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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3
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3
백 동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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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방문과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2
교황의 방문과 한국 교회의 위기위식 2
백 동흠목사
이번 교황의 한국 방문은 한국 교회에 커다란 위기의식을
가져 온 것만은 틀림이 없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작년(13년) 3월에 즉위한 교황이
연말에는 타임지의 올해의 인물로 뽑혔습니다.
올해(14년) 초에는 경제 전문지 포춘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지도자로 교황을 내세웠습니다.
그가 가는 곳 마다 바람을 일으켰습니다.
종교와 인종과 문화의 벽을 넘어 화해와 일치를 보게 하며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조차도 마음이 열리게 했습니다.
천주교에 대한 인식을 바뀌었으며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게 만들었습니다.
이 모습을 본 이탈리아 사회학자 마시모 인트로비네(Massimo Introvigne)가
'프란치스코 효과’(Pope Francis Effect)라고 부르기 시작하면서
세계적으로 유행어가 된 것입니다.
이제 그의 방문을 통해 한국에서도 프란치스코 효과도 예외 없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번 방한 기간 중 교황의 메시지에 대해
어떻게 생각이 드시는지요?
목사인 저는 참 좋았습니다.
너무 단순하고 명쾌해서 참 좋았습니다.
삶과 인격에 촉촉이 스며 있는 말씀들임을 느끼었습니다.
진정한 평화는 정의의 결과라고 말할 때 권위로움을 느끼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정의는 불의를 잊지 말되 용서와 관용으로
불의를 극복하는 것이라고 말할 때 마음의 폭과 깊이를 느끼었습니다.
화해와 일치를 위해서 외칠 때 막힌 담이 허물어진
그의 마음의 진실을 느끼었습니다.
가난하고 낮은 자리로 내려가자고 할 때 그에게서 사랑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부자로 사는 수도자들의 위선이 교회를 해친다고 할 때
그에게서 가난이 배어 있는 인품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저런 말씀들이 안으로부터 스며 나올 수 있는가?
사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교황의 삶을 들어다 보았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살아 있는 영성을 느꼈습니다.
50불짜리의 값싼 Swatch시계를 차고
포드의 Focus를 자가용으로 직접 몰고
버스를 이용해 피정 지을 다녀오고
교황의 저택을 거절하고 게스트하우스에 거하고
교황 즉위식 복장을 값싼 폴레스테르의 합성 섬유의 옷으로 만들어 입고
가는 곳 마다 낮은 곳을 향하여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삶의 모습이었습니다.
즉위 첫 고난 주간 목요일에 소년원으로 찾아가
12명 재소자들의 발을 허리를 굽혀 씻어 줍니다.
그리고 입맞춤을 해 줍니다. 그 중에 무슬림 사람도 있었습니다.
교황의 파격적인 행보에 세계의 사람은 충격을 받았다고 합니다.
거룩한 충격이겠지요.
교황은 세월호의 고통 앞에서 노란 리본을 달았습니다.
어느 분이 정치적 이유로 중립을 지켜야 하니 그만 달아도 좋다고 했습니다.
그때 말하기를 “인간의 고통 앞에서는 중립을 지킬 수 없다”고 했습니다.
인간적인 고통 앞에서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이 되여 진다고도 고백을 했습니다.
아마 이것은 그의 영의 성향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을 떠나는 비행기 안에서
한국에서의 누려진 인기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
“내면적으로 대단한 사람인 것처럼 오만하지 않도록
내 죄와 잘못을 돌이켜 본다. 인기란 잠시 뿐이며 이제 잠시 후면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거지 뭐........“라고 답변했다고 합니다.
77세 먹은 할아버지의 인간적인 신앙의 고백 같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타임지의 래디카 존스 부편집장의 말입니다.
한마디 한마디가 행동 하나하나가 마음의 문을 닫았던 사람들을 열게 하고
교회로 돌아오게 하고 종교가 없는 일반인의 일상까지 바꾸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가난에 대한 교회의 임무와 그의 가르침은 짧은 기간에 가는 곳 마다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고 있다고 했습니다.
저는 지금 한국 교회의 위기의식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이 한국 교회의 위기라고 말하면 이해가 될는지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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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의 방한과 한국 교회의 위기 의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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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목사님과 사모님과 전도사님입니다.
지붕위의 사람도 반가와 해주며 전도지를 받아 줍니다,
다들 이렇게 반갑게 맞아 주며 복음을 받아 들입니다.
이이돌 형제와 함게 몃있는 댄스를 합니다.
헤맑은 오습이 너무 좋았습니다.
밀가루를 덮어씨우며 물총 놀이도 합니다.
현지 목사님의 복음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목사님들과 함께 쩍었습니다.
멕시칼리 한인 교회의 여선교회가 오셔서 도와 주셨습니다.
현지 멕시코 목사님들 입니다.
금방 배워서 따라하는 어린이들 입니다. 너무나 좋아 합니다.
두 아들이 어린 친구들과 함께 하는 것이 너무나 보기가 좋았습니다.
저의 뒷쪽의 어린친구들이 고개를 내민 것이 너무 다정 스럽웠습니다.
어린 친구의 부모님이 십니다.
주민들에게 나누워 주기 위해 쌀, 콩, 설탕 그리고 여려가지 물건을 담는 중입니다.
보육원의 어린이들 입니다.
선교지를 방문하고 왔습니다.
백 동흠 목사
우리 교회에서는 매주 강단에 꽃을 장식하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위한 거룩한 꽃입니다.
성도님들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생일, 추도 결혼기념일 등등)
강단에 꽃을 장식하여 왔습니다.
그렇게 장식하는 꽃을 불우한 어린이를 도우면
주님이 더 기뻐하지 않을까 성도들의 의견이 모아져서
“영적 헌화”라고 하는 명칭으로 헌금으로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영적 헌화의 금액은 20불로 정하고 새해 첫날 영적 헌화표를 만들어
가정의 경조사를 통해 작성하게 했습니다.
올해는 멕시칼리의 고아들을 위해 영적 헌화 헌금을 드리기로 했습니다.
마침 청운 교회를 담임하는 이명수 목사님과 대화중에
목사님이 학생들과 함께 멕시칼리로 단기 선교를 간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돕고자하는 멕시칼리 고아원이기에
장로님들과 상의 한 후 저도 함께 가기로 한 것입니다.
저의 두 아들과 함께 말입니다.
멕시칼리는 멕시코의 바하 칼리포니아의 주의 수도였습니다.
인구는 90만 명이 거주하고 있고
우리가 간 곳은 미국과 국경을 한 멕시칼리의 국경지대 이었습니다.
양철 같은 것으로 담을 쳐서 국경선이 되게 했습니다.
국경선을 끼고 찻길을 달리는데 선교사님이 말합니다.
아직도 이곳의 사람은 미국을 선망한다고 합니다.
이곳에서 하루 종일 일해야 12불정도 벌이가 된다고 합니다.
저 담만 넘어가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에 12불의 벌이가 되기에
그렇게 미국으로 넘어 가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멕시칼리는 문자 그대로 한증막이었습니다.
120도 되는 그런 무더위였습니다.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국경을 넘어 멕시코에 들어오니 한국의 60년대의 풍경의 모습이었습니다.
집들이 왜 이리 허름한지 빈집들 같았고
전쟁 통에 부셔진 집들 같았습니다.
그런데 선교사님의 말을 들어 보면
사람들이 땅을 사고 그 위에다가 벽을 치고 창문을 만들고
문짝을 달고 집을 져 간다고 합니다.
그런데 돈을 버는 데로 조금씩 집을 짓다 보니
2년도 걸리고 5년도 걸린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도독이 들어와 창틀을 빼가고 문짝을 홈쳐 간다고 합니다.
12불씩 버는 돈으로 언제 그 집을 지을꼬? 생각이 절로 났습니다.
마치 60년대의 하꼬방 같은 집들!
허름하고 빈집 같은 그런 곳에서 이렇게 무더운 날에 어떻게 살고
생각이 스치듯 들었습니다.
고아원에 도착했습니다.
2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반겨 주는데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의 우리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숙소는 근처의 조이 센터였습니다.
그곳은 넓은 예배실과 주방이 있고
그 옆으로 화장실과 샤워 실이 딸린 숙소가 있는데 이층 침대로
4명이 잘 수 있는 방이 여려 개가 있었습니다.
냉방이 너무 잘 되어 있고 잠자리도 너무 편했습니다.
학생들은 빈 창고 같은 예배실을 순식간에 바꿔 놓았습니다.
가져온 장식품으로 강단과 벽과 예배실 공간을 장식을 하는데
너무 아름답게 꾸민 것입니다.
마치 방송국의 무대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완벽(?) 했습니다.
14명의 어린 학생들이지만 이들이 하나 같이 뭉치면
얼마든지 무슨 일 이 든지 할 수 있음을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조를 편성하여 노방 전도를 나갔습니다.
선교사님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데려왔습니다.
4개조를 편성하여 보육원의 아이들과 같아 나가게 된 것입니다.
저는 이 무더위에 사람도 전혀 없는 길거리로 전도하려
나간다는 것이 그저 선교지에 왔기에 한번 하는 행사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보육원의 어린아이들이 앞장서서 전도지를 갖고 나갔는데
가가호호(家家戶戶) 찾아가서 외쳐 댑니다.
그런데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나옵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데 반가운 얼굴로 들어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주는데 감사함으로 받습니다.
내일 오전 9시에 오라고 하는데 웃으며 답합니다.
어쩌다 오는 택시를 손을 흔들어 세웁니다.
운전수가 차를 세워 줍니다.
전도지를 전해 줍니다. 웃으며 받아 주고
떠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감동을 먹게 됩니다.
전도가 된다는 사실에 눈물이 났습니다.
복음을 전해 주는 것에 대해 웃음으로 화답하는 것을 보면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너무나 무더워 등이 다 젖어 들고
숨은 콱콱 막히나 사람들의 서민적인 것과 순박함과
전도지를 받아 주는 것 자체가 제게는 60년대의 한국의 정서가
내 안에 살아 나와 마치 고향의 집에 온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포장도로인 자갈밭 같은 길을 걸으면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놀라운 것은
그 다음 날 부모들이 어린이들과 함께 모여 온 것입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우리 어린이들이 교회에 오기만 하면 돌아 갈 줄을 모르고
학생 선생님과 기타에 맞추어 찬양도 하고 배은 율동댄스도 하고
밖에 나와 물놀이도 하는 모습이 우리 어린 시절 하기 학교 때
교회에서 선생님들과 함께 놀던 그 때의 모습이 생각이 났습니다.
선교사님의 말씀에 의하며 집에 가야 무더위 속에 빈집에 있기보다
이렇게 냉방이 잘 되어 있고 좋은 선생님과 목사님이 계시기에
교회에 있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특별히 할 일도 없고 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리고 이 사진들을 편집하여 선교사님과 그 곳 어린이들에게
보내드릴 계획입니다.
돌아오는 길목
멕시칼리가 먼 나라 같지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잊혀진 고향과 어린 시절의 고향 예배당에
잠시 왔다가는 것 같았습니다.
두 아들은 돌아오면서 그렇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공부하여 전문직을 가지고 와서
이들을 돕고 섬기고 싶다고도 하였습니다.
작은 선교 헌금이지만
사랑의 영적 헌화 헌금을 내어 주신 성도님들의 얼굴이
눈앞에 선히 보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어린 영혼들의 모습이 투영하게 보였습니다.
성도님들의 얼굴과 어린이들의 얼굴이 하나가 되어
밝은 모습으로 떠 올라왔습니다.
참 아름답고 그리운 얼굴들의 모습이었습니다.
먼 나라 잃어버린 영혼이 있는 곳에 찾아와 땀과 눈물로 수고를 하시는 선교사님과
잠시 다녀가는 학생들의 해맑은 모습과
이렇게 작은 선교 헌금을 모와 전해 주는 그 손길들이 하나가 되어
어린 영혼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장하게 한다는 사실에 대해
얼마나 감격이 됐는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작은 자들의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며 훗날 주의 나라에 가서
칭찬과 존귀와 영광으로 상 주신다는 소망이 얼마나
감사가 되는지 몸은 피곤하지만 영은 너무 맑았고 기쁨으로 출렁거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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