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 2020. 1. 3. 05:07

바보새

   바보새

        백동흠

못난 얼굴도 괜찮다
볼품이 없어도 상관없다.
품 나지 않는 긴 날개에
뒤뚱거린다고 바보 새라고
불러도 좋다.

다만 잠잠히 바라본다!
평안이다.
흐름을 느낀다.
영의 흐름이다.

폭풍우가 불고
다들 두려움으로 요동할 때
조용히 흐름을 탈뿐이다.

거센 바람을
품에 안으며 날개를 편다.
그리고 겁 없이
절벽을 뛰어 내린다.

바람이 거세어질수록
더 멀리,
더 높이난다.
아니 나는 것이 아니라

흐름을 탄다.
영의 흐름을…….

Albatross 바보 새입니다. 
땅에서 못난 새였습니다. 
얼굴도 못 났습니다. 
긴 날개도 축 쳐져 있습니다.
폼도 전혀 안 납니다. 
뒤뚱거리면 도망도 못 합니다.
어린 아이에게도 잡혀 
수모를 당하는 바보 새입니다. 

그런데 폭풍우 치는 어느 날
다들 불안과 두려움에 
요동할 때에 
바보 새는 그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것이었습니다.
3m가 되는 양 날개를 펼치고 한번 그 흐름을 타고 
날기 시작하면 
6일 동안을 날갯짓 하나 없이도 날아갑니다.

그리고 두 달 동안 지구를 한 바퀴를 돕니다.
그 먼 거리를 한 번도 쉬지 않고 날 수 있는 것은
자신의 힘이 아니라 바람의 흐름을 타고 날기 때문입니다.

저는 바보 새에게서 영성의 사람을 보게 됩니다.
땅에서는 바보같이 억울하게 당해주고 
무시를 당해주면서도 변함없는 영의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흐름을 따라 영의 생각으로 흘러가는 사람들은
오히려 시련과 고난의 바람이 불어오고
땅은 온통 불안과 두려움으로 요동할 때
평강과 생명의 기류를 타고 하늘을 날게 됩니다. 
잠잠히 주를 앙망하면서 말입니다. 

영성 2013. 8. 3. 04:42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백동흠

아무리 밖에서 부는 바람이 거세어도 
마음을 지키는 사람은 
밖의 시련과 어려움을 이겨 나갈 수 있습니다.

요동하는 물결 속에서도 흔들림이 없으며 
두려움 속에서도 뛰어난 평강이 있고
절망의 현장에서도 희망을 말하며  
넉넉하게 웃어 주는 사람이 될 있는 것은 
그 마음을 지켜 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내면의 질서가 부셔지고 
마음속에 두려움과 불안이 스며드는 사람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이 안으로 무너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있는 마음을 지켜낸 사람입니다.



****
다윗의 시를 통해 다윗의 삶을 보았습니다.
다윗은 밖의 많은 시련과 환란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하나님께 탄원의 시를 올립니다.

다윗은 밖의 많은 시련과 고통 앞에서 위기를 느끼지 않았습니다.
밖의 시련과 고통을 통해서 내면의 질서, 
마음이 붕괴 당할까봐 이것을 제일 무서운 위기로 생각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무너지지 않도록 
깊은 내면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부셔지지 않도록 
얼마나 몸부림 쳤는지요.

다윗의 위대함은 밖의 시련과 환란을 이긴데 있지 않습니다. 
그런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자신의 마음과 싸워 내면의 질서를 지킨 
사람이었기에 위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환경의 시련도, 사람의 핍박도 달콤한 유혹 속에서도 
마음을 지킨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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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10. 10. 30. 10:20

오혜령씨의 간증과 영성훈련을 소개드립니다.



오혜령씨의 간증과 영성훈련을 소개드립니다.

                                                      백 동흠목사

맑은 영은 깨어짐과 함께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시련과 고통과 여러 가지 아픔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이런 것들이 나 자신에게 깨어지는 과정으로다가 올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작가 오혜령은 70년대 희곡 작가로, 배우로, 방송인으로 수필가로
사랑을 받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30대의 뜨는 유명인으로 큰 교통사고와 함께 위암과 임파선 암을
진단 받게 됩니다. 그리고 3개월의 시한부 인생이 됩니다.
그는 날마다 죽음을 헤아리면서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한 존재임을 처절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얼마나 자신이 겸손을 가장한 교만이 가득함을 보게 됩니다.
병 자체보다 지난날을 회개하는 나날로 보내게 됩니다.
임의롭게 살았던 지난날의 두려움이 엄습할 때 눈물만이 흘러 내렸습니다.
 
이렇게 회개하기를 6개월이 넘어 가던 어느 날
기도와 찬양하며 혼자 예배드리는데 온 몸이 오한이 덮쳐옵니다.
이제는 죽는 가보다 하며 이불깃을 잡아당기는데 겨드랑이 잡히던 임파선
암 덩어리가 만져지지 않는 것입니다.
순간 어깨에 나있는 복숭아씨 만한 멍울을 만져 보았습니다.
그것도 안 잡힙니다.
복수로 가득 차 있던 배도 완전히 꺼져 있음을 알게 됩니다.
치유가 나타난 것입니다.

암이 치유됐다는 기쁨보다 더 감격스런 것은
주님이 자신의 안에서 임재하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치유가 된 후 지금은 자신의 집을 오픈(Open)해서 자신의 경험을 통한
영성 훈련으로 조용히 많은 분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의 고백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가 삶의 에너지를 받는 것은 수면이나 먹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자신의 육신을 지탱하는 방법일 뿐입니다.
저의 힘의 활력은 오직 주님을 의지하게 하는 기도입니다.
그분 안에 거하는 자체만으로도 한없는 평안을 경험합니다.
그분의 평안 안에 들어가 고요하게 주님을 바라보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자연스럽게 정리가 됩니다.
이런 영성훈련이 경험되어지고 경륜이 깊어지면
 어떤 상황과 현실의 문제가 다가와도
감정적으로 흔들리지 않고 누가 뭐라고 해도 전혀 동요됨 없이
웃음과 여유로움과 덕과 평화로움이 지속됨을 체험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성경은 그 영혼이 바르게 되면 범사가 자연스럽게 잘되고
몸은 저절로 강건해 진다고 했습니다.
영성 훈련은 사람이나 환경에 영향 받지 않고 삶의 깊이를 더하는 훈련입니다.
그리스도이 영이 나의 영과 더블어 나를 통해 주님의 행하시는 일이  
나의 몸과 행위를 통해 나타나는 삶이 되였으면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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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10. 9. 10. 03:55

삶을 단순하게 비울수 있어야 한다.



삶은 단순하게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백 동흠

삶은
깊은 내면에 생명이 있고
뿌리가 있다.

삶은 그냥 거기에
존재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안에 맥이 있고
흐름이 있다

삶은 단순하며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
물 흐르듯 그렇게
흐르게 하는 것이 좋다.

회칠하고
복잡하고  
산만되이 흩트려지게 하면
본연의 나를 잃게 된다.

얽어매고 눌리게 하는
이 모든 것에서
나를 풀어 놓아
생명이 물 흐르듯  
흐르게 하려면
단순하게 비울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나를 회복할 때
삶은 비로소 날개를 달게 된다.

詩作노트

살다보면 본질적인 것이 아닌데
마치 목숨 걸고 문제 삼고 갈등하는 일을 많이 봅니다.
가정사리도 그렇고 목회도 그렇습니다.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정말 별것도 아닌데 …….
얼마나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며 신경 쓰게 하며 불면(不眠)에 시달리게 하는지
인생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단순해지고 싶었습니다.
그저 나를 비우고 싶었습니다.
그저 물 흐르듯 흐르는 자연(自然)같은 내 모습 그대로 이고 싶습니다.
내안에 그의 생명이 물같이 흐를 때
얼마나 편하고 좋은지 자유 함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삶에 날개를 단 기분이었습니다.

영성 2009. 10. 18. 03:23

비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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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빈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백 동흠목사
빈 마음을 가져 보세요.
상처와 응어리, 그리고 상념과 집착의 끈, 끝없는 욕심 덩어리, 잘 되여지고 자하는
욕망등  다 마음의 그릇에서 쏟아 내어 보세요.
그럼 내 영 깊은 곳으로부터 깨끗하고 맑은
생명과 평안이 흘러 나와 고일 것입니다.
그럼 내가 행복하고 나로 인해 나의 주변의 사람들도 행복해 지게 됩니다.

어떤 프로 골퍼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홀에서 마지막 퍼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퍼팅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머리를 숙이고 짤막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퍼팅을 했습니다.
그러자 볼이 반듯하게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결국 우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승을 축하해 주었는데,

어느 기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까 진지하게 기도하던데,
우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요, 반대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승컵 욕심이 없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지요."
“왜요?”
“마음을 비우면 평안하니깐 요?”
이 이야기는 래리 넬슨이라는 프로 골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뜻을 이루겠다, 반듯이 성취하겠다.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닙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빈 마음입니다.
강한 욕망과 욕심이 앞서는 한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잘 되면 교만에에 빠지고  못되면 실의와 열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해 지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좋아 합니다.
그분은 나의 마음을 자꾸 비우게 합니다. 비움으로 채움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평강으로 채우고 그의 거룩으로 채웁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경험되여집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저는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을 영성훈련이라고 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답니다.

영성 2009. 10. 13. 14:02

영성훈련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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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신령의 세계의 접목점입니다.

어떤 분이 평소에 술 먹는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날 밤늦게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데 나가 보니까 남편이 엉망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남편을 간신히 집에 부축해 들이고 나니까 자기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신세가 처량했지만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 무릎을 끌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내면의 영으로부터 "감사하라"는 성령의 소리가 들려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는데, 감사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남편으로부터도 감사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속썩이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렇게 술에 만취되어도 사고 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집에 찾아오니 감사했습니다.
또한 술을 그렇게 먹어도 건강하니 감사하고,
본인은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니까 시름이 덜어지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때 누워 자던 남편이 목이 말라서 눈을 뜨고 보니 아내가 사랑스런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아내는 상냥하게
"너무 감사한 것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하면서 조목조목 감사한 것을 말하는데
남편이 "알았어! 예수 믿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더니 이내 코를 골면서 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부터 진짜 교회를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여보 당신 웬일로 이렇게 순순히 교회를 따라 나올 수 있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입에서는 놀라운 간증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 날밤 눈을 떴을 때 천사를 보았어"
감사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남편은 천사의 모습을 본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사실 문제의 모든 선택은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속상하고 화나는 일 앞에서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의 영의 도우심을 받으면
평안과 생명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스스로 속을 썩이며 혈기를 부리고 강팍으로 굳어지면
먼저 자신이 파괴적이 되고 문제는 더 꼬이고 결국 망함으로 가게 되여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심으로 영의 생각으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영성 훈련이란 고요하게 영의 흐름을 타고자 하는 훈련입니다.
살면서 속이 상할 때 심호흡을 하며 영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해보기 바랍니다.
의외로 성령께서 내 영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주의 평강으로 흘러가게 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성 2009. 10. 9. 06:21

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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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백  동흠목사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신앙 그 자체로 성숙한 인간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잘못된 신앙의 소유자는 더 왜소하고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유대사회는 굉장히 배타적이며 편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자신들의 옳다고 하는 신앙에 의한 처세였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그것으로 얼마나 많은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정죄했나 모릅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개 돼지로 몰아 갔고 이웃의 사마리아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밟지도 않고 겉돌아 갔으며 세리와 창기를 보면 그 앞에서 침을 탁 뱉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며 등을 돌려 외면했습니다.

급기야는 예수님에게도 배타적으로 대했고 왜곡과 편협 속에 죽음의 자리로
몰아 갔습니다. 그런데 다 이런 짓을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한 것입니다.

배척하므로 배척당하며 거부하므로 거부당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국 그런 민족, 사회, 개인은 망하게 됨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주님은  또 하나의 영성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소리에 대해 듣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수용하는 훈련입니다. 수용하되 진실된 마음으로 품는 훈련입니다.
그를 긍휼이 여기고 그의 생각과 마음과 언어들을 존중이 여기는 훈련입니다.
스스로 배타적이거나 편협적이지 말자고 나의 마음에게 자주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번 스스로 진단 보기 바랍니다.

① 생각: 나는 너무 나의 생각에 집착하고 자기 주관적이고 강하지 않는가?
② 관계: 나는 나의 취향에 맞거나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하고 만 있는가?
③ 일: 나는 나의 일 외에 몰라라하며 선을 긋고 냉정하고 안중에도 없지 않는가?
④ 사람: 나는 사람에 대해 은연중 비판적이고 수근대는 형이 아닌가?

나의 강함을 스스로 꺾자. 그리고 마음을 비우자,  역량(力量), 즉 그릇됨을 넓히자 그리고 안목의 폭을 멀리 보자. 

창문이 열려 있으면 집안이 신선한 바람이 흐르게 되어 있다. 내가 열면 그도 열게 되여 있다.  내가 존귀하게 다가가면  그도  존귀하게 다가 오게 되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풍요로와 지게 되여 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스스로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것은 스스로  불려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하나되게 하고 하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셨습니다.(엡2:14-16)

예수님은 내안에서 나의  마음의 폭을 넓혀지게 해 주시고  상대를 수용하게 해 주시며 그의 입장 안에 들어 가게 해 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풍요의 삶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게 해 주십니다.

상대에 따라 내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 따라 반응하게 하기 위해 나 자신이 조용히 주님앞에 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영성 훈련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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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에로의 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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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성에의 삶으로 초대하고 싶다.

                                                                      백  동흠목사


LA에서 북서쪽으로 조금 가면 우리 동네가 나온다.
그곳에는 아름답고 조용한 호수가 낀 Park 있다. Balboa Lake Park 이다.
얼마 전 아이들과 함께 Park에 가게 되었는데 아이들이 연을
가져 왔다.
이때 아주 모처럼 만에 연을 띄워 볼 수가 있었다.
땅은 바람이 잔잔했으나 창공은 바람이 심했는지 연은 아주 높이 멀리까지 날았다.
난 얼마나 높이 나는지 실타래의 실을 다 풀어 주었다.
연은 아주 조그만하게 보인다.
그래도 팽팽하게 받혀 주는 실타래의 줄에
의해 푸른 창공을 힘있게 나는 것을
볼 수가 있었다.
난 연을 날리며 몇 가지 귀한 것을 되새길 수가 있었다.

 첫째는 빈 마음이다.
가벼게 한 빈 마음이다.
요즈음 깊은 기도를 하면서 내 안에 사심을 털어 버리게 된다.
집착의 고리를 끊게 한다. 수많은 잡념과 상념들을 단조롭고 단순하게 풀어 버리게 한다.
그 동안 스스로 쌓아 놓았던 뭔가 위대하게 될 것 같았던 나의 착각들을 내려놓게 한다.
오히려 비어 놓으므로 가득 채워지는 은총이 있다.
가벼이 푸른 창공을 향하여 떠날 수 있는 맑은 영이다.

둘째는 바람이다.
바람은 괴롬이 아니라 기회이다. 오히려 거센 바람일수록 더 높이 오를 수 있는 흐름이다. 이 풍랑 인연하여 더 빨리 간다는 찬송가의 구절도 생각이 난다.
그래서 그런지 불평이 없다. 원망도 없다. 평안이 있고 감사가 있을 뿐이다.

셋째는 실타래의 한 가닥의 실이다.
날고 있는 연의 실을 만져 보라 살아 있음을 느낀다.
팽팽히 살아서 힘을 주고 받혀주는 어떤 실체감이 있다.
연은 실 한 가닥에 전폭적인 신뢰를 준다. 유일한 생명의 선이다.
우리의 실타래는 성령님이시다.
전폭적인 신뢰를 함으로 그분이 우리의 내부에서 받혀 준다.
다양한 선물과 은사를 공급하신다.

아!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좁디 좁은 골짜기에서 무거움에 눌려 살지
말고 저 푸른 창공을 날아 보자고
영성에의 삶으로 초대하고 싶다. 샬롬


영성 2009. 6. 26. 13:40

삶에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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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에서-
도종환님의 깊은 물이란 시가 있습니다. 

“물이 깊어야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로 뜨는가?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한국 사회는
'난민촌'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글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난민촌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사회다.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유행성),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잊어버리는 냄비 현상,
지역과 같은 원시적인 기준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패거리 현상(국회)도
난민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난민촌에선 괴질(怪疾)에 대한 자극적
소문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거나(광우병 파동)
누구를 도사로 떠받드는 것이(미네르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난민촌에서 중요한 것은 내일은 또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어와
어떤 바람개비를 돌릴 것이냐”


성경은 바람에 나는 겨의 현상을 “악”이라고 했습니다.(시1:4)
그리고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은 내게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야1:6) 주님은 마음의 심지가 있는 사람에게 평강으로 이끄신다고도 했습니다.(사26:3)
오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은 바다 물결 같이 요동하게 하고 있고
바람의 나는 겨 같이 이리 불게하고 저리 불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사람들은 삶의 뿌리가 없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삶은 하나님 보기에 “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 예수의 사람들은 생명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밖에 있는 것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난 문은 닫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마66)

골방은 내면의 세계요 뿌리가 있는 영의 세계를 뜻하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는 안정된 질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이 그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요합니다. 그래서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을 따라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게 주어진 길,
작정된 데로, 기록된 데로 묵묵히 가게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영성입니다.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정말 그대의 삶은 깊음이 있는가?

그대의 가슴에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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