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1. 9. 24. 05:24

선교사님의 뒷 모습에서 거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선교사님의 뒷 모습에서 거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백 동흠목사

어제는 선교 특강이 교회에서 있었습니다.
위클리프 선교회에 소속된 K 선교사님의 특강입니다.
안식년을 맞아 달라스에 안식처를 꾸미고
이곳 LA에 친척집에 방문차 오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교회의 선교 특강을 위해
사모님과 세 자녀와 함께 오셨습니다.
현지 사역을 동영상으로 보여 주셨는데
선교가 얼마나 무거운 하나님의 사명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쩜 우리가 행하는 선교와는 그 질과 무게가
엄청나게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93년도에 위클리프 선교회의 소속으로 중국으로 들어갔습니다.
중국 북서쪽의 내륙, D지역의 동향족의 땅으로 갔습니다.
중국에는 200개의 종족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이 뚱상족은 60만 명으로 인구로 언어가 없는 미 종족 부족입니다.
김 선교사님은 그들에게 문자를 만들어 주고
그 언어에 근거하여 성경을 번역하여 보급할 계획입니다.
사모님은 그림으로 문자를 표현하고 또한 소리를 언어로
만드는 한 부분을 남편을 도와 사역하고 있었습니다.  

그 곳의 사역하는 동영상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모님이 집에서 음식을 만드는 모습이 잠깐 스치듯 보였습니다.  
한국의 5-60년대의 우리 할머니나 어머니가 머리에 수건으로
두건같이 두르고 50년대식 부뚜막이 있고 아궁이가 있는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선교란 그들의 문화 속에 동화되어 들어간다고 배웠습니다만
그들의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옷을 입으며
그들의 주택에 거하며
그들의 언어를 말하며
그들의 생활수준으로 생활하며
그들 속에 나를 아니, 나의 가족이 완전히 녹아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오직 복음 하나만을 위해 오지 같은 그런 땅에 들어가
평생을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선교였습니다.
선교란 살아서 죽는 순교 그 자체였습니다.

김 선교사님은 93년 이후 지금까지
20여년의 세월을 그렇게 보내 온 것입니다.
그 동안 전도된 사람은 없었습니다.
자신을 도와 성서 번역을 돕는 원주민이 두 명 있으나 미온적인 사람일 뿐입니다.

30대의 젊음의 나이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이제 중년의 나이가 됐습니다.
눈에 보이는 복음적 결실도 업적도 잡히는 것이 없었습니다.
성경 번역의 사역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태어난 어린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교육환경은 전무합니다.
누군가가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것도 없습니다.
한국과는 단절되어 있고 그렇다고 현지 원주민도 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잃어버린 문화와 잊혀진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현대 문명의 최고의 학문이 Ph. D 학위도 별 의미 없이
나이와 함께 녹슬어 버릴 것입니다.

아마 선교사님은 아무도 모르게 내적인 투쟁은 굉장했을 것입니다.
갈등과 좌절 그리고 공허로움과 무기력
사탄의 충동질과 번뇌와 번만 등등  
얼마나 많은 눌림의 세월을 보내야 했을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흔들리지 말고 견고하여 사명하나 붙들고
그곳에 뿌리내려 인내하며 인고의 세월을 사는 것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생각 들었습니다.

특강을 마치고 나누는 대화 속에서
선교사님의 한 마디의 말 속에 엄청난 중압감을 느끼었습니다.
“저 하나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집니다.
제 마음 하나 지키기 위해 얼마나 몸부림치는지 아무도 모를 것입니다.”

그런 20여년의 세월 속에 큰 위로와 보람은 이제 신약성서 번역 사역이
거의 다 끝나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선교사님의 기도의 제목은  
“이렇게 번역된 성경의 말씀이 60만 미 종족인 저들의 마음에
뿌려지기만을 기도할 뿐입니다.”

사모님은 참 조용하시고 가 여린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적 강인함과 그 얼굴에 주님의 평강이 서려 있음을 느끼었습니다.
사모님은 말합니다.
“그래도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첫 아들과 둘째 딸이
인터넷으로 공부하여 미국과 캐나다에 있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
열심히 공부를 잘하고 있는 것이 얼마나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저는 차를 타고 떠나는 선교사님의 뒷 모습에서  
거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무명한자 같지만 주의 나라에서 유명한
유명 인사를 뵌 느낌을 받았습니다.

* 선교사님에게 허락받은 글이 아니기에
 개인의 이름은 적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