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6. 10. 26. 04:14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너무 아름다운 결혼식이었습니다.

 

                                      백동흠목사

 

지난 94일 토요일에는 서 경열 선교사님의 딸

성경이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미국에 오셔서 시카고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멕시코 선교에 뜻을 품고 떠나 온지 1년이 넘어 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1년은 눈물의 한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잘 생기고 똑똑한 아들을 불의의 사고로 잃었습니다.

가슴에 자식을 묻어 두고 시카고에서 떠나오는 차길은

문자 그대로 눈물의 Free way 이었습니다.

제가 멕시코 Ensenada에 갔을 때,

선교사님은 바닷가의 토굴 같은 움막을 보여 주었습니다.

목사님. 여기가 제가 울부짖으며 기도했던 곳입니다.

그 때의 제 모습은 거지같았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고 가난한 어부들은 친하게 다가 왔습니다.

저들과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찬양을 부르고

축복 기도를 해 주며 주의 사랑을 전해 주었습니다.

가난한 어부들을 향한 사명과 열정이 없었다면

저는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을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선교사님의 눈에는 살짝 눈물이 비쳤습니다.

 

그 후 성경은 시카고에서 있다가 LA로 왔습니다.

아마도 부모님의 선교 사역하는 멕시코와 가까운 곳이기에

이 곳 LA로 오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종 LA에서 선교사님을 만날 때가 있었는데

사랑하는 딸을 LA의 아파트에 홀로 두고 가는 모습을 볼 때 마다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지난 5월에 선교지에 갔을 때

갑자기 결혼을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벌써 안 사돈 이야기를 하며

하나님이 아들 대신 사위를 주었다고 하며

사위를 통해 위로를 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견례 하던 날이 515일 이었고

사랑하는 아들이 떠난 지 일 년 되는 날이 그 다음 날인 16일 이었답니다.

놀라운 것은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하나하나가 아들의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너무나 감사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성경이가 이곳에 온지 5개월도 채 안돼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그 후 94일인 오늘 결혼식을 하게 된 것이었습니다.

 

제가 성경이의 결혼식에 와서 신랑 신부를 보는 순간

이 결혼식은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만나게 하고

이끌어 주셨다는 확신이 이상하게 내 안에서 샘같이

솟아 나오는 것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하는 흐름이 너무 은혜로웠습니다.

아래와 같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하나님의 권위 아래에 모두아진 느낌을 받았습니다.

둘째는 하나님 앞에서 부부의 언약하는 성혼의 모습입니다.

셋째는 15명 정도의 젊은 형제자매들이 신랑 신부를 중심에 두고

축하 송을 불러 주면서 꽃송이를 전해 주는데 너무 순수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넷째는 우리의 정서에 너무 와 닿았습니다.

 

저는 성경이의 결혼식을 보면서

상하 수직의 영적질서의 결혼식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축복이

주례 목사님들 통해 신랑 신부에게 흐르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언약식을 하는 모습이

결혼식이 아니라 성혼식을 하는 모습을 느꼈습니다.

신부도 아름다웠지만 신랑도 너무 잘 생겼습니다.

분위기를 보니 정말 양가의 가정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것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 밖에 없는 딸의 결혼을 위해 준비하신 음식은

사모님이 바다의 해물로만 친히 손수 만들었다고 하는데

정말 맛있고 풍성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 덩이씩 싸주는데 흐뭇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함께 가신 다섯 분의 권사님들도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결혼식이 너무 은혜로웠다고 합니다.

제 아내도 너무 좋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해서 슬픔을 기쁨으로 바꾸고

아픔을 위로하며 딸과 사위를 통하여 더 큰 축복으로

이끄시는 사랑의 손길을 피부 적으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환하고 밝게 웃으시는 목사님의 내외분을 보면서

하나님이 이렇게 두 분을 위로하시는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 목사님!

사랑하는 딸 성경이의 성혼식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성경아!

잘 살아야 돼!

아마 너무 너무 잘 살게 될 거야!

오늘 결혼식의 흐름을 보니깐

미래의 번영과 축복이 눈에 보이기 때문이지.

 

2016. 10. 26. 04:08

추석날- 어머니의 송편

어머니의 송편


           백동흠


밀가룬지

쌀가룬지

그것도 모른다.

 

콩보다

깨가 담긴 송편이

더 좋다

 

쫀득한 것이

꿀같이 달다

 

솔잎 향기가

펄펄 하는

어머니의 송편은

 

세월 많이 흘렀건만

지금도 그 맛이

내 안에 살아

맛을 내고 있다



어머니가 넘어지기 전 고향을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고향에 가서 고향을 잃어버리고 왔다고 합니다.

고향은 낯선 타향이 되어 있고 그리운 분들은 한 분 두 분

다들 세상을 떠난 나 봅니다.

돌아 와서 하시는 말씀이 고향 가서 고향을 잃어버리고 왔다고 합니다.

 

난 그저 비행기 한 번 타면 다가 갈 수 있는 것이

한국이고 고향이라 생각했는데

그러나 돌아 갈 수 없는 먼 길이 바로 세월임을 깨닫게 됐습니다.

 

넘어 지셔서 병상 생활하시던 중 제가 말씀을 드립니다.

어머니 이제 빨리 건강 회복하시고 한국에 가시고 고향도 가야지요?“

어머니는 답합니다.

고향에 가보아야 다들 떠나고 없는 걸 이제 나도 가야지…….“

내게 남은 한 가지 희망은 하늘나라야 하늘나라그리고 찬양을 부릅니다.

만나보자, 만나보자 저기 뵈는 저 천국 문에서

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 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곡조 없는 찬양입니다.

 

넘어지신 후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병상 생활이 이제는 침상 생활로 바뀌었습니다.

몸도 굳어 지셨습니다손도 발도 굳어지셨습니다.

그리고 정신도 많이 흐려지셨습니다.

그런데 얼굴은 평안이 서려 있습니다.

언젠가 꿈속에서는 천국을 거닐었는가봅니다.

그러다가 잠에서 깨어나서

아니 지금 내가 아직 육체 가운데 있네!” 하시는 것입니다.

 

눈을 감으면 너무나 평안하게 깊은 잠을 주무십니다.

눈을 뜨면 창 넘어 구름을 바라봅니다.

저 구름 건너편, 고향을 보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운 이들의 얼굴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미 언도도 굳어 졌지만 그 눈동자에는 그리움이 가득 고여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돌아 갈 본향을 보는 것 같습니다.

홍조가 띤 불그스레한 얼굴이

영혼의 그윽이 깊은데서 흘러나오는 하늘 평화가 가득한 얼굴입니다.

 

굳어 버린 어머니의 손을 보면서

올해 추석은 어머니가 만든 그 송편이 너무 먹고 싶었습니다.

그때 그 맛이 살아 남면서

다시 먹지 못할 그 때 그 송편이 몹시 먹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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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6. 10. 26. 04:01

수기 치료팀 멕시코 의료 선교 갔다 오다.

수기치료 팀 멕시코 의료 선교 갔다 오다.

 

                                          백동흠목사

 

멕시코 엔세나다의 어촌으로 의료 선교를 갔습니다.

수기 선교팀은 6명입니다.

몇 해 전에 작고한 박승부 장로님을 통해 수기 치료를 전수받았습니다.

근육을 풀어 주고 아픔 부위를 손으로 치료하는 수기요법입니다.

20여 가지의 정체 요법만 능숙하게 적용만 하면

몸의 구석구석을 풀어 줄 수 있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신통한 수기치료법이라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좋아 모였고

둘째는 수기 술을 잊어 먹을까봐 모여서 연습한 것이

벌써 4년여의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함께 모이는 모임에 장 장로님과 강 장로님이 계십니다.

의료 선교를 나가자고 제안을 했고

제가 선교 지역을 추천하여 서경열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멕시콘 엔세나다의 가난한 어부들의 동네로 가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그 지역의 교회를 소개 했고

첫째 날은 성도 중심으로 그리고 다음 날은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팀은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나 성실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대할 때 기도로 시작 했고

수기 용법과 침과 뜸 그리고 정혈요법으로 치료를 하여 줄 때도

존귀히 여겨 주면 마음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선교사님도 느꼈나 봅니다.

그 교회 원주민 목사님도 느꼈나 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왔던 의사 선교 팀은 자신들은 마치 마루타 취급을 했고

너무 거만해 보였는데(물론 다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너무 좋다고 합니다.

너무 편안하다고 합니다.

사람대접 받는 느낌을 받았다 합니다.

너무 고마움을 느끼었다고 합니다.

 

교회당의 의자를 치우고 테이블 4개를 놓고

얇은 요나 수건을 깔아 놓고 그 분들을 엎드리게 해 놓고

치료를 하였습니다.

하다 보며 윗도리를 벗기도 하고 엉덩이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주민들이 서로 상의 했는가 봅니다.

어디서 천을 구해 오고 철사를 구해 오더니

교회 기둥과 기둥 사이를 못을 박고 철사를 연결하더니

천을 내려서 4개의 칸막이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테이블을 옮겨 놓고 진료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저것이 인권인데…….

아 저것이 존엄인데…….

웃통을 벗고 엉덩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불편해 하면서 자존의 모습을 찾아 가는 마음이

칸막이를 만드는 모습 속에서 느낄 수 가 있었습니다.

 

치료 하는 것도 좋고, 베푸는 것도 종치만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자세, 그리고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시간 보다 1시간이 더 지체 됐습니다.

이제 끝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합니다.

기도를 해 주고 싶다고 제안 합니다.

우리를 빙 둘려 세우고 다들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해 줍니다.

너무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3개월 된 갓난아이의 부모님이 기도를 요청합니다.

심장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심장 판막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또 한 번 통성으로 기도하자고 하고

제가 목사이기에 손을 대고 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성령으로 기도가 흘러나옴을 느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늦었고 시간이 많이 걸렸고 몸도 피곤했지만

다들 너무 좋았는지 기쁨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되었습니다.

 

서선교사님과 사모님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대접을 받았습니다.

자연산 꿀 차, 전복죽, 갓 잡은 상어 회 그리고

생선구이, 매음 탕에 풀코스로 대접 받았습니다.

선교지에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융성한 대접을 해 주신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선교사님!

LA에 오시면 제가 쏘겠습니다.

진짭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0. 26. 03:45

제4회 십자가의 길은 은혜롭게 잘 마치었습니다.

        제4회 십자가의 길은 은혜롭게 잘 마치었습니다.

 

                                                  백동흠목사

 

벌써 십자가의 길이 4번째 모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16일부터 17일 양일간 모였습니다.

선교사와 목회자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5분이 정원이나 17분이 오셨고 섬겨주는 분이 13분이 오셔서

30명의 선교사 목회자 부부를 모시고 진행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의 참 좋은 점은

십자가에 모든 것을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도 십자가 찬양입니다.

말씀도 십자가 말씀입니다.

Workshop도 십자가에 중심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의 시간에

십자가의 말씀과 십자가의 찬양

그리고 자신을 살과 피를 주신 성찬에 스스로 참여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10분 간격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신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 때 원하시는 분(남자 분에 한하여)은 웃통도 벗으시고 맨발로

그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나무 십자가를 지고 그 비아 돌로로사 길을 가는 여정 속에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숨겨져 있으나 이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기에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에서 주의 영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간증을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4회는 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진행을 맡은 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발음도 시원찮고 말의 실수도 많아

기도를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주께 묻고 구해야 했습니다.

기도 중에 깨우쳐 주신 것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프로그램에 묶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흐름입니다.

그 분위기 안에 영적 실체와 흐름을 잡으라고 하십니다.

 

셋째는 그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와 영적인 실체는

환경이 있거나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주의 종들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려 준 것입니다.

 

저는 진행자로써의 3가지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린아이 학예회하는 것 같고 어른이신 분들에게는

어색하고 웃기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모든 선교사님과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스스로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십니다.

영으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고

기도 안에 영적인 강한 파장이 나오게 해 주십니다.

그 나무 십자가를 지시면서 성령의 흐름을 따라 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다들 나무 십자가를 지고 돌아온 후 간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진행을 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영이 영을 불러내고

마음이 마음으로 화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증이 더 아름다운 간증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영적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놀라운 간증의 시간이었습니다.

 

십자가 영성원의 공동대표인 이명수 목사님의 마무리 메시지 이후

영으로 회복되고 밝은 얼굴로 떠나가시는 목사님들 선교사님 사모님들

보면서 얼마나 감격이 되고 은혜가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27:19)

백동흠 칼럼 2016. 8. 11. 05:20

백두산 함-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백두산 함-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백동흠목사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척의 군함으로 전쟁의 결정적 위기의 순간을 막아내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우리 한국의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 당시 대포 달린 군함 한척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이 2차 대전이 끝난 후 퇴역한, 450t짜리 구잠함(驅潛艦)으로
하버보트빌딩 회사의 조선소에 보관하고 있는 녹이 슨 배입니다.
정원이 73명 길이 52.9 m 폭7.06 m로 450 t 최고 속력 18노트의 해로써 
연안을 감시하는 초계정에 불과 합니다. 
이 배를 1만 8천 달러에 사게 됩니다. 국가 재정으로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기에
해군 병사의 월급에서 5-10%씩을 각출해서 모은 돈과
해군 부인회에서 뜨개질과 삯바느질과 의복 세탁까지 해서 모든 돈이었습니다.
눈물로 모은 돈이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돈입니다. 

49년 10월17일 백두산 호를 구입하게 됩니다.
49년 12월 26일 미국의 승인을 받고 뉴욕 맨해튼 부두에서 태극기를 올립니다.
50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석 달 만에 3인치 포를 장차하고 딱 사흘 연습합니다.
50년 4월 10일 괌에 가서 포탄 100발을 사가지고 진해항에 돌아옵니다. 

이 백두산 함은 가는 곳 마다 동포를 울렸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마스트에 태극기가 처음 걸렸을 때 해군 병사들이 울었고
대포를 장착하려 간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울었고
포탄 100발을 사려간 괌에서는 징용으로 갔던 조선인들이 울었고
진해에 들어온 배가 너무 초라해서 다들 울었고
그래도 조국의 첫 전함이라고 해서 뿌듯함에 울었다고 합니다.

5월 한 달 동안 녹슨 선체를 닦아 내고 칠을 칠해 단장했습니다.
6월 초, 부산 묵호 여주 군산 목포 인천에 있는 해군 경비부를 순회 합니다.
자신들의 돈을 모아 사들인 군함이기에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입니다.
6월 24일 밤 11시 30분 진해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6월 25일 주일 새벽 38선 전 전선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왔고 
백두산 호는 25일 오후 3시에 동해안으로 첫 출항 명령을 받게 됩니다. 
9시 넘어 대포와 기관포로 중무장 괴선박(1,000 t 무장 수송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괴선박은 김일성의 특별 지시를 받은 북한 군함이었고
그 배에는 인민군 특수 부대원 600명이 중무장한 체 타고 있었고
부산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 장악할 목적을 갔고 온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남한 항구 중 접안 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부산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산만 장악하면 전쟁 물자 차단과 후방교란으로                            너무나 쉽게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 함은 적의 함선임을 보고 했고 26일 0시 10분 격침 명령은 하달 받게       됩니다.
하와이에서 딱 사흘 연습했습니다. 그것도 모의 폭탄으로입니다. 
그리고 백두산 호에 있는 것은 100발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추격전을 하면서 
이미 30발은 소비됐고 남은 것은 70발입니다. 
결국은 적함을 향하여 최대 속력을 내어 다가가 정조준 하여 사격을 해야
승산이 있음을 알고 300 야드까지 좁혀가 집중 사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적의 함대의 마스트가 꺾여 나가고 기울어지면서 침몰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적함에서 발사된 포탄 두발이 조타실과 갑판을 맞추어
두 명의 병사가 전사하게 됩니다.(김창학 상병,전병익 이병) 

백두산 함은 해군 역사상 첫 전투였고 첫 번째 승리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백두산 함이 없었다면
부산이 그대로 적의 수중에 점령 됐을 것이란 것이 미 해군 연구소의 보고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에서 후방의 적으로 인해 쉽게 무너졌을 것이며 
무엇보다 부산 접안 시설을 빼앗김으로 미군의 병사와 군수 물자도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피를 흐리며 또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그리고 그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은 백두산 호를 
준비하게 하시고 두 배나 큰 적함을 발견하게 하시며 침몰케 하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28일 미 105 m 박격포와 총탄이 부산항에 도착했고
5일 지난 후 7월 1일 미 스미스 부대 440명이 들어옵니다. 
이후 이 부산항은 통해 연 인원 500만 명 군수물자 5200만 톤
유류 2200만 톤이 들어오게 됩니다.
백두산 함이 준비 되지 못했다면 6.25의 전쟁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단 한척의 군함(초계정) 백두산 함은 하나님이 준비시켜 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만 존슨의 책 “6.25의 비사(비(秘史)”에서 동해에서의 백두산함의 승전은
6.25의 분수령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자에 
‘전쟁의 가장 중요한 해상 첫 전투로, 
백두산 함(450 t)이  북한의 무장 수송선(1000 t급)을 수장시킴으로
부산항을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 후원을 가능케 했다’고 기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백두산 함에 대해 아시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 역사 속에 스며 있음을 아시는지요?
애국가의 내용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사”가 스며 있는
그 역사의 현장을 우리와 우리의 후대에게도 알게 하여
다시는 6.25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해아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욜1:3)

백동흠 칼럼 2016. 8. 11. 05:09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6. 8. 5. 05:46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6. 7. 9. 05:31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백동흠 목사 

약 300명 정도 모이는  이민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소속된 노회의 목사님이십니다. 
3월 정기 노회 때에도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6월 들어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를 사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노회의 임시 당회장 파송 건으로 전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세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대화중에 참 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때문에 당회가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 좋은 장로님들인데 저로 인해 갈등의 영역을 넘어 분열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기에 제가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를 옹호해 주는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는 너무 죄송스러우나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저로 인해 분열이 생기고 시험이 들게 되면
좋은 성도들이 상처를 받고 지역 교민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기에 
나 하나 낮아지고 죽어 지면되겠기에 6월 말일 부로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의 언어의 표현은 변명이나 탓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깨끗하고 단순했습니다.
제가 또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임지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제가 섬기는 성도가 있고 목회의 터전이 있는데
다른 임지를 뒤에서 알아보는 것 자체가 제게는 용납이 아니 되었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보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일할 때에도 
항상 주님이 앞서서 보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사임하게 되면 노회에 어떤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사임 청원을 내어 주시고
또 하나는 임시 당회장 파송 청원을 노회 서기에게 보내 주시면 될 것입니다.”
“예 그렇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 대화는 이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상하게 저의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상하게 은혜스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성 영락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기득권의 싸움으로 지역 사회에 본이 되어 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의 소리 냉소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복판에서 
저는 참 좋은 목사님 한 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비어 드리고 자신을 포기 할 줄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로 났으면 합니다.
방송에서도 저녁 특종으로 방송됐으면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렇지도 안다는 듯이 침묵하는 가 봅니다.

성경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고후6:9)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6. 7. 9. 05:19

상큼한 아침,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상큼한 아침,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아침 문을 열고 나아보니
잿빛 하늘에 소슬비가 흩날립니다.
아주 쬐끔입니다.ㅋㅋ
얼굴에 와 닿는 느낌이 너무 좋았습니다.
찬기있는 바람은 너무 상큼한게 
영혼에 생기를 주는 것 같았습니다.
촉촉히 젖어 드는 빗 길을 따라
그대와 함께 훌쩍 여행을 떠나고 싶은
주말의 아침이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6. 7. 9. 05:01

엔지의 사랑


그 사랑이 차라리 눈물 겹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동흠목사                   

엊그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 목사님입니다.
“백 목사님! 우리 엔지가 이제 눈이 안 보이는가봐!”
저는 그 소리 듣고 충격을 먹었습니다.

돌아가신 사모님이 사랑해 주며 기른 개입니다.
이름이 엔지라고 합니다.
귀엽고 명랑하고 응석받이이고 눈치도 빨라 잘 알아듣고
순종도 잘 한다고 합니다.
품종은 말티즈로 영국 황실의 족보라고 합니다.

사모님이 병원에 갔다가 병원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엔지는 보았습니다. 
침상에 눕히는 사모님의 모습을 
그리고 힘겨워 하는 사모님의 얼굴을 보더니 
침대에 올라가 얼굴을 한참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 혀로 할 타 줍니다.  
낑낑 거리며 그렇게 슬프게 울어대더니  
조그마한 자기의 방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안 나오기를 5일을 그렇게 하더랍니다.
20여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먹는 것 없이 시름시름 아파 누워있게 된 것입니다.
가축병원에 데려가 진단을 했다고 합니다.
친국 목사가 한의사이기에 그 진단서를 보고 말하기를 
이 병은 한의학적으로 “담염”이라는 병명이라고 합니다.
담염이란 병은 감정의 상처에서 기인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목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엔디를 보았습니다.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에 그 눈을 보니 충혈 되어 눈물이 
그 안에 그렁그렁 고여 있었습니다. 
제 자신도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개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아파할 수 있을까?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이런 병을 얻었을까?

그런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완악하지 않은가? 
감정이 굳어 버린 존재가 아닌가?
그 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컸으면
이제 실명의 고통까지도 감내하는 그 모습이 
차라리 너무 눈물겹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패륜의 세대에
감성이 하얀 석고같이 굳어버린 우리네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한 마리의 개이지만 그 사랑의 아픔은 
정말 아름답고 귀하다 생각이 드시지 않는지요?


* 6월30일 엔지는 9년 10개월의 삶을 살고 그렇게

  떠나 갔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돌아 가신 지 한달이 이제 조금 지난 

 날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