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15. 10. 30. 03:48

생각이 바뀌면 삶에 변화가 따라 옵니다.

 

생각이 바뀌면 삶에 변화가 따라 옵니다.

백 동흠목사

호텔 청소 직원이 하루 평균 15개의 객실을 청소 한다고 합니다.
방 하나를 청소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0분 혹은 30분 정도입니다.
청소를 하기 위해 움직이는 운동량은
전문가들이 권고하는 운동량 보다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대부분은
운동으로 보지 않고 노동으로 봅니다.
노동의 대가로써의 “돈벌이”로 생각합니다.
벌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권태와 피곤으로 일상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호텔의 청소 직원들에게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의 67%는 규칙적인 운동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고
나머지 33%는 전혀 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청소하는 노동일에 지쳐 권태와 피곤한 몸으로 몇 푼의 돈을 벌기 위한
“생계 유지형” 사고방식에 갇혀 살고 있는 것이
대부분의 호텔 청소하는 직원의 모습이었습니다.

청소 직원을 두 그룹으로 나누웠습니다.

첫째 그룹은 호텔 청소를 통한 운동이란 강의를 했습니다.
운동의 중요성과 지금 매일 하는 청소를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한 운동이
된다는 것과 구체적인 칼로리 감소량에 대한 통계표까지 일러 주었습니다.
가령 침대를 정리하는데 몇 칼로리, 세면장을 청소하는데 몇 칼로리,
진공청소기를 돌리는데 몇 칼로리 등등 과학적인 통계표까지 알려 준 것입니다.

둘째 그룹은 일반적인 운동의 중요성만을 강조하기만 했습니다.
운동을 하시라 그러면 건강에 좋다는 식의 강의입니다.

첫째 그룹은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노동이 아니라 운동으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한 달 후 첫째 그룹의 사람은 평균 몸무게가 0.8Kg이 줄어들었습니다.
매일 200g 씩 줄어 든 결과입니다.
생각을 바꾸니 변화가 따라 온 것입니다.

둘째 그룹은 전혀 생각의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그들의 생활 속에서도 전혀 변동사항이 없었습니다.
위의 현상에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는지요?
인간은 생각만 바뀌어도 변화가 가능하다는 교훈입니다.

저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집 세면장에 수도꼭지에서 물이 똑똑 떨어집니다.
남자인 제가 힘껏 잠그면 물이 안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수도꼭지를 꼭꼭 잠그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잔소리가 되고 싶지 않아 메모지를 적어 거울에 붙여 놓았습니다.

“ 물이 똑 똑 떨어집니다. 수도꼭지를 꼭꼭 잠가 주세요.^^”

저의 아내가 세면장에 있다가 나온 후 우연히 제가 들어가게 됐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물이 여전히 똑똑 떨어지고 있었습니다.

순간 아내는 나의 말을 안 듣는다.
나의 말을 무시한다.
이제 내 말을 말 같지도 안게 들리나 보지?
혼자 이런 생각이 스치며 올라오는 것이었습니다.
이때 성령께서 제게 일러 주는 음성이
“너무 쉽게 판단하지 말고 생각을 바꾸어 보라‘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전혀 다른 생각이 스며 나온 것입니다.
“아내는 손힘이 약하다”
“맞아 그래..........!!”
제일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부품을 사다가 수도꼭지를 갈아 끼우기로 한 것입니다.
새것으로 갈 아 끼우니 살짝만 잠가도 물이 안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생각이 바뀌는 순간 저의 태도가 변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어쩜 우린 너무 나의 생각의 틀에 묶여 완고하게 굳어 있지 않나 모르겠습니다.
생각만 조금 바꾸어도 우리의 삶은 아주 많이 변할 수 있습니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잠23:7)

백동흠 칼럼 2015. 10. 21. 02:27

이 만원의 행복

 

 

이 만원의 행복

                               백동흠 목사

가난한 가정입니다.
근근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집입니다.
그 집은 항상 행복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에게
“여보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없는 살림에 너무 고생이 많지?
요즈음 얼굴이 많이 핼쑥해 보여 고기 집에 가서 영양 좀 보충하고 와.”
아내의 손을 감싸 안으면서 돈 이 만원을 건네주었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말 한 마디에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습니다.
그려나 아내는 가족들을 두고 혼자 고기를 먹으려 갈수 없었습니다.
아내는 그날 오전에 밖으로 나가시는 시 아버지에게 말 합니다.
“아버님. 변변히 용돈 한번 제대로 못 드리는데 죄송해요.
작지만 이것으로 친구 분들과 점심이라도 사드세요.”

시 아버지는 고마워했습니다.
없는 살림을 하는 며느리가 늘 안쓰러워했습니다.
그래서 차마 그 돈을 쓰지를 못했습니다.
그 대신 친구들을 만나 며느리 자랑만 신나게 했습니다.
시아버지는 비록 가난했지만 행복해 하셨습니다.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주말을 기해 집에 왔습니다.
아들은 엄마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이제 2년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학교 졸업하면 좋은 직장 얻고 엄마 아빠 호강 시켜 드릴게요.
그리고 할아버지도 제가 용돈 많이 드릴거구요.

손자의 모습이 너무 대견스러워
할아버지는 대학교로 돌아가는 손자에게
며느리에게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애야 너 학교가거든 맛있는 것 사 먹어라”
손자는 할아버지의 사랑에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으로 돌아간 아들은 이 돈과 함께 편지 한 장을 썼습니다.
“엄마! 건강하시고 힘내세요. 아들이 있잖아요?
작지만 이 돈을 가지고 아빠랑같이 맛있는 것 사서 같이 드세요.”

아내는 아들의 편지와 돈 이만 원을 남편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편과 아내는 너무 너무 행복해 하는 것입니다.
참 아름다운 가정 행복한 가족이라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요 얼마 전입니다. 저의 아내가
위의 내용이 실린 어느 월간지의 한 쪽을 찢어서
저로 하여금 보라고 저의 책상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쪽지에 끝자락에 한 도막의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여보 우리도 이렇게 살지요.”

“이렇게 살지요.” 라고 하는 한 도막의 글을 읽으면서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마음이 스며 왔습니다.
곰곰이 생각하니 참 재미있고 아름다운 세상이었습니다.

이만 원의 행복이 말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5. 5. 22. 07:44

아시는지요? 스스로 해체당한 마스힐(Mars Hill) 교회에 대해서

아시는 지요? 스스로 해체당한 마스힐(Mars Hill) 교회에 대해서

                                                                   백 동흠목사

“목사 누구이며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라는 주제 아래
바른 교회 아카데미의 강사로 홍정길 목사님이 나왔습니다.
홍정길 목사님이 이런 말씀을 했습니다.
“속지 말라 좋은 생각을 한다는 게
좋은 사람이라는 걸 의미하는 건 아니다. “
“좋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 중에 실제론 나쁜 사람이 많다.”
“말을 멋지게 하고 굉장한 글을 쓴다.
그런데 삶에 실제가 없다“고 했습니다.

저는 홍절길 목사님의 말씀에 100% 공감을 합니다.
제가 목사이기 때문입니다.
어쩜 설교는 재능이고 은사일지 모릅니다.
이런 부분에 은사가 있고 재능이 있으면
설교를 멋지게 할 수 있으며 쉽게 잘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삶은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품은 전혀 “아니올시다.” 일수 있습니다.

올해 1월 1일부로 스스로 해체된 교회가 있습니다.
시애틀의 마스힐 교회입니다.
18년 된 교회입니다.
주일 예배만 1만 4000명 모이는 교회입니다.
성도둘이 연 3천만 달러의 헌금하는 교회입니다.
워싱턴 주 오리건 주 뉴멕시코와 캘리포니아에 지 교회를 수십 개의 교회를 둔 교회입니다.
마스힐 교회의 담임 목사는 차기 세대의 리더로 각광을 받았습니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강사로 초대되면 기본이 1만 7천 달러의 사례금을 받았습니다.
그의 책은 40만 불 인세를 선불로 받을 만큼 알려 졌습니다.
그의 연봉은 60만 불이고 은퇴금으로 연간 5만 불씩 예치됨으로
모든 동료 목회자의 부러움을 샀다고 했습니다.

그런 훌륭한 목사와 그런 교회가
2015년 1월 1일 정식적으로 해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해체된 이유는 삶입니다. 인품입니다.
정치적 수단과 망언과 거짓말 그리고 자금 운영 등의 문제제기로 말미암아
자신이 세운 멤버들에 의해 10월  사임을 당해야 했고
그후 2개월 후 교회도 해체하기로 선언한 것입니다.

웹 사이트를 통해 해체 이후의 교회에 대해서는
지교회로 하여금 새 출발의 기회로 삼아 지역의 장로들에 의해
독자적으로 교회를 세워 나갈 것을 권했습니다.

팀 켈러(Tim Keller) 목사님은 이 사실에 대해 뉴욕 타임지에
이렇게 기고했습니다.
드리스콜(Mark Driscoll) 목사는 인터넷 시대에 정말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복음주의 운동을 성장 시키는데 크게 기여 했다.
그런데 경솔함 교만함 무례함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환멸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을 사랑해 주었던 사람들로부터 빠르게 버림을 받았다“

저는 여기에 한 마디를 덧붙이고 싶습니다.
그와 동시에 교회도 복음도 미국인 모든 사람들에게 부터
거부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지금의 미국교회가 빠른 속도로 쇠퇴하고 있다.”

라오디게아의 교회는
겉멋은 부요하고 부족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삶과 영성은 말라 비틀어져 있었습니다.
종말의 증세입니다.

만약 삶과 영성이 죽어진 사람이 된다면
첫째 교회의 건물은 바벨탑같이 무너져 텅 빈 공간이 될 것입니다.
둘째 믿음이 약한 자들과 자녀들의 세대에게서 외면당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교회는 사회로부터 퇴출당하게 되며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째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이단의 세력(하나님의 대적하는 세력들)이
주도권을 잡게 될 것입니다.

지금 한국 교회의 현실 속에 이런 조짐과 증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면
틀린 말이 될까요?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지금은 삶을 살아야 하는 때이며
인품으로 드러나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야 할 때입니다.
교회당에서만 설교 잘하고 찬양 잘하고 기도 잘 하는 성도로 살지 말고
삶의 현장에서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인품으로 섬겨야 할 때입니다.
홍정길 목사님의 한 마디의 말이 굉장히 제게 와 닿았습니다.
“말을 멋지게 하고 굉장히 글을 잘 쓴다. 그런데 삶이 없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마 15:8)

백동흠 칼럼 2015. 5. 15. 11:24

제1회 미주 십자가의 길

 

 

 

            제1회 미주 십자가의 길

                                             백동흠목사

얼마 전 십자가의 길(비아 돌로로사)에 갔다 왔습니다.
5월 사일부터 3박 4일의 기간이었습니다.
한국에의 경남 창원 지역에서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비아 돌로로사 십자가의 길을 이제 미주지역에서도
이제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시작은 동기는 청운교회 이명수 목사님이 한국에서
비아돌로로사의 프로그램에 참여 하여 십자가를 졌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지면서
엄청난 위로와 치료를 받았다고 합니다.
종종 제게도 간증을 해주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산등성이들 올라가는데
아무리 힘이 들고 어려워도 그 나무 십자가를
버릴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비아 돌로로사의 길을 힘겹게 가는 과정에서
상처가 치료가 되고 주의 위로를 받으며
목회의 영성이 회복되는 것을 체험했다고 합니다.

이후 미주 지역의 목사님들이 십자가는 져야 한다는 소명이
마음속에 스며들어 왔습니다. 그리고 기도를 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한국의 십자가 사역 팀이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자비를 들어 무조건 오겠다고 한 것입니다.

15명의 십자가 사역 팀이 4월 20일 왔습니다.
그리고 청운 교회의 10에이커의 비전 하우스에 머물면서
뒤쪽의 야산에 길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산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서 저 쪽 건너편의 산등성이로 돌아
주님이 가신 비아 돌로로사의 14처소를 만들어 간 것입니다.
나무를 찍어 내어 길을 냈습니다. 가시 넝쿨을 잘라 냈습니다.
이 길을 따라 맨 발로 걸어가야 하기에 돌 짝들과 나무 조각들을
다 솎아 내야 했습니다. 힘겨운 수고를 했습니다.

제가 와서 보았을 때 오랫동안 사람이 다녀서 만들어 낸
길 같이 길을 내었고 깊은 밤 그 길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가야 하기에
길 따라 태양 충전용 조명등도 길을 따라 꽂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골고다 산 정상에 거대한 십자가를 만들어 세웠습니다.
참 놀라운 일을 해 논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하우스 한 채만 덜렁 있는 이곳에
그 옆으로 30여명 들어 갈 수 있는 예배의 처소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놀라왔습니다.
명실 공히 십자가 사역원으로써의 조건을 너무 잘 갖추어 놓은 것입니다.
불과 14일 만입니다.

그리고 이제 5월 4일부터 6일까지
목회지 20여 분을 초대하여 제1회 미주 지역 십자가의 길을 개최하게 된 것입니다.

물론 여러 가지 어려운 점도 있었습니다.
35명의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화장실이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그리고 지하에서 품어 내어 사용하는 물도 갑자기 고장이 나서
물도 밖에 나가서 사와야 했습니다.
그러니 제대로 세수도 못 했습니다.
난방이 안 된 예배당에서 다들 가져 온 침랑하나로 자야 했습니다.
저도 잠자리가 딱딱하고 추워서 설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런 와중 속에 모든 목사님들은
십자가의 찬양 속에 푹 빠져 들어 갔고
십자가의 메시지 속에 마음이 녹아들기 시작했고
한국의 사역 팀이 준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연극 속에서 마음이 열렸습니다.
여러 가지 불편한 것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고난을 묵상할 때에
이것도 하나의 사치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더 추웠어야 했고 더 고생을 했어야 했다고도 말했습니다.

그날따라 찬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추웠습니다.
대기하는 장소에서 많은 찬양을 부르는 가운데 목사님들 한 분 한 분이 약 10여분의 간격에 따라  십자가를 짊어지고 어두운 산등성으로 향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추위 속에서도 어느 목사님은 웃통을 벗으셨습니다.
그리고 양말을 벗었습니다.

이제 저의 순번이 되어 사역 팀의 인도를 따라 일어섰습니다.
저는 웃통을 벗지를 않았습니다.
양말도 안 벗으려고 했는데 제 신발이 없어졌습니다.
제게 커다란 나무 십자가를 건네주었습니다.
나무 십자가를 짊어지고 길 따라 밝혀 주는 불빛을 따라
어둔 골짜기로 들어섰습니다.
조용했습니다. 홀로였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어색했습니다.
어른 된 나이에 마치 학예회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 골짜기를 지나가는데 어느 순간입니다.  
순간적으로 마음이 몰칵 하더니 눈물이 나기 시작 했습니다.
제 모습이 보여 졌습니다. 부끄러웠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이들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가슴이 너무 아파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의 사랑이 물같이 스며왔습니다.
나도 모를 일입니다.
왜 이리 눈물이 나는지 제가 젊은 시절 은혜 받던  그 시절이후
이렇게 눈물이 줄 줄줄 흘린 것이 이번 이 처음이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은
엉덩이 뒤쪽에 달걀만한 종양 덩어리가 있어
너무 고통스럽고 이제 수술 일정까지 받아 놨다고 하는데
십자가를 짊어지고 난 이후 돌아 와서 만져 보니
감쪽같이 없어 졌다는 간증을 하는 것입니다.
훗날 자세한 간증을 글로써 전해 달라고 했습니다.

아!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학예회하는 것 같고 어린아이의 연극하는 것 같아도
주님의 십자가 나도 지고……. 찬송가의 가사 같이
그냥 한 번 어린 아이 심정으로 나무 십자가 짊어 져 보시고
주님의 고난의 길에 참여 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해서 적어 보았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5. 3. 5. 06:39

삼일정신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

 

삼일정신과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

                                   백동흠 목사

지난 2월 28일
삼일절을 앞에 두고 한 일본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청일 전쟁부터 시작하여 한일관계에 대해
일본의 양심으로 인정받는 역사학자 나카쓰카 아키라 교수입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사에 대해 객관적으로
연구한 첫 역사학자로 꼽힌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패전 후 그 책임을 천황에게 물었어야 했답니다.
그를 면책함으로 일본의 역사 왜곡의 빌미를 주게 된 것이
근본적인 이유라고 했습니다.

1945년 태평양 전쟁의 패전 이후 일본의 정권은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 전혀 가르치지를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패전 후의 도쿄대학의 총장인 야니이하라 다다오(矢內原忠雄·1893∼1961)
일본의 대만 식민 지배과정에 대해 책을 썼지만
조선의 지배와 식민지 역사를 책을 쓰지를 못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너무 왜곡 됐기에 진실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일본 백성은 역사에 대해 무지하게 됐고
일본의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조선 침략과
대륙 정복은 합리화 시켰고
그런 가운데 일본의 제국주의를 흠모하는 극우 세력들에 힘을 입어
탄생한 것이 오늘 날의 아베 정권입니다.
그러기에 성 노예의 한 많은 생애를 산 우리의 할머니들의
탄원의 소리조차도 외면해야 하는 것이 일본의 정부의 모습이 된 것입니다.
일본의 앞날이 걱정이 됩니다만

더욱 더 문제는 그런 왜곡된 역사로 다가오는 일본에 대해
우리 한국의 역사 인식이 너무 부족하다는 사실입니다.

어른 세대가 된 제 자신조차도
학교에서 배운 역사 공부라고 하는 것이 너무 빈곤합니다.
그리고 어릴 때 부모님을 통해 전해들은 것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조각, 조각 이야기에 불과 한 것입니다.
1세인 저도 아주 많이 모르는데
미국에 일찍 이민 오신 1.5세의 목사님에게도 물어 봅니다.
전혀 입니다. 진짜 모릅니다.
그러니 이곳 미국에서 태어난 우리의 자녀들이
누구에게서 역사를 배우며 그 정신을 이어 갈까요?

너무 모릅니다. 배워야 하고 알아야 합니다.
정말 정부적 차원에서도 투자해야 하고
커뮤니티 차원에서도 투자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자녀들에게 역사의 뿌리와 맥을 이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하지 않으면 오늘 우리나라의 경제 대국이란 명칭은
모래위에 세운 탑같이 미래의 어느 날 순식간에 무너져 내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주일이 3월 1일입니다.  
삼일절이 되어 삼일정신과 그 역사의 맥을 이어가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면서 삼일절을 기리는 예배로 드렸습니다.

예배 후 집사님 한분이 한 마디 합니다.
목사님 오늘이 삼일절인데 과연 얼마나 많은 교회가
삼일정신에 대해 설교를 했을까요?

성경은 절기를 두어(레23:41)
그 절기에 대해 잊지 말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대로 지킴으로 후손들에게 절기를 통해
역사를 알게 하라고 했습니다.
삼일정신은 우리 민족의 위대한 기독 정신에
근거한 도의와 자유와 공의를 위한 비폭력 운동입니다.

정말 잊지 말아야 되고 알아야 되고 알려 주어야 할
놀라운 정신이며 온 시대를 뛰어 넘는 인류애 정신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지금 참된 그리스도인의 정신이 필요 한 시기입니다.
정말 정신적이요 도덕적인 지도자가 너무 아쉬운 시대가 되고 있습니다.
이 때 나 하나 만이라도 그런 시대적 정신으로 살아
어둠 속에 밝은 빛으로 드러나는 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합니다.
저두 그렇게 해 볼게요.

백동흠 칼럼 2015. 2. 25. 06:51

팔굼치 피아니스트 - 최혜연양

 

팔굼치 피아니스트 - 최혜연양

백동흠목사

어느 분이 나 같은 “Amazing Grace” 피아노곡을 보내
주었습니다.
파일을 열어 들어 보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굉장히 평안하게 마음으로 와 닿았습니다.
누굴까? 누가 이 곡을 친 것일까? 궁금했습니다.
알고 보니 팔 없는 피아니스 최 혜연 양이었습니다.
부모님이 하던 정육점에서 3살의 나이에 고기 자르는
기계에 순식간에 팔이 잘려 나간 아이었습니다.
그 후 팔이 다시 나오기를 기다렸고
왜 내 팔은 안 나오느냐?
보챌 때 너무 마음이 아팠다고 할머니는 말하네요.
남들과 다른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아무도 모르게
아파하고 힘들어 하며 많이 울었겠지요.
남들이 자신을 쳐다보는 눈길도 많아
속이 상하고 아팠겠지요.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도 위축을 많이 받았겠지요.

중학생 시절 정은현 선생을 만나게 됩니다.
매주 경북 영덕에서 대전까지 버스로 4시간씩 달려 나가
피아노 레슨을 하게 됩니다.

정은현 선생님은 혜연 이를 첫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그의 피아노 연주를 연주하는 것을
듣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울컥했다고 합니다.
마음이 움직인 것입니다. 선생님은 물었답니다.
"너 왜 피아노하려고 하니?"
혜연이의 대답은 한 마디었습니다.
“희망을 주는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다.” 이었습니다.

대전 예고를 들어가면서 하루 3시간에서 6시간씩
선생님과 함께 지옥 훈련같이
피아노 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혜연이는 항상 마음에 “희야 언니”를 품었다고 합니다.
정신적인 지주로 삼은 것입니다.
지금은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는
팔꿈치 피아니스트로 다가 온 것입니다.

저는 또 한 번 느꼈습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 아름답다는 것을
희망이 귀한 것은 절망 같은 상활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많은 시련과 아픔 그리고 아무도 모르게 흘린 눈물과
신음하는 마음속에서 빚어진 인품이 위대하다는 것을

어린 자매 혜연이는 말합니다.
"그땐 너무 너무 싫고 힘이 들었어요.
나를 쳐다보는 시선이 싫고 짜증도 나고 불쾌 했어요
지금은 내가 특이한 것이 아니라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알았어요.
지금은 내가 남과 다르다는 것이 피아니스트로써의
나의 장점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아픈 것만큼 성숙 되여 지고
시련 속에서 정금의 모습으로 나오고  
장애가 희망을 주는 것을 어린 자매를 보면서 느꼈습니다.

제가 즐겨 부르는 찬양이 있습니다.
“이 믿음 굳세라 주가 지켜 주신다.
어둠 밤에도 주의 밝은 빛 인도 하여 주신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때론 주님의 뜻하신 일 헤아리기 어렵더라도
스스로 주님의 뜻 안에 있음을 아셨으면 합니다.
우리 힘들고 어려워도 힘차게 헤쳐 나가며 승리하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합니다.

백동흠 칼럼 2014. 12. 27. 05:24

인자의 몸으로 오신 성탄

인자의 몸으로 오신 성탄

                                         백동흠목사

어제는 성탄 주일입니다.
어느 자매되시는 분이 교회를 오셨습니다.

예배 후 떠나지 아니하고 머뭇거립니다.
다가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주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렵답니다.
너무나 큰 두려움이 내 마음을 짓누른다고 합니다.
알고 보니 병원에서 종합 진단을 받는 중에
자신의 몸에서 커다란 종양이 발견했다고 합니다.
악성인지 양성인지를 열어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1월 초순 수술 날짜도 잡혀 있습니다.

죽음의 이야기는 나와는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죽음이
현실적으로 생생하게 다가 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엄습해 오는 두려움이 마음을 짓누르는데
너무 힘에 겹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런데 가장 마음에 아픈 것은
그런 나의 실존 앞에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 큰 빈방에서 홀로가 되어 덩그러니 버려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 그렇게 눈물이 나더라는 것입니다.

저는 누가복음 10장의 여리고 숲속이 보였습니다.
여리고의 깊은 숲속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다 빼앗고 때려서 거반 죽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버려진 채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죽어가는 그 사람이 보였습니다.

깊은 산중입니다. - 어둡고 음침합니다.
홀로가 되어 있습니다. - 아무도 없습니다.
인적이 끈긴 곳입니다. - 관심을 가져 주는 이 없습니다.
상처가 심합니다. - 지금 피를 흘리고 있습니다.
겉은 멀쩡한데 안으로 피가 흐릅니다.
겉으로는 웃는데 안으로는 눈물이 출렁이고 있습니다.
남 보기에는 행복해 보이는데 안으로는 망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정신이 가물거립니다. 호소할 사람도 없습니다.
도와주세요? 안으로 부르짖는데 와 닿는 손길이 없습니다.
이제 이대로 서서히 굳어지고 죽어 질 것입니다.

여리고 숲속에서 홀로 버려진 채 이제 서서히 죽어가는
그 사람의 모습을 자매님에게서 본 것입니다.
눈물이 났습니다. 함께 아팠습니다.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저는 성탄의 절기만 되면
여리고 숲속에서 인생의 현장을 보게 됩니다.
따스한 아랫목 같은 천국의 영광을 비우시고
살을 에는 추위와 살벌함이 가득한 이 땅위에


육신의 몸으로
낯설지 않는 모습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가장 낮은 자리로 다가와
온 몸으로 인생을 체휼하시고
품어 주시는 그 분의 모습이
얼마나 고마운 지모를 일입니다.

함께 추위에 떨어 줍니다. 함께 아파해 줍니다.
손 내밀어 줍니다. 그리고 품에 안겨 줍니다.
그리고 말씀해 줍니다.
힘들지
너무 아프지
견디기 어렵지
이제 걱정하지 마
내가 버리지 않을 거야
내가 너 홀로 두지 않을 것이야
함께 해 줄게!
두려워하지 마!
그리고 이길 힘을 줄게
힘내! 알았지.

성탄 주일 날
자매님은 예배 후 온 성도와 함께 밥을 먹고
떠나기 전 성도들과 같이 기도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올 때는 홀로로 왔지만
이제 가면서 주의 평안으로 마음에 품고 가는 모습을
보면서 참 교회당이 좋다. 성도가 좋다
그리고 인자의 몸으로 오신 그 예수님이 너무 좋다는
생각을 하면서 빙그레 웃었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백동흠 칼럼 2014. 12. 21. 06:43

메시아 기다립니다.

     

메시아 기다립니다.

                          백동흠 목사

어느 할아버지가 있습니다.

인권과 생명이 유린당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부정부패가 극심했습니다.
99대 1%의 부의 구조로 너무나 많은 사람이
가난과 질병으로 버려져 있었습니다.
종교는 회칠한 무덤같이 경건의 틀에 묶여
냄새만 풍기고 있었습니다.
들여오는 소식은 마음만 상하게 했습니다.
이 할아버지는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땅에서는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 탄식하며 외쳤습니다.
아! 주님 이 땅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옵소서!
메시아 기다립니다.

어둠속에 빛으로 사는 것이 너무 외롭습니다.
믿음 없는 세대에서 믿음으로 사는 것이
너무 힘이 듭니다.
사랑이 식어진 세대에서 여전히 사랑하며
사는 것이 너무나 아픕니다.
그럴수록 하늘의 위로를 기다렸습니다.
그러기에 주의 전에서 살았습니다.
TV나 신문을 보면 속이 상합니다.
들려오는 소식을 접힐 때 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그럴 때 마다 교회당으로 쫓아갑니다.
주님의 위로를 기다리며 철야하며 금식도 하며
그렇게 살기를 80여년의 세월이 흐른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라하고 남루한 어느 부부가 이제 갓 태어난
어린 아이를 품에 앉고 성전에 찾아 온 것입니다.
이 할아버지는 성령의 감동을 받게 됩니다.
마음이 움직입니다. 굉장한 빛의 이끌림을 받게 됩니다.
영으로 흐름이 흘러갑니다.
영은 영으로 통하여 알게 되고 느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남루한 부부의 품에 안긴 어린 아이에게서
메시아의 영광을 본 겻입니다.
너무나 감격이 되어 그 아기를 안아 봅니다.
그 순간 하늘의 위로가 넘칩니다. 눈물이 흐릅니다.
할아버지는 미래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어둠에
비추이는 빛을 보았고 이스라엘의 영광을 본 것입니다.
이제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이 할아버지의 옆에는 84년 동안 함께 기다려온 할머니도
있었습니다. 이 할머니의 이름은 안나였고
이 할아버지의 이름은 시므온입니다.
이 할아버지가 품에 안은 아이의 이름은 “예수”였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야기입니다.(눅2:25)

오늘의 성탄 절기에
땅의 소식을 들을 때 마다 마음이 아파져야 합니다.
너무나 많은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와 편법
99대 1%의 사회구조 속에서 당해야 하는 고통들,
인권과 생명의 유린, 도덕성의 상실과 패륜의 소식,
끝없는 전쟁과 테러 사건들과 서서히 재앙으로 몰아가는
피폐해지는 자연의 붕괴 현상 등
그리고 성도 안에 번지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영적현상

지금 우리는 시므온 할아버지와 안나 할머니의 심정을
가진 하나님의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위로 받을 길 없어
메시아 기다립니다. 메시아 기다립니다.
목이 메어 그렇게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면서
이 땅을 위해 기도해야 할 사람이 필요합니다.

특히 이 성탄의 절기에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즐거워하면서
이제 다시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리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로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안타깝고 너무나 마음이 아파
위로 받을 길이 없어 주의 전에서 철야 하며 금식하며
이 땅을 위해 울어 주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 성탄의 절기만 되면
시므온 할아버지 그리고 안나 할머니가
너무 그립고 닮아지고 싶어지는 마음이 갖게 됩니다.

어제 밤에도 찬송가 104장을 많이 불려 보았습니다.
포로 된 생활 고달파 메시아 기다립니다.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백동흠 칼럼 2014. 10. 24. 05:38

에볼라와 영웅 윌리암 폴리의 탄생

 

윌리엄 폴리의 얼굴입니다. 참 고맘고 감사한 얼굴입니다.

 

온 백성이 그의 죽음를 애도 했습니다. 국민 영웅 의사 우마루 칸입니다.

에볼라와 영웅 윌리암 폴리의 탄생

                                                                     백동흠 목사 


신문을 보다가 눈에 띤 기사가 있었습니다.
“에볼라 완치 영국 간호사,
다시 죽음의 땅 시에라리온으로 출발”
이란 기사였습니다. 도대체 그가 누군데 다시
죽음의 땅으로 가는가? 궁금했습니다.

이름은 윌리엄 폴리이고
나이는 29살입니다.
직업은 풋내기 간호사로
지난 2월 교육과정을 마쳤습니다. 첫 근무로 아프리카
시에라리온의 호스피스 병원 의료 봉사로 선택했고
2014년 2월에서 7월까지 6개월 동안
에이즈나 말기 암 환자를 돌보는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제 6개월의 과정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갈 무렵
그 지역에 에볼라가 창궐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는 귀국해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귀국대신 죽음의 도시가 된 케네마로 들어
간 것입니다.
엄청난 결단도 순교적 마음도 아니었다고 합니다.
그냥 마음이 물같이 흘러갔을 뿐입니다.
내가 가서 도와주어야지 하는 마음이었습니다.
너무나 쉽게 그 곳을 향하여 간 것입니다.
다만 한 마디 한 것이
“간호사로써 특별한 능력도 없는 나 같은 사람의
도움조차도 절실히 필요한 곳”이라고 했습니다.

케네마의 에볼라 치료 센터에서는
몇 명되지도 않는 간호사 중에서 벌써 8명이 감염되어
숨이 졌고 시에라리온의 영웅으로 불리는 존경스런
국민 의사 우마르 칸도 감염되어 숨진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의사와 간호사들도 이제 케네마를
떠나려고 하는 그런 그 곳을 향하여 담담히
들어 간 것입니다.

폴리는 16시간 이상 환자를 돌보았습니다.
찜통더위,  숨 막히는 우주복 같은 옷을 입고
환자들을 치료할 뿐 아니라 토사물 치우기 몸 닦아 주기
기저귀 갈아 주기 주검 처리하기 등
돌보아야 하는 일은 산더미 같았습니다.
확실한 백신도 없고 효과적인 치료도 사실상 없습니다.
이때 감염당하는 것은 순식간이고 결정적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잠복 기간이 20일 이기 때문에
아무도 모르게 감염을 당할 수 있습니다.
국경 없는 의사회의 의료진도 이미 21명이 감염됐고
12명이 숨졌습니다. 기니,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의
의료진 398명이 감염됐고 그 중에 229명이 숨이 졌습니다.

결국 폴리도 한 달을 정신없이 일하던 어느 날
심한 고열과 오한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감염판정을 받은 것입니다.
최초의 영국인 감염자가 된 것입니다.
영국에서 이 소식을 듣고 격리된 군용기를 보내 왔습니다.
비닐 텐트에 갇혀서 시에라리온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몸은 매우 아프지만 모든 것을 낙관한다. 영국의 의사들이
나를 치료해 줄 것을 확신한다.” 말했습니다.
바로 이 날이 8월 24일 있었습니다.

놀라운 일은 폴리에게 기적이 일어 난 것입니다.
아직도 확증이 안 된 임상 시험 중인 “지맵”을 투여한 것이
놀랍게도 완치를 가져 온 것입니다. 하나님이 도우심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 죽음의 땅으로
다시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은 영국의 BBC 방송국은
또 한 사람의 영웅의 탄생함을 알려 주었고 젊은 폴리는
“에볼라 퇴치의 최전선으로 돌아가게 되어 기쁘다”
했습니다.
의료 지원 책임자인 올리버 존슨 박사는
“에볼라 확산을 막는 최선은 그 발원지에서 싸우는 것”
이라고 하면서“폴리 같은 사람이 있기에 인류는
위대한 승리를 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폴리는 이것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했습니다.
무고한 죽음을 막을 수 있다면 가야 한다고 했습니다.
저들이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면 안 가겠는가?
라고도 했습니다.

감염되어 영국으로 돌아 온지 57일 만인 10월 19일
폴리는 시에라리온의 수도 프리타운의 공항에
내린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형제 자매여!

상황이 위대한 영웅을 만들어 낸다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물같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뛰어난 정신력은
나타난다고 생각이 들지 않는지요?
하나님은 인간의 역사 속에 있는 수많은 도전과 시련앞에서
응전하는 누군가 한 사람을 통해 새 역사를 이루어
간다는 사실을 윌리엄 폴리라는 젊은 형제를 통해
또 한 번 볼 수가 있었습니다.

백동흠 칼럼 2014. 10. 8. 05:07

기후 정상회담과 미래 지구의 재앙

 

기후 정상회담과 미래 지구의 재앙

                                        백동흠목사

지난 9월 23일
UN의 주최로 기후 정상회담이 개최됐습니다.
193개국의 정상이 모였습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우리는 논의를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역사를 만들기 위해 왔다고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도 말합니다.
경보음이 계속 울리는데 이를 못들은 체 할 수 없다.
최악의 상황이 오기 전에 국제적으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도 기후 변화에 대응하여 에너지 신산업에
적극 투자하여 미래 역사를 새롭게
전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이틀 전인 9월 21일 주일에는 맨해튼의 거리에
약 30만이 모여 지구 환경을 위한 정치적 시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날, 전 세계의 158개국 2,500여 곳에서
60여만 명이 모여 거리를 행진하며 기후 변화에 대한
획기적인 대응을 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에
세계의 굴뚝이라고 하는 최대 이산화탄소의
배출국인 중국이 불참했습니다.
3위인 인도와 4위 러시아도 참석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150개국 이상이 2030년까지 산림 벌채를
중단하기 합의 했으나 아마존 강의 막대한
삼림 자원국인 브라질도 오지를 않았습니다.
사실 배출국 2위인 미국은 이미 1997년 교토의정서의  
기후 협약을 거부한 것이 미 연방의회입니다.  
그들은 온실 가스 감축이 경제에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뉴욕 타임지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먼은 말합니다.
지구가 더워지는 일은 계속될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기후 관련 시책에 대해 국가와 정부가 외면하는 이유는
경제의 문제입니다.
결국은 자국의 이익과 번영을 위한 탐스런 욕망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에 지구의 미래는 절망스럽다고 했습니다.

참고로 말씀을 드립니다.
1960년 150억 톤의 이산화탄소를 배출 시켰습니다.
2005년 250억 톤이 됐습니다.
2014년 390억 톤을 넘어 400억 톤이 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올해 2월 24일 기후 국제 전문가들이 제주에서 모였습니다.
전문가들의 회의한 결과는 이대로 가면
6도의 상승은 2050년이면 끝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구의 대 재앙과 인류의 멸망은 그 이전에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말입니다.
지금의 추세가 계시록으로 가는 길목이라면
대세는 그렇게 흘러 갈 것입니다.
인류는 더욱 자신과 자국의 탐욕을 포기 하지 않을 것이며
미래의 지구는 더욱 피폐해 질 것이며
재앙의 땅이 될 것입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기 때문이지요. (약 1:15)

첫째는 지금은 시대의 흐름을 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일어나는 조짐과 현상이 미래에 어디로 흘러가는가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천기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마 16:3)

둘째는 깨어 있어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이 말은 종말주의자나  세대주의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상한 계시나 예언을 추종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우리가 애쓰고 힘쓸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삶이고 인품의 질입니다.
내 안에서 자라야 할 하나님의 형상의 모습입니다.

벧후 3장14절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그날 내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것인가?
이것을 신경을 써야하고 힘을 써야 합니다.

셋째는 해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라오디아 교회 같이 스스로 살찌워서는 안 될 것입니다.(계3:17)
주의 부요를 가난한 사람과 낮은 사람에게 돌려야 하며
그들의 아픔에 함께 하며 울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복음을 접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여!

백에 하나 만에 하나라도 지금이 계시록으로 가는 길목에 있다면
은혜의 때 구원의 날의 끝자락에 걸려 있다면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주님이 그의 교회를 데려가는
날이 온다고 한다면 롯의 사위를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농담”이 아닐 것이기 때문입니다.(창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