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1. 6. 25. 08:44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그중에 어느 현실을 사시는지요?


                                                            백 동흠목사

그대는 객관적 현실과 심리적 현실 중에서
어느 현실을 살고 있는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객관적 현실은 자연 스러운 현실 자체를 받아 들이며 사는 것입니다.  
심리적 현실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 나타나 현실을 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무석교수의 자존감이란 책에서 한 여성을 예를 들었습니다.
사업에 성공하여 부요했습니다.
책도 많이 읽어 시사와 정보와 지적인 능력도 갖추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고졸이라는 학력에 대한 열등감이 심했습니다.
이 뿌리 깊은 열등감이 심리적 현실로 살아가게 됩니다.

아파트 소장을 만나려 가는데 소장이 어느 여성과 만나 이야기하느라고
자기를 미처 못 보았습니다. 객관적 현실은 그냥 미처 못 본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소장이 대화하는 여성이
상당한 지적 미모를 갖추고 있는지라 대졸 여성으로 스스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고졸인 자신을 무시하기 때문이라고 무의식의 생각이 스며 나옵니다.
순간 심한 열등감과 상한 감정이 내면에 나타납니다.
그리고 자신감이 상실당합니다.
과일 가게에 갑니다. 과일을 사기 위해 과일을 만져 보는데
점원이 과일을 너무 만지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 순간 “아니 이 사람도 내가 고졸이라고 무시해?”
속이 상해서 집에 들어옵니다.
TV를 보고 있던 남편이 집에 들어오는 아내를 보지를 못했습니다.
이때 속으로 “아니 이제는 남편까지 나를 무시해?”
짜증을 내며 신경질을 부리며 분노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게 됩니다.
남편은 영문도 모르고 당하게 됩니다.
이것이 심리적 현실을 사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심리적 현실은 자신의 생각을 통해서 나타나는 현실입니다.
굴절된 자아를 통해서 다가오는 현실을 사는 사람은
불편한 현실을 살수 밖에 없겠금 스스로를 몰아 갑니다.
대인관계가 불안하고 부담되고 두려움을 주게 합니다.
나를 쪼그라들게 하고 위축당하게 하며 초라하게 합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쪼그라들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포장을 해야 합니다.
과장을 해야 하고 허풍을 떨어야 합니다.
그래서 “내가 쏜다.” 고하면서 없으면서 위세도 떨어야 합니다.

저는 심리적 현실을 오랫동안 산 사람 중에 하나이었습니다.
그래서 힘겹게 패배의식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눈이 열렸습니다.
사람을 대할 때도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고
현실을 그냥 현실로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나와 현실사이에서 울타리가 되어 주고
바람막이가 되어 주신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고 격려 해주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악의 영이 가라지를 뿌리고 연막을 치면서 심리적 현실로
끌어당길 때 분별의 영을 주어 내면의 질서를 안정되게
해 주시는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을 앞에 두고 10명의 정탐꾼은 심리적 현실로 그 땅을 보았답니다.
그리고 스스로를 보니 메뚜기 같았고 저들은 장대한 거민으로 보였습니다.
그러나 2명의 정탐꾼인 갈립과 여호수아는 그냥 객관적인 현실로 보았습니다.
보호자 하나님 안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고 평안하게 그 현실을 보면서
주님이 주시면 그 현실은 우리의 밥이라고 태연스럽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인간의 심리 현상은 질그릇 같답니다.
나를 통해서 보는 현실은 불안하기 그지없답니다.
주님을 통해서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는 훈련을 하자고 권하고 싶답니다.
영성훈련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을 넉넉하게 우리가 떠먹을 밥처럼 생각하고
여유 있게 웃으면서 이겨 나가는 모습,
보고 싶답니다.(11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