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0. 23. 13:51

낙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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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엽”

                                                      백  동흠

                                             제철을 만나
                                             그렇게 푸르게
                                             만발하더니

                                             이제
                                             때가 되어

                                             자신의 길을
                                             떠나는
                                             의연한 모습

                                             때가 되면
                                             이렇듯
                                             떠나야 하는데

                                             나의 가을
                                             그 날의
                                             떠남을 위해

                                             푸른 소명을
                                             다 하고 싶다

                                             그래서
                                             따뜻한
                                             가을 햇살에

                                             옅은
                                             바람의
                                             미소를 타고

                                             여유 있는
                                             떠남을
                                             배우고 싶다

                                             이제
                                             떠나는
                                             낙엽같이

                      

                      詩作 노트
                            인생이란 이렇듯
                            때가 되면 가는 것이 순리랍니다.
                            저마다 삶이 있고 사연이 있지만
                           
그날의 떠남을 위하여
                            오늘 내 주어진 살아 있는 날을
                            열심히 살아야 하겠다는 생각이들었습니다. 
                            오늘! 따뜻한 가을 햇살에 
                            옅은 바람을 타고 
                            한 개의 낙엽이 나의 삶의 뜨락에
                            떨어지는 것을 보며 
                            나의 삶을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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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09. 10. 22. 15:09

그 사랑이 샘이 되여 솟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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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리워 집니다.

                      백 동흠 목사

김용택님의 시 한편이 참 좋았습니다.
“내 마음이 당신을 향해
언제 열렸는지 시럽기만 합니다.
(중략)
하루 종일 시도 때도 없이 곳곳에서 떠올라
비켜 주지 않는 당신 얼굴 때문에
어쩔 줄을 모르겠어요
(중략)
밤이면 밤마다 당신을 향한
열린 마음 닫아 보려고
찬바람 속으로 나가 보지만
빗장 걸지 못하고
시린 바람만 가득 안고 돌아옵니다.“ (빗장)

살면서 사랑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
기성인간이 되여
점점 마음이 차게 굳어지는
나의 모습을 보면 스스로 슬퍼집니다.
시릴 만큼 그리워지는 “당신의 얼굴”이 있는 마음이 행복합니다.

어느 노(老) 철학자의 이야기입니다.
늙은 할머니가 길에 쓰려져 있었답니다.
그냥 갈 수가 없어서 다가가
“할머니? 괜찮으세요?”
일으켜 세우는 순간 놀았답니다.
할머니의 얼굴이 홍조가 일고 기쁨으로 가득 고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노 철학자는 물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기쁨으로 가득 찬 얼굴을 하고 계세요?”
할머니의 답은 단순했습니다.
“난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있으니까요.”
노(老) 철학자는 중얼거렸습니다.
“내 평생에 그렇게 학문을 하며 애쓰며 찾은 것이 저런 얼굴인데...”
그 할머니의 얼굴을 보고 주님을 영접한 분이
평화 철학자 러셀의 스승인 화이테드였습니다.

정말 할머니가 품었던 그런 사랑이 그리워집니다.
환경 속에 사랑할 만한 사람이 있어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의 사랑이 있어 그 사랑이 샘이 되여 흐르는 사랑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추한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임을
시로 쓰는 사랑의 시인이 되고 싶답니다. 샬롬!

계시록 강해 2009. 10. 21. 02:11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⑨부록편

본 강해는 그라나다힐 한인교회 새벽 강단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제9과 부록편
두아디라 교회- 중세 암흑시대의 핍박의 역사

1. 위클리프의 개혁
"개혁의 샛별"로 불리는 개혁주의자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4-1384)는
에드워드 2세 때인 약 1324년 경에 태어났습니다.
성경을 번역했다는 이유로 위클리프는 이단으로 몰려 정죄를 받고 출회를 당했으나,
그래도 1384년에 죽을 때까지 계속해서 성경번역을 수행했습니다.
그런데 그 때까지는 인쇄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번역 성경은 일일이 손으로 필사를 해야 했습니다. 보통 한 권의 성경을 필사하는 데는 열 달 정도가 걸렸고,
그 가격도 만만치가 않아서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의 일 년치 봉급이나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양의 성경이 필사되자, 마침내 영국 국회 법령을 제정하여
위클리프의 성경을 보급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1382년 그의 모든 저술들은 불태워졌다. 그 해에 위클리프는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1384년 12월 31일 두 번째 쓰러져 뇌졸중으로 사망했습니다.
위클리프가 죽은 후 그의 적대자들은 1415년에 있은 콘스탄티 공의회에서 위클리프의
사상을 퇴출하였고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레고리 11세와 우르반 6세는 그 이전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위클리프를 정죄한 바
있었습니다. 1428년에는 그의 시신이 축성된 장소로부터 이장되었습니다.


2. 얀 후스
얀 후스(Jan Hus, 1372년? ~ 1415년 7월 6일)는 체코의 신학자이자 종교개혁자이다. 그는 존 위클리프의 예정구원설을 기반으로 성서를 그리스도교 믿음의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을 강조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을 보였습니다.
교황 등 로마 가톨릭 교회 지도자들의 부패를 비판하다가 1411년  교황 요한 23세에
의해 교회로부터 파문당했습니다,
콘스탄티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415년 화형에 처해졌다.
그는 마지막 죽음의 길에서 한 말을 예언적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지금 나는 죽지만 제2의 제3의 개혁자는 반듯이 일어 날 것이다.”

3. 프랑스의 왈도파 :
“왈도파”라는 이름은 그들의 지도자 피터 왈도에게서 유래합니다.
왈도는 리옹의 부한 상인이었는데, 그의 모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렇게 베풀고 나누워 주면서 전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가장 성서적이고 그리스도의 원래의 가르침에 맞추어 설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왈도에게는 많은 추종자들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이 사용하기 위하여 신약성서를 프랑스어로 옮기었습니다.
그와 그의 설교자들은 이곳저곳을 다니며 사람들에게 더 좋은 삶을 살도록 권면하였고 그들을 성직자에게 데려오기보다는 오히려 구원으로 인도하는 지식을 얻기 위하여
성서로 돌아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런데 로마에 그 말이 전해지자 교황은 어떤 사람도 자기에게서 그 특권을 받지 않고는 설교할 수 없다고 금지하는 명령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왈도는 “나는 사람보다 오히려 하나님께 복종할 것이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그는 곧 출교당해 “이단자”가 되었고, 그와 그의 추종자들은 범법자로
몰아 갔습니다.
로마 교황은 그런 무리들을 파괴하고 없애는 것은 크리스챤 교회가 전체적으로 나서서
협조할 의무라고 공포하고, 그들을 괴롭히고 박해하기 위해 여러 가지 규정들을
시행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가 계속해서 증가하자, 그는 더 나아가
가지각색의 파문과 법규와 율령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제 왈도파는 그 정부 하에서는 어디에서고 안전을 기약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땅은 빼앗겼고 그들의 재산은 몰수를 당했으며 죽은 자들의 시체까지도 장례되는 것이 금지되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이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가려고 하면 그들을 발견되는 대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추운 겨울에 왈도파 모든 주민과 이미 공개된 지역사람들은 삼일 안에 그들이 로마교회로 개종하지 않으려면 그들의 집을 떠나 산으로 은퇴하라는 것이었 습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그들 가운데 한 사람도 주저하지 않고 그 조건들을 수락하였습니다. 그들은 “우리는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 한 분 만을 믿는다.
그리고 성경을 따라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법대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인간이 만든 어떤 교리와도 타협할 수 없으며, 어떠한 세력도 우리를 우리의 신앙에서 떠나게 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의 거처와 집들을 포기하였고, 눈 속에서 강을 건너며 어렵게 급류를 통과하여
동굴이나 불쑥불쑥 내민 바위 아래 안식처를 마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때 즈음  15,000명의 군대가 즉시 그 골짜기로 출동하였고 .
신실한 하나님의 성도들을 야만스럽게 살해했습니다.

12,000이나 넘는 남녀 성인이 어두컴컴한 토굴에 갇혀서 가장 잔인한 취급과 고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아주 형편없는 빵을 먹었으며 썩은 물을 마셨습니다.
그들의 유일한 침대는 맨 돌이나 썩은 짚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부러 사람들을 매우 빽빽하게 차게 했기 때문에 열병과 다른 질병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죽게 했습니다.
이렇게 고통스러운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로마교회로 개종하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습니다.
그러나 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앙을 계속해서 고수하였습다.
그러한 취급을 받는 가운데 몇 개월 안에 그들의 수가 12,000명에서 3,000명으로
감소되었고. 점점 그 수가 줄어들었습니다.
그러나 동굴 안에는 항상 찬송소리가 끈이지 않았고 그들은 기도와 함께 영광스럽게
죽어 갔습니다.

4. 마녀 사냥식 종교 재판
종교 재판소에서 일반적으로 집행되는 고문은 사람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들이었습다.
그곳에는 늘 무시무시한 살인도구들이 있었고 죄수들의 뼈와 사지를 늘어뜨려
어긋나게 하는데 쓰이는 도르래와 밧줄, 벤치 등등 무서운 기구들이 있었는데,
몇 주일이고 고문을 하다가 결국에는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습니다.
역사에 보면 스페인 세빌레 시에 세워진 종교재판소 소장으로 죽을 때까지
18년간 봉사한 토르크마다라는 성직자는 그의 임기 동안 10,220명이나 되는 사람을
산채로 불에 태워 죽였고, 97,322명의 재산을 몰수, 투옥시켰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웃지 못 할 사실은, 그들이 이단자들을 이렇게 고문을 한 이유는
그들이 소위 말하는 이단(성경대로 믿는 기독교 신앙)을 믿는 사람들에게 고문을
가하여, 그들이 이단을 믿는 것을 포기하게 하여야 지옥이나 연옥에 가서 받을 형벌이
감해진다고 믿었으므로 그 고문이 이단자들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이었습니다.

로마 천주교회의 권위에 복종하지 않은 수백만의 사람들은 무자비하게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역사학자들은 순수한 성경의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고문을 당하거나
순교를 당한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대략 5천만 명에서 1억 명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교황권이 지배하던 중세기 시대에 남자들은 물론이거니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까지도
성경을 따른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일은 거의 모두가 교황권을 추종하는 세속적인 국가들에 의하여 이루어졌다.

결론
루터, 칼뱅, 츠빙글리, 제롬 등은 가톨릭교회를 적그리스도, 바벨 종교로 선언하며 목숨을 걸고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것이다. 루터는 외쳤습니다.
“이 땅에 마귀 들끓어 우리를 삼키려하나 겁내지 말고 섰거라. 진리로 이기리로다.
친척과 재물과 명예와 생명을 다 빼앗긴대도 진리는 살아서 그 나라 영원하리라”

이것이 두아디라 교회의 역사적 실체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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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09. 10. 18. 03:23

비움으로 채워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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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빈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백 동흠목사
빈 마음을 가져 보세요.
상처와 응어리, 그리고 상념과 집착의 끈, 끝없는 욕심 덩어리, 잘 되여지고 자하는
욕망등  다 마음의 그릇에서 쏟아 내어 보세요.
그럼 내 영 깊은 곳으로부터 깨끗하고 맑은
생명과 평안이 흘러 나와 고일 것입니다.
그럼 내가 행복하고 나로 인해 나의 주변의 사람들도 행복해 지게 됩니다.

어떤 프로 골퍼가 우승을 눈앞에 두고 마지막 홀에서 마지막 퍼팅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퍼팅을 앞두고 많은 사람들이 보는데서 머리를 숙이고 짤막하게
기도합니다. 그리고 퍼팅을 했습니다.
그러자 볼이 반듯하게 홀 컵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결국 우승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승을 축하해 주었는데,

어느 기자가 그에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까 진지하게 기도하던데,
우승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나요?"
그러자 그가 대답을 합니다.
"아니요, 반대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우승컵 욕심이 없어지게 하소서! 라고
 기도했지요."
“왜요?”
“마음을 비우면 평안하니깐 요?”
이 이야기는 래리 넬슨이라는 프로 골퍼의 이야기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마음은 무엇일까요?
"뜻을 이루겠다, 반듯이 성취하겠다. 성공하겠다."는 마음이 아닙니다.
정작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은 빈 마음입니다.
강한 욕망과 욕심이 앞서는 한 그 사람의 인생은 행복해 질 수 없습니다.
잘 되면 교만에에 빠지고  못되면 실의와 열들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 행복해 지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좋아 합니다.
그분은 나의 마음을 자꾸 비우게 합니다. 비움으로 채움을 경험하게 합니다.
그의 평강으로 채우고 그의 거룩으로 채웁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따라가 보면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 경험되여집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저는 마음을 비우는 것, 이것을 영성훈련이라고 합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답니다.

영성 2009. 10. 13. 14:02

영성훈련 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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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신령의 세계의 접목점입니다.

어떤 분이 평소에 술 먹는 남편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습니다.
그 날 밤늦게 누가 대문을 두드리는데 나가 보니까 남편이 엉망으로 쓰러져 있었습니다.
남편을 간신히 집에 부축해 들이고 나니까 자기 신세가 참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자기 신세가 처량했지만 한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님께 무릎을 끌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 내면의 영으로부터 "감사하라"는 성령의 소리가 들려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감사할 것이 있나?" 하고 생각해 보는데, 감사할 것이 전혀 없을 것 같았던
남편으로부터도 감사할 것이 생각났습니다.

아무리 속썩이는 남편이라도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감사하고,
그렇게 술에 만취되어도 사고 당하지 않고 꼬박꼬박 집에 찾아오니 감사했습니다.
또한 술을 그렇게 먹어도 건강하니 감사하고,
본인은 교회에 나가지 않지만 나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으니 감사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보니 감사할 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렇게 감사하니까 시름이 덜어지고 얼굴이 밝아졌습니다.
그때 누워 자던 남편이 목이 말라서 눈을 뜨고 보니 아내가 사랑스런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보! 무슨 좋은 일이 있어?" 아내는 상냥하게
"너무 감사한 것이 많아서 그래요!"라고 하면서 조목조목 감사한 것을 말하는데
남편이 "알았어! 예수 믿어줄 테니 걱정 말라!"고 말하더니 이내 코를 골면서 잤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 주일 부터 진짜 교회를 나오더라는 것입니다.
"여보 당신 웬일로 이렇게 순순히 교회를 따라 나올 수 있었어요?" 하고 물었습니다.

남편의 입에서는 놀라운 간증이 나왔습니다.
"사실은 그 날밤 눈을 떴을 때 천사를 보았어"
감사하는 아내의 얼굴에서 남편은 천사의 모습을 본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님!

사실 문제의 모든 선택은 자신의 내면에 있습니다.
속상하고 화나는 일 앞에서 나 자신을 주님께 드리고 그의 영의 도우심을 받으면
평안과 생명으로 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면 스스로 속을 썩이며 혈기를 부리고 강팍으로 굳어지면
먼저 자신이 파괴적이 되고 문제는 더 꼬이고 결국 망함으로 가게 되여 있습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도우심으로 영의 생각으로 가게하고 있습니다.
영성 훈련이란 고요하게 영의 흐름을 타고자 하는 훈련입니다.
살면서 속이 상할 때 심호흡을 하며 영으로 들어가는 훈련을 해보기 바랍니다.
의외로 성령께서 내 영과 더불어 나의 마음을 주의 평강으로 흘러가게 하심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계시록 강해 2009. 10. 13. 12:03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⑨

본 강해는 그라나다힐 한인교회 새벽 강단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2장 강해 제9과
두아디라 교회- 시대적 적용

성경말씀
(2:24-25)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탄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은 없노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기간 : AD 590년부터 1517년
두아디라의 뜻: 제사 (미사)의 뜻을 갖고 있습니다.
교회의 특징: 영적 암흑시대의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1. 바벨 종교의 기원
두아디라의 교회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면 먼저 바벨 종교에 대한 배경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두아디라의 교회 역사의 정체가 서서히 바벨 종교의 형태로 나타나 왔기 때문입니다. 378년 다마스쿠스 감독이 바벨 종교의 제사장 직을 받아들이면서 교회는 바벨 종교의 조직과 형태로 서서히 갖추어 지게 되었습니다.

그럼 바벨 종교의 기원과 그 형태가 어떠한지를 먼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바벨의 제국은 니므룻에 의해 형성 됐습니다.
니므릇은 창세기 10장 8-9절에 나오고 있습니다.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창10:8-9)

하나님은 창세기 9장7절에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니므룻이 거역을 합니다. 그의 특이한 영걸의 힘을 백성을 하나로 묶습니다. 자신의 뜻으로 뭉치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도시를 세우고 그 중심에 바벨탑을 쌓게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왕으로 숭배하게 만듭니다. 문헌에 의하면 이 사건을 목격한 노아의 아들 셈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니므릇을 죽였다고 합니다.

둘째 바벨 종교는 그 아내 세미라미스에 의해서 만들어 졌습니다.
이때 니무릇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임신 중이었는데 세미라미스는 절세 미인였습니다. 그리고 음란하고 사악한 여인이었다고 합니다. 원래 세미라미스는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내입니다. 가나안을 통해 낳은 자식이 니므룻입니다. 그 어미가 그 아들 니무릇의 아내가 된 것입니다. 니므룻이 죽자 태어난 자신의 아이들 니무릇의 환생으로 이야기하고 이 아이가 여자의 후손이라고 함으로 그 아들을 태양신으로 만들어 바알이라고 하고 자신은 바알티 즉 신의 어머니라 칭하게 했습니다. 아기를 앉고 있는 어머니인 자신을 신의 어머니로 나타나게 한 것입니다.

이것이 천주교에서 성모와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그대로 재현 시켜 논 것이라고 합니다. 1854년에는 교황 비오 9세가 마리아 무원죄 잉태설(Immaculate Conception)을 발표하였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천주교에서는 마리아가 은총의 중재자라고 확정지었다고 합니다. (1917)
1951년 교황 비오 12세는 마리아의 몸이 썩지 않고 하늘로 올리어졌다고 발표하였고 1962마리아 종신 처녀설을 주장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 마리아를 신격화했고 오직 하늘과 땅의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그 자리에 마리아가 들어 서게 했던 것입니다.

셋째 바벨 종교의 제도와 조직은 서서히 발전 되여 왔습니다.
보통 왕정 시대의 국가를 보더라도 내시가 있고 시녀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평생을 수절하고 오직 왕에 드려진 몸으로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바벨의 종교 안에도 이런 신전의 봉사자들이 있었고 이런 형태로 나타난 것이 오늘날 신부와 수녀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 보다 미사라고 하는 제사 제도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배를 대신하게 됐고 그 미사 뿐 아니라 교황 추기경, 대주고 신부의 직위도 바벨 종교의 형태를 따라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교회시대의 성취의 모습
루터의 종교 개혁이전의 시기를 암흑 시기라고 합니다. 이 두아디라의 교회의
모습입니다.
이사벨에 의한 행음하는 교회로써 이 암흑 시기에 이루어진 교회 역사는
머가모 교회의 황제 숭배의 핍박을 능가하는 교회 수난의 시대였습니다.
중세의 교회는 성경이 교회에서 사라졌고  기도도 형식화된 기도문으로 대신하고 교회는 제도와 의식에 묶여 있고 종교 재판의 이름으로 교회의 원 모습을 찾고자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마녀 사냥 식으로 잡아 죽었습니다.
이렇게 죽은 사람이 1천만 명이 훨씬 넘는다고 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중세 교회의 종교 재판의 역사를 살펴보시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3. 앞으로 될 일- 바벨 종교의 출현
문제는 앞으로 될 일속에 바벨 종교의 출현과 음녀의 활동이 나타나게 될 것을 요한 계시록은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7장 3-5절)
결국 교회 시대의 끝자락에 적그리스도의 출현은 로마의 판도를 장악하는 황제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바벨의 종교의 형태를 띤 음녀(음녀란 혼합된 교회의 모습을 칭함)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결국 정치적 황제의 세력과 종교적인 음녀의 세력이 나타남을 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666이란 경제적 시스템을 통해  온 인류에게 짐승의 표를 받게 함으로
세계를  장악하고 자신을 숭배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것이 사탄과 짐승(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음녀)의 흐름이 될 것임을 요한 계시록은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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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2009. 10. 9. 06:21

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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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타적인 나의 모습이 아닌가?”

                                                       
 백  동흠목사

사회학자나 심리학자들은 신앙 그 자체로 성숙한 인간을 평가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오히려 잘못된 신앙의 소유자는 더 왜소하고 편협적이고
배타적이며 폐쇄적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들을 포함한 유대사회는 굉장히 배타적이며 편협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자신들의 옳다고 하는 신앙에 의한 처세였습니다.
자신들이 옳다고 하는그것으로 얼마나 많은사람을 손가락질하며 정죄했나 모릅니다. 그래서 이방인을 개 돼지로 몰아 갔고 이웃의 사마리아 사람이 살고 있는 땅은 밟지도 않고 겉돌아 갔으며 세리와 창기를 보면 그 앞에서 침을 탁 뱉고 인격적으로 모독을 하며 등을 돌려 외면했습니다.

급기야는 예수님에게도 배타적으로 대했고 왜곡과 편협 속에 죽음의 자리로
몰아 갔습니다. 그런데 다 이런 짓을 신앙의 이름으로 자행한 것입니다.

배척하므로 배척당하며 거부하므로 거부당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결국 그런 민족, 사회, 개인은 망하게 됨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주님은  또 하나의 영성훈련을 하게 하십니다.
나 자신을 스스로 보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타인의 소리에 대해 듣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수용하는 훈련입니다. 수용하되 진실된 마음으로 품는 훈련입니다.
그를 긍휼이 여기고 그의 생각과 마음과 언어들을 존중이 여기는 훈련입니다.
스스로 배타적이거나 편협적이지 말자고 나의 마음에게 자주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한번 스스로 진단 보기 바랍니다.

① 생각: 나는 너무 나의 생각에 집착하고 자기 주관적이고 강하지 않는가?
② 관계: 나는 나의 취향에 맞거나 나와 코드가 맞는 사람하고 만 있는가?
③ 일: 나는 나의 일 외에 몰라라하며 선을 긋고 냉정하고 안중에도 없지 않는가?
④ 사람: 나는 사람에 대해 은연중 비판적이고 수근대는 형이 아닌가?

나의 강함을 스스로 꺾자. 그리고 마음을 비우자,  역량(力量), 즉 그릇됨을 넓히자 그리고 안목의 폭을 멀리 보자. 

창문이 열려 있으면 집안이 신선한 바람이 흐르게 되어 있다. 내가 열면 그도 열게 되여 있다.  내가 존귀하게 다가가면  그도  존귀하게 다가 오게 되여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풍요로와 지게 되여 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스스로 외롭고 고독하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그것은 스스로  불려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막힌 담을 허시고 원수 된 것을 하나되게 하고 하나된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 되게 하셨습니다.(엡2:14-16)

예수님은 내안에서 나의  마음의 폭을 넓혀지게 해 주시고  상대를 수용하게 해 주시며 그의 입장 안에 들어 가게 해 주십니다. 그때 비로소 풍요의 삶이 무엇인지를 체득하게 해 주십니다.

상대에 따라 내가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나에 따라 반응하게 하기 위해 나 자신이 조용히 주님앞에 서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영성 훈련입니다.  한번 해 보세요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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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강해 2009. 10. 8. 04:40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⑥

본 강해는 그라나다힐 한인교회 새벽 강단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제6과
버가모 교회-도시적 배경 (사단의 위(位))

성경말씀(2장12-13)
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13.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1.
 도시 배경
버가모는 소아시아의 수도입니다. 로마의 총독이 주재하는 도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도시가 윤택하고 풍요로웠습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은 20만권의 이상의 양피 두루마리 장서를 소장하고 있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이곳은 바벨 우상의 본거지로 제우스의 고향이라고 해서 제우스신전이 웅장하게 보관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황제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 또한 술의 신 박카스을 섬기는 자들과 치유의 신으로 알려진 아클레피오스(Asklepios) 신을 섬기는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의학도들이 많이 모여 공부하던 곳입니다. 의술의 상징이 뱀의 기호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이 버가모에 사단의 위(位) 가 있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사단의 위에 대해서 아래와 같은 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말씀할 수 있습니다.

① 메시야의 출현
그 메시야의 인물이 니므룻이었습니다. 그는 영결이었고 특이한 사냥꾼으로 소문났습니다. 그가 메시야로써의 인물로 추앙을 받았습니다.
(창10:8-9)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로.

② 바벨제국의 형성
역사가 요세프스는 니므룻이 중심이 되어 바벨탑을 쌓고 그의 제국을 형성했다고 했습니다.

③ 바벨 종교의 출현
니므룻이 죽은 후 그의 아내 세미라미스가 니므룻을 품에 안고 있는 그림을 그리므로 자신이 성모로 나타나면서 고대의 바벨 종교로 만들어 자신을 백성들이 섬기게 함으로 그 땅을 통치하기 시작 했습니다. 이들이 바벨 탑 사건으로 흩어 질 때 이 종교를 마음에 품고 흩어 진 것입니다. 그 중심 세력이 자리 잡은 지역이 바로 버가모였습니다.

④ 황제 숭배 사상의 뿌리가 됨
로마의 황제는 자신이 바벨 종교의 제사장이라 해서 백성들을 결집하고 황제 숭배 사상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리고 이 황제 숭배 사상을 통해 엄청난 그리스도인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단의 수단이 되게 했습니다.

⑤ 로마의 교황에서 접목이 됨
AD 376년 그라시안 로마의 황제가 예수님을 믿고 난후 바벨 종교의 제사 직분을 맡을 수 없다고 거부 할 때 로마 교회의 감독이 (다마스커스 감독)이 바벨 종교의 제사 직분을 맡음으로 기독교 의식화 했습니다.
문제는 바벨 종교의 영향을 받아 마리아를 성모로 예수님을 아기로 만들었고 교황, 주고 신부, 수녀의 모든 체제가 바벨 종교의 영향에 의해 갖추어진 것이였습니다. 이 흐름의 근원으로 올라가면 이것이 바로 사탄의 위가가 아닌가? 라고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네의 길모퉁이에 천주교 성전이 있습니다. 지나가다 보면 사람들이 아기를 앉고 있는 마리아의 상 앞에 와서 두 손을 합장하고 절하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그때 마다 저것은 뭔가가 잘 못됐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⑥ 바벨 세력의 출현
문제는 계시록에서  미래의 어느 역사에 바벨 세력의 출현을 예고하고 있습니다.(계14,16,17,18장 참조) 큰 성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계17:5)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니므룻같은 가짜 메시야(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면 이 메시야는 옛 바벨론의 세력을 등에 지고 세계를 하나의 정부로 만들 것입니다.  어제 10월 6일자 신문에 보면 내년 즉 2010년에 유럽공동체의 대통령을 뽑는다는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 유망주가 영국의 토니 볼레어 총리가 될 것이라고도 했습니다. 이제 경제에 이어 정치적으로 하나가 됨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으로 하나가 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단체가 있다면 바티칸의 교황 중심일 것입니다. 또한 교황은 온 세계의 질서를 하나로 만들기 위해 세계의 종교가 하나로 뭉쳐야 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조금 지나면 하나로 통합하는 바벨 종교의 탄생이 나타날 것입니다.
한편 경제적으로 온 세계가 구축하고 있는 것이 666 시스템이 될 것입니다. 이미 신체에 바코드(Veri Chip)가 들어가서 시험단계를 벗어나 지역적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계시록적 상황이 구체화 되어 지고 있습니다.
바로 사단의 위(보좌)가 최초에 자리 잡은 지역이 버가모라는 소아시아의 어느 도시였음을 계시록은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모습
(2:12)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죄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예수님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분으로 나타나셨습니다. 결국은 말씀으로 이기게 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브리서 4:12) 지금은 말씀으로 무장하고 시대를 바르게 분별하며 깨어 있는 성도의 삶을 살아야 할 나날들입니다. 

결론:
사단의 위가 버가모란 도시라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는 큰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계시록에서 일러 준 것이기에 그자취를 추적해 보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사단은 지금도 하늘의 공중 권세를 잡고 어둠의 주관자가 되어 우리의 삶의 현장에 침투해 들어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케 하는 역사를 이루고 있습니니다. 가리지를 뿌리고 연막을 쳐서 주님의 영광을 비추이지 못하게 하고 거짓의 아비가 되여 개인과 가정을 파멸로 이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서서히 국가와 민족과 세계의 경영 속에 스며들어와 자신의 나라를 세울 것입니다. 사단은 한번 즈음 자신의 보좌를 세계의 모든 국가와 나라 위에 세우게 될 것을 성경은 예언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믿은 신앙은 농담거리나 종교적 액세사리가 결코 될 수 없습니다. 서서히 그의 조직적인 세력이 현실적으로 지금 거대하게 다가오고 있음을 알고 깨여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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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계시록 2장 강해 ⑤

* 본 강해는 그라나다힐 한인교회 새벽 강단의 말씀입니다.

요한 계시록 2장 강해 제5과  
서머나 교회의 시대적 적용(10일의 환란)

성경 말씀
(2:10)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찌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10 동안의 환란에 대한 해석
로마의 10대 황제의 교회 핍박의 역사로 계시록의 예언의 성취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 기간: AD 100년부터 312년 이야기 하고 있으나  핍박은 AD54년부터 시작 됐습니다.

① 네로(Nero) AD 54년-68년
네로 황제는 정신적 질환이 있는 자라고 합니다. 동생들을 독살했고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를 살해했습니다. 네로는 당시 200만의 도시, 로마를 신도시 로마 건설을 위한 것과 자신의 시를 취향을 위해 로마를 불사르고 시를 쓴 자입니다. 그리고 로마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이를 그리도인을 방화범으로 돌려 엄청난 핍박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이때 바울이 옥중에서 목베임을 당했고 베드로가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② 도미시안(Domitian) 81년- 96년
로마의 전통을 수호하기 위해 로마의 제신 숭배 정책을 폈습니다. 이일로 인해 교회가 핍박을 받기 시작 했습니다. 이때부터 교회는 지하 동굴로 들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박해의 범위는 로마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지역과 마케도니아 지역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때 에베소의 사도 요한이 기름 가마에 들어갔고 밧모섬에 유배를 당했습니다. 도미시안 황제는 참혹한 독재자란 악명 속에 정적에 의해 암살당하고 그의 이름은 로마의 원로원의 기록에서도 삭제되어 후세에 기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③ 트라얀(Trajan) 황제 98년-117년
트라쟌 황제도 여전히 신앙을 불법화 했고 로마의 전통과 황제 숭배사상을 강요 했습니다. 이 기간에 베드로의 수제자 이그나티우스가 순교를 당하게 됩니다.
80이 넘은 이그나티우스에게 예수를 부인하면 살려 주겠다는 최후이 통첩앞에서 주님은 한번도 나를 배반 안했는데 어찌 내가 그럴 수 있겠느냐 하면서 짐승의 굴로 스스로 들었갔습니다. 자신을 찢어 먹는 사자들에게 사자여 나를 빨리 먹으라 허벅 다리를 깨물고 나의 갈비뼈를 파헤쳐라 허파를 끌어 내고 심장을 먹으라 그래서 나를 내 사랑하는 예수님께 보내라 고 외치면서 순교 했다고 합니다.
이런 존경스런 교회의 지도자들의 순교가 불씨가 되어 더욱 북음을 퍼져 나갔다고 교회의 사가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④ 마르쿠스(Marcus Aurelius) 황제 161-180년
이는 북고주의 철학자로써 옛로마의 생활과 부활을 강조하다 보니 이것이 기독교 박해의 원리가 되었습니다. 이 시기에 폴리갑과 순교자의 대명사로 불리우는 져스틴이 순교를 당했습니다. 이들을 화형에 처한 후 그 가루를 강에 뿌렸다고 합니다.

⑤ 세베루스 황제(Septimus sevrius) 193-211년
신앙의 금지 칙령을 로마의 전영역에 조례를 내렸고 이에 불복종하는 자를 체포하고 연행하고 끝내 죽음으롤 몰았습니다. 이때 안디옥의 클레멘트가 순교 당하고 아프리카의 위대한 신학자 오리겐의 부친괴 이레니우스가 처형을 당하였습니다.

⑥ 막시미니우스 황제(Maciminius)   235-238년
로마의 역사는 이 황제의 제위기간 50명씩 60명씩 합장하여 돌로 쳐 묻어 버리는 핍박을 가햇습니다.

⑦ 데시우스(Decius) 황제 249-251년
조직적으로 기독교를 완전 뿌리를 뽑겠다고 무섭게 핍박을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찍 죽었다. 이때 오리겐이 투옥당했고 키프리안이 추방을 당했습니다.

⑧ 발레리안(Valerian) 253년- 260년
칼타고의 감독이고 당시 최고의 저술가 시프리안이 마침내 순교를 당했습니다.

⑨ 아우렐리안(Aurerian) 270-275년

⑩ 디오클레티안(Diocletian) 284년- 311년
마지막 핍박의 황제로  교회의 최후의 환란의 시기였습니다. 성경을 철저하게 압수했고 교회를 다 불태웠습니다. 더 이상 로마에서는 기독교인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박멸 성공 기념비를 세웠다고 합니다.
그후 콘스탄티의 기독교 국교를 선언함으로 서머나 교회의 환란의 때가 지나가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시기 동안에 약 500만 명의 크리스천이 순교 당했다는 교회사가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이 시기에 카타콤의 지하 교회가 형성되었습니다. 땅 안의 도시로써 지금도 그 안에 들어가면 수많은 동굴로 연결되어 있기에 잘못 들어가면 미로가 된다고 합니다. 곳곳에 넓은, 광장도 있어 예배의 처소로 모였고 벽을 내어 시체를 넣는 무덤의 동굴도 있습니다. 200여 년 동안 대를 이어 땅 속에서 태어나 땅속에서 성장하고 죽어 갔지만 그들은 항상 기쁨과 희망 속에서 경건한 삶을 살다가 주님의 나라를 고대하면서 귀한 신앙의 뿌리를 후손들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카타콤 동굴은 그동안 발견되지 않다가 1854년 조반니 롯이란 사람을 통해 발견되었는데 120개의 동굴과 900km가 넘는 길이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발견 당시 카타콤에서 발견된 시신만 무려 600만구나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로마의 핍박을 피해 카타콤의 지하 동굴로 들어와서 200년이 넘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며 예배드렸습니다. 그들은 카타콤의 동굴에서 태어나서 죽고, 또 태어나서 죽고 200년 동안이나 카타콤의 동굴에서 신앙을 지켰다고 합니다.

2. 서머나 교회의 특징들
1. 서머나 교회는 핍박받는 교회의 모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머나라 뜻을 Crushed Myrrh 란 짓 이겨 논 방부제란 뜻으로 짓 이겨진 고통 속에서 몰약 같은 교회를 뜻 합니다. 환란과 핍박은 썩지 않게 하고 순수함을 보존케 하는 힘이 있습니다.
2. 서머나 교회는 핍박과 궁핍을 받는 교회라고 했으나 주님은 가장 부요한 교회라고 했습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2:9)
 서머나 교회는 책망을 하나도 받지 않는 교회로 유명합니다.
3. 10일간의 환란 기간이 10대 로마의 황제의 200년의 시기라고 할 수 있으나  주님은 잠시 잠깐이다. 하루살이 같은 고난의 길임을 알려 주었습니다. 이 짧은 고난의 날을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과 둘째 사망이 없는 영생의 나라를 주겠노라고 했습니다.

결론:
서머나 교회는 핍박박는 교회의 모형이었고 서머나 교회의 성도들은 핍박속에서 복음의 순수함을 지켜낸 성도의 모형이었습니다. 이긴 그 교회와 성도에게 생명의 면류관과 영생의 나라의 영원적 가치의 것으로의 보상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하기 “ 장차의 영광은 지금 당하는 고난과 족히 비교할 수 없다” 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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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09. 9. 26. 06:35

진정한 부요는 나눔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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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부요는 나눔에 있습니다.            

                                                                         백  동흠목사

한 마을에 큰 부자가 있었습니다.
자신의 아버지로부터 많은 땅과 돈을 물러 받았기 때문 이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집 옆에는 초라한 집 한 채가 있었습니다.
조그마한 사업을 하는데 항상 부지런하고 자신의 사업에 대해 보람과 긍지를 갖고 있습니다.
부자는 늘 그 사람을 비웃으며 무시했습니다.
“가진 것도 별로 없으면서 여유 있는 척하며 자신도 별로 못 살면서 사람들을 도와준다고 괜해 생색이나 내는 꼴하며...”하며 굉장히 기분 나빠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땅과 호화로운 집을 보면서 오늘 하루도 무위도식(無爲徒食)하며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 온 그의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버지. 우리 집은 부자가 맞지요?”
“그럼 우리 동네에서 우리 집이 제일 부자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 거니?”
“아버지 제 생각에는 우리 옆집이 더 부자인 것 같아서 물어 보는 것예요.”
아들은 말하는 것이 이었습니다.
“ 아니 애야 네가 보다 시피 옆집은 집도 초라하고 보기에도 볼품이 없지 않느냐?“
부자 아버지는 기가 막힌 듯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옆집 아이를 보렴. 옷도 항상 떨어져서 기운 옷을 입고 다니지 않느냐?”
아들이 답합니다.
“나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오히려 자기 엄마가 기워준 옷을 좋아하며 오히려 자랑하고 다니거든요”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우리 집 창고를 봐라 창고 안에 없는 것이 없지 않느냐 그리고 쌀도 항상 풍족하게 있지 않느냐? 그런데 그 옆집은 그나마 있는 쌀도 남에게 다 주고 없어서 쩔쩔 매고 있지 않느냐?” 라고 부자 아버지는 말했습니다.

그 다음 나온 아들의 대답이 걸작 이였습니다.
“ 아버지 제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우리 집은 쌀이 그렇게 많아도 남에게 줄 쌀 한 톨이 없는데 그 집의 창고는 거의 없어도 항상 남에게 줄 쌀이 있잖아요. 그러니 우리 집이 정말 부자인가? 해서 물어 보는 말이에요.”
아들의 말을 듣고 부자 아버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진정한 부자는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 부요를 얼마나 보람 있게 사용하며 쓰고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록펠러(J. D. Rockefeller)는 말하기를 "가장 가난한 사람은 돈밖에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사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요즈음 금융환란이다해서 너무 경제가 어렵다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돈 돈 돈하면서 힘겨워 하고 있습니다.
이럴 때 내면의 마음에 기름지고 가정의 생활에 정서적이 되고 만나는 사람에게 따스함을 주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께서는 원하고 계십니다. 
진정한 부요는 어려울 때도 항상 여유로움과 있음을  나누어 주는 삶을 사는 삶입니다.
정말 그대는 진정 부요한 사람인가 아니면 각박한 사람인가를 묻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