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4. 6. 21. 08:52

문창극 총리 후보와 액자 효과

           문창극 총리 후보와 액자 효과

                                                         백 동흠목사

문 창극 총리 후보가 온누리 교회의 장로님이시고
하용조 목사님의 권면으로 수요 여성 예배시간에 설교를 한 것이                        발단이 되었습니다.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했다고 한 것입니다.
하도 여론이 들끓어서 그분의 설교(1시간)한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조선 말기 가장 게으르고 비참하게 버려진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은 일제의 식민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경륜과 섭리가 그 안에 있었고
이런 고난과 시련을 딛고 오늘의 한국이 이루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 그 안에 있었음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표현 한 것입니다.
물론 다듬어 지지 않는 표현이 몇 군데 있으나  
오히려 우리 민족이 가야할 미래의 방향까지 제시하고 있는
희망의 말씀을 주고 있었습니다.
저로써는 전혀 문제될 것이 없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런데 여론의 흐름을 보면서 놀라운 충격을 받았습니다.

첫째는 한 마디의 방송 “일제 식민지배는 하나님의 뜻” 이란 한 마디의
방송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았습니다.

언론이 왜곡되고 편협 적이 될 때 그 흐름이 얼마나 무섭게
바꿀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벌써 옛날이 됐습니다만.
“소 파동”도 완전 거짓말에 근거한 여론 몰이가
온 국민을 떠들썩하게 한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둘째는 사람은 너무나 쉽게 충동적이 될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사실 목사인 저도 그 말 한마디만 듣고는
대한민국의 총리 자격 없음을 단언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그 전체를 들어 보니 전혀 아니올시다! 이었습니다.
전혀 그런 의도로 한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었습니다.
너무 쉽게 충동 받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셋째는 한국의 지도자들의 자질에 문제가 있음을 느끼게 했습니다.

초선의원들이 집단으로 “후보자의 즉각적 사퇴 성명”을 발표한 것입니다.
물론 분별 있고 의로운 용기 있는 결단이라고 생각들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기자가 물었답니다.
후보의 강연 내용을 다 들어 보았는가?
답은 “아니요” 이었습니다.
적어도 지도자라면 전체를 보고 흐름을 분별 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액자 효과란 전문 용어가 있습니다.
2002년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가 주장한 이론입니다.
어떤 사실에 대하여 의사 전달을 어떤 틀 안에서 하느냐에 따라
전달받은 사람들의 태도나 행동이 부정적일 수도 있고
긍정적일 수도 있다는 이론입니다.
어떤 틀에 넣느냐에 따라 그 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고
구조화 효과 즉 액자 효과 (Framing effect)라고 명한 것입니다.

이념의 논쟁이나 당리당락이나 이익 집단적 차원의 액자에 집어넣고
보면 아무리 그것은 옳은 것이라고 해도 무조건적 반대로 가게 합니다.
문자하나 하나 내용하나 하나를 분석하여
날카롭게 비판하며 적당히 거짓도 뿌리며 문제를 확산 시켜 나갑니다.
여기에 지역과 연고 그리고 인맥과 파당이 연결되고
여론을 충동질 하면 그 파장은 상상하지 못할 만큼 커지게 됩니다.
그리고 전혀 다른 내용으로 전달이 되게 합니다.

지금 문 창극 총리 후보는 친일파가 되어 반민족주의자가 되어 있습니다.
해명하려 다니기에 급급합니다.
카네만(Kahneman)과 트버스키(Tversky)는                                        이를 닻 내림 효과라고도 했습니다.
닻을 내린 곳에 배가 머물듯이 인간의 사고가 하나의 이미지나
기억에 박혀 버리게 함으로 영향을 받아 그 주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정치라면 훌륭한 인물이 들어와도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가 나라와 민족을 망하게 할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라고 한다면 예수님이라도 얼마든지 이단으로 몰아
십자가에 잡아 죽이는 현장이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저는 목사입니다.
그리고 그 문 창극 총리후보도 장로님이라고 한다면
예수님을 나의 주로 모시고 사는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라고 한다면
이것 하나만을 놓치면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 당시 민중은
예수님을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외치며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바로 그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액자 효과입니다.

이때 예수님은 전혀 영향 받지 않고 묵묵히 그 길을 가셨습니다.
사랑과 공의 그리고 정직과 성실이란 도덕성의 덕목들을 가지고
나 하나 희생함으로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그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그 길을 가자고 감히 말하는 것 절대 아닙니다.
왜요?
나 스스로는 갈 만한 그릇이 못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다 죄인에 불과 하니까요.
다만 우리의 주되시는 그 분이 나로 하여금 그 길을 가도록
힘주시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묵묵히 그 길을 가는 사람이 많아야 내일의 역사가 희망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눅13:33)

2014. 6. 17. 15:10

아버지

      

    아버지  

                     백동흠

그저 별말 없이 거기에
계셔 주기만 해도 든든했던
그 이름이 아버지였습니다.

등 한번 두드려 주기만 해도
위로가 되었던
그 이름이 아버지였습니다.

아무리 가난하고 어려워도
웃어 주시며  
희망이 되게 했던
그 이름이 아버지였습니다.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서
울타리가 되고
따스한 보금자리가 되게 한
그 이름이 아버지였습니다.

그 아버지가 계셨기에
우리가 있고 가정이 있고
대한민국이 있었습니다.

우린 몰랐습니다.
웃는 얼굴 속에 주름이 깊어지고
속으로 눈물지으며
아무도 모르게 긴 밤을 지새우신
그 아버지의 마음을

먼 훗날
아버지가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아버지의 마음을
알았습니다.

아버지…….


***

우리 시대의 영웅이신 아버지의 이름이
지금의 세대에서는 왜 이리 힘이 없어지고
초라해 지셨는지를 모를 일입니다.

조용히 뒤에서 믿어 주시고
누구보다 너그럽게 웃어 주시며
지켜 주시는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의 권위가 살아나며
아버지가 존귀히 여김을 받는
이 시대의 가정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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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와 함게 마시는 커피

 

그대와 함께 마시는 커피

                        백동흠

그대와
함께 마시는 커피는
그 맛이
너무나 좋았습니다.

따끈한 커피 잔
두 손 가득이 감싸 안고
차가운 손 녹이는 것은
그대의 마음이었습니다.

한 모금 입에 물고
환하게 웃는  
그대의 얼굴은  
내게는 평화이었습니다.

온 방 가득 풍겨주는
커피 냄새는
진한
그대의 향기였습니다.


아!
그대와 함께 마시는
커피가 이리도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한 잔의 커피 안에
그대의 사랑이
가득 스며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
행복하신지요?

그대와 나사이에 사랑이 출렁거리면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도
우린 얼마든지 행복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사이
그런 사이로 살았으면 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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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사랑을 선택할 때 입니다.

지금은 사랑을 선택 할 때 입니다.

                                   백동흠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이것도 잠시 이기에

사랑을 선택하는 것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 될 것입니다.


사랑은
훗날에 가서
결코 후회가 없는 삶을
살았다고 고백하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는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처럼 확실하고
분명한 사실이  
없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어차피 우리
그런 인생의 굴레를
벗어 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언젠가 다가올
그 날의 죽음 앞에서
떠나보내며
떠나 갈 때

부끄럼 없이
사랑했노라고
고백할 수 있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사별의
모습이 될 것입니다.  

지금은 사랑할 때입니다.
이것도 잠시 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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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기념일 살알짝 다녀 왔습니다.

Memorial Day 연휴(5월26)를 끼고 주일 모든 일정을 마치고 1박 2일로 조용히 나플린을 다녀왔습니다. 5월 27일이 결혼 기념일이라 바람도 씌일 겸 살짝 갔습니다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작은 편지와 함게 난을 선물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4. 6. 4. 07:17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

 

지대추구와 그리스도인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 

                                                     백 동흠목사

지대추구라는 용어를 들어 보았는지요?
지대추구(地代追求) 라는 뜻은 Rent seeking 입니다.
경제적 용어로 독점권이라고 하는 것이 가장 이해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세월호를 통해 관피아라는 단어가 생겨났습니다.
아니 그 동안에는 숨겨진 단어였는데
세월호 이후에 공개적으로 노출이 된 단어가 되었습니다.
관피아의 출생과정에 대해서 아시는지요?

첫째는 지대 추구로 시작했습니다.

KAIST의 경영대 초빙교수인 정구현 교수에 의하면
일제 강점기와 6.25의 전란과 극한 가난의 불모지의 땅인
한국의 1960년대 초 지대 추구를 통해 개발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정부가 땅을 분할하여 주고 특혜를 주고 여려가지 독점권을 만들어 주어
도시 개발, 철강, 그리고 각 분야의 기관 산업이 성장하도록 특혜를 주었습니다.

둘째는 이익집단으로 변질이 됩니다.

불모지 같은 땅위에서 어느 정도의 특혜와 혜택 속에 땀과 눈물을 흘리며
경제 개발을 한 1세들의 개척 노고에 의해 잘 사는 나라 백성이 됩니다.
여기까지는 좋았습니다.
경제를 일군 1세 개척자들은 가난과 검소의 체질이었습니다.
근면과 성실이 삶의 질이었습니다.
그들이 경제를 일구어 냈지만 결코 사치나 낭비함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밑에서 자란 2세들과 또래 그룹이
어느 틈엔가 강력한 이익 집단으로 변질된 것입니다.
독점권이 독식권으로 변질되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대추구형의 이익 집단이 서서히 나타나게 됩니다.
관료와 법조인, 언론계 노동조합과 의료계 그리고 대학가에도
특권층이 형성되고 마침내 갑을의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1:99%의 사회구조가 되게 한 것입니다. (혁신하라 한국 경제, 박창식)
 
이것이 관료 사회의 마피아인
관피아라는 신생언어가 출현하게 된 배경입니다.

셋째는 비리의 온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대통령은 세월호의 비극에 대해
끼리끼리 문화와 민관유착이라는 비정상적인 관행이 불러온 재앙이라고 했습니다.
이익 집단 안에서 인맥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서로 간에 익권과 특혜를 누립니다.
각종 편법과 비리를 덮어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쌓인 부요로 자신들의 왕국을 형성합니다.
이것이 관피아의 출생 과정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바벨탑인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어느 틈엔가 귀족이 되어 있고 명품으로 치장하며 살게 됩니다.
그리고 이익 집단의 끼리끼리 모여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흩어짐을 면하자”고 합니다.(창11:4)

이런 흐름이 미래의 어느 날 우리의 사랑하는 자녀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비극의 날이 되였음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세월호의 참사를 역사적 교훈으로 삼고 잊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저는 사회 구조를 연구하는 사회학자가 아닙니다.
그리고 사회의 모순과 비리를 개혁하는 혁명가도 아닙니다.
저는 목사이기에 교회와 그리스도인에 대해 성경을 말씀드리고 싶은 것입니다.

첫째는 교회가 지대추구형 이익 집단화 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교회 안에 각종 편범과 비리가 숨겨져 쌓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셋째는 세습이 되고 귀족과 명품족을 형성하여 굳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넷째는 이런 교회가 된다면 교회는 하나님과 역사 앞에서 버림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교회는 물이 되어야 합니다.
물이 흐르게 하는 통로여야 합니다.
주님이 주시는 특혜와 은혜 그리고 모든 축복을
통하여 흐르게 하는 통로가 교회이고 성도의 삶이어야 합니다.

부요를 가난한 사람에게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병들고 소외당하고 버림받은 사람에게 사랑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절망 속에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에게
주의 축복이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이익 집단이 아니라 베풀고 섬기는 집단입니다.
섬김을 통해 사회의 마음을 얻으면서 복음을 선포하는 곳이
교회이고 성도의 삶인 것입니다.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이 무엇인가요?

우리 교회와 성도마저도 종교 마피아가 된다면
우리의 어린 자녀들의 참사인 세월호의 비극을 누가 막아 줄 것인가?
교회와 성도님들은 스스로 물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대추구형 이익 집단으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와 성도는 절대 비리와 편법을 용납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정결한 처녀같이 주님께 드려져야 합니다.
교회와 성도는 사회 저변 층에 있는 사람을 향하여 물같이 흘러가서
베풀어 주며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사회의 모든 사람이 교회를 존경하고 목사님의 말씀을 경청하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여 구원을 받게 됩니다.

교회는 3%의 소금이 되어 비리의 바다 같은
우리 사회를 정화 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무고하게 죽어간 어린 영혼들의 외침이며
이것이 세월호의 역사적 교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