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4. 9. 3. 12:47

교황의 방문과 한국 교회의 위기 의식 4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4 

                                                    백동흠목사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진짜 한국 교회의 위기는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번영신학과 기복 신앙은 이제 끝났다는 것입니다.
전에는 이것이 먹혀들어 갔습니다.
너무나 가난했고 배고팠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땅도 샀고 건물도 샀고 성도도 많이 얻었습니다.
그런데 안으로 자꾸 쌓아 두고만 있습니다.
이것이 대형 교회가 되게 했습니다.
지금은 귀빈이 됐습니다. 명품족이 됐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주님의 축복이라고 간증했습니다.

반면에 가난하고 약한 자들은 믿음이 없는 자로 전략됐습니다.
무능한 자가 되게하는 풍토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성도님들은 교회에 오면 가난을 부끄럽게 여기고
고통과 슬픔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교회의 풍토가 되게 했습니다.
그래서 없어도 있어야 하고 마음이 아파도 웃는 얼굴을 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언제가 부터 교회는 특권층이 됐고
명품족으로 나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분이 교회를 떠나면서 고백한 말입니다.
“저 같은 서민은 안 어울리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형 교회에서 대형 비리가 터져 나옵니다.
돈 문제, 여자문제, 논문 표절 가짜 학위 등 소리 소문 없이 펴져 나옵니다.
분열과 분쟁이 터져 나옵니다.
사회에서도 없는 교회 세습이 나타납니다.
유능한 목사란 더 높은 곳으로 더 대접받는 곳으로 더 큰 대형 교회로
일방적으로 모셔가는 게리라식 청빙도 생겼습니다.
진짜 유능한 목사라면 더 가난하고 더 낮은 곳
더 대접 받지 못하는 곳으로 갔어야 했습니다.
이게 주님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언제가 부터
사회에로부터 들려오는 악풀이 개독교였습니다.
목사님을 먹사님으로 통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천주교의 교황이 왔습니다.
그는 검소한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품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사제가 부하면 위선이라고 했습니다.
자본가의 독식은 죽음의 문명이라고도 했습니다.
진정한 용서 없이 화해와 일치는 허상이라고도 했습니다.
고통에는 중립이 없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귀하고 소중한 말씀 말씀들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말씀들이 그의 인품에서 우러나온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결코 위선이 아님을 느끼게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 낮은 사람들이 몰려 왔습니다.
일반 사람들조차도 좋아 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조용기 목사님을 저는 굉장히 존경합니다.
교황과 한 살 차이 납니다.
교황의 기사들이 신문에 가득 차고 있을 때
그 한 쪽에 자그마하게 재판에 대한 형량이 기사가 났습니다.
얼마나 마음이 상하고 아팠는지 모릅니다.
이보다 더 존경 받고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우리 목사님이
이렇게 추락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 한국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요?

저는 감히 교황이 한국에 와서 우리 한국 교회가 가야할 방향과
자리를 가르쳐 주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한국 교회는
첫째는 언젠가부터 지교회 중심의 벽에 갇혀 있었습니다.
둘째 그 벽안에서 교회 건축과 축복을 특권으로 누리고 있었습니다.
셋째 그와 동시에 안으로부터 비리와 분열이 터져 나왔습니다.
넷째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입니다.

어느 틈엔가 백성과 서민들에게서 외면당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한국 교회의 위기가 서려 있었습니다.
2040년 이전까지 한국 교회의 성도의 수는 현재의 수(800만이라고 합니다.)
에서 1/2로 줄어 들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미 이단에게로 간 것만 해도 100만이 넘어섰다고 합니다.

교황은 우리가 서야 할 자리와 가야할 방향을 제시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백성들과 서민들이 어디로 마음이 흐르는지를 잘 보여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과 하고
지 교회 중심에서 성도들 붙들어 놓고 번영신학만을 강조하는 대형 교회가 된다면
그리고 작은 교회들조차 대형 교회만을 선망하며 그 쪽으로 만 가고자 한다면
어쩌면 말입니다.
주님께서 촛대를 옮겨 버릴 수 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는 한국 교회와 목사님! 그리고 성도님들!
이제는 검소해져야 할 때입니다.
교회가 부하면 위선입니다.
그 축복의 부요를 다 밖으로 나누워 주어야 합니다.
뒤로다 싸놓은 땅도 건물도 처분해야 합니다.
그리고 낮은 곳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아파하고 위로하며 품어 주며
인류애와 인권과 화해와 일치를 외쳐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복음임을 알려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이심을 선포해야 합니다.

천주교는 아닙니다. 성경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류애를 강조하고 인권과 생명을 중시 여기며
가난한 자 어려운 자를 찾아 함께 해주며
용서와 관용을 말해 주며
화해와 일치를 선포하고 있습니다만
그 안에 “오직 예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타인의 종교를 강요하지 말라고 합니다.
문화와 종교와 인종 달라도 하나가 되자고 외치고 있습니다.

지금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내일의 희망을 선포하느냐?
아니면 그리스도 없는 내일의 희망을 선포하느냐?
이것이 개신교회 천주교의 차이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한국 교회와 목사님들과 온 성도님이 이제는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많이 받았기에 더 많이 나누어 주워야 하고
명품족이 되고 귀족층이 되었기에 더 낮은 자리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온 백성의 마음을 얻으며 존경을 받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오직 복음만을 외쳐 줄 때 주님은 세계를 변화시키고
우리 한국 교회와 성도들에게 더 많은 것으로 넘치게 채워 주게 될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합니다.
지금은 조용히 낮은 곳으로 가야 할 때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4. 8. 29. 14:59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3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3 

                                백 동흠목사

푸른편지의 글을 읽고 답신을 주신 분들과
몇 몇 목사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느낀 것이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적대적 흐름입니다.
그 적대적 흐름과 반론에 대해 저도 100% 공감합니다.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만 보았다면 우리 한국 교회의 미래는 절망적일 것입니다.

지금의 상황을

첫째는 교리적으로만 접근하면 안 됩니다.
맞는 말입니다.
천주교는 다원주의적입니다. 그러기에 오직 복음으로만 구원을 외치는
개신 교회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차라리 저는 천주교는 기독교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나 교황의 인품과 메시지를 교리로 접근해서
비판만하고 정죄만 한다면 더 중요한 것을 놓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왜 그가 영광을 받는 자리에 있는가도 말할 이유도 없습니다.
영광이 아닐 것입니다. 존경일 것입니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따른다고
프란체스코 효과라는 신조어까지 나오게 한 분입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교황에게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존경을 표하는 것입니다.

셋째는 교황을 미래의 적그리스도의 실체라고 말하는 것도 안 됩니다.
어쩌면 맞는 말이 될 수 도 있습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모든 종교를 하나로 묶어 적그리스도에게 들어 받치는
“음녀”의 실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적그리스도라고 외쳐보았자 전혀 설득력도 없을 것 입니다.
오히려 한국 교회를 이상한 종교 집단으로 내 몰릴 것입니다.

셋째 쇼맨십이나 고도의 전략이라고 말해도 안 됩니다.
50불짜리 시계를 찼고 기아의 소형차를 타고 가장 가난한 자를
찾아다닌 것이 다 보여 주기 위한 전략이라고 말한다면
한국 교회는 남의 인격과 진실을 부정하고 비판하는 질이 떨어진 집단으로
오히려 사람들에게 냉소를 당할 것입니다.

넷째는 구호만 외치고 돌아갔다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먼 거리에서 펑펑 대포만을 쏘았습니다. 사랑의 대포 말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자, 약한 자, 소외된 자,
그리고 신음하는 자의 아파하는 마음에게 많은 위로가 됐습니다.
격려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울었습니다. 자신의 고통을 호소했습니다.
교황은 진짜로 아파해 주고 품어 주었습니다.
그런 그의 모습을 못 느끼었는지요?
프란체스코 효과가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아시겠는지요?
교황이 있는 자리는 원래 한국의 교회가 있었던 자리였습니다.
제가 어린 시절 우리의 부모님들이 너무나 가난하고 마음이 아플 때
저기에 큰 기둥하나가 있었습니다.
나의 아버지도 엄마도 그리고 이웃집의 할머니도
그 기둥을 붙잡고 엉엉 울었습니다. 그리고 위로를 받았습니다.
바로 그 기둥이 한국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사람들이 교황에게로 몰려갔습니다.

단순한 구호로만 치부한다면
그 사람은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인지를
진짜 모르는 사람일 것입니다.
진짜 한국 교회의 위기가 무엇인지 아시는지요?  -계속-

 

 

백동흠 칼럼 2014. 8. 29. 14:25

교황의 방문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2

 교황의 방문과 한국 교회의 위기위식 2

                                                     백 동흠목사

이번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 교회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가져 온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작년(13년) 3월에 즉위한 교황이
연말에는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뽑혔습니다.
올해(14년) 초에는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교황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가는 곳 마다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종교와 인종과 문화의 벽을 넘어 화해와 일치를 보게 하며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마음이 열리게 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바뀌었으며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가  
'프란치스코 효과’(Pope Francis Effect)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유행어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방문을 통해 한국에서도 프란치스코 효과도 예외 없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교황의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드시는지요?
목사인 저는 참 좋았습니다.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서 참 좋았습니다.
삶과 인격에 촉촉이 스며 있는 말씀들임을 느끼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말할 때 권위로움을 느끼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의는 불의를 잊지 말되 용서와 관용으로
불의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마음의 폭과 깊이를 느끼었습니다.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외칠 때 막힌 담이 허물어진
그의 마음의 진실을 느끼었습니다.
가난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자고 할 때 그에게서 사랑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부자로 사는 수도자들의 위선이 교회를 해친다고 할 때
그에게서 가난이 배어 있는 인품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말씀들이 안으로부터 스며 나올 수 있는가?
사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삶을 들어다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살아 있는 영성을 느꼈습니다.

50불짜리의 값싼 Swatch시계를 차고
포드의 Focus를 자가용으로 직접 몰고
버스를 이용해 피정 지을 다녀오고
교황의 저택을 거절하고 게스트하우스에 거하고
교황 즉위식 복장을 값싼 폴레스테르의 합성 섬유의 옷으로 만들어 입고
가는 곳 마다 낮은 곳을 향하여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즉위 첫 고난 주간 목요일에 소년원으로 찾아가
12명 재소자들의 발을 허리를 굽혀 씻어 줍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해 줍니다. 그 중에 무슬림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세계의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룩한 충격이겠지요.

교황은 세월호의 고통 앞에서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어느 분이 정치적 이유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만 달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 말하기를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이 되여 진다고도 고백을 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의 영의 성향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의 누려진 인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내면적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오만하지 않도록
내 죄와 잘못을 돌이켜 본다. 인기란 잠시 뿐이며 이제 잠시 후면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거지 뭐........“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77세 먹은 할아버지의 인간적인 신앙의 고백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임지의 래디카 존스 부편집장의 말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들을 열게 하고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종교가 없는 일반인의 일상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가난에 대한 교회의 임무와 그의 가르침은 짧은 기간에 가는 곳 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는지요?  -계속-

백동흠 칼럼 2014. 8. 29. 14:05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 의식1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 1

                          백동흠 목사

천주교의 본 고장인 유럽에서는 천주교의 몰락이라고 말할 정도로
신자의 수는 줄고 성당은 매각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전혀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1970년대의 정식 통계가 100만 이었습니다.
1880년대 초 민주화 운동의 주도권을 잡은 후 90년대 들어서면서
300만이 넘어 섰습니다.
그 후 2000년대 들어서면서 500만이 되더니
2013년 현재 544만 2996명이 정식 통계가 되고 있습니다.

천주교는 조금씩 차곡차곡 안정되게 다져지면서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조직적인 질서가 자리가 잡혀 있습니다.                              

바티칸의 교황 중심으로 전 세계적으로 위계의 질서와
하나 된 질서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성당이 분열되고 성도가 다툰다는 소식을 들어 보지를 못 했습니다.

둘째는 사제에 대한 부정과 부패는 철저한 비밀 속에서 관리되고 있습니다.                
사제에 대한 관리는 중세시대부터 유명했습니다.
그들의 비리와 부정이 외부로 노출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반면 개신교의 목사님들의 비리는 너무나 쉽게 노출됩니다.
그리고 요즈음에는 SNS의 영향으로 악풀까지 번지게 했습니다.
영적 리더십에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되는데 천주교는 리더십은 보호를
받고 있고 있습니다.

셋째는 천주교는 사회사업 부분을 많이 강조 합니다.                            
사회 복지시설과 봉사에 장기적으로 투자한 것이
오늘 날 한국의 천주교의 이미지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넷째는 경건한 의전으로 미사가 진행 됩니다.                                    
사실은 지나친 경건 형식이고 성도들은 의식에 묶여 인격적인
말씀과의 만남을 약하게 만듭니다. 가톨릭 신자들과 만나 대화를 해 보면
성경에 대해서 너무 많이 모르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만 조용하고 경건한 흐름이 복잡한 현대인들에게 호감을
주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실제로 개신교의 사람 중에 천주교로 개종한 사람들의
설문 조사에서 “교회의 예배는 시끄럽고 성당은 엄숙하다‘고
대다수의 사람이 답했습니다.
이것이 천주교회의 좋은 점이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천만의 성도를 자랑하는 개신교회는 오직 성경 중심의 말씀
선포는 실로 위대하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순교적 정신으로 목회를 하는 목사님들의 수고와 헌신은
그 누구도 따를 수 없을 것입니다.
비록 교회 건축과 교세를 앞세우지만 한국 교회의 사회사업과
이웃에 대한 섬김과 봉사는 천주교회가 능히 따라오지를 못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 교회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가져 온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몇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계속-

백동흠 칼럼 2014. 8. 9. 07:34

선교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과 전도사님입니다.

지붕위의 사람도 반가와 해주며 전도지를 받아 줍니다,

                   다들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며 복음을 받아 들입니다.

 

                               이이돌 형제와 함게 몃있는 댄스를 합니다.

                                    헤맑은 오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밀가루를 덮어씨우며 물총 놀이도 합니다.

                        현지 목사님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쩍었습니다.

              멕시칼리 한인 교회의 여선교회가 오셔서 도와 주셨습니다.

                                  현지 멕시코 목사님들 입니다.

           금방 배워서 따라하는 어린이들 입니다. 너무나 좋아 합니다.

         두 아들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보기가 좋았습니다.

        저의 뒷쪽의 어린친구들이 고개를 내민 것이 너무 다정 스럽웠습니다.

                             어린 친구의 부모님이 십니다.  

 주민들에게 나누워 주기 위해 쌀, 콩, 설탕 그리고 여려가지 물건을 담는 중입니다.

                                  보육원의 어린이들 입니다.

선교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백 동흠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매주 강단에 꽃을 장식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위한 거룩한 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생일, 추도 결혼기념일 등등)
강단에 꽃을 장식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장식하는 꽃을 불우한 어린이를 도우면
주님이 더 기뻐하지 않을까 성도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영적 헌화”라고 하는 명칭으로 헌금으로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영적 헌화의 금액은 20불로 정하고 새해 첫날 영적 헌화표를 만들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 작성하게 했습니다.
올해는 멕시칼리의 고아들을 위해 영적 헌화 헌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마침 청운 교회를 담임하는 이명수 목사님과 대화중에
목사님이 학생들과 함께 멕시칼리로 단기 선교를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돕고자하는 멕시칼리 고아원이기에
장로님들과 상의 한 후 저도 함께 가기로 한 것입니다.
저의 두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멕시칼리는 멕시코의 바하 칼리포니아의 주의 수도였습니다.
인구는 9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가 간 곳은 미국과 국경을 한 멕시칼리의 국경지대 이었습니다.

양철 같은 것으로 담을 쳐서 국경선이 되게 했습니다.
국경선을 끼고 찻길을 달리는데 선교사님이 말합니다.
아직도 이곳의 사람은 미국을 선망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12불정도 벌이가 된다고 합니다.
저 담만 넘어가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 12불의 벌이가 되기에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 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멕시칼리는 문자 그대로 한증막이었습니다.
120도 되는 그런 무더위였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들어오니 한국의 60년대의 풍경의 모습이었습니다.
집들이 왜 이리 허름한지 빈집들 같았고
전쟁 통에 부셔진 집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 보면
사람들이 땅을 사고 그 위에다가 벽을 치고 창문을 만들고
문짝을 달고 집을 져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데로 조금씩 집을 짓다 보니
2년도 걸리고 5년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도독이 들어와 창틀을 빼가고 문짝을 홈쳐 간다고 합니다.
12불씩 버는 돈으로 언제 그 집을 지을꼬?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마치 60년대의 하꼬방 같은 집들!
허름하고 빈집 같은 그런 곳에서 이렇게 무더운 날에 어떻게 살고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고아원에 도착했습니다.
2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반겨 주는데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숙소는 근처의 조이 센터였습니다.
그곳은 넓은 예배실과 주방이 있고
그 옆으로 화장실과 샤워 실이 딸린 숙소가 있는데 이층 침대로
4명이 잘 수 있는 방이 여려 개가 있었습니다.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잠자리도 너무 편했습니다.

학생들은 빈 창고 같은 예배실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가져온 장식품으로 강단과 벽과 예배실 공간을 장식을 하는데
너무 아름답게 꾸민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의 무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 했습니다.
14명의 어린 학생들이지만 이들이 하나 같이 뭉치면
얼마든지 무슨 일 이 든지 할 수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를 편성하여 노방 전도를 나갔습니다.
선교사님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4개조를 편성하여 보육원의 아이들과 같아 나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무더위에 사람도 전혀 없는 길거리로 전도하려
나간다는 것이 그저 선교지에 왔기에 한번 하는 행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육원의 어린아이들이 앞장서서 전도지를 갖고 나갔는데
가가호호(家家戶戶) 찾아가서 외쳐 댑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반가운 얼굴로 들어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주는데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오라고 하는데 웃으며 답합니다.

어쩌다 오는 택시를 손을 흔들어 세웁니다.
운전수가 차를 세워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줍니다. 웃으며 받아 주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을 먹게 됩니다.
전도가 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는 것에 대해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무더워 등이 다 젖어 들고
숨은 콱콱 막히나 사람들의 서민적인 것과 순박함과
전도지를 받아 주는 것 자체가 제게는 60년대의 한국의 정서가
내 안에 살아 나와 마치 고향의 집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포장도로인 자갈밭 같은 길을 걸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모여 온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이 교회에 오기만 하면 돌아 갈 줄을 모르고
학생 선생님과 기타에 맞추어 찬양도 하고 배은 율동댄스도 하고
밖에 나와 물놀이도 하는 모습이 우리 어린 시절 하기 학교 때
교회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놀던 그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며 집에 가야 무더위 속에 빈집에 있기보다
이렇게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좋은 선생님과 목사님이 계시기에
교회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편집하여 선교사님과 그 곳 어린이들에게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돌아오는 길목
멕시칼리가 먼 나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진 고향과 어린 시절의 고향 예배당에
잠시 왔다가는 것 같았습니다.
두 아들은 돌아오면서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직을 가지고 와서
이들을 돕고 섬기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작은 선교 헌금이지만
사랑의 영적 헌화 헌금을 내어 주신 성도님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히 보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어린 영혼들의 모습이 투영하게 보였습니다.
성도님들의 얼굴과 어린이들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밝은 모습으로 떠 올라왔습니다.
참 아름답고 그리운 얼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먼 나라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곳에 찾아와 땀과 눈물로 수고를 하시는 선교사님과
잠시 다녀가는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과
이렇게 작은 선교 헌금을 모와 전해 주는 그 손길들이 하나가 되어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이 됐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자들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며 훗날 주의 나라에 가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상 주신다는 소망이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몸은 피곤하지만 영은 너무 맑았고 기쁨으로 출렁거렸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4. 7. 17. 00:25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정몽준집사님의 아들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과 정몽준집사님의 아들

                                              백 동흠목사

정몽준의원은 7선 의원으로 성공적 정치인입니다.
현대 정주영 회장의 아들로 뛰어난 사업가입니다.
그리고 소망 교회의 집사님으로 믿음이 좋은 신앙인입니다.
그의 집안은 명문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월호의 참변이 일어났을 때
고3의 아들이 “미개한 국민” 발언이 사회적 지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서울 시장 선거에도 굉장한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저는 그 사건을 신문을 통해 읽으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레주였습니다.
노블레스 오블레주(Noblesse Oblige)란
Noble(귀족)과 Obliger(준수하다)의 합성어로
높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성” 혹은 고귀한 신분에 걸 맞는 “책임감”이란
뜻으로 사용되는 고유 명사입니다.

영국의 이튼 칼리지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 교육이 강하다고 합니다.
귀족 사회에 근간을 둔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 지주의 역할을 하는 학교라고 합니다.
이튼 학교의 정문의 벽에는 이천 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1차 2차 세계 대전 때에 이 학교 출신으로 참전한 전사자들의 이름입니다.
도덕성과 책임감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적 이름이 된 것입니다.
엘리자베스 여왕도 수송부대 하사관으로 근무했습니다.
해리왕손도 아프가니스탄 전에 참전했습니다.
포클랜드 전쟁에도 앤드류왕자도 조종사로 참전했습니다.

6.25 한국 전쟁 역사에 대한 비사를 읽었습니다.
참전한 미국의 장성급 자녀들이 한국 전쟁에 참전한 사실을
알았을 때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그마치 장성급 아들들이 142명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35명이 죽거나 다쳤습니다.
클라크 유엔 사령관은 아들을 잃었습니다.
월턴 워커 미 8군 사령관(삼성장군)은 아들과 함께 참전했다 전사했습니다.
후임 밴 플리트(James A. Van Fleet) 미8군 사령관의 외아들에 대한
사연은 눈물겨웠습니다. 외아들이 공군 중위로 참전했습니다.
평양 인근으로 출격 나갔다가 실종이 됐습니다.
미 공군에서는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사령관의 아들을
수색하여 찾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 사령관은 내 아들을 위해 또 다른 아들들의 부모님을
아프게 해선 안 된다고 하면서 무모한 수색작전을 중단 시켰습니다.
그때 아버지 사령관은 요한복음15장 13절의 말씀 묵상하며 울었다고 합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신분에 걸 맞는 희생이요 뛰어난 정신력의 모습이었습니다.

저는 정몽준의원의 아들이 생각이 났습니다.
한국의 귀족적 신분임이 분명합니다.
특별한 선택받은 가정의 자녀입니다.
명문 집안의 자녀이고 집사님의 아들입니다.
강남의 유명한 교회에서 어린 시절부터 자라면서 신앙 훈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국민의 허물과 부족을 보는 눈이 있기에 그런 글도 올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중요합니다.
국민을 무시하고 함부로 판단하며 귀족층,
특권층으로 그 위에 군림하는가?

아니면 그런 국민을 위해 더 많이 헌신하며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책임지고자 하는 도덕성과
그 신분에 걸 맞는 책임감을 갖는 사명자로 나타나는가?

아마 어린 나이임에도 불과하고
내가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가? 내가 이라면 안 되지!
생각하며 세월호의 참변을 당한 그 현장으로 뛰어가
울면서 아파하며 섬겨주었으면 이야기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미개한 인생의 죄를 위해 친히 이 땅에 오셨고
그들의 탓을 내 탓으로 돌리며 대신 책임지고 희생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이며
이것을 가르치는 것이 교회 교육이며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입니다.

오늘 타락한 교회의 성도들은
하나님의 선택을 자기의 특권층(귀족층, 명품족)으로 바꾸었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기복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베풀어 주신 축복이 자신의 업적이 되고 자기 자랑이 되고 교만이 되게 했습니다.
거기에는 그 격에 맞는 도덕성이나 책임의식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둘에 하나를 선택해야 할 기로에 놓이고 있습니다.

하나는
대형 교회건물을 지으며 여전히 특권층, 귀족층, 명품족으로 머무르며
사회 저변 층으로부터 개독교 먹사로 불림 받으면서 버림을 당할 것인가?

또 하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으로  
내가 받은 은혜가 얼만데 내가 이렇게 살면 안 되지! 라고 생각하며
뛰어난 도적덕성을 실현하고 섬김으로 온 백성이 존경하며 따르는
그런 교회와 성도로 나타날 것인가?
지금 둘에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역사적 기점에 와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정몽준 집사님의 아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정신이 스며들어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 격에 맞는 도덕성과 그 신분에 부합하는 책임감으로
온 백성의 칭찬과 존경을 한 몸으로 받아 미래의 대통령 재목감이 됐으면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지금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배워야 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그 격에 맞는 뛰어난 도덕성과 함께 이 땅의 가난하고 불쌍한 온 백성의
발을 씻어주며 책임져 주시는 예수님의 정신을 배워야 하고
가르치며 실제로 그런 삶을 살아야 할 때입니다.

*** 죄송합니다. 정정합니다.                                                                        정몽준 의원은 소망교회 장로님이 아니라 집사님이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4. 7. 2. 03:06

6.25! 과연 잊혀지는 역사인가?

 

6.25! 과연 잊혀지는 역사인가? 

                                       백 동흠목사

2013년의 통계입니다.
6.25를 경험한 세대와 경험이 없는 세대의 숫자가
760만 명 대 4040만 명이라고 합니다.

1950년 전쟁의 한 복판을 통과한 세대의 사람들은
서서히 그 무대를 떠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6.25 이후의 태어난 사람들도
이제 그 연수가 60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6.25를 경험한 아버지 세대와
6.25를 이후에 태어난 아들 세대는
6.25의 참상에 대해 말하고 듣고 하면서
깊은 역사적 공감이 형성 되었습니다.

그러나 6.25의 역사적 배경과 전쟁의 시작에서 휴전하기까지
전쟁의 경험한 자들의 증인과 증거를 보존하고
그 당시의 생생한 현장을 그대로 보전하여
그 다음의 세대에게 전해 주는 데는 실패했음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제 자신도  6.25에 대한 이야기를
부모님이나 주변의 어른에게 많이 들었으나
그것은 그저 단편적이고 부분적인 것입니다.
괴뢰군의 만행이나 서민들의 비참했던 피난민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6.25의 역사적 배경이나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관하고 보여 주는
6.25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전혀 보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하면서
300만의 학살 현장이 그대도 재현한 홀로코스트를 보면서
너무나 많은 부끄러움을 느꼈습니다.

그때의 증인들은 나이가 차서 이미 다 고인이 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생전에 그 생생한 목소리로
그런 비참한 역사의 배경과 그 현장의 모습을
친히 보여 주고 전해 주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아주 많이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행복했던 유대인들의 생활 모습 부터 시작하여
학살의 현장으로 가기까지의 전과정의 모습을
생생한 자료들과 함께 전시되여 있었습니다.

윤택했던 그들의 모습과 비참한 해골의 모습으로 변한 그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떨어진 옷들과 신발과 가방들이 산더미 같이 있었습니다.
피로 얼룩진 생필품들도 하나도 빠짐없이 보존되고 있습니다.
심지어 머리카락들까지도 수북이 보여 주고 있습니다.
희생당한 어린아이들의 수만의 이름이 그 넓은 밤하늘 같은 공간에
별빛과 함께 불러 주고 있었습니다.

그 현장을 본 사람은 말이 필요 없습니다.
역사를 배우자는 교실이 필요 없습니다.
그 역사의 현장을 다녀왔기 때문입니다.
젊은 부부들이 웃으면서 들어갔다가 눈물을 훔치며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린아이들이 소풍 삼아 왔다가 훌쩍이며 나오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보존하여 우리의 자녀들이
직접 그 현장을 보게 함으로 느끼고 눈물짓게 했어야 했습니다.
6.25의 역사 뿐 아니라 일제의 만행도 위안부의 역사도                                     그렇게 해 놓았어야 했습니다.

사실 역사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알게 해 주고 보여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 현장을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면
역사의식은 살아나게 되어 있고 무장하게 되어 있고
다시는 그런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우리의 후손들은 든든히 나라를 지켜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저는 유태인의 홀로코스트를 다녀 온 후
이스라엘의 역사의식이 얼마나 철저하고 어떻게 무장하고                                 있는지를 뼈저리게 느끼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무리 돈이 많이 들어도 제일 먼저 했으면 합니다.
역사 기념관을 많이 만들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후손들이 그 곳에 찾아 가서
그 역사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고 눈물짓고 돌아오게 했으면 합니다.

이런 역사의식이 없었기에 좌파가 생겼고 종북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녀들의 역사의식은 혼미해 지고
안보의식은 두려울 만큼 해이해 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망전필위 (忘戰必危)을 기억해야 합니다.
잊으면 반드시 그 위험은 다시 돌아온다는 사실을…….

백동흠 칼럼 2014. 6. 21. 08:52

문창극 총리 후보와 액자 효과

           문창극 총리 후보와 액자 효과

                                                         백 동흠목사

문 창극 총리 후보가 온누리 교회의 장로님이시고
하용조 목사님의 권면으로 수요 여성 예배시간에 설교를 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고 한 것입니다.
하도 여론이 들끓어서 그분의 설교(1시간)한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조선 말기 가장 게으르고 비참하게 버려진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그 안에 있었고
이런 고난과 시련을 딛고 오늘의 한국이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었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 한 것입니다.
물론 다듬어 지지 않는 표현이 몇 군데 있으나  
오히려 우리 민족이 가야할 미래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희망의 말씀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로써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놀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한 마디의 방송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이란 한 마디의
방송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습니다.

언론이 왜곡되고 편협 적이 될 때 그 흐름이 얼마나 무섭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벌써 옛날이 됐습니다만.
“소 파동”도 완전 거짓말에 근거한 여론 몰이가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충동적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그 말 한마디만 듣고는
대한민국의 총리 자격 없음을 단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체를 들어 보니 전혀 아니올시다! 이었습니다.
전혀 그런 의도로 한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쉽게 충동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셋째는 한국의 지도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초선의원들이 집단으로 “후보자의 즉각적 사퇴 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분별 있고 의로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가 물었답니다.
후보의 강연 내용을 다 들어 보았는가?
답은 “아니요” 이었습니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전체를 보고 흐름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액자 효과란 전문 용어가 있습니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의사 전달을 어떤 틀 안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어떤 틀에 넣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구조화 효과 즉 액자 효과 (Framing effect)라고 명한 것입니다.

이념의 논쟁이나 당리당락이나 이익 집단적 차원의 액자에 집어넣고
보면 아무리 그것은 옳은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적 반대로 가게 합니다.
문자하나 하나 내용하나 하나를 분석하여
날카롭게 비판하며 적당히 거짓도 뿌리며 문제를 확산 시켜 나갑니다.
여기에 지역과 연고 그리고 인맥과 파당이 연결되고
여론을 충동질 하면 그 파장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이 되게 합니다.

지금 문 창극 총리 후보는 친일파가 되어 반민족주의자가 되어 있습니다.
해명하려 다니기에 급급합니다.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는                                        이를 닻 내림 효과라고도 했습니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듯이 인간의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나
기억에 박혀 버리게 함으로 영향을 받아 그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치라면 훌륭한 인물이 들어와도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가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라고 한다면 예수님이라도 얼마든지 이단으로 몰아
십자가에 잡아 죽이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저는 목사입니다.
그리고 그 문 창극 총리후보도 장로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시고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면
이것 하나만을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민중은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액자 효과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사랑과 공의 그리고 정직과 성실이란 도덕성의 덕목들을 가지고
나 하나 희생함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길을 가자고 감히 말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왜요?
나 스스로는 갈 만한 그릇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 죄인에 불과 하니까요.
다만 우리의 주되시는 그 분이 나로 하여금 그 길을 가도록
힘주시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야 내일의 역사가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13:33)

백동흠 칼럼 2014. 6. 4. 07:17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

 

지대추구와 그리스도인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 

                                                     백 동흠목사

지대추구라는 용어를 들어 보았는지요?
지대추구(地代追求) 라는 뜻은 Rent seeking 입니다.
경제적 용어로 독점권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통해 관피아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아니 그 동안에는 숨겨진 단어였는데
세월호 이후에 공개적으로 노출이 된 단어가 되었습니다.
관피아의 출생과정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첫째는 지대 추구로 시작했습니다.

KAIST의 경영대 초빙교수인 정구현 교수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와 6.25의 전란과 극한 가난의 불모지의 땅인
한국의 1960년대 초 지대 추구를 통해 개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땅을 분할하여 주고 특혜를 주고 여려가지 독점권을 만들어 주어
도시 개발, 철강, 그리고 각 분야의 기관 산업이 성장하도록 특혜를 주었습니다.

둘째는 이익집단으로 변질이 됩니다.

불모지 같은 땅위에서 어느 정도의 특혜와 혜택 속에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경제 개발을 한 1세들의 개척 노고에 의해 잘 사는 나라 백성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경제를 일군 1세 개척자들은 가난과 검소의 체질이었습니다.
근면과 성실이 삶의 질이었습니다.
그들이 경제를 일구어 냈지만 결코 사치나 낭비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서 자란 2세들과 또래 그룹이
어느 틈엔가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독점권이 독식권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대추구형의 이익 집단이 서서히 나타나게 됩니다.
관료와 법조인, 언론계 노동조합과 의료계 그리고 대학가에도
특권층이 형성되고 마침내 갑을의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1:99%의 사회구조가 되게 한 것입니다. (혁신하라 한국 경제, 박창식)
 
이것이 관료 사회의 마피아인
관피아라는 신생언어가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셋째는 비리의 온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통령은 세월호의 비극에 대해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이익 집단 안에서 인맥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익권과 특혜를 누립니다.
각종 편법과 비리를 덮어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쌓인 부요로 자신들의 왕국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관피아의 출생 과정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벨탑인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틈엔가 귀족이 되어 있고 명품으로 치장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익 집단의 끼리끼리 모여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합니다.(창11:4)

이런 흐름이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극의 날이 되였음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월호의 참사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사회학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개혁하는 혁명가도 아닙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해 성경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가 지대추구형 이익 집단화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교회 안에 각종 편범과 비리가 숨겨져 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세습이 되고 귀족과 명품족을 형성하여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는 이런 교회가 된다면 교회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교회는 물이 되어야 합니다.
물이 흐르게 하는 통로여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특혜와 은혜 그리고 모든 축복을
통하여 흐르게 하는 통로가 교회이고 성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부요를 가난한 사람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병들고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에게 사랑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절망 속에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축복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이익 집단이 아니라 베풀고 섬기는 집단입니다.
섬김을 통해 사회의 마음을 얻으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곳이
교회이고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가요?

우리 교회와 성도마저도 종교 마피아가 된다면
우리의 어린 자녀들의 참사인 세월호의 비극을 누가 막아 줄 것인가?
교회와 성도님들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대추구형 이익 집단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는 절대 비리와 편법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정결한 처녀같이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사회 저변 층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물같이 흘러가서
베풀어 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의 모든 사람이 교회를 존경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3%의 소금이 되어 비리의 바다 같은
우리 사회를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의 외침이며
이것이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4. 5. 24. 08:11

세월호 공개적으로 참회의 고백을 드립니다.

우리 교회(그라나다힐 한인교회 LA소재)에서는 세월호의 참변에 대해 공개적으로 참회의 고백을 드리기로 하고 지역 신문에 아래와 같이 냈습니다. 더 이상의 불행을 막으려면 나 자신이 먼저 참회하고 아파하며 도덕성의 획복이 먼저 되여야 한다는 마음으로 공개적으로 참회의 고백을 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