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9. 4. 18. 09:00

십자가의 길

                                                                  백동흠 목사

지난 19년 4월7일부터 8일까지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로 모였습니다.

29명의 목사님과 사모님 그리고 선교사이 모였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마지막 월요일 저녁에는 나무 십자가를 지는 것이

이 모임의 핵심이 됩니다.

제가 담당한 것은 나무 십자가를 지기 시작하면서

끝나기까지의 2시간을 담당했습니다.

저녁 8시부터 마지막 사람이 돌아오는 10시까지 약 2시간동안입니다.

졸거나 영적 분위기가 흩뜨려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다들 기도와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이끌어 주어야 했습니다.

찬양과 기도 그리고 말씀과 간증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이때 멜깁슨의 The Passion of Christ의 5분짜리 각색한 동영상을

3개를 시작과 중간과 마지막 시간에 함께 보았습니다.

 

멜깁슨은 The Passion of Christ은

하나님의 계획안에서 만들어졌다고 고백했습니다.

특히 유대인 협회에서 반대가 심했다고 합니다.

대본을 요구했고 완성되지 않는 필름을 보여 주어야 했고

영화의 생명은 재미있는 스토리인데 다큐 형태로 영화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전문 영화인들은 상업성이 없어 흥행에 실패할 것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멜깁슨은 이러한 불리한 조건 속에서 생각한 것이

차라리 단순하게 만들자.

예수님의 수난에 강하고 초점을 맞추기로 했습니다.

철저하게 실제적이고 당시의 현장감을 살리기로 했습니다.

자막이 있는 영화가 될지라도 당시의 언어인

아람어와 라틴어로 대사를 역어갔습니다.

(미국인은 자막 있는 영화를 안 본다고 합니다.)

이러한 불리한 조건으로 투자자들을 얻지 못해 사재를 털어서

만들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 졌습니다.

상업성이 전혀 없는데 흥행에 성공한 것입니다.

2천여 개의 극장에서 첫 개봉 2,360만 달러의 성적을 냈고

OST는 첫 주에 4만 9천장이 팔리면서 기록 3위에 오르게 됩니다.

그리고 단순한 예수님의 수난의 모습은 복음적 사건으로 나타나면서

강한 복음의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복음의 메시지 안에는 반드시 성령님이 역사합니다.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16:14)

팝콘과 콜라를 들고 영화관으로 들어간 수많은 미국인들이

숙연한 모습, 눈물 짓은 모습으로 나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나오는 것 같았습니다.

그 다음 날 LA 타임지는 말하기를

“극장마다 작은 교회를 이루었다.”는 기사를 내었습니다.

 

상업적이지 않은 영화가 오히려 호응을 불려 일으켰고

흥행 될 수 없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이루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는 다면

첫째 예수님의 수난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것

둘째 내용이 아주 단순했다는 것

셋째 군더더기 없이 실제적이었다는 것

이런 조건들이 복음적 메시지로 나타났음을 느끼었습니다.

 

지난 4월 17일부터 18일 십자가의 길 영성집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볼 때 프로그램은 너무 엉성합니다.

스타 강사도 없습니다.

강력한 메시지도 없습니다.

프로그램은 단순했고 느슨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강한 것이 있습니다.

십자가입니다.

마지막 나무 십자가를 지기 위해 모든 프로그램의 맥과 흐름이

그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제9회 십자가의 길도 The Passion of Christ처럼

흥행에 성공적이었습니다. 다들 호응이 좋았습니다.

그 증거로 마지막 간증의 시간이 주의 영으로 충만한 가운데

밤이 깊어 가는데도 끝날 줄을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복잡할 것 없습니다. 그리고 너무 잘 날 것도 없습니다.

단순하고 다 비워놓고 십자가의 예수님만 붙잡으면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에서 흥행에 대박을 칠 것입니다.

 

2019년 고난 주간도 너무 심각한 척 할 필요도 없습니다.

단순하게, 그냥 단순하게 주님의 고난에 초점을 맞추면

주의 사랑이 출렁이며 다가 올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