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가정만들기 2011. 2. 3. 06:00

설입니다.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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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오늘 아침 달력을 보니
2일 부터 4일까지
빨간 줄이 쳐저 있었습니다.
 
몰랐습니다.
알고 보니 구정,
연휴 기간이었습니다.

TV을 켜 보니 설날 노래가 나왔습니다.
화사한 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설의 풍요로움에
행복해 하고 있었습니다.

삼삼오오 모여서
설빔 나드리를 가는 TV속의 모습이
오래전
옛날의 추억이
그리움같이 떠 올랐습니다.
 
오늘 내가 타향(타국)살이하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었습니니다.

이 설날에
우리 모두 다
 행복하기를 소원드립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8. 20. 10:27

강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따스하고 부드려운 것이 진짜 강한 것입니다.

                                                                  백 동흠목사

이솝의 우화 중에 바람과 해님의 내기 시합에 대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누가 더 강하고 힘이 센지 겨루어 보자는 것이 였습니다.
마침 지나가는 한 나그네가 있었는데 그 사람의 외투를 누가 먼저 벗기여 내는가
하는 시합 이였습니다. 바람은 자신 만만한 투로 내가 먼저 하겠다고 했습니다.
바람은 심호흡을 한 뒤 힘을 다해 바람을 품어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기 위함 이였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심하게 불수록 나그네는 더욱 강하게 자신의 외투를 움켜잡으며
가던 길을 힘차게 가는 것이 였습니다.
결국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지를 못했습니다.
이번에 해님이 나서면서 “ 자 이번에는 나의 차례지...”하며 앞으로 나서는 것이 였습니다. 그러나 해님은 바람같이 강하게 하지를 않았습니다.
다만 자신의 따뜻한 열기를 뿌리기를 시작했습니다.
서서히 조금씩 열기의 온도를 더해 갔습니다.
어느 틈엔가 나그네는 안으로 더워지고 뜨거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두툼한 외투를 벗기 시작하는 것이 였습니다.
바람과 해님의 시합은 해님의 승리로 끝났습니다.
이때 해님은 바람에게 한마디했습니다.
“여보게 바람 씨-  강한 것이 다 강한 것이 아니라네...”

정말 그런 것 같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풍랑 이는 거친 바다를 다스리는 것은 강한 폭풍우가 아니 였습니다.
아주 고요하고 잔잔한 미풍이 거친 바다를 잠재우고 있었습니다.
삭막하게 굳어져서 얼어버린 대지을 녹이고 부드럽게 해서 생기가 나서 순이 돋고
꽃이 피게 하는 것은 강한 삭풍이 아니라 따스한 봄기운 이였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귀한 교훈이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이 행복하고 윤택하며 기름지기 위해서 꼭 알아야 할 귀한
몇 가지의 교훈을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는 강한것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은 강한 자를 숭배합니다. 그래서 강해야 하고 승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똑똑해야 하며 있는 자가 되야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마다 앞서가려고 하며 높아지려고 합니다.
자신의 약점과 부족은 감추고 자신의 잘남과 강함을 은근히 드려내며 자랑하며
과시하고자 합니다.
나는 잘나야 되고 나는 똑똑해야 하며 훌륭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인정받아야 하며 높임 받아야 합니다.
아니 나야 이제 그렇다 치더라도 내 자식만은 내 남편만은 잘나야 하고
똑똑해야 하며 훌륭해야 한다고 생각이며 그것을 강요하며 사는 것이
내가 아닌가 살펴보았으면 합니다.
그러나 높아지면 낮아진다고 했습니다. 강하면 부려지기가 쉽습니다.
똑똑하면 숨이 막힙니다.
오히려 강한 바람은 더 강하게 마음을 강퍅하게 다져먹게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진정 강한 것은 부드러우며 따스한 것 입니다.
예수님은 연한 순같이 다가 오셨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우리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도 없었습니다(사53:2)  그리고 멸시를 받았고 싫어 버린 바가 되었으며 귀히 여김도 받지 옷 했습니다.(사53:3)
그러나 조용히 나의 아픔을 지시고 나도 모르는 새 나의 슬픔을 당해주시고(사53:4)
대신 곤욕을 치러 주셨습니다(사53:7)
나의 죄와 사망의 쓴잔을 대신 들이켜 주시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진정으로 강한 자의 모습이 이런 모습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우리의 가정은 편해야 합니다. 부드러워야 합니다. 쉼이 있어야 하며
마음이 스스로 열린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터전이 되어야 합니다.
그럴러면 강한 것이 강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강함을 따스하고 부드러운 곳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꼭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되기 소원합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7. 25. 11:40

행복은 따스히 품어 주는데서 물같이 고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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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따스히 품어 주는데서 물같이 고입니다.

                                                                           백 동흠목사  

해리 할로(Harry F. Harlow)와 그의 아내 마거릿 쿠엔 할로
(Margaret Kuenne Harlow)는 레수스 원숭이를 대상으로 17년 동안 연구했습니다.
 
어미 원숭이를 출산 직후 갓 난 새끼와 격리 시켰습니다.
갓 난 원숭이는 멸균된 독방에서 우유병으로 키웠습니다.
수의사들의 관리 아래 완벽한 위생 상태아래에서
따뜻한 온도와 편안 환경에서 자라도록 했습니다.
이 새끼 원숭이는 어미가 돌보는 새끼들보다 훨씬 빨리 성장을 했다고 합니다.
키도 크고 힘도 더 세고 건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성장한 원숭이를 친구가운데 섞여 놓았습니다.
전혀 충격을 준 것도 없는데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불안해했고,
수심에 가득한 얼굴로 벽만 바라보았고 함께 어울리는 것을 힘들어했습니다.
어느 순간 격해지면 난폭해 져서 폭력을 일삼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한편 해리 할로부부는
그렇게 해서 성장한 암컷을 자신의 새끼에게 어떻게 행동하는가를
실험해 보았답니다. 일단 새끼를 낳도록 하기 위해 사랑의 환경을 꾸며 주었으나
암컷은 사랑도 교미도 나눌 능력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공수정을 해서 새끼를 낳도록 했습니다.
새끼가 태어났습니다.그런데 새끼에 대해 전혀 무관심하게 내버려두었고
젖은 먹일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해리 할로 부부는 원숭이의 실험을 통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훌륭한 학습이론이나 교육논리 이전의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따스하게 품어 주는 사랑이 우선되여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 아이를 키울 때 엄마의 젖을 입으로 빨지만
그 눈은 엄마를 뚫어지게 보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젖을 먹는 것이 아니라 눈으로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있었습니다.
엄마가 화난 표정으로 젖을 물리며 여지없이 아이가 설사하는 것도 보았습니다.
그 때 깨달은 것이 있었습니다.
따스하게 품어 주는 가운데 그 인격이 사랑으로 물들어 가는 것이구나!  

오늘날 현대의 가정은 물질적 풍요로움으로 채워 주고 있는데
이상하게 가정은 외롭고 썰렁고 차가운 이유는
따스하게 품어 주는 사랑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따스하게 품어 주는 것은 인격을 사랑으로 물들어 가게 하는 방법입니다.
그런 사랑으로 물들은 사람은 초막에서도 천국을 누리는 행복한 사람이 되게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지금은 냉정의 윤리가 가득찬 시대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들 똑똑하고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때 조금 어수룩하고 조금 바보스러운지 모르지만
여전히 웃어 주고 마음으로 따뜻이 품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합니다.
행복은 따스하게 품어 주는 곳에 물같이 고인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7. 24. 15:42

말이 가정의 행복을 불러 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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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가정의 행복을 불러 들입니다.

                                       백 동흠목사

어떤 이들이 말 합니다.
입 밖에 나오는 순간
말은 죽는다고

그러나 나는 말합니다.
바로 그날부터
말은 살아나기 시작한다고

-에밀리 디킨슨-

저는 10여년 함께 지내오는 사람의 언어 습관을 은연중에 분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은 그때 그냥 말들을 했는데 그것이 5년 10년 지나고 보니
거의 그대로 이루어 진 것을 목격할 수 있었습니다.

어느 집사님은 입에 담은 말 중에 “에이 이놈을 18세만 되어 봐라 알아서 해! 난 몰라”
했는데 정말 18세가 되기도 전에 그렇게 되어버린 모습을 보았습니다.

어느 할아버지는 어린 손자들을 돌보아 주면서 늘 하던 말이
“에잇 저놈들 싹이 노랗습니다.”
할아버지는 손자들의 행동거지가 마음에 차지가 않았나 봅니다.
“싹이 노랗다”는 소리를 저도 옆에서 자주 들었습니다.
전 그때 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습니다.
그리고 시정하도록 권했으나 말의 습관을 쉽게 고쳐지지 않나 봅니다.
계속 그렇게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 그대로 된 아이들의 모습을 요즈음 보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 댁의 심방 갔습니다.
방학이 되어 손녀를 할아버지 집에서 살게 했나 봅니다.
집사님 말이 “방학이라고 요것이 와서(손녀) 잉잉 거리니 죽을 맛이랍니다.”
라고 말을 하는 것입니다. 전 깜짝 놀라면서
“죽을 맛이라니요? 진짜 죽을 맛보고 싶나요. 살 맛 난다고 시정하세요.”
집사님은 목사인 제게 혼날까봐 시정한다고 웃으면서 말한 것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통계학 상 부정적 언어가 우리의 언어생활의 70%을 차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습관같이 되고 체질화 된 사고방식과 말하는 그 언어가
우리의 미래를 그렇게 불려 들인다고 합니다.
웰리암 안츠는 지금의 모든 환경은 과거의 당신의 사고방식과 그 언어의 주파수에
의해서 형성된 것이라고 까지 했습니다. 아마 거의 정확할 것입니다.

성경은 죽고 사는 권세가 네 입의 말에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
말은 영적인 것이며 권세가 있습니다.
말 한대로 우리의 삶이 흘러가고 말 한데로 미래의 실체가 내게로 다가옵니다.

그래서 언어는 다듬어야 하고 훈련해야 하며 의도적으로 라도 경건의 언어를 만들어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름대로 개발한 것이 5가지의 천국 방언이었습니다.

① 은혜의 방언 : 고마워. 감사해. 잊지 않을게.
② 용서의 방언 : 괜찮아,  염려하지 마.
③ 자백의 방언 : 미안해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 용서해줘.
④ 격려의 방언 : 문제없어. 해 낼 수가 있어. 승리할 거야
⑤ 존경의 방어 : 정말 훌륭해.. 정말 자랑스러워.
⑥ 축복의 방언 :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네게 있어. 다 잘 될 거야.  큰 복을 받을 거야

저의 가정은 천국 방언을 평소에 종종 연습 삼아 했었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때론 농담 반 장난 반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다툰 적이 있습니다. 제가 씩씩 거리며 혈기를 부렸습니다.
이때 아들이 와서
"다 제 탓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덕해서 그런 것이니 죄송합니다."
씩- 웃으면서 말하는 것 입니다.
"야 뭐가 네 부덕해서 그래? 내가 네 자식이냐?"
"아빠 천국방언 몰라요?"
순간 성령님께서 아들을 통해 제가 얼마나 마음보가 작은지를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 날 저녁 혼자 생각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어린 자식이 부부 싸움한 아버지에게 와서 자기가 부덕해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  
진짜 웃겼습니다. 어쩜 사는 게 참 재미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자매님!

언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축복의 도구이며 영적인 권세가 있습니다.  
지금 내가 이 언어를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복과 저주가 흘러들어 옵니다.
지금 내가 사용하는 축복의 언어가 미래의 행복은 불러오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행복한 가정은 언어의 사용에서부터 다르답니다.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나의 언어를 진단해 보았으면 합니다.
(2010년5월7일 푸른편지 글)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7. 24. 15:21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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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백 동흠목사


나의 집에 전기가 들어 온다면 이 지구상에
전기 혜택을 입지 못하는 사람 20억명의 사람보다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집에 맑고 깨끗한 수도물이 들어 온다면
10억의 사람보다 감사 할 수 있습니다.
하루 한끼의  따끗한 밥을 온 식구와 함께 할 수 있다면
8억명의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보다 더 감사 할 수 있습니다.

주일 아침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주의 교회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면
체포와 학대와 죽음의 공포속에 있는 30억명의 사람보다 감사 할 수 있습니다.
냉장고 안에 먹을 음식이 있고 따뜻한 옷으로 몸을 걸 칠 수 있다면
이 세상의 75%의 사람보다 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일고 내가 축복 받은 존재인것을 안다면은
이 세상에 글을 읽지 못하는 20억명의 사람보다 더 많이 감사 할 수 있습니다.

2006년도에 영국의 생크 탱크인 신 경제 재단(NEF)에서
나라별 행복지수를 조사했습니다.
미국의 150위, 영국이 108위, 일본이 98위로 나왔습니다.
한국도 행복지수가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102위입니다.

그러면 가장 행복 지수가 높은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남태평양 호주 근방의 섬나라 비누아투라는 20만명이 사는 아주 작은 나라었습니다.
지난 5월에 한국에 그 나라 관광청장이 방문했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 어떻게 그 나라 국민은 행복할 수 있는가?"
"우리 바누아투의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저 단순하고 소박하지요.
그리고 항상 서로를 나누어 주고 존중히 여겨주는 생활에 익숙할 뿐입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행복은 소유에 있지 않습니다.
소유는 마실수록 갈증을 일으킨다고 했습니다.
불평과 불만은 우리의 행복을 좀먹는 벌레와 같습니다.
그러나 감사는 미래의 번영을 키우는 힘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5월 가정의 달 - 진정한 행복은 어디서 오는것인가를 알았으면 해서 적었습니다.
(2010년 5월5일 푸른편지 글)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3. 13. 04:34

서로 세워 주는 삶의 관계가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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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로 세워 주는 삶의 관계가 아름답니다.


                                                     백 동흠목사

요새 부부관계가 어려움이 많습니다. 서로 세워주는 사명을 잊고 있기  때문입니다.
흔히 나이에 따라 부부관계의 사는 패턴이 다르다고 합니다.
20대에는 서로 신이 나서 살고, 30대에는 서로 환멸을 참으면서 살고,
40대에는 서로 체념하면서도 살고, 50대에는 서로 가엾어서 살고,  60대에는 서로 필요해서 살고,
70대에는 서로 고마워서 산다고 합니다.
부부의 관계에 대해서 사람이 철이 들기가 그렇게 어렵다는 말입니다.
종종 목사로써 부부 싸움의 틈 사이에 들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부부 싸움하는 것 보면 어린아이들같이 유치한 모습을 많이 보게 됩니다.
저의 부부도 종종 부부싸움을 하는데(사실 요즈음은 거의 없지만)
저의 두 아들이 부모인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 철을 들까? 걱정해 주는 얼굴의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보며 부부싸움 하다가 한참을 웃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런 연약한 사람들끼리 모였는데, 당연히 서로 세워주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나게 하신 한 가지 이유는 "서로를 세워주기 위해서!"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워 주는 대화는 그냥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16세까지 삶에 대해 17만 3천개의 부정적인 메시지를 받는다고 합니다.
이에 반해 긍정적인 메시지는 1만 6천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루 평균 29.6개의 부정적인 메시지에 겨우 2.7개의 긍정적인 메시지를 받는 셈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은 그대로 방치해 두면 삶을 세워 주는 말을 하는 것보다
허물어 버리는 말을 하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셰드 헴스테더 박사는 우리 인간은 하루에 5만∼6만 가지의 생각을 하고
그 많은 생각 중에 75% 이상은 부정적인 생각이고 25% 미만은 긍정적인 생각이라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관리하지 않고 가만히 놓아두면 누구나 자신 뿐 아니라 다른 사람까지도 망가지고
무너지게 하는 사람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아내가 수도사를 찾아 왔습니다.
너무 속이 상하고 괴로워서 더 이상 남편과 살 지 옷 하겠다는 것입니다.
수도사는 정수된 약물을 주면서 귀한 것이기 때문에 꼭 부부싸움 직전에 한 모금을 마시되
삼키지는 말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런 결과 정말 놀랍게 부부싸움이 사라지고 좋은 부부의 관계가 됐습니다.
아내는 수도사에게 찾아와 감사하며 그 정제된 약물이 참 신비롭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 수도사 말하기를 "그 약물은 보통의 물입니다. 다만 신비로운 것은
침묵과 절제된 언어입니다." 라고 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자매형제여!

차라리 말에 대한 침묵과 절제가 필요 합니다.
그리고 이제 영의 사람이 되어 상처를 싸매주고 인정해 주며 희망을 주고 세워 주는
언어의 훈련을 스스로 해야 합니다.
서로 세워주는 삶의 관계를 가질 때 우리의 삶의 질은 생각 보다
훨씬 아름답고 행복해 질수 있습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3. 6. 04:47

말 한 마디가 보약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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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보약입니다.

                                                백 동흠 목사

우리 집에는 효비가 있습니다.
효비는 항상 입니다. 언제나입니다.
변함이 없습니다. 나가며 들어 올 때 마다 그렇게 껑충껑충 뛰며 반가워하며
좋아 해 줍니다.
그런데 효비가 기뻐 좋아해 주는 것이 가식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해 주는 느낌을
받게 합니다. 솔직히 감동을 먹게 합니다.

어느 형제의 고백입니다.
내가 집에 들어 올 때 우리 아내가 집에서 키우는 개같이
반겨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고 합니다. 정말 개들이 말을 할 줄 안다면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자기 주인을 마음껏 찬양하고 반가워하며 높여 줄 것입니다.

우리 한국 사람은 마음은 사랑하는데 언어가 받혀 주지 못한다고 합니다.
어떤 할머니는 돌아가시는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보며 그렇게 울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가 마지막 돌아가면서 한 말 “임자 사랑했어! 나 정말 임지만나 행복했어.”
그 한 말이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했다고 합니다.
평소에 그렇게 듣고 싶었는데... 마지막 가면서 한 그 말이
왜 이리 마음에 절여 오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독일의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인격은 말에 의해서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언어가 그 사람의 교양의 척도이고, 인격의 척도라고 한 것입니다.
외모는 예쁘고 세련되었는데 말은 거칠고 차가운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그 사람은 냉정한 사람일 뿐입니다.
성경적 세련된 말은 따스한 사랑의 언어들입니다.
상처를 아물게 하고 영혼을 살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주는 말들이 세련된 말이고
그런 사람이 세련된 사람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남편, 아내 자녀들에게 무엇을 못해 주었다고 속상해 하지 말고,
따뜻한 사랑의 말을 많이 해주지 못한 것을 속상해 해야 합니다.
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은 사람에게 물질 환경보다
언어 환경이 더 소중하다고 했습니다.
좋은 집에 살게 하는 것보다 희망이 넘치는 따스한 언어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보약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보약입니다.
상처를 치료하고 그 영혼을 소생케 하며 정신과 마음을 희망으로 살아나게 하는 힘은
따스한 사랑의 언어 안에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2. 6. 10:00

나의 가정은 꽃밭인가? 잡초밭인가?

내 가정은 꽃밭인가? 아니면 잡초 밭인가?

 꽃밭과 잡초 밭의
차이는 단 한가지랍니다.
가꾸기에 따라 확연히 차이가 드러납니다.

아름다운 꽃밭은?
흙을 갈아 주고 거름을 주고 예쁜 씨앗을 뿌려 주고 물을 주고 새끼줄을 쳐서 보호해 주고 잡초를 제거해 주고 벌레를 잡아 주는 등 정성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꽃밭은 그냥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가정도 작은 꽃밭과도 같이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반면에 잡초 밭은?
단 한가지입니다. 그냥 내어 버려두면 됩니다.
그냥 무관심과 방임으로 방치해 두면 그대로 잡초 밭이 됩니다.
마찬 가지로 우리의 가정도 그냥 내버려 두면 잡초 밭이 되어 집니다.

저는 많은 분들께 물어 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혀 모르고 계셨습니다.
그냥 둘이 좋아 살다 자녀를 낳으면 가정이 되는 것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아니요
우리의 가정은 설계도가 필요 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주신 가정에 대한 매뉴얼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그 매뉴얼에 기초한  “내 가정에 맞는 맞춤 설계도”가 필요 합니다.

가정을 잡초밭같이 방치한 가정이 있습니다.
그런 가정은 부부가 망가지고

자녀들이 탈선하여 불행으로 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런 가정은 자신의 가정이 하나님이 행복하게 설계하신 그 설계도가 있음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설계하신데로 가정에 대해 정성과 관심을 기울여서 아름다운 꽃밭을 가꾸듯이 가정을  가꿔 나가시는 분이 있습니다.
이런 가정은  부부가 그렇게 행복합니다.
자녀들이 그렇게 밝고 윤택한 삶을 사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한번 묻고 싶군요?
그대의 가정은 꽃밭인가요? 아니면 잡초 밭인가요?

가정에 작은 관심과 정성을 기울이고
하나님이 계획하신 가정에 대한 말씀을 귀담아 들으시고
그 매뉴얼에 맞추어 나의 가정을 세우려고 한다면
그래서 조금이라도 정성과 관심을 기울이신다면 생각 보다 더 윤택하고
풍요로운 가정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그 배후에서 아주 많이 도와 주신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맡7:24-25)  

행복한 가정만들기 2010. 1. 9. 03:49

복과 저주는 말을 통해 들어 옵니다.

                                 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백 동흠목사  

“언어생활은 그 사람의 운명을 대신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입의 말로 네가 얽혔으며 네 입의 말로 인하여 잡히게 되었느니라.”(잠6:2)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1980년대 청바지에 통기타가 유행했습니다. 저도 무척 좋아 했는데 그때 어느 선배 친구가 있었습니다. 서로 열렬히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결혼을 하였습니다. 아주 잘사는 것 같았는데 1년이 지난 후에 이들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 그들의 생활을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일을 발견했습니다. 그것은 서로 기타 치며 노래를 좋아 했는데 집에 있을 때 마다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렸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부른 곡은 양희은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 차중락의 “낙엽 따라 가버린 사랑” 등을 중심으로 한국에 이별 곡 중에 좋은 곡 열 몇 개의 곡을 계속 해서 불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1년을 지나놓고 보니 그들 부부의 머릿속에 이별이 각인되었고 어느 날 아무런 이유 없이 자연스럽게 이혼하여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되어 낙엽 따라 떠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꾸민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입니다.

우리 입술의 언어는 각인력이 있고 성취력이 있습니다.

어느 대뇌학자는 우리의 뇌 세포는 98%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또한 우리의 중추신경도 언어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야고보사도도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야3:5) 했습니다.
누에가 자기의 입에서 나오는 300미터의 명주실로 자신의 고치를 짓고 그 안에 들어가 사는 것 같이 우리 인간도 자신의 언어의 고치 속에 움막을 짓고 알게 모르게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 아는 어느 할아버지 집사님은 손자를 보면서 하는 말이 “에이 싹이 노란 것들” 이란 말을 제가 아주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아는 어는 집사님은 노래하듯 “이놈들 18세가 되면 알아서 해 난 몰라” 하더니 그대로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을 때 마다 가슴이 철렁 철렁 내려 않는 느낌을 받았습니다만 오랜 구습에 묶인 언어 습관을 고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평소에 좋은 언어 습관을 갖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후 부정의 언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하기보다 긍정의 언어를 개발한 것이 더 합리적이라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긴 언어가 천국 방언이었습니다.

은혜의 방언
: 고마워. 감사해.
용서의 방언
: 괜찮아,  염려하지 마.
자백의 방언
: 미안해 내 탓이야 내 잘못이야.
격려의 방언
: 문제없어. 해 낼 수가 있어.
⑤ 존경의 방언
: 정말 훌륭해.. 정말 자랑스러워.
⑥ 축복의 방언 :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네게 있어. 다 잘 될 거야.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언어는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큰 특권이며 축복의 도구입니다.
언어의 권세를 잘 사용하여 천국의 삶을 누리는 우리 가정과 삶이 되었으면 합니다.

저의 가정은 천국 방언을 평소에 종종 연습삼아 했었습니다.
서로 손을 잡고 때론 농담반 장난 반 연습을 했습니다.
하루는 아내와 다투적이 있습니다. 제가 씩씩 거리며 혈기를 부렸습니다.
이때 아들이 와서
"다 제탓입니다. 제 잘못입니다. 제가 부덕해서 그런 것이니 죄송합니다."
씩- 우스면서 말하는 것 입니다.
"야 뭐가 네 부덕해서 그래? 내가 네 자식이냐?"
"아빠 천국방언 물라요?"
순간 성령님께서 제가 얼마나 마음보가 작은지을 깨우쳐 주었습니다.
그 날 저녁 혼자 생각하면서 얼마나 웃었는지 모릅니다.
어린 자식이 부부싸움한 아버지에게 와서 자기가 부덕해서 그러니 용서해 달라? 
진짜 웃겼습니다.
어쩜 사는게 참 재미 있다 생각이 들었습니다
.




행복한 가정만들기 2009. 12. 8. 06:44

대화에도 명품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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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화의 품격을 높였으면 합니다.

                                                         백  동흠 목사

뽀빠이 이상룡이가 “노인만세”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모셔다 놓고 여려가지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할 때의 일입니다.
한 할아버지에게 "천생연분" 이란 단어를 주며 할머니에게 알아 맞히도록 하는 게임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신 차게 물었습니다.
"임자? 자기와 나와의 관계를 뭐라고 하지?"
할머니는 순간적으로 대답했습니다.
"웬수?"
사람들이 와- 하고 웃습니다. 할아버지는 황급히 또 묻습니다.
"아니. 4글짜 인데 오랫 동안 함께 좋게 사는것. 네글짜야 네글짜"
"평생 웬수?"
할머니의 답에 관객과 시청자는 배곱을 잡으며 웃어 댔습니다.

종종가다 저의 아내도 저를 보고 "에구 웬수?" 라고 웃으며 말합니다.
하루는 제가 물었습니다.
"여보? 웬수의 반대말이 무엇이지?"
아내는 한참을 생각하다 한 말이 "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 앞으로 웬수라고 하지 말고 연분이라고 하자? 알았지요?" 했습니다.
요즈음에는 "웬수?" 라고 하지 않고 "연분"이라고 훈련(?)하고 있습니다.
"에구... 평생 연분"

얼마 전 TV보았습니다. 한 회사의 사원들의 대담하는 프로그램인데 가정 프로그램 중의 일환이었습니다.
집에서 수고 많이 하는 아내을 위한 대화의 시간에 즉석에서 전화하는 순서가 있었습니다.
그 통화하는 내용이 얼마나 멋적고 대화의 내용이 전혀 없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통화의 내용을 대충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습니다.
“응? 나야. 별일 없어?”
“예, 별일 없어요.”
“아이는?”
“예? 아빠 TV에 나온다고 해서 같이 보고 있어요.”
“저녁은 먹었고?”
“예 아까 먹었어요.”
“지금은 뭐해?”
“TV 본다고 했잖아요?”(또 한번 묻다가는 혼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은 사전에 남편의 TV 출연 시 전화 통화 프로그램이 있을 것이라는
통보가 있음에도 불과하고 밋밋한 대화가 전부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가정의 대화를 보게 되면
첫째는 대화의 소재가 빈곤하며 둘째는 풍성한 애정의 감정표현이 전혀 없으며
셋째는 대화의 형태가 단답형이며 직선적이라는 사실을 금방 알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그럼 내 가정에 나의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의 모습은 어떻다고 생각이 드시는지요?
행복하고 풍요한 가정은 가정의 대화의 품격에 의해서 결정되여지고 있답니다.
죽고 사는 권세가 혀에 있다고 성경은 말씀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대화의 품격을 높였으면 합니다.
대화에도 명품이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