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주는 글들 2015. 11. 27. 03:22

풍요롭고 행복한 감사절이 되기를 소원합니다.

 

 

감동을 주는 글들 2015. 11. 25. 16:39

십자가의 길- 비아 가족들을 초대 합니다.

        십자가의 길 - ViA 가족들을 초대 합니다.

 

감동을 주는 글들 2011. 6. 25. 09:00

이런 당신이라면

이런 당신이라면
          차 한잔  나누고 싶습니다.


꽃향기가 아닌 잡초에서도
향기를 느끼는
그런 당신이라면

못생긴 나무일지라도
산을 지키는 거목이 됨을 아는
그런 당신이라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면서
추운 겨울 땅
감싸주는 따뜻함을 아는
그런 당신이라면

슬픔에 힘겨워할 때도
넉넉한 가슴으로 지켜봐 주는
그런 당신이라면

작은 이야기라도
진실한 마음 전달할 수 있는
그런 당신이라면

좋은 시간
행복한 마음으로
차 한 잔 나누고 싶은
그런 당신입니다




토요일
오후 시간  
비껴가는 그런 시간에
마음에 공감하는 내용인지라
더블어 함께 나누고 싶어
푸른 편지에 실어 보내 드립니다.

어느 분이 좋은 글에서 인용하여 보내온 글입니다.
감동을 주는 글들 2010. 10. 5. 04:05

장애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병입니다.



장애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병입니다.

저는 한쪽다리가 짧은 흔히 말하는 절름발이입니다.
그러나 저는 학교생활, 직장생활을 이어오면서 더욱더 밝고 쾌활하게 지내려고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깊은 곳에 숨어있는 열등감이 불쑥불쑥 솟아올라 며칠씩
 열병을 앓곤 하였습니다.
그때마다 저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가족들과 친구들이 있어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혼이라는 큰 문 앞에서는 멈춰 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친구의 소개로 한 남자를 만났습니다.
만나면 만날수록 좋은 점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저는 끝이 만나지 않는 평행선이었습니다.
끝내는 좋아한다는 말 한마디 건네지 못하고 그를 떠나보내야만 했습니다.
저의 장애를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그의 솔직함이 만남을 지속시켜 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일이 있고부터 심한 우울증과 눈물로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게 처해진 현실이 싫고 이렇게 태어나게 한 부모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이런 저의 모습을 보다 못한 부모님께서 저를 병원에 데려가기로 결정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와 엑스레이 촬영을 마친 다음 의사 선생님이 내린 병명은
선천적 고관절 탈골이었습니다.
수술이 가능하다는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는 순간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결국 저는 입원을 하였고 수술을 받았습니다.
4시간 30분 동안의 대수술을 끝내고 마취에서 어렴풋이 깨어났을 때
온 식구들이 나를 둥그렇게 에워싸고 걱정스런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나는 빙긋 웃어보였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고통의 끝은 아니었습니다.
다리 길이를 맞추기 위해 무거운 추를 매달고 물리치료를 받을 때는 찢어지는 듯한
고통 때문에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릅니다.
내가 왜 이런 고통을 자처했는지 후회스럽기도 하였습니다.

몇 개월 동안의 병원생활은 참 많은 것을 느끼게 했습니다.  
병에 걸린 부모에 대한 자녀의 효도, 아픈 자식에게 쏟는 부모의 사랑도 보았고,
고부간에 피어난 애틋한 사랑과 형제간에 아껴주는 마음도 보았습니다.
아끼고 사랑하는 그 모습은 한결같이 아름다움, 그것이었습니다.
꼭 고통스런 병이 인간에게 절망만을 안겨 주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귀한 것은 나보다 더 큰 고통과 아픔이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과 그런 가운데에서도 꿋꿋하게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정말 필요한 것은 수술보다는 자신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의 시선보다는 내가 내 자신에게 당당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번 더 저에게 다짐해봅니다. '좀 더 당당해지리라. 타인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에 대해서….'
지금은 집안에서 꼼작 못하고 누워서 가료중입니다만
지금은 나의 다리의 회복과 상관없이
저 창문 밖의 세상이 왜 이리 설레고 밝아 보이는 지모를 일이었습니다.

장애는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 오는 것임을 알았기 때문인가 봅니다.  

                                 - 푸른들님이 보내 주신 김문영(가명)님의 글 -
감동을 주는 글들 2010. 9. 23. 03:28

축구 선수 카카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축구 선수 카카에 대해 알고 있는지요?

2001년, 카카가 18세가 되던 해, 그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맞이하게 됩니다.
친구들과 수영장에 간 카카는, 친구들 앞에서 멋진 모습을 보이 싶은 마음으로
높은 다이빙대 위에 올라서게 됩니다.
뛰어내리기 직전, 카카는 다이빙대 위에서 발이 미끄러지게 됩니다.
그는 높은 다이빙대 위에서 딱딱한 돌로 된 수영장 바닥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떨어지면서 척추 뼈가 부서지게 되었고, 심각한 수술을 하게 됩니다.

그 수술은 세계적으로도 상당히 위험한 수술입니다.
그 수술은 세계적으로 성공률이 불과 2%밖에 되지 않는 그런 수술이라고 합니다.
설령 성공한다 해도, 후유증으로 신체의 마비가 올 뿐만 아니라,
식물인간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위험한 수술이었습니다.
기도를 많이 하는 카카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기도 중에 수술을 하기로 결정합니다.
그 날 이후 카카와 부모님은 전심으로 하나님께 부르짖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 손을 모으고 무릎을 꿇고 울며 밤낮으로 기도했고,
카카 본인 또한 하나님께 울부짖으며 기도하고, 또 기도했습니다.

수술이 끝난 후, 부모님은 담당의사의 팔을 붙잡고 결과를 물어봅니다.
그 때 그 담당의사은 "저 아이는 하늘이 도왔나봅니다. 성공적인 수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2%의 성공률밖에 없던 위험한 수술을 도와주신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기적이었습니다. 몸은 정상적으로 회복됐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고서는 이런 치유는 일어 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그 뒤에 일어 난 일이었습니다.
2002년 불과 1년 만에 한. 일 월드컵에 브라질의 대표선수로 뽑히게 됩니다.
2003년, 세계 3대 빅 리그중 하나인 이탈리아 세리에 A(Seria A)의 3대 명문 팀 중
하나인 AC 밀란(AC Milan)에 입단하게 됩니다.
2004년에 유럽 올해의 선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십 리그 우승,
세리에 A 우승, 발롱도르(1년에 한번씩 뽑히는 세계 최고의 선수상)등,
여러 엄청난 상을 받게 됩니다.
2009년,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 레알 마드리드 C.F.에서 입단하게 됩니다.



카카는 모든 경기 때마다 유니폼 안에 “나는 예수님께 속해있다.”(I belong to Jesus)
새겨진 속옷을 입고 경기에 임합니다.
카카는 골을 넣을 때 보여주는 세레모니는 항상 양손의 손가락을 하늘에
치켜세웁니다. 그리고 하늘을 바라보며 또 바라봅니다.
그 동작의 뜻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과 감사”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의 포지션인 미드필더로서는 최 전성기의 나이이고,
아직도 8년은 더 뛸 수 있는 그는, 지금은 새로운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은퇴 후에 목사님이 되어 복음을 전파하는 일이, 그의 새로운 꿈입니다.

정말입니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밀어 주면 확실하게 밀어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전심으로 주님을 구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기적을 친히 보여준
하나님의 사람이 “축구선수 카카” 이였습니다.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인 히카르도 카카의 이야기를
푸른 편지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알러 주고 싶어 적어 보았습니다. 

- 김진후 형제의 글을 편집하여 올렸습니다. -

감동을 주는 글들 2010. 9. 13. 14:37

삶은 혼자 걸어 가는 길이 아니란다.



삶은 혼자 걸어 가는 길이 아니란다.  


버스에서 내려 작은 공원을 지날 때 등 뒤에서 어떤 남자가 나를 불러 세웠습니다.
“저… 저기요….” 뒤돌아보니 덥수룩한 머리, 허름한 옷을 입은  
젊은 아저씨가 구부정한 모습으로 서 있었습니다.
경계심 가득한 내 눈빛 때문인지 그는 머뭇거리다가 용기를 내어 말을 꺼냈습니다.
"제게 3천 원만 줄 수 없겠는지요?"
오갈 데 없는 할아버지가 며칠 굶어서 밥을 한 끼 사 드리고 싶은데,
자신도 노숙자라 돈이 얼마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거짓말은 아닌것 같다 느꼈지만 왜 남의 돈으로 인심쓰러고 하는가?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러나 할아버지를 도와준다는 생각에 지갑을 열었습니다.
하필이면 천 원짜리가 두 장밖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5천 원을 꺼내 주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서서 걸어 가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 아저씨도 굶은 지 오래된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가던 길을 되돌아가 보았습니다.
그 사람은 한 할아버지를 부축하여 저 건너의 식당으로 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가까이 가서 식당 창문을 통해 식당안을 살펴 보았습니다.  
음식을 주문하고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문득 1인분의 식사만 주문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간판에 배달안내 전화번호가 있었습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식당에 전화했습니다.
잠시 식당 밖으로 나와 달라는 전화 부탁을 받고 식당 종업원이 나왔습니다.
역시 된장찌개 1인분만 주문한 것이었습니다.  
나는 종업원에게 5000원을 건네 주면서 된장찌개 하나 더
차려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리고 발 걸음을 돌려 집으로 향했습니다.
갑자기 마음이 흐뭇해졌습니다.
한끼의 식사앞에 밝게 웃을 그들의 모습을 보며 왜 내가 기뻐지는지
몰을 일이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내 발만 내려다보며 걸어왔던 움츠린
나의 마음을 누군가가 한 대 툭 치며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삶은 혼자 걸어가는 길이 아니란다."


                                     - 한국에서 김진아 님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