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함- 그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다.

                                                     백동흠목사 

우리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의 도우심이 우리 민족에게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단 한척의 군함으로 전쟁의 결정적 위기의 순간을 막아내게
해 주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으면 해서입니다.  

우리 한국의 최초의 군함 백두산함의 이야기입니다.
6.25 전쟁 당시의 이야기입니다.

1950년 당시 대포 달린 군함 한척이 없었습니다.
이때 미 해군이 2차 대전이 끝난 후 퇴역한, 450t짜리 구잠함(驅潛艦)으로
하버보트빌딩 회사의 조선소에 보관하고 있는 녹이 슨 배입니다.
정원이 73명 길이 52.9 m 폭7.06 m로 450 t 최고 속력 18노트의 해로써 
연안을 감시하는 초계정에 불과 합니다. 
이 배를 1만 8천 달러에 사게 됩니다. 국가 재정으로는 엄두도 못 낼 형편이기에
해군 병사의 월급에서 5-10%씩을 각출해서 모은 돈과
해군 부인회에서 뜨개질과 삯바느질과 의복 세탁까지 해서 모든 돈이었습니다.
눈물로 모은 돈이고 기도하는 가운데 모든 돈입니다. 

49년 10월17일 백두산 호를 구입하게 됩니다.
49년 12월 26일 미국의 승인을 받고 뉴욕 맨해튼 부두에서 태극기를 올립니다.
50년 1월 24일 하와이에서 석 달 만에 3인치 포를 장차하고 딱 사흘 연습합니다.
50년 4월 10일 괌에 가서 포탄 100발을 사가지고 진해항에 돌아옵니다. 

이 백두산 함은 가는 곳 마다 동포를 울렸다고 합니다.
뉴욕에서 마스트에 태극기가 처음 걸렸을 때 해군 병사들이 울었고
대포를 장착하려 간 하와이에서 사탕수수밭 노동자들이 울었고
포탄 100발을 사려간 괌에서는 징용으로 갔던 조선인들이 울었고
진해에 들어온 배가 너무 초라해서 다들 울었고
그래도 조국의 첫 전함이라고 해서 뿌듯함에 울었다고 합니다.

5월 한 달 동안 녹슨 선체를 닦아 내고 칠을 칠해 단장했습니다.
6월 초, 부산 묵호 여주 군산 목포 인천에 있는 해군 경비부를 순회 합니다.
자신들의 돈을 모아 사들인 군함이기에 직접 보고 싶다고 해서입니다.
6월 24일 밤 11시 30분 진해항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6월 25일 주일 새벽 38선 전 전선에서 북한군이 쳐들어 왔고 
백두산 호는 25일 오후 3시에 동해안으로 첫 출항 명령을 받게 됩니다. 
9시 넘어 대포와 기관포로 중무장 괴선박(1,000 t 무장 수송선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괴선박은 김일성의 특별 지시를 받은 북한 군함이었고
그 배에는 인민군 특수 부대원 600명이 중무장한 체 타고 있었고
부산 지역을 순식간에 점령 장악할 목적을 갔고 온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남한 항구 중 접안 시설이 갖추어진 곳은 부산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산만 장악하면 전쟁 물자 차단과 후방교란으로                            너무나 쉽게 끝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백두산 함은 적의 함선임을 보고 했고 26일 0시 10분 격침 명령은 하달 받게       됩니다.
하와이에서 딱 사흘 연습했습니다. 그것도 모의 폭탄으로입니다. 
그리고 백두산 호에 있는 것은 100발이 전부입니다. 그것도 추격전을 하면서 
이미 30발은 소비됐고 남은 것은 70발입니다. 
결국은 적함을 향하여 최대 속력을 내어 다가가 정조준 하여 사격을 해야
승산이 있음을 알고 300 야드까지 좁혀가 집중 사격을 하게 됩니다.
마침내 적의 함대의 마스트가 꺾여 나가고 기울어지면서 침몰하기 시작 한 것입니다.
이긴 것입니다. 그러나 적함에서 발사된 포탄 두발이 조타실과 갑판을 맞추어
두 명의 병사가 전사하게 됩니다.(김창학 상병,전병익 이병) 

백두산 함은 해군 역사상 첫 전투였고 첫 번째 승리의 기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당시는 모르고 지나갔지만 백두산 함이 없었다면
부산이 그대로 적의 수중에 점령 됐을 것이란 것이 미 해군 연구소의 보고입니다.  
그리고 최후의 방어선인 낙동강에서 후방의 적으로 인해 쉽게 무너졌을 것이며 
무엇보다 부산 접안 시설을 빼앗김으로 미군의 병사와 군수 물자도
들어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전쟁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성도들이 피를 흐리며 또한 얼마나 많은 기도를 
했는지요. 그리고 그 기도를 응답하심으로 하나님은 백두산 호를 
준비하게 하시고 두 배나 큰 적함을 발견하게 하시며 침몰케 하신 것입니다.  

그로부터 이틀 후 28일 미 105 m 박격포와 총탄이 부산항에 도착했고
5일 지난 후 7월 1일 미 스미스 부대 440명이 들어옵니다. 
이후 이 부산항은 통해 연 인원 500만 명 군수물자 5200만 톤
유류 2200만 톤이 들어오게 됩니다.
백두산 함이 준비 되지 못했다면 6.25의 전쟁의 역사는 바뀌었을 것입니다. 
단 한척의 군함(초계정) 백두산 함은 하나님이 준비시켜 준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노만 존슨의 책 “6.25의 비사(비(秘史)”에서 동해에서의 백두산함의 승전은
6.25의 분수령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2007년 미국 해군연구소에서 발간한 ‘한국전쟁과 미국 해군’이라는 책자에 
‘전쟁의 가장 중요한 해상 첫 전투로, 
백두산 함(450 t)이  북한의 무장 수송선(1000 t급)을 수장시킴으로
부산항을 통해 증원 병력과 물자 후원을 가능케 했다’고 기록해 놓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백두산 함에 대해 아시는지요?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그 역사 속에 스며 있음을 아시는지요?
애국가의 내용같이 “하나님의 보호하사”가 스며 있는
그 역사의 현장을 우리와 우리의 후대에게도 알게 하여
다시는 6.25의 비극이 생기지 않도록 해아 할 것입니다. 
너희는 이 일을 너희 자녀에게 고하고 너희 자녀는 자기 자녀에게 고하고 
그 자녀는 후시대에 고할 것이니라.(욜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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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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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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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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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장

2016.08.04 13:51


바다장

        백동흠

꽃잎과 함께
바다에 뿌려 졌다.

땅에서의 삶
마지막 그 흔적이
바다에 잠긴다.

가는 이야 말로
자유로울 것이다.

구름 넘어 푸른 하늘 
그렇게 가고픈 곳으로 
가게 됐으니 말이다.

잿빛 하늘 아래
홀로 남은 이

사랑을 뿌리고 있다.
마음을 뿌리고 있다.
그리움을 뿌리고 있다.

이내 가슴이 너무 아파서
아무도 모르게 눈물짓는다.

아! 사랑하는 이여!
그대는 
정녕 가는 것인가?

잿빛바다
덩그러니 홀로이다
존재가 아픈가 보다 
그리움이 끝내는 눈물 되어 흐른다.

흩어지는 꽃잎위로
어디서 나타났는지
외기러기 한 마리  
날갯짓한다. 

잿빛 하늘 아래 
맴 돌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는 74%가 화장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이를 화장한 후 그 분골을 바다에 뿌리는 것을 
바다장이라고도 한답니다. 
친구와 함께 바다로 나갔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분골을 뿌리기 위함입니다.

롱비치에서 3마일 정도의 떨어진 바다입니다.
가는 길에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현장에 오니 배의 엔진을 꺼 주었습니다.
바다는 갑자기 고요해 졌습니다.   
친구는 분골을 한 주먹씩 꽃잎과 함께 바다에 뿌렸습니다.
사랑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그리움을 뿌리고 있었습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바다는 고요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오직 홀로였습니다.
사랑하는 이는 저 구름 넘어 
그렇게 사모하는 곳으로 갔습니다만
남아 있는 이 잿빛 하늘아래 홀로이었습니다. 
너무나 외롭습니다. 
덩그러니 존재가 아픈가봅니다. 
그리움이 끝내는 눈물이 되어 흐릅니다. 
뿌려진 꽃잎은 바다의 물결 따라 흩어집니다.

다시 배의 엔진이 켜졌습니다.
배는 떠나고 있으나 마음은 흩여지는 꽃잎 위에서 
떠나지를 못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어디서 나타났는지 외기러기 한 마리가
그 주위를 맴돌고 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잿빛 하늘 아래 맴 돌고 있는 외기러기의 모습이
친구의 모습 같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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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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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효과,  류큐왕국과 조선왕국의 차이

                                            백동흠목사 

첫째 건국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1492년 140여개의 도서들을 통일하여 통일 왕국을 이루었고
조선은 1392년 건국하였습니다. 

둘째 왕조의 연수도 비슷합니다.
류큐 왕국은 450년간 지속했고
조선 왕국은 482년 왕조가 지속됐습니다.

셋째 멸망의 시기도 비슷합니다.
일본에 의해서 류큐 왕국은 1879년 무력 병합을 하게 되고 
조선 왕조는 1910년에 일본에 강제 병합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한가지의 차이는
류큐 왕국은 세계 2차 대전이후에도 영영 독립을 하지 못하고
오키나와라고 하는 일본 부속 도서로 주저 않고 말았습니다.
반면에 조선왕조는 대한민국의 이름으로 독립 국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차이는 무엇일까?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고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다고 합니다.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중국 상하이(上海) 훙커우(虹口)공원에서 
전승 기념 행사장에서 일본군 최고 사령관, 제3함대 사령관 등 일본의 고위 고관들을 수통(물통) 폭탄을 던져 폭사 시킨 순국열사입니다.

중국의 장제스 총독은 중국의 백만 대군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한국의 청년이 해냈다고 극찬을 했습니다.
이 후로 장제스는 윤봉길 의사의 소속인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돕기 시작 했고
이 일로 인해 김구 선생을 만났을 때, 또한 이승만 박사를 만났을 때
한국의 독립을 약속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3년 카이로 회담에서 한국을 지명하면서까지 
한국의 독립을 문서화하여 선포하게 한 것입니다.

한국에는 윤봉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류큐에는 윤봉길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이것은 역사의 나비 효과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비의 날갯짓…….
약하고 보잘 것 없는 나비의 날갯짓일 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미래의 어느 날 거대한 파장을 몰고 올 수 있는 현상이 
나비 효과라고 합니다.
이것은 미국의 기상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즈(Edward Norton Lorenz)의 
카오스의 이론에 기초하여 생긴 현상이라고 합니다.
아마존 강의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파장이 되어
미래의 어느 날 뉴욕지역에 거대한 하리케인을 불러 오게 한다는 이론입니다.

윤봉길의 의사의 수통(물통) 폭탄은 
미약한 나비의 날갯짓이었습니다. 역사의 작은 몸부림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미래의 어느 날 하리케인을 만들어 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는 카오스의 시대만은 확실 합니다.
모든 것이 혼돈스럽고 전통적인 질서와 격식이 파괴당하며
무엇이 진실이고 옳은 것인지 모르는 그런 시대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은 나비 효과입니다.
작은 몸부림입니다.

작은 성도님들의 새벽의 기도의 날갯짓입니다.
손해를 본다 하더라고 의롭게 사는 작은 몸부림입니다.
눈뜨고 당한다 해도 여전히 사랑하며 섬기는 바보 같은 사람들입니다.

한참의 젊은 나이
사랑스런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냉정하게 뒤로 두고 
물동 같은 폭탄 한 개를 가지고
죽음의 불길로 뛰어 드는 바보 같고 사람입니다.
미약하나마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멍텅구리 같은 사람이 
아직 이 땅에 있기에 미래의 역사는 희망이 있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역사의 현장에서 작은 몸부림치는 사람 
나비의 날갯짓하는 그런 사람이
몽땅 전부 다 예수의 사람들이면 참 좋겠습니다. 

류큐 왕국에는 윤봉길이 없었고 우리에게는 윤봉길이 있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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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목사님이 있습니다.

                           백동흠 목사 

약 300명 정도 모이는  이민 교회를 담임하시는 목사님이십니다.
제가 소속된 노회의 목사님이십니다. 
3월 정기 노회 때에도 아무 말씀이 없었습니다.
6월 들어서 목사님이 섬기는 교회를 사임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노회의 임시 당회장 파송 건으로 전화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세세한 내막은 잘 모르지만 대화중에 참 산뜻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 때문에 당회가 갈등이 생겼습니다.
다 좋은 장로님들인데 저로 인해 갈등의 영역을 넘어 분열이 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늦지 않았기에 제가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물론 저를 옹호해 주는 장로님과 성도님들에게는 너무 죄송스러우나 
장로님과 성도님들이 저로 인해 분열이 생기고 시험이 들게 되면
좋은 성도들이 상처를 받고 지역 교민들에게 실망을 줄 것 같기에 
나 하나 낮아지고 죽어 지면되겠기에 6월 말일 부로 사임하기로 했습니다.

목사님의 언어의 표현은 변명이나 탓하는 말 한 마디 없이 깨끗하고 단순했습니다.
제가 또 물어 보았습니다.
그럼 임지는 정해져 있는 것입니까?
“제가 섬기는 성도가 있고 목회의 터전이 있는데
다른 임지를 뒤에서 알아보는 것 자체가 제게는 용납이 아니 되었습니다.”
주님이 알아서 보내 주실 것입니다. 제가 선교사로 일할 때에도 
항상 주님이 앞서서 보내 주셨습니다.”

목사님은 제게 물었습니다.
“제가 교회를 사임하게 되면 노회에 어떤 행정 조치를 취해야 할까요?”
“두 가지를 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하나는 교회사임 청원을 내어 주시고
또 하나는 임시 당회장 파송 청원을 노회 서기에게 보내 주시면 될 것입니다.”
“예 그렇게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 대화는 이것이 다였습니다.
그런데 진한 여운이 남았습니다.
이상하게 저의 기분이 참 좋았습니다.
이상하게 은혜스러움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나성 영락 교회가 생각이 났습니다. 
똑같은 이유로 분열과 갈등을 겪고 있습니다.
많은 교회가 기득권의 싸움으로 지역 사회에 본이 되어 주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비판의 소리 냉소하는 글들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복판에서 
저는 참 좋은 목사님 한 분을 만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마든지 자신을 비어 드리고 자신을 포기 할 줄 아는 목사님이
계시다는 사실에 대해 왜 이리 기분이 좋은지 모를 일입니다.

이런 사실들이 신문에 대서특필로 났으면 합니다.
방송에서도 저녁 특종으로 방송됐으면 합니다.
그러나 세상은 아무렇지도 안다는 듯이 침묵하는 가 봅니다.

성경은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가 있다고 했습니다.(고후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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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백동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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