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6. 1. 16. 05:28

소녀상- 또 하나의 한류가 되어.....

 

 

소녀상- 또 하나의 한류가 되어..... 

                               백동흠목사

지난 2015년 12월 28일 위안부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의 이전에 대한
이야기가 솔솔 나오고 있는 것을 보고 저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닐 것입니다.
소녀상의 이전 문제는 합의문에 없다는 정부의 말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소녀상은 정부 차원의 선을 넘어 섰고
이미 우리 한국의 골짜기를 떠나갔기 때문입니다.

지난 해 7월 31부터 8월 10일까지 뉴욕의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에서 성노예를 다룬 컴포트 우먼(COMFORT
WOMEN)이 공연됐습니다.
총 18회 공연 중 16회가 매진되고 마지막 공연은
입석 관객까지 허용함으로 성공적이 공연이 됐습니다.
연출가는 한국인 유학생 김현준씨입니다.
나이는 25세 젊은 친구입니다.
그와의 최근 인터뷰한 내용을 읽은 적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울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이 위안부(성노예) 사건은 한국의 스토리라고 하기에는
인류애적 사건이 됐음을 느꼈다고 했습니다.

인터뷰하는 분이 물었습니다.
관객들의 눈물이 일본 정부에 대한 미움의 감정일까요?
아니면 소녀들에 대한 아픔 마음일까요?
김현준씨는 분명히 말합니다.
소녀들에 대한 아픈 마음이 우선했던 것 같습니다.

김현준씨는 또 이어서 말합니다.
위안부(성노예) 문제는 정부 간의 타협의 과제가 아니라
직접 진솔한 사과를 받고 싶어 하는 그 분들의
마음을 읽어 주셔야 합니다. 결코 물질적이거나 제도적인
장치를 원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는 김현준씨의 말에 백번 동의를 표합니다.

아베는 합의금으로 10억 엔을 줌으로
생존 위안부의 마음을 치유한다고 했으며
이것이 마지막 되돌릴 수 없는 합의임을
강조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지게
해서는 안 될 것이라는 아베의 말을 들을 때 어떻게
저런 사람이 일국의 지도자가 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위안부라는 표현을 쓰고 싶지 않습니다.
성노예라(enforced sex slaves)는 단어가
바른 단어입니다. 성노예가 됐던 소녀상은
이제는 한일 정부의 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한국의 작은 골짜기를 벗어났습니다.

뉴저지 주의 유니언시티에 소녀상을 건립하기 위해
시 관계자를 설득할 때 허드슨 문화제단 김자혜 대표는
이렇게 설득을 했습니다.
“위안부(성노예) 문제는 지나간 과거가 아니라
세계 여성의 보편적인 인권 문제이다”
그 후 소녀상은 맨해튼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앉아 있게 됐습니다.

이미 소녀상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질서인
인류애와 인권을 위해 최전방에 서서 열방의 땅 끝에 가서
앉기 시작했습니다.

성노예 소녀상은
또 하나의 한류가 되어
지구상에 반인류적이고 인권과 생명을 유린하는
열방의 땅 끝에 가서 앉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옆의 빈자리 하나를 마련해 놓았습니다.
인종과 백성과 방언을 초월하여 내 옆에 앉자고 합니다.
그리고 나의 아픔을 느껴 보자고 합니다.
더 이상 이런 범죄가 재발 되지 않도록 하기위해
비둘기 한 마리를 키우며 인류 70억의 마음에 조용히
자리 잡고 앉아 이 땅을 지켜내자고 말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