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6. 10. 26. 04:01

수기 치료팀 멕시코 의료 선교 갔다 오다.

수기치료 팀 멕시코 의료 선교 갔다 오다.

 

                                          백동흠목사

 

멕시코 엔세나다의 어촌으로 의료 선교를 갔습니다.

수기 선교팀은 6명입니다.

몇 해 전에 작고한 박승부 장로님을 통해 수기 치료를 전수받았습니다.

근육을 풀어 주고 아픔 부위를 손으로 치료하는 수기요법입니다.

20여 가지의 정체 요법만 능숙하게 적용만 하면

몸의 구석구석을 풀어 줄 수 있고 치료해 줄 수 있는

신통한 수기치료법이라 생각합니다.

 

한 달에 한 번씩 모였습니다.

첫째는 사람이 좋아 모였고

둘째는 수기 술을 잊어 먹을까봐 모여서 연습한 것이

벌써 4년여의 세월이 흘렀나 봅니다.

 

함께 모이는 모임에 장 장로님과 강 장로님이 계십니다.

의료 선교를 나가자고 제안을 했고

제가 선교 지역을 추천하여 서경열 선교사님이 사역하는

멕시콘 엔세나다의 가난한 어부들의 동네로 가게 된 것입니다.

 

선교사님이 그 지역의 교회를 소개 했고

첫째 날은 성도 중심으로 그리고 다음 날은 지역의 주민을

대상으로 진료를 보았습니다.

 

사실 우리 팀은 아마추어입니다. 그러나 성실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대할 때 기도로 시작 했고

수기 용법과 침과 뜸 그리고 정혈요법으로 치료를 하여 줄 때도

존귀히 여겨 주면 마음으로 대해 주었습니다.

 

선교사님도 느꼈나 봅니다.

그 교회 원주민 목사님도 느꼈나 봅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전에 왔던 의사 선교 팀은 자신들은 마치 마루타 취급을 했고

너무 거만해 보였는데(물론 다는 아닐 것입니다.)

우리들에게서는 전혀 그런 느낌을 못 받았다고 합니다.

 

너무 좋다고 합니다.

너무 편안하다고 합니다.

사람대접 받는 느낌을 받았다 합니다.

너무 고마움을 느끼었다고 합니다.

 

교회당의 의자를 치우고 테이블 4개를 놓고

얇은 요나 수건을 깔아 놓고 그 분들을 엎드리게 해 놓고

치료를 하였습니다.

하다 보며 윗도리를 벗기도 하고 엉덩이가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본 주민들이 서로 상의 했는가 봅니다.

어디서 천을 구해 오고 철사를 구해 오더니

교회 기둥과 기둥 사이를 못을 박고 철사를 연결하더니

천을 내려서 4개의 칸막이를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으로 테이블을 옮겨 놓고 진료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습니다.

아 저것이 인권인데…….

아 저것이 존엄인데…….

웃통을 벗고 엉덩이를 보이는 것에 대해

스스로 불편해 하면서 자존의 모습을 찾아 가는 마음이

칸막이를 만드는 모습 속에서 느낄 수 가 있었습니다.

 

치료 하는 것도 좋고, 베푸는 것도 종치만

겸손한 마음과 섬기는 자세, 그리고 존귀하게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더 중요한지를 깨닫는 순간이었습니다.

 

예정된 시간 보다 1시간이 더 지체 됐습니다.

이제 끝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주민들이 너무나 고맙다고 합니다.

기도를 해 주고 싶다고 제안 합니다.

우리를 빙 둘려 세우고 다들 손을 높이 들고 기도를 해 줍니다.

너무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갓 태어난 3개월 된 갓난아이의 부모님이 기도를 요청합니다.

심장에 구멍이 났다고 합니다. 심장 판막증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또 한 번 통성으로 기도하자고 하고

제가 목사이기에 손을 대고 기도 했습니다.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성령으로 기도가 흘러나옴을 느끼었습니다.

돌아오는 길이 너무 늦었고 시간이 많이 걸렸고 몸도 피곤했지만

다들 너무 좋았는지 기쁨으로 돌아오는 발길이 되었습니다.

 

서선교사님과 사모님을 통해 평생 잊지 못할 대접을 받았습니다.

자연산 꿀 차, 전복죽, 갓 잡은 상어 회 그리고

생선구이, 매음 탕에 풀코스로 대접 받았습니다.

선교지에서 이런 대접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융성한 대접을 해 주신 선교사님과 사모님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선교사님!

LA에 오시면 제가 쏘겠습니다.

진짭니다.

백동흠 칼럼 2016. 10. 26. 03:45

제4회 십자가의 길은 은혜롭게 잘 마치었습니다.

        제4회 십자가의 길은 은혜롭게 잘 마치었습니다.

 

                                                  백동흠목사

 

벌써 십자가의 길이 4번째 모임이 되었습니다.

지난 1016일부터 17일 양일간 모였습니다.

선교사와 목회자 부부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입니다.

15분이 정원이나 17분이 오셨고 섬겨주는 분이 13분이 오셔서

30명의 선교사 목회자 부부를 모시고 진행을 하였습니다.

 

십자가의 길의 참 좋은 점은

십자가에 모든 것을 초점을 맞추게 되어 있습니다.

찬양도 십자가 찬양입니다.

말씀도 십자가 말씀입니다.

Workshop도 십자가에 중심을 두게 되어 있습니다.

 

마지막 날 저녁의 시간에

십자가의 말씀과 십자가의 찬양

그리고 자신을 살과 피를 주신 성찬에 스스로 참여를 합니다.

그리고 개인이 10분 간격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이 가신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가게 됩니다.

이 때 원하시는 분(남자 분에 한하여)은 웃통도 벗으시고 맨발로

그 무거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나무 십자가를 지고 그 비아 돌로로사 길을 가는 여정 속에는

또 다른 프로그램이 숨겨져 있으나 이것은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하였기에 말씀을 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 나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에서 주의 영은

각자의 형편에 따라 다양하게 역사하고 있음을

간증을 통해 알 수가 있었습니다.

 

이번 4회는 제가 진행을 맡았습니다.

진행을 맡은 후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저는 남들 앞에서 말도 잘 못하고 발음도 시원찮고 말의 실수도 많아

기도를 아니 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진행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주께 묻고 구해야 했습니다.

기도 중에 깨우쳐 주신 것이 다음과 같았습니다.

 

첫째는 프로그램이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프로그램에 묶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일러 주었습니다.

 

두 번째는 흐름입니다.

그 분위기 안에 영적 실체와 흐름을 잡으라고 하십니다.

 

셋째는 그들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위기와 영적인 실체는

환경이 있거나 프로그램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거기에 함께 참여하는 주의 종들 안에서 나오는 것임을 알려 준 것입니다.

 

저는 진행자로써의 3가지를 염두에 두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은

어린아이 학예회하는 것 같고 어른이신 분들에게는

어색하고 웃기는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그랬으니까요?

 

그런데 놀라운 일은 모든 선교사님과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스스로 영적 분위기를 만들어 주십니다.

영으로 찬양이 흘러나오게 하고

기도 안에 영적인 강한 파장이 나오게 해 주십니다.

그 나무 십자가를 지시면서 성령의 흐름을 따라 가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이제 다들 나무 십자가를 지고 돌아온 후 간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가 진행을 하면서 깊은 감동과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영이 영을 불러내고

마음이 마음으로 화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증이 더 아름다운 간증을 이끌어 내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놀라운 영적 현상을 목격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도 놀라운 간증의 시간이었습니다.

 

십자가 영성원의 공동대표인 이명수 목사님의 마무리 메시지 이후

영으로 회복되고 밝은 얼굴로 떠나가시는 목사님들 선교사님 사모님들

보면서 얼마나 감격이 되고 은혜가 되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물에 비취이면 얼굴이 서로 같은 것 같이

사람의 마음도 서로 비취느니라.(27:19)

백동흠 칼럼 2016. 8. 11. 05:20

백두산 함-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백두산 함-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백동흠목사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척의 군함으로 전쟁의 결정적 위기의 순간을 막아내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우리 한국의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 당시 대포 달린 군함 한척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이 2차 대전이 끝난 후 퇴역한, 450t짜리 구잠함(驅潛艦)으로
하버보트빌딩 회사의 조선소에 보관하고 있는 녹이 슨 배입니다.
정원이 73명 길이 52.9 m 폭7.06 m로 450 t 최고 속력 18노트의 해로써 
연안을 감시하는 초계정에 불과 합니다. 
이 배를 1만 8천 달러에 사게 됩니다. 국가 재정으로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기에
해군 병사의 월급에서 5-10%씩을 각출해서 모은 돈과
해군 부인회에서 뜨개질과 삯바느질과 의복 세탁까지 해서 모든 돈이었습니다.
눈물로 모은 돈이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돈입니다. 

49년 10월17일 백두산 호를 구입하게 됩니다.
49년 12월 26일 미국의 승인을 받고 뉴욕 맨해튼 부두에서 태극기를 올립니다.
50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석 달 만에 3인치 포를 장차하고 딱 사흘 연습합니다.
50년 4월 10일 괌에 가서 포탄 100발을 사가지고 진해항에 돌아옵니다. 

이 백두산 함은 가는 곳 마다 동포를 울렸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마스트에 태극기가 처음 걸렸을 때 해군 병사들이 울었고
대포를 장착하려 간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울었고
포탄 100발을 사려간 괌에서는 징용으로 갔던 조선인들이 울었고
진해에 들어온 배가 너무 초라해서 다들 울었고
그래도 조국의 첫 전함이라고 해서 뿌듯함에 울었다고 합니다.

5월 한 달 동안 녹슨 선체를 닦아 내고 칠을 칠해 단장했습니다.
6월 초, 부산 묵호 여주 군산 목포 인천에 있는 해군 경비부를 순회 합니다.
자신들의 돈을 모아 사들인 군함이기에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입니다.
6월 24일 밤 11시 30분 진해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6월 25일 주일 새벽 38선 전 전선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왔고 
백두산 호는 25일 오후 3시에 동해안으로 첫 출항 명령을 받게 됩니다. 
9시 넘어 대포와 기관포로 중무장 괴선박(1,000 t 무장 수송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괴선박은 김일성의 특별 지시를 받은 북한 군함이었고
그 배에는 인민군 특수 부대원 600명이 중무장한 체 타고 있었고
부산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 장악할 목적을 갔고 온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남한 항구 중 접안 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부산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산만 장악하면 전쟁 물자 차단과 후방교란으로                            너무나 쉽게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 함은 적의 함선임을 보고 했고 26일 0시 10분 격침 명령은 하달 받게       됩니다.
하와이에서 딱 사흘 연습했습니다. 그것도 모의 폭탄으로입니다. 
그리고 백두산 호에 있는 것은 100발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추격전을 하면서 
이미 30발은 소비됐고 남은 것은 70발입니다. 
결국은 적함을 향하여 최대 속력을 내어 다가가 정조준 하여 사격을 해야
승산이 있음을 알고 300 야드까지 좁혀가 집중 사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적의 함대의 마스트가 꺾여 나가고 기울어지면서 침몰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적함에서 발사된 포탄 두발이 조타실과 갑판을 맞추어
두 명의 병사가 전사하게 됩니다.(김창학 상병,전병익 이병) 

백두산 함은 해군 역사상 첫 전투였고 첫 번째 승리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백두산 함이 없었다면
부산이 그대로 적의 수중에 점령 됐을 것이란 것이 미 해군 연구소의 보고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에서 후방의 적으로 인해 쉽게 무너졌을 것이며 
무엇보다 부산 접안 시설을 빼앗김으로 미군의 병사와 군수 물자도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피를 흐리며 또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그리고 그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은 백두산 호를 
준비하게 하시고 두 배나 큰 적함을 발견하게 하시며 침몰케 하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28일 미 105 m 박격포와 총탄이 부산항에 도착했고
5일 지난 후 7월 1일 미 스미스 부대 440명이 들어옵니다. 
이후 이 부산항은 통해 연 인원 500만 명 군수물자 5200만 톤
유류 2200만 톤이 들어오게 됩니다.
백두산 함이 준비 되지 못했다면 6.25의 전쟁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단 한척의 군함(초계정) 백두산 함은 하나님이 준비시켜 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만 존슨의 책 “6.25의 비사(비(秘史)”에서 동해에서의 백두산함의 승전은
6.25의 분수령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자에 
‘전쟁의 가장 중요한 해상 첫 전투로, 
백두산 함(450 t)이  북한의 무장 수송선(1000 t급)을 수장시킴으로
부산항을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 후원을 가능케 했다’고 기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백두산 함에 대해 아시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 역사 속에 스며 있음을 아시는지요?
애국가의 내용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사”가 스며 있는
그 역사의 현장을 우리와 우리의 후대에게도 알게 하여
다시는 6.25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해아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욜1:3)

백동흠 칼럼 2016. 8. 11. 05:09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6. 8. 5. 05:46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6. 7. 9. 05:31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백동흠 목사 

약 300명 정도 모이는  이민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소속된 노회의 목사님이십니다. 
3월 정기 노회 때에도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6월 들어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를 사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노회의 임시 당회장 파송 건으로 전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세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대화중에 참 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때문에 당회가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 좋은 장로님들인데 저로 인해 갈등의 영역을 넘어 분열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기에 제가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를 옹호해 주는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는 너무 죄송스러우나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저로 인해 분열이 생기고 시험이 들게 되면
좋은 성도들이 상처를 받고 지역 교민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기에 
나 하나 낮아지고 죽어 지면되겠기에 6월 말일 부로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의 언어의 표현은 변명이나 탓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깨끗하고 단순했습니다.
제가 또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임지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제가 섬기는 성도가 있고 목회의 터전이 있는데
다른 임지를 뒤에서 알아보는 것 자체가 제게는 용납이 아니 되었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보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일할 때에도 
항상 주님이 앞서서 보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사임하게 되면 노회에 어떤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사임 청원을 내어 주시고
또 하나는 임시 당회장 파송 청원을 노회 서기에게 보내 주시면 될 것입니다.”
“예 그렇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 대화는 이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상하게 저의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상하게 은혜스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성 영락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기득권의 싸움으로 지역 사회에 본이 되어 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의 소리 냉소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복판에서 
저는 참 좋은 목사님 한 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비어 드리고 자신을 포기 할 줄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로 났으면 합니다.
방송에서도 저녁 특종으로 방송됐으면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렇지도 안다는 듯이 침묵하는 가 봅니다.

성경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고후6:9)


백동흠 칼럼 2016. 7. 9. 05:01

엔지의 사랑


그 사랑이 차라리 눈물 겹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백동흠목사                   

엊그제 전화가 왔습니다.
친구 목사님입니다.
“백 목사님! 우리 엔지가 이제 눈이 안 보이는가봐!”
저는 그 소리 듣고 충격을 먹었습니다.

돌아가신 사모님이 사랑해 주며 기른 개입니다.
이름이 엔지라고 합니다.
귀엽고 명랑하고 응석받이이고 눈치도 빨라 잘 알아듣고
순종도 잘 한다고 합니다.
품종은 말티즈로 영국 황실의 족보라고 합니다.

사모님이 병원에 갔다가 병원 구급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엔지는 보았습니다. 
침상에 눕히는 사모님의 모습을 
그리고 힘겨워 하는 사모님의 얼굴을 보더니 
침대에 올라가 얼굴을 한참을 쳐다봅니다. 
그리고 그 혀로 할 타 줍니다.  
낑낑 거리며 그렇게 슬프게 울어대더니  
조그마한 자기의 방으로 간 것입니다.
그리고 밖으로 안 나오기를 5일을 그렇게 하더랍니다.
20여일이 지나도록 제대로 먹는 것 없이 시름시름 아파 누워있게 된 것입니다.
가축병원에 데려가 진단을 했다고 합니다.
친국 목사가 한의사이기에 그 진단서를 보고 말하기를 
이 병은 한의학적으로 “담염”이라는 병명이라고 합니다.
담염이란 병은 감정의 상처에서 기인하는 병이라고 합니다.

사모님이 돌아가신 후 목사님 댁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누워 있는 엔디를 보았습니다.
힘없이 누워 있는 모습에 그 눈을 보니 충혈 되어 눈물이 
그 안에 그렁그렁 고여 있었습니다. 
제 자신도 그 모습을 보니 너무 안타까웠습니다.
비록 개지만 한편으로는 아름다워 보였습니다.
아! 어떻게 이렇게 아파할 수 있을까?
마음이 얼마나 아팠으면 이런 병을 얻었을까?

그런 모습을 보며 제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제 자신이 너무 완악하지 않은가? 
감정이 굳어 버린 존재가 아닌가?
그 사랑의 아픔이 얼마나 컸으면
이제 실명의 고통까지도 감내하는 그 모습이 
차라리 너무 눈물겹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패륜의 세대에
감성이 하얀 석고같이 굳어버린 우리네 사람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모습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비록 한 마리의 개이지만 그 사랑의 아픔은 
정말 아름답고 귀하다 생각이 드시지 않는지요?


* 6월30일 엔지는 9년 10개월의 삶을 살고 그렇게

  떠나 갔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사모님이 돌아 가신 지 한달이 이제 조금 지난 

 날 이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6. 7. 9. 04:24

트럼프의 시대 정신과 카오스의 이론

                     



트럼프의 시대정신 속에서의 

           카오스의 이론과 나비 효과 


                                백동흠목사 

카오스라는 뜻은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을 뜻하는 말입니다.
온통 엉망진창의 세계를 카오스라고 합니다. 

다들 설마 했었나 봅니다.
도날드 트럼프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된 것에 대해서 충격들을 받는 것 같습니다.
더구나 자력으로 대선 본선 행 티켓을 따 낸 것입니다.  

뉴욕타임지는 트럼프의 승리와 함께 160년 전통의 정당인 
공화당이 자살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트럼프의 후보 지명을 ‘불가능할 것 같았던 쿠데타’라고 
표현하고 공화당은 심각한 정체성 위기에 빠지게 됐다”고 지적 했습니다.

트럼프는 증오와 편견, 비열함, 헌법 가치에 대한 경멸, 
장애인 기자 조롱, 무슬림 입국 금지와 히스패닉 검거 주장, 
항의자에 대한 폭력의 찬미, 정치적 반대자에 대한 더러운 협박,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지지에 대한 윙크, 수감자 고문 주장과 테러 용의자의 
무고한 친척 사살 등 과거 발언을 속죄하고 사과해야 한다고
워싱턴 포스트는 지적을 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그런 트럼프를 미 국민이 지금 선택을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트럼프의 막말 돌풍이 미국인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일시적인 카타르시스현상이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착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미국의 국민성과 민심을 반영하는 태풍으로 커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알아야 합니다. 
지금 미국의 국민성과 민심이 바뀌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의 미국은 이전의 미국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이제는 미국은 기독교 국가도 아니고 정신적 도덕적으로
온 세계를 이끌고 지도해 나갈 지도자적 자리에서 내려오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트럼프를 이 시대의 정신이라고 감히 말합니다.
그리고 미국뿐 아니라 인류는 그런 지도자를 선호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류의 미래는 정신적 지도자 도덕적으로 존경 받는 지도자를 
얻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인류는 점차 도덕성을 상실할 것이며 패륜의 사람으로 흘러 갈 것입니다.
그리고 이와 동시에 자연의 재해 현상은 수위를 높여 갈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 사건으로 가는 과정이 될 것입니다. 
지금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인류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냉소하며 
외면하기를 유행성같이 퍼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교회를 왜 이렇게 싫어하고 외면하는지 모를 일입니다.
앞으로의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로 흘러 갈 것입니다.
온통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어 질 것입니다.
그러나 카오스 안에 카오스 법칙과 나비효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마지막 희망일 될 것입니다.

카오스의 법칙이란?
아무리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임이 깊어져도 
그 안에 보이지 않는 질서와 흐름이 그 안에 있다는 이론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깊은 경륜과 섭리가 살아 있다는 법칙입니다.
무질서입니다. 
온통 무법입니다.
99대 1의 사회구조입니다.
강자의 법칙이 승리되는 가치입니다.
그런데 그 카오스 안에 보이지 않는 질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나비 효과라고 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마존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에 
거대한 태풍을 불어 올 수 있다는 나비 효과 말입니다.

연약한 나비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진실의 날갯짓
작은 성실의 몸부림
아무리 억울하고 힘이 들고 죽임을 당할 지라도
담담하게 그 길을 가고자 하는 몸부림의 사람이 있다면 
비록 연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라 일지라도 
하나님은 그 작은 나비의 날갯짓을 통해 내일의 역사를 바꾼다는 믿음입니다.
이것이 나비 효과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한 사람의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대세가 그렇고 분위기가 그렇고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하더라고
그대 하나만이라고 삶의 그 현장에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의 인품 됨으로 사는 것입니다.  
연약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일지라도 
그런 삶을 살아만 준다면
하나님은 그대를 통해 미래의 영광을 보게 할 실 것입니다.
이제 계시록 시대로 가는 길목에서 
삶을 사는 제가 되고 그대가 되었으면 해서 푸른편지를 띄어 드립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눅 12:32)

그대가 희망입니다.

그 시대의 정신이 있습니다. 대세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지금 인류는 잘못된 것을 선택하는 시대로 
흐르고 있습니다. 이것이 혼돈이고 공허이고 
흑암이라고 하면 미래는 절망이 될 것입니다. 
카오스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대세는 그렇게 흘러 
간다고 해도 하나님은 작은 몸부림의 사람을 통해서 
다음시대의 희망을 살려 내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 역활을 해내야 할 사람이 그대입니다.
그대가 미래의 희망입니다.  아! 밝은 웃음으로 
그렇게 사는 그대의 모습이 보고 싶군요.


백동흠 칼럼 2016. 5. 20. 05:12

로사리또 선교 대회에 다녀 왔습니다.


로사리또 선교 대회에 다녀 왔습니다. 

                                       백동흠목사 

지난 주일은 멕시코의 로사리또 선교대회에 갔다 왔습니다.
7개의 한인 교회가 후원을 하고 
멕시코에서 사역하시고 계신 선교사님이 주선하여 
원주민 목사님 내외분 36명을 모시고
로사리또에 있는 Puerto Nuev Hotel에서 선교 대회를 했습니다.

새벽과 아침 강의는 우리 한인 목사님들이 맡아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저녁 집회는 원주민 목사님을 초대하여 그들의 언어로 부흥집회를 갖게 했습니다.
모임마다 집회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리고 5쌍의 결혼식을 해 드렸습니다.
다들 여건이 안 되어서 혼인식을 못 올린 분들입니다.
축복의 한마당이었고
은혜와 감동의 물결이 출렁거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시간
뒤에서 잔잔히 찬양을 불러 주는 테너의 목소리는
영적인 분위기를 잡기에 충분했습니다. 
너무 좋았습니다. 

그들이 인도하는 찬양은 영감이 흘러 넘쳤습니다.
악보를 하나도 아니 보고 부르는데
모두가 찬양 속으로 하나가 되어 순식간에 스며듭니다. 
마치 찬양이 삶속에, 온 몸속에서 베어 흘러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들의 언어로 나도 부를 수만 있다면
그들의 찬양 속에 함께 푹 파묻히고 싶었습니다. 

그들의 모습은 가난이 배어 있습니다.
고생이 온 몸에서 풍겨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왜 이리 낯설지 않고 정감이 가는지
그들의 모습 속에서 우리의 모습, 
나의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들도 우리의 모습 속에서 낯설지 않은
자신들의 모습을 느끼고 있었는지 모를 일입니다.

저는 느끼고 있었습니다.
말하는 소리는 없어도,
와 닿는 행동은 없어도, 
그들의 얼굴에서 
쳐다보는 눈동자에서 
다가오는 태도에서 
너무 고마워하며 주님의 큰 위로를 받고 있다고 
외쳐 주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선교 전략의 좋은 모형을 보았습니다.
몇 개의 작은 교회들이 뭉치고 
목사님들 몇 분이 뜻을 모을 수만 있다면
품위 있고 수준 높은 선교대회를 얼마든지 치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고 싶습니다.

평생 이런 호텔 한번 오지 못 할 
가난한 나라의 원주민 목사님에게 
일생에 아름다운 추억 한 개를 만들어 드릴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귀한 선교 대회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지의 원주님 목사님들을 불러 모우시고
모든 프로그램을 조직하신 김 선교사님과
함께 후원하고 기도하며 선교대회를 진행해 주신
CLM 이사 목사님들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착하고 순수하신 한인 목사님들과
가난하고 초라한 목회의 현장일 지라도
감격에 겨워 찬양하시는 원주민 목사님들의 활짝 웃는 그 모습이
왜 이리 아름다운지요.
그래서 주님도 이런 분들이 있기에 내일의 역사를 희망하시며
이 땅을 축복해 주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눅 12:32)


백동흠 칼럼 2016. 3. 2. 11:56

삼일 정신이 그립습니다.

삼일 정신이 그립습니다.

어느 형제가 태극기가 그려진 티를 입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워서 "엇 태극기 그림 아닌가?"
나도 모르게 물었습니다. 형제는 답합니다. 
"아! 예...! 오늘이 삼일절이잖아요?"
미국까지 유학 와서 홀로 그 날을 기억하고 
태극기의 티를  입고 있는 형제에게서 
내일의 대한 민국을 보았습니다. 희망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