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6. 11. 19. 03:14

광화문의 함성과 이가봇의 비극


광화문의 함성과 이가봇의 비극 

                                       백동흠 목사


 1112일 토요일 광화문에 대통령 하야를 위한 수많은 인파가 모였습니다.

주최 측은 100만이라 했고 경찰 측은 25만 명이라고 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대통령 하야라고 하는 푯말을 들게 하는

어른들이 참 못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인파는 광장으로 몰려들었고 거대한 함성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함성의 소리가 저 역사의 건너편 이스라엘의 현장에서도

들려 왔습니다. 땅이 진동할 만큼의 함성이었습니다. (삼상4:5)

 

사연인즉 이스라엘이 블레셋에게서 전투에 패배했습니다.(삼상4:2)

이때 제안한 것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가지고 오자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 하니(삼상4:3)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의 언약궤를 전쟁 마당으로 가져오게 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에 들어 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삼상4:5)

엄청난 함성입니다. 땅이 진동하는 울림입니다.

적군이 블레셋 군사들조차도 그 함성에 놀랍니다.(삼상4:8)

 

대세는 곧 이길 기세였습니다. 분위기는 충천한 사기였습니다.

엄청난 함성 속에 다들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들어가니 너무나 허무하게 무너져 버립니다.

허한 분위기였고 텅 빈 함성이었습니다.

블레셋에게 더 큰 패배를 당합니다.

살육이 심히 커서 이스라엘의 죽은 자가 삼만이 됩니다.(삼상4:10)

그리고 하나님의 궤는 빼앗기게 됩니다.(삼상4:11)

 

이때 제사장 홉니와 비느하스가 그 현장에서 죽게 됩니다.

두 아들의 죽음의 소식을 들은 엘리가 충격을 받아 죽게 됩니다.

이날 비느하스의 아내가 만삭이 되어 아기를 낳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이도 아이를 낳으면서 죽게 됩니다.

이때 아기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정해 주고 죽게 됩니다.

이가봇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뜻입니다.

그 날 그들의 함성은 이가봇의 비극이었습니다.

 

엄청난 함성을 들리게 했고 사기는 충천했고 대세는 이기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언약궤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경건의 모양, 껍질뿐이었습니다.

텅 빈 함성이 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이가봇의 비극이었습니다. 스스로들 속았던 것입니다.

 

어린 중고생이 혁명정부 세우자고 하면서 대통령의 퇴진을 외칩니다.

어느 부모는 어린 자식과 함께 왔다고 하면서

민주주의의 현장 학습을 체험케 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들 민주주의라고 외치면서 촛불을 들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또 한 번 스스로 속고 있는지 모릅니다.

 

국민과 나라를 위한다고 하면서

험한 말을 함부로 쏟아내며 여론을 호도하며

테러에 가까운 언론의 폭력 앞에서 온 국민이 또 한 번 놀아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끝없는 촛불들의 행진,

어린 아이들까지 동원한 엄청난 인파

광화문 광장을 가득이 매운 함성

그런데 제게는 왠지 공허한 함성으로 들려집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같이 보여 집니다.

카네만(Kahneman)의 거대한 액자의 틀에 갇혀있는 집단같이 보여 집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당선자는 새판을 짜기 시작했고

북한의 핵은 이미 그 선을 넘어 현실적 위기로 다가 와있음에도 불과하고

어처구니없을 만큼 안보에 대해서는 불감증 환자가 되어 있고

완벽한 거짓에 속았던 소 파동 같은 사회적 현상이

오늘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직시해야 합니다.

 

20161112!

광화문 광장에서의 함성이 이가봇의 비극이 아니기를 바랄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