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동흠 칼럼 2009. 9. 4. 09:39

스스로 속는 삶을 살아선 안되겠지요?

 

         스스로 속는 삶을 살아선 안 되겠지요?

                                                                               백  동흠목사

여기 스스로 속이므로 오는 비극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한 젊은 의사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체중이 줄고 몸이 몹시 피곤해져서 어색하게 자신의 친구의사에게
진단을 받아보았습니다.
그런데 진단은 뜻밖의 간암 이였습니다.
그것도 말기 암이었고 한 달 여정의 시한부 인생이 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의사의 전공이 암을 전공한 사람 이였습니다.
암을 전공한 이 사람이 암에 걸린 지 3년이 되었고 6개월 전만 알았어도
치료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암을 전공한 의사였습니다.
암에 대해 논문을 썼고 암에 대해서 세미나를 했고 많은 사람을 진찰했고
처방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예외인줄 알았습니다.
스스로는 문제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 확신했고 그렇게 믿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금 와서 뚜껑을 열어 보니 치명적인 문제는 자신 안에 있었습니다.

아! 스스로 속는 자의 비극이 여기 있었습니다.

주님께서도 스스로 속는 자의 비극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7:22-23절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고,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베풀지 않았습니까?’

그 때, 내가 분명하게 그들에게 말할 것이다.
‘나는 너희를 모른다. 악한 일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썩 물러나라.’”

첫째 주님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했답니다.
둘째 마귀를 쫓아냈답니다.
셋째 많은 기적을 보여 주었답니다.
그래서 스스로 굉장한 줄 알았습니다. 훌륭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은 말씀합니다.
너는 나와 전혀 관계없다.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내게서 떠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대단히 여겨 줄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날에 가서 뚜껑을 열어 보니 전혀 아니었습니다.
사랑한다고 했으나 사랑의 이름으로 오히려 괴롬을 주었습니다.
관심을 가져 준다고 했으나 이건 관심이 아니라 간섭 이였습니다.
위로한다고 하였으나 오히려 번뇌의 위로자이었습니다.
주님을 위한다고 하였으나 실상은 다 자신의 익권을 위함에 불과하였습니다.

스스로 속는 것까지는 괜찮을 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아뿔싸”  늦음의 때, 손을 쓰기에는 이미 늦어 버린
말기 암의 환자가 된 전문의와 같은 상황이 내 삶이 되선 안 되겠지요.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까요?

첫째는 생명과 성향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생명의 질이 내안에 스며 들어와 내가 그런 질의 흐름으로 변형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의 질의 흐름으로 인품과 삶의 내용이 주님의 형상으로 자라나는 것입니다. (엡4:13,15)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와 같은 생명의 성향이
나를 포도나무의 열매를 절로 맺게 하는 삶과 인격의 모습입니다.(요15: 4)

둘째는 세속의 질의 문제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은 세속이 들어와 있습니다. 마치 술이 내안에 들어와 술로 절여 있는
체질이 된 사람같이 세속의 질에 절어 있습니다.
이 세속의 질이 내 안에서 자꾸 속아 내여 져야 합니다.
깨어지고 죽어져야 합니다. 바울은 날마다 죽는다.(고전15:31)
내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했습니다. (고전9:27)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세속과 사탄의 영향으로부터 오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나가는 것이겠지요. 흠과 티도 없이 주 앞에 나타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벧후3:14)

이제 조금 있으면 지남철이 철의 성분을 끌어 당겨 올라가듯
성령님께 성령의 질의 성분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끌어 당겨 데려가실 날이
다가 오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맡24:40-41)
경건의 모양만 치장하고 있다가 스스로 속는 사람이 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오늘 우리의 세대는 종말의 현상이 보편화 되고 있습니다. 
많이 패역해 지고 있습니다.
너도 그러니 나도 그러고 우리 모두가 그런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보편성의 진리가 되어 전혀 문제로 느끼지 못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세대를 두고 성경은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라”(롬12:2)
                                                                  - 밸리 코리안 뉴스 2009.9월호-

영성 2009. 6. 26. 13:40

삶에는 깊이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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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이아가라에서-
도종환님의 깊은 물이란 시가 있습니다. 

“물이 깊어야 배가 뜬다.

 얕은 물에는 술잔 하나 뜨지 못한다.

 그대 가슴엔 종이배 하나라로 뜨는가?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한국 사회는
'난민촌'의 특성을 갖고 있다는 글에서 아래와 같은 내용을 읽었습니다.

“난민촌은 뿌리 없이 흔들리는 사회다. 이리저리 우르르 몰려다니는
쏠림 현상(유행성), 확 달아올랐다가 금방 잊어버리는 냄비 현상,
지역과 같은 원시적인 기준으로 편을 갈라 싸우는 패거리 현상(국회)도
난민촌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이다. 난민촌에선 괴질(怪疾)에 대한 자극적
소문이 비정상적으로 증폭되거나(광우병 파동)
누구를 도사로 떠받드는 것이(미네르바)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난민촌에서 중요한 것은 내일은 또 어디서 무슨 바람이 불어와
어떤 바람개비를 돌릴 것이냐”


성경은 바람에 나는 겨의 현상을 “악”이라고 했습니다.(시1:4)
그리고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은 사람은 내게 얻지 못한다고 했습니다.(야1:6) 주님은 마음의 심지가 있는 사람에게 평강으로 이끄신다고도 했습니다.(사26:3)
오늘 우리의 현실과 환경은 바다 물결 같이 요동하게 하고 있고
바람의 나는 겨 같이 이리 불게하고 저리 불게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세상의 사람들은 삶의 뿌리가 없기에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삶은 하나님 보기에 “악”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진정 예수의 사람들은 생명의 뿌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삶은 밖에 있는 것에 의해서 흔들리거나
요동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밖으로 난 문은 닫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골방으로 들어가라고 했습니다.(마66)

골방은 내면의 세계요 뿌리가 있는 영의 세계를 뜻하고 있습니다.

나의 내면에는 안정된 질서가 있습니다.

그리고 평강이 그 마음과 생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고요합니다. 그래서 세미한 음성을 들을 수 있는 침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주님의 음성을 따라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게 주어진 길,
작정된 데로, 기록된 데로 묵묵히 가게 합니다. 이것이 주님의 영성입니다.

"얕은 물은 잔돌만 만나도 소란스러운데

 큰물은 깊어서 소리가 없다”


사랑하는 형제여! 자매여!

정말 그대의 삶은 깊음이 있는가?

그대의 가슴에는 종이배 하나라도 뜨는가?

묻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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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학교 해변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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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우리의 미래었습니다. 맑았습니다. 신나했습니다. 그리고 파도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습니다.
날씨는 흐리고 추운 날이었으나 그들의 마음은 따뜻하고 그들의 하늘은 파랬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있었기에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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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사람들 2009. 4. 5. 14:21

생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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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엘의 생일을 맞았습니다.
화단을 아름답게 가꾸듯 그렇게 행복은 가꾸어 지는 것이지요.
이 모두가 다 주님의 은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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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잡지사에서 우리 가정의 행복을 소개하겠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지요?
아니요 우리는 유명한 소문난 가정이기 보다는 행복한 가정을 원하고 있답니다.
다엘아!  진심으로 우리는 너의 생일을 축하고 하고 있단다.
너를 향한 주님의 놀라운 사랑의 계획이 있음을 알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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