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1. 9. 24. 06:34

미래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에게 열립니다.

미래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백 동흠목사

가린샤는 브라질의 축구 선수입니다.
그는 소아마비로서 지적 장애가 있었습니다.                    
24살에 지능지수가 33이 나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른 쪽의 다리와래 왼 쪽의 다리의 차이가 6센티나 차이가 나는
기형 다리었습니다. 그래서 오른 쪽 다리는 바깥으로 휘어져 있고
왼 쪽 다리는 안쪽으로 휘어져 있었습니다.
어느 날 축구 시합을 구경하고 외치기를 나는 꿈을 보았다고 외쳤습니다.
나는 축구를 한다.
나는 축구 선수가 된다.
이것이 나의 꿈이다.
그 누구도 나를 막지 못 할 것이다.
나의 꿈을 막는 사람을 나는 용납 안 할 것이다.
가족의 반대도, 의사의 충고도, 친구들의 무시하는 것도
또한 나의 내면의 의심도 그 꿈을 결코 막지를 못 한다.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그렸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는 결국 축구를 하게 됐고 국가 대표 선수가 됐고
월드컵 3회 참가했고 11년간 국가 대표 축구 선수로 활약했고
펠레이후 가장 뛰어난 축구선수로 그 이름을 남겼습니다.

하버드대 심리학 연구소에서 보고된 내용입니다.
65세 이상의 정년 퇴직자들을 분석했다고 합니다.
사회 현상 속에 공통적으로 아래와 같은 경제 구조가 나타났다고 합니다.
3:10:60:27의 비율로 경제적 부가 형성된 것입니다.
3%의 사람은 경제적 최고의 부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10%의 사람은 은퇴이전이나 이후의 큰 차이 없이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60%의 사람은 간신히 생활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27%의 사람은 누군가의 도움을 통해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예일 대학교에서도 사회 구조 속에 나타난 경제력에 대해 연구했습니다.
3%의 사람의 부요가 97%의 사람의 재산을 합친 것 보다
더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
3%의 사람을 분석해 볼 때 2가지의 특징이 나타났습니다.  

첫째는 그 사람들의 환경과는 전혀 관계가 없었습니다.
인종이나 학력, 인맥, 부유한 집안의 자녀, 재산의 유무 등등과는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둘째는 그 사람들은 미래를 그렸습니다.
3%의 공통점은 미래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했습니다.
미래의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고 미래의 목표에 대한 문서를 만든
공통적인 특징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바라는 것의 실상이 믿음이라고 했습니다.(히11:1)
여호수아는 그의 백성에게 미래의 땅에 대해 그리라고 했습니다.(수18:4)
예수님은 네 믿은 대로 된다고 했습니다.(마8:13)
바울은 네 생각하는 것에 넘치도록 하시는 하나님을 소개했습니다.(엡3:20)
미래는 미래를 그리는 사람, 미래에 대한 꿈과 비전을 문서화한 사람에게
열려진다는 사실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그리며 문서화 시킬 것인가?

첫째는 단순하고 명료화하게 그릴 수 있어야 합니다.
갸린사는 단순하게 “축구선수 된다.”는 미래에 대한 그림을 가졌을 때는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축구 선수 은퇴 후의 자신의 미래상을 그리지 못했습니다.
그 결과 은퇴 후의 삶은 술과 여자로 탕진하다가 50의 나이에 일찍 죽었습니다.
단순하고 명료화된 꿈과 비전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방향성을 그쪽으로 몰아가야 합니다.
박찬호는 야구장으로 가야하고 박세리는 골프장으로 가야 합니다.
박지성은 축구장으로 가야 합니다.
그리고 거기서 고민하고 대안도 만들고 대책도 세우고, 연습, 훈련하고
거기서 죽어야 합니다.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 죽는 법이 없다고 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 하는 성경 말씀 중에 하나가 누가복음 13장33절의 말씀입니다.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흐름입니다. 맥과 맥이 이어가야 합니다. 오늘과 내일,
그리고 모레로 이어나가야 하며 그쪽을 향하여 가는
방향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가서 죽어야 합니다.

셋째는 그려진 꿈과 비전을 달달 외우는 것입니다.
하루에 단 10분 만이라도 미래를 또리방하게 말하면 운명이 달라집니다.
미래를 달달 외우고 시인하고 외치고 선포하는 것입니다.
미래의 목표와 방향성을 분명히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나가고자 한다면 역사의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예수님 안에서
어느 날 어느 틈엔가 그려진 나의 미래의 모습이 현실로 다가오는
놀라운 일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합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