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5. 10:54

들꽃

 

 

들꽃       

 백동흠

간밤의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거친 바람에
온 몸이 흔들렸어도
오히려 더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보아 주는 이 없어도
알아주는 이 없어도
그리고 이제 곧 시들어 진다해도
전혀 문제를 삼지 않았습니다.

천박한 땅일지라도
자신의 날
주어진 때
활짝 꽃 피워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럽고
아름다웠습니다.

주어진 날 조차도
피워내지 못하고
불평 원망하는 사람 네들을 보면서
한편으로 부끄럽기도 했습니다.


***
빈들에 나갔었습니다.
인적이 끊긴 곳에 피어 있는 들꽃을 보았습니다.
거칠고 천박한 땅
물기 하나 없는 메마른 땅에 핀 꽃이었습니다.
거칠고 억세고 투박했지만
제게는 너무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천박한 땅에 피어낸
그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웠습니다.
그리고 한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주어진 날 조차도 피어 내지 못하는
우리들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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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10. 02:54

보름달 같은 사람

 

보름달 같은 사람 

               백동흠

어두운 밤인데
동쪽 산에
보름달이 떠오른다.

깜깜한 산봉우리
아랑곳 하지 않고
환한 얼굴로
조용히 솟아오른다.

노르스름한 것이 밝다
부드럽다.
온화하다.
온통 어두운데
훤하게 비추이는 것이
겸손이다.

은은히 비추어 주는
빛이 포근하다
위로가 되며 편안하다.

먼데까지는 아니더라도
나의 주변을
비추어 주는 빛이
어둠속에 희망이 되게 한다.

갑자기 그리워지는 사람 있다,
어두운 세대에
주변을 은은하게 밝혀 주며
위로가 되게 하며
희망이 주는
보름달 같은 사람 말이다.



< 詩作노트>
어제는 정월 대 보름이었습니다.
새벽 기도 시간에 어느 권사님이
다섯 가지 나물을 예쁘게 포장하여
나의 차 위에 놓아두었습니다,

그날 저녁 정월 대보름,
달맞이를 했습니다.
마음으로 버무리고 사랑을 맛을 낸
다섯 가지 나물을 오곡밥과 함께 먹으면서
달맞이를 했습니다.

어둡지만 밝았습니다.
추웠지만 따스했습니다.
우리는 햇빛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달빛은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어두운 땅에 은은히 빛을 비추어 주며
조용히 사랑을 베풀어 주는
보름달 같은 사람!
참 좋은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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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5. 3. 5. 06:39

삼일정신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

 

삼일정신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

                                   백동흠 목사

지난 2월 28일
삼일절을 앞에 두고 한 일본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청일 전쟁부터 시작하여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의 양심으로 인정받는 역사학자 나카쓰카 아키라 교수입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한 첫 역사학자로 꼽힌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패전 후 그 책임을 천황에게 물었어야 했답니다.
그를 면책함으로 일본의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게 된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했습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 이후 일본의 정권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를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패전 후의 도쿄대학의 총장인 야니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1893∼1961)
일본의 대만 식민 지배과정에 대해 책을 썼지만
조선의 지배와 식민지 역사를 책을 쓰지를 못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너무 왜곡 됐기에 진실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본 백성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게 됐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조선 침략과
대륙 정복은 합리화 시켰고
그런 가운데 일본의 제국주의를 흠모하는 극우 세력들에 힘을 입어
탄생한 것이 오늘 날의 아베 정권입니다.
그러기에 성 노예의 한 많은 생애를 산 우리의 할머니들의
탄원의 소리조차도 외면해야 하는 것이 일본의 정부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앞날이 걱정이 됩니다만

더욱 더 문제는 그런 왜곡된 역사로 다가오는 일본에 대해
우리 한국의 역사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른 세대가 된 제 자신조차도
학교에서 배운 역사 공부라고 하는 것이 너무 빈곤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 부모님을 통해 전해들은 것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조각, 조각 이야기에 불과 한 것입니다.
1세인 저도 아주 많이 모르는데
미국에 일찍 이민 오신 1.5세의 목사님에게도 물어 봅니다.
전혀 입니다. 진짜 모릅니다.
그러니 이곳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녀들이
누구에게서 역사를 배우며 그 정신을 이어 갈까요?

너무 모릅니다.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정말 정부적 차원에서도 투자해야 하고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의 뿌리와 맥을 이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 대국이란 명칭은
모래위에 세운 탑같이 미래의 어느 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일이 3월 1일입니다.  
삼일절이 되어 삼일정신과 그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삼일절을 기리는 예배로 드렸습니다.

예배 후 집사님 한분이 한 마디 합니다.
목사님 오늘이 삼일절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교회가
삼일정신에 대해 설교를 했을까요?

성경은 절기를 두어(레23:41)
그 절기에 대해 잊지 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지킴으로 후손들에게 절기를 통해
역사를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삼일정신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독 정신에
근거한 도의와 자유와 공의를 위한 비폭력 운동입니다.

정말 잊지 말아야 되고 알아야 되고 알려 주어야 할
놀라운 정신이며 온 시대를 뛰어 넘는 인류애 정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지금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필요 한 시기입니다.
정말 정신적이요 도덕적인 지도자가 너무 아쉬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 나 하나 만이라도 그런 시대적 정신으로 살아
어둠 속에 밝은 빛으로 드러나는 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저두 그렇게 해 볼게요.

2015. 2. 27. 05:17

그대 사랑 내게 있음으로

 

그대의 사랑이 내게 있음으로

                           백동흠

아!
그대의 사랑이
내게 아름다운 것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이 묻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사랑이
내게 이다지도 풍요로운 것은
나의 허물과 부족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며 즐거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대의 사랑이
나에게 눈에 부신 것은
깨끗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그 영혼이 맑기 때문입니다.

지금 내가 기뻐하는 것은
거짓 없는 마음으로
즐거워하며
깨끗한 영혼으로
바라보는 그 사랑을
온 몸으로 느끼기 때문입니다.

어두워도 밝았고
추워도 따스했으며
가난해도 풍요로웠습니다.

아! 사랑하는 그대여!
그대가 내게 있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해주고 있었습니다.


< 詩作노트>
그래요.
누가 뭐래도 저는 너무 행복하답니다.
그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의 원천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에게서 나오는 사랑이었습니다.
그 사랑은 생명같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랑이 그대를 통해 내게 흐르고
나 또한 그 사랑을 받으니 그 사랑을 누군가에로
흐르게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다 행복하게 하고 있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셨는고."(요일3: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일4:11)
그 사랑 안에 그대와 나
그리고 우리 모두가 다 행복해지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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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5. 2. 25. 06:51

팔굼치 피아니스트 - 최혜연양

 

팔굼치 피아니스트 - 최혜연양

백동흠목사

어느 분이 나 같은 “Amazing Grace” 피아노곡을 보내
주었습니다.
파일을 열어 들어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굉장히 평안하게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누굴까? 누가 이 곡을 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팔 없는 피아니스 최 혜연 양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하던 정육점에서 3살의 나이에 고기 자르는
기계에 순식간에 팔이 잘려 나간 아이었습니다.
그 후 팔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고
왜 내 팔은 안 나오느냐?
보챌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할머니는 말하네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아파하고 힘들어 하며 많이 울었겠지요.
남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도 많아
속이 상하고 아팠겠지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위축을 많이 받았겠지요.

중학생 시절 정은현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매주 경북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4시간씩 달려 나가
피아노 레슨을 하게 됩니다.

정은현 선생님은 혜연 이를 첫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연주하는 것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물었답니다.
"너 왜 피아노하려고 하니?"
혜연이의 대답은 한 마디었습니다.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이었습니다.

대전 예고를 들어가면서 하루 3시간에서 6시간씩
선생님과 함께 지옥 훈련같이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혜연이는 항상 마음에 “희야 언니”를 품었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지주로 삼은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팔꿈치 피아니스트로 다가 온 것입니다.

저는 또 한 번 느꼈습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 아름답다는 것을
희망이 귀한 것은 절망 같은 상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많은 시련과 아픔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흘린 눈물과
신음하는 마음속에서 빚어진 인품이 위대하다는 것을

어린 자매 혜연이는 말합니다.
"그땐 너무 너무 싫고 힘이 들었어요.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싫고 짜증도 나고 불쾌 했어요
지금은 내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은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써의
나의 장점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픈 것만큼 성숙 되여 지고
시련 속에서 정금의 모습으로 나오고  
장애가 희망을 주는 것을 어린 자매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즐겨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믿음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둠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 하여 주신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때론 주님의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스스로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우리 힘들고 어려워도 힘차게 헤쳐 나가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2015. 2. 21. 02:37

고향의 하늘에는

 

오늘이 설이라고 하네요

설이라고 하네요. 썰렁하네요.
타국에서 사는 거니깐
이라고 하면서 편하게 지나가려고 합니다만
왠지 마음의 한 컷에서는 그리움이
하얀 눈이 되어 내리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정서, 우리의 문화,
우리의 풍요로움을 자녀들에게 느끼게 해 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지만 덩그러니 떡국 하나 먹이면서
“이것이 설이다.” 라고 말하는
나 자신도 영 우스웠습니다.ㅋㅋㅋ

어린 시절, 고향의 하늘에는
하얀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하얀 그리움되여
내 마음에 눈이 하염없이 내리고 있습니다.
정답고 그리운이들이 하얀 얼굴되여 살아나네요.



고향의 하늘에는

            백 동흠

지금도
고향의 하늘에
눈이 내립니다.

어저께는 까치설날
오늘은 우리 설날

곱디고운 색동옷에
세배하는 아침에  
할머니, 할아버지 쌈지 돈
환하게 웃으며 주시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옹기종기 둘려서
하얀 쌀밥에 미역 국
바싹 구운 김 한 톨
얹어 먹을 때
행복을 먹었습니다.
사랑을 먹었습니다.

어깨동무
내 동무 함께 만나
자치기 하며 널뛰기하며
윷놀이하고
어울려 뛰 놀던
그때 그 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지금도
고향의 하늘에는
하얀 눈이 내립니다.

하얀 그리움 되어
하염없이 내 마음에  
눈이 내립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그리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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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2. 13. 03:42

아랫목 같은 사람

 

아랫목 같은 사람

               백 동흠

추운 겨울
눈이 펄펄 내릴 때
동무들과
눈싸움을 합니다.
눈썰매를 탑니다.
신나게 놀다가

집으로
돌아 올 때는
떨면서 돌아옵니다.

엄마는 얼어붙은
손을 비벼 주며
아랫목 뜨거운
이불속으로 들어가
눕도록 해 줍니다.

아!
좋았습니다.
너무 아늑했습니다.
어느 틈엔가
눈이 스르륵 감깁니다.
단꿈에 빠집니다.
아랫목은 어린 시절
엄마의 품과 같았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아랫목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언제나
누구에게나
거부하지 않고
따뜻한 마음으로
기다려 줄줄 아는 사람

그리고 그렇게
이불 되어
품어 줄 수 있는  
아랫목 같은
그런 사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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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 1. 02:40

내 인생의 연말에

 

내 인생의 연말에...  

                     백동흠 목사

인생은
하나의 여행길이다.

갔다가
돌아오는 길 없이
가기만 하는
일방통행의 여행길이다.

해마다
돌아가는 길목에
연말을 주어
내 인생의 연말을
예행연습을 하게하고 있다.

그래서
내 인생의 진짜 연말

막힌 담하나 없이
풀게 하며

마지막 돌아 갈
본향을 향한 여행길
잘 떠나게 하기 위함이다.

어느 분이 아래와 같은 예뿐 글 하나를 보내 왔습니다.
제가 나의 언어로 내용을 조금 수정해서 소개 해 드립니다.
다들 공감할 수 있는 글이라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한 살의 나이엔
그저 엄마의 품에 제일 좋아 품안의 여행시기입니다.

열 살의 나이엔 어디를 간다면 무조건 좋아 하는
소풍여행의 시기입니다.

스무 살의 나이엔 좋아 하는 사람과 함께 라면
어디라도 가고 싶어 하는 데이트여행이었습니다.

서른 살의 나이엔 아기하고 자기하고  
문화체험을 꿈꾸는 해외여행 시기입니다.

마흔 살의 나이엔 먹고 살기에 너무 힘에 겨워
무조건 쉬고 싶어 하는 방콕여행의 시기입니다.

쉰 살의 나이엔 내릴 때가 됐음을 알고 서서히
준비하는 기차여행이었습니다.

예순 살의 나이엔 뿌리와 맥을 자녀에게
이어 주고 싶어 고적 답사하는 여행의 시기입니다.

일흔 살의 나이엔 어릴 때의 동무를 만나면
무조건 반가운 수학여행의 시기입니다.

여든 살의 나이엔 누굴 찾아 나서기보다 누가 찾아올까
기다려지는 추억의 여행 시기입니다.

아흔 살의 나이에는 이미 다들 떠나가서
기다릴 사람도 없고 찾아갈 사람도 없고
이제 나도 떠나야 하는 영원 여행의 시기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인생이란 ?
왕복이 없는 One way ticket 한 장만 손에 쥐고
떠나는 단 한번 뿐인 여행과 같습니다.
지금 그대는 어느 여행의 시기를 살고 있는지요?

내 인생의 연말 - 영원 여행의 시기
다들 떠나고 이제 나도 떠나야 할 그 때에
가야 할 영원한 본향이 있는지 또한 묻고 싶어서
글 하나 올려 보았습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6)


2014년 12월 31일
마지막 달 마지막 날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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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의 몸으로 오신 성탄

인자의 몸으로 오신 성탄

                                         백동흠목사

어제는 성탄 주일입니다.
어느 자매되시는 분이 교회를 오셨습니다.

예배 후 떠나지 아니하고 머뭇거립니다.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렵답니다.
너무나 큰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병원에서 종합 진단을 받는 중에
자신의 몸에서 커다란 종양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열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1월 초순 수술 날짜도 잡혀 있습니다.

죽음의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죽음이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습해 오는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르는데
너무 힘에 겹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아픈 것은
그런 나의 실존 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큰 빈방에서 홀로가 되어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누가복음 10장의 여리고 숲속이 보였습니다.
여리고의 깊은 숲속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 빼앗고 때려서 거반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버려진 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그 사람이 보였습니다.

깊은 산중입니다. - 어둡고 음침합니다.
홀로가 되어 있습니다. - 아무도 없습니다.
인적이 끈긴 곳입니다. - 관심을 가져 주는 이 없습니다.
상처가 심합니다. - 지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안으로 피가 흐릅니다.
겉으로는 웃는데 안으로는 눈물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남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는데 안으로는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정신이 가물거립니다. 호소할 사람도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안으로 부르짖는데 와 닿는 손길이 없습니다.
이제 이대로 서서히 굳어지고 죽어 질 것입니다.

여리고 숲속에서 홀로 버려진 채 이제 서서히 죽어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자매님에게서 본 것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함께 아팠습니다.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탄의 절기만 되면
여리고 숲속에서 인생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따스한 아랫목 같은 천국의 영광을 비우시고
살을 에는 추위와 살벌함이 가득한 이 땅위에


육신의 몸으로
낯설지 않는 모습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가장 낮은 자리로 다가와
온 몸으로 인생을 체휼하시고
품어 주시는 그 분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 지모를 일입니다.

함께 추위에 떨어 줍니다. 함께 아파해 줍니다.
손 내밀어 줍니다. 그리고 품에 안겨 줍니다.
그리고 말씀해 줍니다.
힘들지
너무 아프지
견디기 어렵지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너 홀로 두지 않을 것이야
함께 해 줄게!
두려워하지 마!
그리고 이길 힘을 줄게
힘내! 알았지.

성탄 주일 날
자매님은 예배 후 온 성도와 함께 밥을 먹고
떠나기 전 성도들과 같이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 때는 홀로로 왔지만
이제 가면서 주의 평안으로 마음에 품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교회당이 좋다. 성도가 좋다
그리고 인자의 몸으로 오신 그 예수님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4. 12. 21. 06:43

메시아 기다립니다.

     

메시아 기다립니다.

                          백동흠 목사

어느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인권과 생명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부정부패가 극심했습니다.
99대 1%의 부의 구조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가난과 질병으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종교는 회칠한 무덤같이 경건의 틀에 묶여
냄새만 풍기고 있었습니다.
들여오는 소식은 마음만 상하게 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땅에서는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탄식하며 외쳤습니다.
아! 주님 이 땅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메시아 기다립니다.

어둠속에 빛으로 사는 것이 너무 외롭습니다.
믿음 없는 세대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사랑이 식어진 세대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럴수록 하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기에 주의 전에서 살았습니다.
TV나 신문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들려오는 소식을 접힐 때 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럴 때 마다 교회당으로 쫓아갑니다.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철야하며 금식도 하며
그렇게 살기를 80여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하고 남루한 어느 부부가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품에 앉고 성전에 찾아 온 것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마음이 움직입니다. 굉장한 빛의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영으로 흐름이 흘러갑니다.
영은 영으로 통하여 알게 되고 느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남루한 부부의 품에 안긴 어린 아이에게서
메시아의 영광을 본 겻입니다.
너무나 감격이 되어 그 아기를 안아 봅니다.
그 순간 하늘의 위로가 넘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할아버지는 미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어둠에
비추이는 빛을 보았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할아버지의 옆에는 84년 동안 함께 기다려온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안나였고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이 할아버지가 품에 안은 아이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눅2:25)

오늘의 성탄 절기에
땅의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아파져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와 편법
99대 1%의 사회구조 속에서 당해야 하는 고통들,
인권과 생명의 유린, 도덕성의 상실과 패륜의 소식,
끝없는 전쟁과 테러 사건들과 서서히 재앙으로 몰아가는
피폐해지는 자연의 붕괴 현상 등
그리고 성도 안에 번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현상

지금 우리는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위로 받을 길 없어
메시아 기다립니다. 메시아 기다립니다.
목이 메어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면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 성탄의 절기에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면서
이제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위로 받을 길이 없어 주의 전에서 철야 하며 금식하며
이 땅을 위해 울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성탄의 절기만 되면
시므온 할아버지 그리고 안나 할머니가
너무 그립고 닮아지고 싶어지는 마음이 갖게 됩니다.

어제 밤에도 찬송가 104장을 많이 불려 보았습니다.
포로 된 생활 고달파 메시아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