이 지금 우리와 너무나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 만 바라보나이다. 유다 모든 사람은 그 아내와 자녀와 어린 자로 더불어 여호와 앞에 섰더라(대하20:12)


여기에  한 가지 희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단 한방입니다.
하나님께서 단 두 차례의 짧고 굵직한 비를 내려 주면 해결될 일입니다.
단 한방만 먹여 주시면 순식간에 북 핵은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거세어지는 라투나 산불을 단 두 차례의 짧은 비 줄기로 불길을 잡아 주신 것같이
하나님의 단 한 방이면 북 핵의 불길은 순식간에 잡히게 할 것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움직여 주셔야 된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
그러기에 오직 주님만 바라보았으면 합니다.
사치와 낭비도 없이하고
교만과 특권도 내어 놓고
금 수저 흙 수저 갑을의 관계 갑질도 다 비어 놓고
겸비함과 소박함으로 
과거 8.15를 허락하고 6.25에서 건져 내고 보리 고개도 이겨내게 하신
그 하나님만을 온전히 바라보는 대한민국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님! 
북 핵의 불길
단 두 차례의 짧고 굵은 비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순식간에 꺼지게 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이 백성을 통해서 역사하심을
만국 백성이 보게 하여 주옵소서 아멘. 

백동흠 칼럼 2017. 2. 17. 06:35

웃음의 전이현상과 우리 교회 권사님들


웃음의 전이현상과 우리 교회 권사님들

                                                 백동흠목사 

주일 예배 후 성도들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하며 성도의 교제를 합니다.
남자 성도님들의 모인 곳에는 정치 이야기가 주로 이루게 됩니다.
여자 성도님들의 모인 곳에서는 뚜렷한 주제도 없이
이야기꽃을 피우는데 제가 듣기에 별것도 아닌 이야기인데도 불과하고
왜 이리 웃어대는지 모를 일입니다.

일소일소(一笑一小)라는 말이 있습니다.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진다는 뜻입니다.
의학적으로 밝혀진 바에 의하며 암세포가 하루에 300개에서 400개 정도가
우리의 체내에 형성되어 나온다고 합니다. 이것들이 뭉치면 암이 걸립니다. 
그런데 우리가 웃으면 막혔던 혈관이 뚫리고 T임파구, 감마 인터페론 같은
자연 항암제가(Natural Killer cell) 형성되어 나온다고 합니다. 
웃음이 특효약입니다. 그래서 많이 웃는 여자들이 별로 웃지 않는 
남자들 보다. 평균 7.5년 더 산다는 통계까지 나왔습니다.

TV에서 재미있는 유머나 개그를 할 때 웃음의 소리를 들려주는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와하하……. 웃어 제킵니다. 가짜 웃음입니다.
그 때 시청자들도 그 웃음과 함께 웃게 하는 웃음 효과 소리입니다.
방송사에서 이 가짜 웃음 효과를 실험해 보았다고 합니다.
40명의 대학생에게 우스운 유머를 말하여 주면서 가짜 웃음의 소리를 틀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한 편으로 그냥 유머만 들려주었습니다. 비교 평가를 해 보는 실험입니다.
더 오래 웃는 모습이 19초와 5초로 차이가 났습니다.
더 자주 웃는 숫자가 19회와 6회로 차이가 났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재미있었는가? 에 대한 평가는 93점과 75점으로 차이가 났습니다.
웃음은 웃음으로 전이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웃음만을 연구해온 메릴런드대 프라빈스박사는
사람은 혼자 있을 때 보다 함께 할 때 30배 정도 더 많이 웃는다고 하면서
웃음은 웃음으로 전이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권사님들이 제게 말을 합니다.
목사님!
주일 함께 모여 왕창 웃고 가는 덕에 웃을 일 없는 일주일을 잘 지내 것 아시지요?
제게 이렇게 말하고 또 한 번 왕창들 웃습니다. 다들
저는 속으로 말합니다. 바로 그 모습이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는 모습이랍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교회 집사님들 권사님들의 모습은 나이에 비해 엄청 젊어 보인답니다.
제 말이 가짠지 진짠지 와서 구경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항상 기뻐하라…….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5:16,18)

백동흠 칼럼 2017. 1. 4. 04:06

새해 어둡지만 희망입니다.




새해 어둡지만 희망입니다.

      

                     백동흠목사 

지난 연말 권사님으로부터 찬양 곡 하나를 동영상으로 받았습니다.
들으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할아버지가 불러 주는 찬양 곡은 제가 잘 알고 있는
본회퍼의 시 “선한 능력”으로 이었습니다.
이 시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윤동주의 서시를 좋아하는 것 같이  
독일의 젊은이, 중고생들조차도 즐겨 읽는 시입니다.

본회퍼는 젊은 신학자로써 장래가 총명 받는 분이었습니다.
수천만의 독일 백성이 히틀러를 찬양하고 
그의 선동적인 연설에 눈물을 흘리기 까지 하며 하이 히틀러를 외치고
모든 교회들이 히틀러에게 동조하며 나치에 협력할 때
고백교회를 설립하여 독일 교회에 대해서 책망하며
이 흐름은 역사의 비극을 초래할 것이며
히틀러는 독일을 망하게 할 것을 일러 주었습니다. 
결국 본회퍼는 게슈타포의 요주의자로 감시인물이 됩니다.
이때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라인 홀드 리버은 
독일의 유능하고 젊은 신학자 본회퍼를 미국으로 초청하게 됩니다. 
본회퍼는 1939년 6월 12일에 미국으로 건너오게 됩니다. 
미국에서의 삶은 너무 좋았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한 컨에 무거운 누림으로 다가 왔습니다.
지내면 지낼수록 조국과 백성에 대한 더 큰 눌림이 되어 힘겨워 했습니다. 
그러던 중 성경을 읽다가 놀라운 말씀 앞에 무릎을 꿇게 됩니다.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딤후4:21)
그 때 그는 말합니다. 
“내 목숨은 그 곳에 있다. 내가 그 한 가운데 있지 아니하면 목숨을 잃을 것이다.”
차라리 내가 그 곳 가서 죽으면 오히려 목숨이 살 것이고
이곳에 있으면 살았다하나 난 죽은 목숨과 같다는 뜻입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는 뜻입니다.(눅13:33)
이 모습을 보고 혹자는 말하기를 2000년 전 이스라엘에는 예수님이 있었고
1940년의 독일에는 본회퍼가 있었다고 했습니다.
본회퍼는 라인홀드 리버에게 간단한 편지 한 장을 남기게 됩니다.
“제가 미국에 온 것은 저의 실수였습니다. 저는 독일 국민과 함께
독일 역사의 한 복판에서 이 어려운 시기를 보내야 합니다.”
바로 이때가 7월 7일 미국에 온지 한 달이 채 안된 날입니다.

독일로 돌아갑니다.  
1940년 저항 운동에 가담하게 됩니다.
1943년에 1월에 한 여인과 약혼하게 됩니다. 그리고 4월 5일 체포됩니다.
44년 7월 20일 히틀러 암살 음모에 연관된 것이 발견됨으로 
중범죄로 분리되어 집단 수용소로 이송됩니다.
“선한 능력”은 44년 옥중에서 성탄절을 앞에 두고 
그의 사랑하는 약혼녀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분입니다.

“선한 능력”

고요하게 둘러싸인 그 선한 능력 안에 
지금 보호를 받고 위로를 받고 있습니다.

그대와 함께 오늘을 살기 원하고 
함께 새해를 맞이하고 싶습니다.

어두운 밤의 무거운 짐이 우리 영혼을 누르지만
그 분의 준비해 놓으신 그 구원을 누리고 있습니다.

어두움 속에 가져오신 그 초들이 밝게 타오릅니다.
그 빛이 이 어둔 밤을 비추고 있음을 우리는 압니다. 

아! 선한 능력으로 우리는 너무 잘 보호 받고 있으며
믿음으로 일어날 일들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또한 매일의 새로운 날에도 함께 하십니다.

본회퍼는 이 편지 글을 마지막으로  45년 4월 8일 교수형에 처해 죽게 됩니다.
그러나 죽음으로 영생을 살게 되고 지금도 그의 신학과 고백과 정신은 독일 국민 뿐 아니라
인류의 정신사에 살아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이 말합니다.
"그는 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신학이고 정신이다“ 
마지막 죽기 전  본회퍼는 말했습니다. 
“이것으로 끝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이기도 합니다.”

2016년과 그리고 새해! 
너무 어둡고 혼탁합니다. 그리고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서로의 골이 깊어지고 서로 미움과 상처로 거칠어지는 어둠이고 혼돈입니다.
그러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하나님을 구하며 울면서 기도하는 주의 자녀들이 있기에 
하나님이 우리 대한민국을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어둠 속에 가져 오신 주님의 빛이 비추일 것입니다. 
밝게 하고 따스하게 하실 것입니다.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이는 빛이 새 날에도 계속 비추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밤이나 아침이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새해 새날에도 함께 하십니다.
그러기에 새해 어둡지만 희망입니다. 

곡 한번 들으시기 바랍니다.
you to be 에 가셔서 “선한 능력” 치시면 들을 수 있습니다.
감격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기 바랍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2. 27. 06:39

감사- 잃어버리고 난후 알아지는 것일까?

감사- 잃어버리고 난 후에 알아지는 것일까?

                                      백동흠목사 

왜 사람들은 감사할 줄 모를까?

아버지가 계시고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형제가 있고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손이 둘이고 다리가 둘이고
손을 뻗어 무엇을 잡을 수 있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다는 것이
소리가 들린다는 것과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이보다 더 멋지고 감사한일 있을까!

하루 세 끼 밥을 먹고
밤이 오면 잠자고 그 다음 날 새 아침을 맞는다는 것이
웃고 울고 노래하고 소리치고 뛰어다닌다는 것이
산을 오르고 바닷가를 거닌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이 모든 것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

이것을 아는 사람은 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비로소 알아지는 것인가

가즈오 형제가 있습니다. 젊은 내과 의사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섬유육종 암으로 다리를 자르게 됩니다.
그 후 암이 폐로 전이 되면서 31살의 나이로 죽어가면서 적은 글이 위의 글입니다. 
이 모든 것을 잃고 난 후에 삶이, 일상의 생활이, 내 몸의 건강이  얼마나 귀하고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를 절감하면서 고백한 글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감사 -  잃어 버리고 난 후에 알아지는 것일까요?

가즈오 형제와 같이 극단적이지는 않아도
우리에게도 세월이 흐르면서 나이가 들어가면서 잃어버려지는 것이 있습니다. 
어린 자녀를 품에 안아 키우던 그 행복한 시절을 잃어 버렸습니다.
생기 발라한 젊음의 시기도 되돌아 갈 수 없는 잃어버린 시절이 되고 있습니다.
지치지도 않고 피곤하지 않았던 혈기 왕성한 건강도 이제는 예전 같지가 않습니다.
조금 씩 조금 씩 서서히 잃어버려지는 것들을 보면서
지나 놓고 나서야 이런 것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감사한 것인지를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됩니다.
잃어 버리고 나서 소중하고 귀한 것을 알았기에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오랜 침상 생활 속에 거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머니가 계시다는 것이
사랑하는 아내가 여전히 내 옆에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되여 주는 자녀들이 내 곁에 있다는 것이
이메일을 받으며 카톡을 보낼 수 있는 다정한 동무들이 있다는 것이
이전 같지는 않다고 하지만 아직은 돌아다닐 만하고 
여행을 할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새벽으로 새벽교회를 다니며 기도 할 수 있는 제단이 있다는 것이
돌아보며 섬길 수 있는 성도가 있다는 것이 
이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것인지 감사가 절로 되었습니다.

추수감사주일을 맞이하여 
저의 아내가 밤새도록 터키를 구웠습니다.
아내에게 힘이 들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내는 말합니다.
이렇게 터키를 구워 성도를 섬길 수 있는 것이 얼마나 특권인줄 아는가?
먼 훗날 아니 조금 지나면 지금의 우리 모습 보면서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날 이였는지를 알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오히려 기뻐하며 감사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진짜로…….)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아직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고
아직도 봉사하고 섬길 수 있는 건강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이제 조금씩 하나씩 잃어버려질 것입니다. 세월은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요!
그리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난 후에 아! 옛날이여........! 하며 아파하지 말고 
아직은 우리 곁에 있는 동안 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들에 대해 
더욱 많이 사랑하며 섬기며 감사하며 지냈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1. 19. 03:14

광화문의 함성과 이가봇의 비극


광화문의 함성과 이가봇의 비극 

                                       백동흠 목사


 1112일 토요일 광화문에 대통령 하야를 위한 수많은 인파가 모였습니다.

주최 측은 100만이라 했고 경찰 측은 25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대통령 하야라고 하는 푯말을 들게 하는

어른들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는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거대한 함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함성의 소리가 저 역사의 건너편 이스라엘의 현장에서도

들려 왔습니다. 땅이 진동할 만큼의 함성이었습니다. (삼상4:5)

 

사연인즉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서 전투에 패배했습니다.(삼상4:2)

이때 제안한 것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오자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삼상4:3)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 마당으로 가져오게 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삼상4:5)

엄청난 함성입니다. 땅이 진동하는 울림입니다.

적군이 블레셋 군사들조차도 그 함성에 놀랍니다.(삼상4:8)

 

대세는 곧 이길 기세였습니다. 분위기는 충천한 사기였습니다.

엄청난 함성 속에 다들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버립니다.

허한 분위기였고 텅 빈 함성이었습니다.

블레셋에게 더 큰 패배를 당합니다.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의 죽은 자가 삼만이 됩니다.(삼상4:10)

그리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게 됩니다.(삼상4:11)

 

이때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현장에서 죽게 됩니다.

두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엘리가 충격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날 비느하스의 아내가 만삭이 되어 아기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아이를 낳으면서 죽게 됩니다.

이때 아기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정해 주고 죽게 됩니다.

이가봇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 날 그들의 함성은 이가봇의 비극이었습니다.

 

엄청난 함성을 들리게 했고 사기는 충천했고 대세는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건의 모양, 껍질뿐이었습니다.

텅 빈 함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가봇의 비극이었습니다. 스스로들 속았던 것입니다.

 

어린 중고생이 혁명정부 세우자고 하면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칩니다.

어느 부모는 어린 자식과 함께 왔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현장 학습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들 민주주의라고 외치면서 촛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또 한 번 스스로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고 하면서

험한 말을 함부로 쏟아내며 여론을 호도하며

테러에 가까운 언론의 폭력 앞에서 온 국민이 또 한 번 놀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끝없는 촛불들의 행진,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한 엄청난 인파

광화문 광장을 가득이 매운 함성

그런데 제게는 왠지 공허한 함성으로 들려집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이 보여 집니다.

카네만(Kahneman)의 거대한 액자의 틀에 갇혀있는 집단같이 보여 집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새판을 짜기 시작했고

북한의 핵은 이미 그 선을 넘어 현실적 위기로 다가 와있음에도 불과하고

어처구니없을 만큼 안보에 대해서는 불감증 환자가 되어 있고

완벽한 거짓에 속았던 소 파동 같은 사회적 현상이

오늘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직시해야 합니다.

 

20161112!

광화문 광장에서의 함성이 이가봇의 비극이 아니기를 바랄뿐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1. 4. 09:38

박근혜 대통령님.

박근혜 대통령님!

박 근혜 대통령님!  이 글을 꼭 읽으셨으면 합니다.
저는 미국 LA에서 작은 교회를 목회하는 백동흠 목사입니다.
제가 이 글은 쓰는 것은 우리 교회 권사님들이 기도하는 중에 부탁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을 위해 위로의 글을 보내고 싶은데  목사님이 도와 주셨으면 하는 마음을 주었습니다.  
기도하는 권사님들의 간곡한 부탁을 순종하는 
마음으로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저의 글이 아니라 권사님들의 마음을 담아 올려 드리는 글입니다. 

여론 폭탄이라고 합니다. 
언론 테러라고도 합니다.
우리 교회가 시험이 들 때 들러 오는 소리들이 얼마나 근거 없고 험한 말이 
오가는지를 경험한 목회이기에 말(언어)들이 얼마나 비수같이 마음을 
아프게 하며 힘겹게 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맨 처음 최순실 사건이 터졌을 때 
우리 교회 성도님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을 제가 드렸습니다.
첫째 너무나 인간적인 관계라고 했습니다.
40년 지기인가요? 
그렇게 어울리고 친교한 분과의 만남과 신뢰는 너무 인간적이지 않는가? 
오히려 충분이 그럴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는 대통령 측근의 비리 중에 하나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대통령의 측근들의 비리가 터졌었는데  이제 또 하나의 비리가 터졌고 
최순실도 그 중에 하나이구나 생각을 했습니다.

아마 제가 보는 박 대통령님의 행실과 인품을 볼 때 그 이상은 아닐 것이라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 10월 30일 사회 각계 원로들과의 오찬 모임에서 원로들이 
위로의 말을 하실 때 딱 한 마디 답변했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저에게 사교에 빠졌다는 말까지 하더라고요”

그 말 한마디가 대통령님의 마음에 가장 아팠었나 봅니다.
딱 한 마디 답변했다는 그 기사를 읽고 저의 마음도 참 많이 아팠습니다.
참 막말을 많이 해댔습니다.
참 험한 말도 많이 해 댔습니다.
최순실이 떠나자 말도 이어가지 못하는 대통령이라고 하는 
참 어이없고 황당한 말도 들어야 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불사르는 자 중에 누웠으니 곧 인생 중에라 저희 이는 창과 살이요 
저희 혀는 날카로운 칼 같도다(시57:4)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 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약 3:6)
혹은 칼로 찌름 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잠12:18)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제가 보는 대통령님은
대통령으로써의 품위와 인품이 있었습니다.
밝고 화사하고 변함이 없는 모습도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참 많이 애를 쓰셨습니다.
특히 북한의 원자폭탄과 미사일에 대해서도 유엔과 미국 그리고 중국 
러시아 등등 여러 나라와 함께 꾸준히 북한에 대한 경제 제재를 함으로 
북 핵을 더디게 하고 이렇게 까지 막아 주신 일은 너무 잘 해 주신 일입니다.

이 곳 미국에서 보는 북한의 핵은 이제 미국 입장에서도 현실적인 위험으로
간주하고 어떤 행동 조치를 취하는 징조가 아주 많이 보이는데 
정말 한국의 정치인과 많은 국민은 전혀 현실적 위기를 못 느끼고
안보 불감증 속에 사는 모습을 대한민국 이외의 모든 나라가 이상하게 여길 정도입니다.

박근혜 대통령님!
이 고비를 잘 넘겨야 합니다.
혹 대통령을 조사하는 현실이 다가 오더라도 진실의 힘은 위대하다고 합니다.
당당하게 떳떳하게 그리고 진솔하게 헤쳐 나갔으며 합니다.
우리 대한민국과 국민들은 그런 대통령을 결코 외면하거나 
등 돌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의 교회 권사님들을 보더라도 얼마나 대통령을 위해
기도하는지 이것이 증거입니다. 

성경은 역사적 교훈을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마음이 사특한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잠 17:20) 
이제 그런 막말과 험담 그리고 마음에 받은 
여러 가지 아픔과 상처(?)는 조용히 하나님께 넘겨 드리고 
하나님의 도움을 힘입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제 남은 임기는 짧은 날수 같아도 아직도 너무나 많은 기회가 열려 있습니다.
절대 포기하거나 낙심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성공한 대통령!
북 핵을 막아 주고 잘 못된 이념으로 국가의 정체감을 훼손하고                     우리 사회를 끝없는 갈등과 반목으로 몰아가는 이 흐름을 차단하고 성공적으로    정권을 이양하는 우리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우리 하나님이 도우실 것입니다. 
 
정말 존경하는 우리 대통령으로 역사에 길이 남기를 
우리 교회 권사님들과 부족하지만 저도 열심히 기도할 것입니다.

                                        그라나다 힐 한인 교회
                                        권사님들과 백동흠 목사 드립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1. 2. 03:22

최순실과 액자효과




최순실과 액자 효과

                                          백동흠목사 

사실 정치적인 사건이나 글은 제게는 안 맞습니다.
순수한 글도 이념 논쟁에 말려들면 이상하게 보고
등 돌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목사님들의 설교나 칼럼을 보더라도
우리 사회의 혼돈된 갈등과 대립에 대해서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외면하거나 침묵하다 보면
첫째는 방관자가 되거나 동조자가 될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많은 성도님들이 갈팡질팡하면 거짓에 휩쓸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엄청난 파문이 일고 있는 최순실 사건에 대해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잘 분별하시고 중심을 잡아 나라와 사회적
기강을 바로 잡는데 영향을 주어야 할 것입니다.

먼저 알려 드리고 싶은 말씀은 액자 효과라는 전문 용어입니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어떤 사실을 전달할 때 어떤 틀 안에 넣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에게 태도나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이론이 액자 효과라는 이론입니다.

이념의 논쟁이나 당리당락이나 이익 집단적 차원의 액자에 집어넣고
보면 아무리 그것은 옳은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적 반대로 가게 합니다. 
문자하나 하나 내용하나 하나를 분석하여
날카롭게 비판하며 적당히 거짓도 뿌리며 문제를 확산 시켜 나갑니다. 
여기에 지역과 연고 그리고 인맥과 이념이 연결되고 
여론을 충동질 하여 나가면 그 파장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이 되게 합니다.

사실 최순실 사건은 단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개인적 친분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적으로 보면 
얼마든지 이해가 될 만한 일입니다.
여성 대통령으로써 오랜 친분의 여성을 통한 위로와 도움 받는 일
전혀 문제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그런 친분을 이용한 부정과 축재입니다.
이런 일로 인해 대통령 측근들의 비리는 항상 있어 왔습니다.
최순실도 그 한계를 못 벗어난 사람에 불과 합니다.
그러므로 연루된 관계자들을 잡아서 법의 심판을 받게 하면 됩니다.
여기까지가 사실이고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기회로 액자 효과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원하는 방향으로 몰아가기 시작합니다.

상식선에서 살펴보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일입니다.
한 60세 먹은 여자가 
방대한 서류를 살피면서 일개 국가의 행정 외교 안보에 이르기 까지
대통령의 머리 위에서 다루었다는 언론의 보도입니다.
국가의 조직이나 청와대의 조직보다 더 큰 역량으로 
영향력을 한 여인이 행사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액자라고 하는 틀에 들어가면 
그렇게 믿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 탄핵 하야까지 몰아가게 합니다. 
국민은 선동 당하며 또 한 차례의 촛불 집회로 모이게 합니다.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는 
액자 효과의 끝자락에는 닻 내림의 효과가 있다고 했습니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듯이 인간의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나 
기억에 박혀 버리게 함으로 그렇게 만들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대통령의 불신과 무능이라는 닻 내림 효과로 끝나게 합니다.

이렇게 까지 해서 이득을 얻을 세력이 누구인가를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좋은 게 좋다고 방치하고 방임하다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대한민국과 우리 사회 전체가 어느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음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북한의 핵은 이미 그 선을 넘어 현실적 위기로 다가 와있음에도 불과하고
어처구니없을 만큼 안보에 대해서는 불감증 환자가 되어 있고
완벽한 거짓에 속았던 소 파동 같은 사회적 현상이 
오늘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음을 직시해야 합니다. 
오늘의 상황을 보면서 나라와 대통령을 위해 실제로 기도를 많이 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대의 흐름을 잘 분별하고 영으로 무장하여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엡 6:13)


백동흠 칼럼 2016. 10. 26. 04:14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백동흠목사

 

지난 94일 토요일에는 서 경열 선교사님의 딸

성경이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오셔서 시카고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멕시코 선교에 뜻을 품고 떠나 온지 1년이 넘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년은 눈물의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잘 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습니다.

가슴에 자식을 묻어 두고 시카고에서 떠나오는 차길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Free way 이었습니다.

제가 멕시코 Ensenada에 갔을 때,

선교사님은 바닷가의 토굴 같은 움막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님. 여기가 제가 울부짖으며 기도했던 곳입니다.

그 때의 제 모습은 거지같았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가난한 어부들은 친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찬양을 부르고

축복 기도를 해 주며 주의 사랑을 전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어부들을 향한 사명과 열정이 없었다면

저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선교사님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비쳤습니다.

 

그 후 성경은 시카고에서 있다가 LA로 왔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선교 사역하는 멕시코와 가까운 곳이기에

이 곳 LA로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종 LA에서 선교사님을 만날 때가 있었는데

사랑하는 딸을 LA의 아파트에 홀로 두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난 5월에 선교지에 갔을 때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벌써 안 사돈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이 아들 대신 사위를 주었다고 하며

사위를 통해 위로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견례 하던 날이 515일 이었고

사랑하는 아들이 떠난 지 일 년 되는 날이 그 다음 날인 16일 이었답니다.

놀라운 것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아들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경이가 이곳에 온지 5개월도 채 안돼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후 94일인 오늘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성경이의 결혼식에 와서 신랑 신부를 보는 순간

이 결혼식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만나게 하고

이끌어 주셨다는 확신이 이상하게 내 안에서 샘같이

솟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하는 흐름이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모두아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부부의 언약하는 성혼의 모습입니다.

셋째는 15명 정도의 젊은 형제자매들이 신랑 신부를 중심에 두고

축하 송을 불러 주면서 꽃송이를 전해 주는데 너무 순수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넷째는 우리의 정서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저는 성경이의 결혼식을 보면서

상하 수직의 영적질서의 결혼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주례 목사님들 통해 신랑 신부에게 흐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언약식을 하는 모습이

결혼식이 아니라 성혼식을 하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신랑도 너무 잘 생겼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정말 양가의 가정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결혼을 위해 준비하신 음식은

사모님이 바다의 해물로만 친히 손수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맛있고 풍성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덩이씩 싸주는데 흐뭇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가신 다섯 분의 권사님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결혼식이 너무 은혜로웠다고 합니다.

제 아내도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아픔을 위로하며 딸과 사위를 통하여 더 큰 축복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을 피부 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환하고 밝게 웃으시는 목사님의 내외분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두 분을 위로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 목사님!

사랑하는 딸 성경이의 성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아!

잘 살아야 돼!

아마 너무 너무 잘 살게 될 거야!

오늘 결혼식의 흐름을 보니깐

미래의 번영과 축복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