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3. 2. 12. 08:10

새해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새해에는 희망이어야 합니다. 

                                                백동흠목사 

조급증은 말세의 증상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고통중의 하나는 조급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1980년대에 미래학자 토플러는 미래의 현상 중에 하나는 조급해 질 것이라고 했습니다.
강자와 약자대신 빠른 자와 느린 자가 대신 할 것 라고 했는데 
오늘에 와서 그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빨라야 하는 시대입니다. 
모든 것이 고속화되고 즉석화 되고 경쟁화되고 있습니다. 
냉장고도 급속 냉각이어야 잘 팔립니다.
선거도 투표와 함께 출구 조사를 해야 직성이 풀립니다. 
복권도 즉석 복권을 많이 사고 술도 폭탄주를 원합니다.
남녀의 만남도 번개팅을 선호합니다. 
식용 동식물도 성장 호르몬을 집어넣어 조급한 성장을 원합니다. 
정보도 “누가 먼저 아느냐”가 힘, 능력 성공의 기준이 되고 
모든 전자 제품도 어느 제품이 속도가 빠른가를 묻고 있습니다. 
인터넷도 1,2초 단위로 인터넷 회사의 운명이 사활이 바뀝니다.

그러나 이것은 말세의 증상에 불과 합니다. 
말세의 인간에게 나타나는 현상이고 
이것이 “고통”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경륜은 이런 것과 상관없이 흐른다는 사실입니다.
산모는 잉태한 후 10개월을 넉넉히 기다려야 건강한 아이를 출산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후 추수의 때를 기다려야 풍성한 열매를 거둡니다.
애벌레는 고치 안에서 때를 기다려야 아름다운 나비로 변형됩니다.
생명은 기다림을 통해서 완성을 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경륜이요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느린 것이 아닙니다. 서둘거나 조급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기다림은 경륜이고 법이고 질서입니다.
기다림은 낭비도 소비도 아닙니다. 
기다림은 희망이며 창조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렸고 요셉은 27년을 기다렸고
모세는 40년을 기다렸고 다윗은 13년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인줄 아시는지요?

첫째는 미래에 대한 기약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주님에 대한 약속의 신실함을 포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셋째는 그 희망을 가졌기에 오늘을 여전히 성실히 주어진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하나님이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희망을 성취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한 알의 씨앗이 필요합니다. 
이것이 희망입니다. 
새해에는 희망을 품고 한 알의 약속의 말씀을 
오늘이라고 하는 터전위에 뿌리고 물주고 가꾸고 흙 북돋아 주면 
살았으면 합니다.
스스로 조급하거나 안달하지 말고 입니다. 
때가 되면 주님이 주님의 방법으로 실현 시켜서 우리에게 안겨 주실 것입니다. 

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146:5)

새해는 희망이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