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7. 9. 04:36

사랑하는 사모님의 소천


사랑하는 사모님의 소천

                        백동흠

그래서 
푸른 하늘이
잿빛이 되었나보다

마치 저 빈들에 핀
두 송이의 꽃같이 
유난히 돋보인 사랑이었어!

때론 외로울 때
서로에게 큰 즐거움이 됐고

힘들고 어려울 때
서로 받혀주는 바람막이가
되어 주었지

아무리 어두워도
그 사랑은 희망이었어!

항상 화사하고 밝았지 
그리고 따스했어!

마지막 가는 길도
그런 모습이었어!

평안한 얼굴에 
밝은 눈동자에
환한 모습으로 가는
그 길이 눈물겨웠지

그래 
그런 사랑이 떠나는데
그리고 보내야 하는데

사람들은 몰라도
하늘은 알았을 거야
이다지도 잿빛을 띤 것은
그 마음이 많이
아파서 일거야

나도
내 마음도 
너무 안타깝고 아픈데


*****
부부는 닮는가 봅니다.
목사님의 얼굴이 항상 그런 얼굴이었으니까요.
그래서 그런지 사모님도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5년전 암으로 투병하는 어느 날 병원으로 심방을 갔었습니다.
병실 자체가 화사스러울 정도 그 얼굴이 밝았습니다.
그 얼굴의 모습에 들려주는 대화 하나 하나가 주의 은혜로 넘쳤습니다.
그 후로 완치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고
종종 부부로 만날 때 마다 유난히 서로를 섬겨주는 모습이 애듯하였습니다.
빈들같은 세상에 핀 두 송이의 꽃같이 돋보인 사랑이였습니다.
서로가 바람막이가 되여 주는 모습이 너무 좋았고 
항상 밝고 따스하고 화사한 그런 분위기로 서로를 감싸 주는 그런 모습이
참 아름다운 사랑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5년이 지난 어느 날 그때 남은 아주 작은 암 덩어리가 살아났는가 봅니다.
육개월의 투병이 있었고 제가 알고 찾아 갔을 때는 병원에서도 
손을 놓은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불과 3주만의 일이었습니다. 
육체는 많이 망가지고 있었지만 그 얼굴은 너무 평화로웠습니다.
이미 그 영은 주의 나라의 영광으로 가득찬 모습이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본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틀후 돌아 가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소식을 듣고 마음은 많이 아팠지만 왜 이리 위로가 되며 소망이 되는지 모를 일이었습니다. 
죽음 건너편에서 우리를 기다려 주는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날 따라 푸른 하늘이 잿빛하늘이 된것도
그런 사랑을 보내야 하며 떠나야하는 아픔을 알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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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6. 7. 9. 04:24

트럼프의 시대 정신과 카오스의 이론

                     



트럼프의 시대정신 속에서의 

           카오스의 이론과 나비 효과 


                                백동흠목사 

카오스라는 뜻은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뜻하는 말입니다.
온통 엉망진창의 세계를 카오스라고 합니다. 

다들 설마 했었나 봅니다.
도날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에 대해서 충격들을 받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자력으로 대선 본선 행 티켓을 따 낸 것입니다.  

뉴욕타임지는 트럼프의 승리와 함께 160년 전통의 정당인 
공화당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의 후보 지명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쿠데타’라고 
표현하고 공화당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 했습니다.

트럼프는 증오와 편견, 비열함, 헌법 가치에 대한 경멸, 
장애인 기자 조롱, 무슬림 입국 금지와 히스패닉 검거 주장, 
항의자에 대한 폭력의 찬미,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더러운 협박,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지에 대한 윙크, 수감자 고문 주장과 테러 용의자의 
무고한 친척 사살 등 과거 발언을 속죄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트럼프를 미 국민이 지금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트럼프의 막말 돌풍이 미국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시적인 카타르시스현상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의 국민성과 민심을 반영하는 태풍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성과 민심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의 미국은 이전의 미국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미국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정신적 도덕적으로
온 세계를 이끌고 지도해 나갈 지도자적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트럼프를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인류는 그런 지도자를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정신적 지도자 도덕적으로 존경 받는 지도자를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점차 도덕성을 상실할 것이며 패륜의 사람으로 흘러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연의 재해 현상은 수위를 높여 갈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 사건으로 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냉소하며 
외면하기를 유행성같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왜 이렇게 싫어하고 외면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로 흘러 갈 것입니다.
온통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카오스 안에 카오스 법칙과 나비효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 될 것입니다.

카오스의 법칙이란?
아무리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임이 깊어져도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흐름이 그 안에 있다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섭리가 살아 있다는 법칙입니다.
무질서입니다. 
온통 무법입니다.
99대 1의 사회구조입니다.
강자의 법칙이 승리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 카오스 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비 효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에 
거대한 태풍을 불어 올 수 있다는 나비 효과 말입니다.

연약한 나비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진실의 날갯짓
작은 성실의 몸부림
아무리 억울하고 힘이 들고 죽임을 당할 지라도
담담하게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몸부림의 사람이 있다면 
비록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 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통해 내일의 역사를 바꾼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나비 효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대세가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고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하더라고
그대 하나만이라고 삶의 그 현장에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의 인품 됨으로 사는 것입니다.  
연약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일지라도 
그런 삶을 살아만 준다면
하나님은 그대를 통해 미래의 영광을 보게 할 실 것입니다.
이제 계시록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삶을 사는 제가 되고 그대가 되었으면 해서 푸른편지를 띄어 드립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2)

그대가 희망입니다.

그 시대의 정신이 있습니다. 대세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시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혼돈이고 공허이고 
흑암이라고 하면 미래는 절망이 될 것입니다. 
카오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대세는 그렇게 흘러 
간다고 해도 하나님은 작은 몸부림의 사람을 통해서 
다음시대의 희망을 살려 내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 역활을 해내야 할 사람이 그대입니다.
그대가 미래의 희망입니다.  아! 밝은 웃음으로 
그렇게 사는 그대의 모습이 보고 싶군요.


2016. 7. 9. 04:18

영성- 깊음이 있는 삶


영성- 깊음이 있는 삶

                 백동흠

전에
바람 물결
요동할 때 
밤새 뒤척임이 있었다.

문제를 다루는
나 자신이 
앝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쉽다
단순하며 
담담하여
흔들림이 별로 없다.

이제의 나는
과거의 나가
아닌 까닭이다.

밖에서 불어 대는
바람보다

내 안에
뿌리 내린 삶의 깊이가
나를 지켜 주기 
까닭이다.


시작노트

전에는 북잡했던 문제들이 지금은참 쉽게 생각되고
단순하게 풀어 나가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어느 틈엔가 밖에서 부는 바람보다
안에서 들려 오는 내면의 음성에 뿌리를 내린 까닭이었습니다.

영성 훈련
주님 앞에 잠잠히 리다리는 훈련은 참 좋은 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분 앞에서 깊이를 더하는 삶인것을
점차  깨달아 알아지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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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7. 9. 04:08

소원

    소원        

          백동흠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 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편히 다가와
등 기댈 수 있게 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별 말없어도
위로가 되여 지고

옆에만 있어주어도
마음이 든든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생각만 해도
늘 고마워지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
어제는 모처럼 친구의 집을 찾았습니다. 
저는 전혀 몰랐습니다. 
그저 전화상으로 안부를 묻고 잘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막상 만나 대화해 보니 친구의 아내는 고통 속에서 
투병의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항상 밝은 얼굴로 대해 주며 유난히 부부의 사랑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 주던 친구를 생각할 때 마음이 많이 아팠습니다.

인생길에 힘이 들고 어려울 때
언제라도 편히 다가오게 하며 조용히 옆에 있어주어도
위로가 되고 든든하게 받혀 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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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흠 칼럼 2016. 5. 20. 05:12

로사리또 선교 대회에 다녀 왔습니다.


로사리또 선교 대회에 다녀 왔습니다. 

                                       백동흠목사 

지난 주일은 멕시코의 로사리또 선교대회에 갔다 왔습니다.
7개의 한인 교회가 후원을 하고 
멕시코에서 사역하시고 계신 선교사님이 주선하여 
원주민 목사님 내외분 36명을 모시고
로사리또에 있는 Puerto Nuev Hotel에서 선교 대회를 했습니다.

새벽과 아침 강의는 우리 한인 목사님들이 맡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녁 집회는 원주민 목사님을 초대하여 그들의 언어로 부흥집회를 갖게 했습니다.
모임마다 집회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5쌍의 결혼식을 해 드렸습니다.
다들 여건이 안 되어서 혼인식을 못 올린 분들입니다.
축복의 한마당이었고
은혜와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
뒤에서 잔잔히 찬양을 불러 주는 테너의 목소리는
영적인 분위기를 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들이 인도하는 찬양은 영감이 흘러 넘쳤습니다.
악보를 하나도 아니 보고 부르는데
모두가 찬양 속으로 하나가 되어 순식간에 스며듭니다. 
마치 찬양이 삶속에, 온 몸속에서 베어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나도 부를 수만 있다면
그들의 찬양 속에 함께 푹 파묻히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가난이 배어 있습니다.
고생이 온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낯설지 않고 정감이 가는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들도 우리의 모습 속에서 낯설지 않은
자신들의 모습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저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소리는 없어도,
와 닿는 행동은 없어도, 
그들의 얼굴에서 
쳐다보는 눈동자에서 
다가오는 태도에서 
너무 고마워하며 주님의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외쳐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선교 전략의 좋은 모형을 보았습니다.
몇 개의 작은 교회들이 뭉치고 
목사님들 몇 분이 뜻을 모을 수만 있다면
품위 있고 수준 높은 선교대회를 얼마든지 치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평생 이런 호텔 한번 오지 못 할 
가난한 나라의 원주민 목사님에게 
일생에 아름다운 추억 한 개를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귀한 선교 대회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지의 원주님 목사님들을 불러 모우시고
모든 프로그램을 조직하신 김 선교사님과
함께 후원하고 기도하며 선교대회를 진행해 주신
CLM 이사 목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착하고 순수하신 한인 목사님들과
가난하고 초라한 목회의 현장일 지라도
감격에 겨워 찬양하시는 원주민 목사님들의 활짝 웃는 그 모습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요.
그래서 주님도 이런 분들이 있기에 내일의 역사를 희망하시며
이 땅을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